나는 드디어 ‘신’을 찾기 시작했다
이 웅 재
없다. 없었다. 아무리 찾아도 없는 것이다. 상의 주머니를 비롯하여 하의 뒷주머니까지 뒤집어 보아도 없었다. 어제 입고 나갔던 옷이 아닌, 가끔 입고 다니는 다른 옷의 주머니들까지도 몽땅 뒤져 보았지만, 없는 것은 없는 것이다. 갑자기 눈앞이 노오래진다. 어떻게 살아나가나 걱정이 태산같이 쌓인다. 우선 내일서부터의 스케줄이 엉망이 되게 생긴 것이다.
머리가 띵하다. 아무래도 엊저녁에 과음을 했나 보다. 오래간만에 기분이 좋아서 2차, 3차를 하다 보니 필름마저 끊겼다. 근래에 드문 일이었다. 도대체 어디서 잃어버렸을까? 좀처럼 물건을 잃어버리는 일은 없었는데…. 현관 문 열쇠도 있고, 다초점 렌즈의 안경도 무사한데, 그놈만이 없는 것이다. 까짓것 이참에 새것으로 바꿔 버려? 얼핏 그것도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엄청난 희생이 따라야 하는 것이다. 오랜 동안 입력해 놓았던 전화번호들을 어찌할 것인가? 이제까지 나와 연락하던 전화번호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리게 되는 것이니, 그 혼란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 것인가? 휴대폰이 이처럼 속 썩이는 물건인 줄을 나는 오늘에야 처음으로 알았다.
남들이 다들 그랬다. 놈을 어쩌다 집에다 두고 출근하였을 때에는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안 잡힌다고. 그런 걸 나는 아직껏 느껴보질 못했었다. 그래서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별 줏대 없는 사람들 같으니…하고 무시해 버렸던 적이 어디 한두 번이던가? 아직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던 때문에 나는 그런 걸 못 느끼고 살아왔던 것이다. 그런데 드디어 사단이 벌어졌다. 남에게 일어나는 일이란 언젠가는 나에게도 생길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왜 진작 깨닫지 못했던 것일까? 아니, 아니다. 설사 그걸 깨닫고 있었다 하더라도 이 판국에 그게 무슨 도움이 될 것인가?
어쩔 것인가? 1차, 2차, 3차로 갔던 집들을 몽땅 돌면서 찾아볼까? 아니, 아니다. 누군가가 주웠다면 내게로 연락이라도 오지 않았을까? 아니, 아니다. 그가 내 전화번호를 알 수가 없지 않은가? 휴대폰의 전화번호야 휴대폰에 등록이 되어 있겠지만, 그건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일이 아닌가? 아니, 아니다. 내게 연락해줄 의사만 있다면, 그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최근의 통화기록, 발신 및 수신 메시지 기록 등만 검색해 보아도 내가 연락을 취했던 사람들의 전화번호를 알아낼 수 있을 것이고, 그들에게 연락을 취해 본다면 우리 집의 전화번호를 알아내는 일 따위야 식은 죽 먹기가 아니겠는가?
문제는 내 휴대폰을 주운 사람이 주인을 찾아주려는 의사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귀찮아서 그냥 내버려둘 수도 있고, 우체국 같은 데에 가져다주면 약간의 사례금도 지급한다니까 그런 방법을 쓸 수도 있을 것이고, 그리고 이건 가정하기 싫은 일이지만, 내 전화번호를 이용해서 무한정으로, 혹은 외국으로 통화를 하든가, 심지어는 그걸 이용해서 물건을 구매하든지 사채를 끌어 쓰든지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불길한 생각이 온통 내 좁디좁은 머릿속을 꽉꽉 메우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휴대폰이나 신용카드 같은 것은 절대로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물건이라는 점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헌데, 그런 걸 누가 잃어버리겠다고 작정을 하고 잃어버리는가? 비가 올 것 같아서 들고 나갔던 우산, 의외로 햇볕이 쨍쨍 나는 바람에 어디다 두었는지도 모르는 채 잃어버리는 경우에도, 따지면 별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마음 한구석이 찜찜하던가? 그런데 이건, 우산 따위를 잃어버리는 일과는 격이 다른 일이다.
잃어버린다는 것, 그것은 내 것이었던 것의 소유권을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미지의 사람에게로 전이시키는 일이다. 그것은 이후부터는 내 세력의 권역에서 이탈하게 됨을 의미한다. 내 것이었던 것이 내 것이 아닌 것으로의 변화, 그것이 바로 분실의 대가(代價)다. 그런데 휴대폰의 경우에는 그것만으로 끝나는 일도 아니다. 아주 가까운 친구라든가 자주 만나는 사람들인 경우야 며칠만 지나면 다시 연락이 가능해지는 상태로 돌아갈 수 있겠지만, 소중하면서도 자주 만나지는 못하던 친구, 상대보다도 내게 꼭 필요한 사람들과의 관계 복원은 그렇게 쉽사리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자칫 사람까지도 잃어버리게 될 수가 있다는 말이다.
또 그것만으로 끝나지도 않는다. 때에 따라서는 나의 사생활까지도 남에게 노출되는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 중에는 사업상의 비밀도 있겠고, 밝혀져서는 곤란한 사교상의 밀담도 있을 것이다. 더구나 그것이 남녀 관계에서의 문제라면 참으로 난감한 일까지도 벌어질 수 있지 않겠는가? 요사이엔 무작위로 “당신이 불륜을 저지르는 현장을 목격했다”면서 통장으로 일정 금액을 송금하지 않으면 인터넷에 공개하여 버리겠다는 터무니없는 협박이 먹혀들어간다는 세상이 아니던가?
내 전 재산은 30만 원도 안 된다고 말도 안 되는 주장을 얼굴 하나 붉히지 않고 할 수 있는 배짱이라도 있든가, 퇴직하면 임대아파트에서 살겠다고 하고서는 그 얘기 문둥이 어린애 자지 떼먹듯 하고서도 나 몰라라 오리발 내밀면서, 주변 환경 조성을 위해 500억 원이나 들이고 건물 값만 20억이 넘어가는 저택인데도 종부세 달랑 3만 원만 낼 수 있는 특출한 재주가 있든가 하는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우리 일반 서민들이야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놈 없다.”는 말에 잔뜩 주눅이 들어서, ‘뒷구멍’ 까발리겠다는 말에들 벌벌 떠는 사람들이 아닌가?
“잃어버린 사람이 죄인이다.”
애꿎은 속담만 웅얼거리면서, 평소에는 무신론자였던 나는 열심히 ‘신(神)’을 찾아 나섰다. “예수님, 석가님, 마호메트님, 이 죄 많은 몸을 용서하시와 제발 제 휴대폰 좀 찾게해 주소서.” 그러면서 1차, 2차, 3차로 갔던 집들을 몽땅 돌기 위해서 나는 드디어 ‘신[履]’을 찾기 시작했다. (09. 3. 15. 원고지 15매)
'삶의 미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밖에서 본 용인(龍仁) (0) | 2009.08.02 |
---|---|
할머니는 뭐 낼 거야? (0) | 2009.05.21 |
미쳤군, 미쳤어! (0) | 2008.11.14 |
황소 걸음 (0) | 2008.07.15 |
☆999명을 죽인 앙굴리말라(손가락 목걸이) (0) | 2008.05.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