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이야기

술 이야기 2. 중학교 때 받았던 푸짐한 술상

거북이3 2009. 4. 5. 11:00

술 이야기 2. 중학교 때 받았던 푸짐한 술상

                                                                    

                                                                 이   웅   재

 요즈음 대학생들은 주로 깡소주를 마신다. 이유야 물론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다. 자신의 주량도 확실히 모르고 있는 판국에 깡소주를 마시다 보면 실수가 뒤따르게 마련이다. 소위 주사(酒邪)를 부리게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한 번 부리게 된 주사는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 게 탈이다. 술 마시고 자는 사람은 늘 자고, 우는 사람은 마실 적마다 운다. 싸움질하는 사람은 언제나 싸운다.

 평소에는 멀쩡하던 사람이 술만 마시면 개차반이 되는 예를 우리들은 얼마든지 보아 오지 않았는가? 내 친구 중에도 그런 사람이 하나 있다. 술을 마시지 않았을 때에는 성품이 아주 고운 사람이다. 멋도 모르고 함께 대작(對酌)하다가는 큰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자, 기분 좋게 한 잔 들자구.”

 처음엔 정말 유쾌하다. 이런 친구와 술 마시길 잘했다 싶은 마음이 들 때쯤 그 친구, 느닷없이 정색을 하고 명령한다.

 “야, 임마, 무릎 꿇어!”

 술 마시다가 웬 농담이냐구? 농담이 아니다. 표정을 보면 엄숙하기까지 하다. 친구끼리 술 마시다가 무릎 꿇는 얼간이를 보았는가? 결국은 대드리판 싸움이 벌어지고야 만다. 다음부터는 아예 그 친구를 상대하려 들지 않게 된다. 그래서 외톨박이로 변해 가는 친구. 외톨이가 되어 갈수록 그 버릇은 강도가 더욱 높아만 간다.

 그래서 예로부터 술은 아버님이나 선생님 같은 윗사람 앞에서 배워야 한다고 했을 것이다. 한 번 밴 술버릇은 웬만해선 뒤바뀌는 법이 없다는 것을 체험으로 습득한 우리 조상들의 슬기가 새삼 돋보인다.

 나는 깡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중학교 때에도 내 술상은 푸짐했으니까.


 1년 선배 중에 대일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지금 그 성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같은 동네에 살았는데, 순 깡패였다. 그의 집은 그 동네에서 아마도 제일 부잣집이었지 싶다. 이상하게도 그는 나를 끔찍이 위해 주었다. 당시에 나는 상당한 수준의 모범생이었는데,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던가?

 사실 사춘기 시절이라면 범생이 자랑거리가 될 수는 없었다. 그건 숫기 없는 놈들에게나 어울리는 일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 시절이라면 누구나 우쭐대고 싶은 때가 아니던가? 그것도 체력적으로.

 그런데, 나는 갈비였다. 한 때 유행하던 말로 비 사이로 막 가도 비를 맞지 않을 정도로 빼빼 마른 모습. 나는 그게 싫었다.

 살 좀 찔 수 없을까? 가난하던 시절이라 여름이면 러닝 셔츠만 입고 지내야 하는 일이 내게는 지옥 같았다. 깡패들의 그 든든한 근육, 팔을 굽힐 때 불쑥 솟아오르는 알통, 나는 그것이 부럽고, 부럽고, 또 부러웠다.

 대일이는 그 당시 내게는 우상이었다. 그런 그가 건드리기만 해도 나가떨어질 것 같은 나를 꽤나 귀여워해 늘 함께 이끌고 다니고 있었으니, 나는 늘 ‘황공’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도 ‘황공’ 비슷한 심정으로 나를 그토록 위해 준 것은 아닐까 싶지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극과 극은 서로 통하는 법이니까.

 양쪽 집의 부모님들도 우리의 그 우정 아닌 우정을 반기시는 눈치였다. 극과 극은 서로 보완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의식해서였을 것이다. 대일이 때문에 아무도 빼빼 마른 내게 찍자 붙는 놈들이 없었고, 나 때문에 그는 막되어 먹은 깡패라는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었다는 점을 다행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루는 그가 자기 집으로 함께 가잔다. 덜렁덜렁 따라갔더니, 그 넓은 집이 온통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기억이 분명치 않지만, 아마도 그의 누나가 시집을 갔던가, 잔치를 벌이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내 손을 잡고 그 많은 사람들 사이로 의기양양하게 걸어 들어갔다. 그건 가히 의도적이었다. 나도 역시 의도적으로 보무도 당당하게(?) 그를 따라 들어갔다. 그는 나를 안방으로 이끌었다. 마당을 비롯하여 방이란 방들이 모두 손님들로 붐볐지만, 안방만은 텅 비어 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는 밖에다 대고 소리를 질러 댔다.

 “할머니, 여기 술상 하나 차려 주세요!”

 나는 농담이지 싶었다. 그런데 웬걸? 조금 있더니, 정말로 그의 할머니께서 아주 푸짐한 주안상을 들고 들어오시는 것이 아닌가? 할머니께서는, “맛있게 먹어라, 웅재야.”하시며 내 등을 두드려 주시기까지 하셨다.

 그날, 나는 아주 늘어지게 술을 마셨다. 세 살 때, 외삼촌과 대작하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그러면서 대일이와 함께 술을 마시는 일은 나 자신도 그의 깡패 기질에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사명감 비슷한 감정마저 느끼면서 정말 열심히 마셨다.

 아무리 푸짐한 안주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중학생이 먹어 보아야 얼마나 먹었을까? 좌우간 나는 그날 까뿍 취하고야 말았다. ‘집엘 가야지, 가야지’ 하는 생각만 하다가 그대로 곯아떨어지고야 말았다. 물론 그의 할머니께서 우리 집에 미리 연통을 해 두셔서, 집에서도 걱정은 하지 않았고, 더욱 다행이었던 것은 그 이튿날이 바로 일요일이라는 점이었다.

 나는 지금도 그때를 잊지 못한다. 그와 다시 한 잔 하고픈 생각이지만, 아, 그는 이미 갔다. 내가 객지로 떠돌아다니면서 공부하고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그는 영원히 우리의 곁을 떠나 버린 것이다. 정작 성인이 되어서는 함께 대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지도 못했는데, 그는 이 세상에서는 다시 만날 수가 없는 것이다.

 “대일이 형, 정말 고마웠소!”

 지금도 나는 자작으로 한 잔 하면서 그를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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