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쓰기

(수필 쓰기 30) [문장 고치기 ②]

거북이3 2009. 9. 8. 22:51

 

수필 쓰기 31 [문장 고치기 ②].hwp

 

(수필 쓰기 30)  [문장 고치기 ②]


                                                                      이   웅   재


 제일 먼저 ‘주제 확정의 원칙’이다. 주제가 ‘적절하게’ 드러났느냐 하는 것을 점검하라는 말이다. 여기서 ‘적절하게’라는 말은 매우 애매한 표현인데, 작품에 따라서 또는 소재에 따라서 주제가 명시적으로 드러날 필요가 있을 때도 있고, 반대로 암시적이라야 할 때도 있기 때문에 ‘적절하게’라는 말을 사용했다. 이 문제는 이미 주제와 관련된 서술에서 논의된 문제이기에, 퇴고 시 제일 먼저 점검해야 할 문제라는 점만 밝혀 둔다.


 다음은 ‘재구성의 원칙’이다. 자신이 드러내고자 하는 주제를 위하여 모든 소재들이 효과적으로 배치되어 있는지, 전체적으로 보아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는지를 따져 보아야 한다. 일관성을 해치고 있는 내용이 들어 있으면, 그것이 아무리 아까운 소재라고 하더라도 가차 없이 제거시켜 버려야 한다. 서두, 본문, 결말의 길이도 재조정해 주고, 시간적, 공간적 서술의 순서, 또는 점층적이거나 점강적인 소재 배열의 순서에도 무리가 없었나를 살펴서 재구성을 해 주어야 한다.


 세 번째, ‘부가(附加)의 원칙’이다. 다음 글을 보자.


중국 공산당 초대 총서기를 지낸 천두슈(陳獨秀:1879~1942)는 1918년 1월 15일 잡지 ‘신청년(新靑年)’에서 “덕(德)선생과 새(賽)선생이 중국을 구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민주(Democracy)와 과학(Science)을 뜻하는 영어의 중국식 표기인 ‘德莫克拉西’와 ‘賽因斯’를 각각 의인화한 것이다. 덕 선생과 새 선생은 이듬해 중국 대륙을 휩쓴 5·4운동의 핵심 가치가 됐다.

 우화처럼 과학적 가치가 추앙받으면서 새 선생은 지금 중국 사회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그렇다면 덕 선생은 어떤 대접을 받고 있을까.

 6·4 천안문(天安門) 사태 20주년을 맞는 아침에 드는 의문이다. 89년 6월 3일부터 4일로 넘어가는 하룻밤에 중국의 현대사에 지울 수 없는 대규모 유혈 사태가 발생했다. 그리고 꼭 20년이 지났다. 밤새 중국은 별일 없이 ‘안녕’했다.

 요즘 중국 언론을 통해 보면 한반도가 오히려 더 위태로워 보인다. 한반도 핵전쟁 가능성까지 부각하면서 중국인들의 관심을 천안문이 아닌 해외로 유도하느라 바쁘다.

 그렇다면 중국 사회는 정말 민주주의를 만끽하며 문제없이 잘 돌아가고 있는 것일까. 깨어 있는 지식인들은 “89년 이후 중국의 청년 정신이 성장을 멈췄다”고 비판한다. 또 “당국은 중국식 민주주의를 강조하지만 보편적 민주주의가 여전히 평가절하되고 있다”고 꼬집는다. 덕 선생과 새 선생의 불화와 부조화가 존재한다는 얘기다.

 민주와 과학, 두 선생이 중국 땅에서 조화(和諧)롭게 동거할 날은 언제 올까.

       (장세정 베이징특파원. 중앙일보. ‘덕 선생’과 ‘새 선생’의 불화. 2009.06.04.)


 이 글은 중국의 ‘민주화’가 아직도 덜 되어 있다는 점을 말하기 위한 글이다 보니까 그 ‘민주’에 대한 얘기가 태반을 차지했는데, 따라서 글 전체로 보았을 때는 균형감각을 벗어났다고 볼 수가 있겠다. 첫 번째 문단의 서두 부분을 지나 “우화처럼 과학적 가치가 추앙받으면서 새 선생은 지금 중국 사회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라는 단 한 문장만이 ‘새 선생’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그나마도 구체성이 없는 추상적 표현으로 그쳤다. 어떤 식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지, 그 구체적 예증을 들어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처럼 무언가 빠진 듯한 느낌, 그것을 보완해 주는 것이 바로 ‘부가의 원칙’이라고 할 것이다. 말하자면 이는 ‘화룡점정(畵龍點睛)’의 마지막 마무리 작업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수형기(水衡記)』에 나오는 ‘화룡점정’의 고사(故事)는 다음과 같다.


 중국의 남북조(南北朝) 시대에 남쪽의 양(梁)나라에 사는 장승요(張僧繇)라는 유명한 화가가 있었다. 그에게 어느 날 금릉(金陵 ;지금의 南京)에 있는 안락사(安樂寺)로부터 벽화로 용을 그려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는 당장이라도 승천(昇天)하려는 듯한 용 두 마리를 그렸다. 그런데 웬일인지 화가는 그 용의 눈동자는 그리질 않았다. 사람들이 이상히 여겨 까닭을 묻자, 눈동자를 그리면 용이 승천해 버리기 때문이라고 답하였다. 사람들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한 마리의 용에다가 눈동자를 그려 넣었더니 갑자기 뇌성벽력을 치며 용이 벽을 차고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고 한다. ‘벽을 깨뜨리고 날아가 버렸다.’ 해서 ‘파벽비거(破壁飛去)’라고도 한다. 눈동자를 그리지 않은 용은 물론 그대로 남아 있었다.


어딘가 부족한 듯한 점을 찾아내어 작품을 생동감 있게 만들어주는 마지막 결정적인 요소를 첨가하여 주는 작업, 그것은 빠뜨려서는 안 될 아주 요긴한 작업이다. 치옹(痴翁) 윤오영(尹五榮 1907-1976) 님의 ‘달밤’이란 작품을 예로 들어보자.


내가 잠시 낙향(落鄕)해서 있었을 때 일.

 어느 날 밤이었다. 달이 몹시 밝았다. 서울서 이사 온 윗마을 김 군을 찾아갔다. 대문은 깊이 잠겨 있고 주위는 고요했다. 나는 밖에서 혼자 머뭇거리다가 대문을 흔들지 않고 그대로 돌아섰다.

 맞은편 집 사랑 툇마루엔 웬 노인이 한 분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서 달을 보고 있었다. 나는 걸음을 그리로 옮겼다. 그는 내가 가까이 가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아니했다.

 "좀 쉬어 가겠습니다." 하며 걸터앉았다.

 그는 이웃 사람이 아닌 것을 알자, "아랫마을서 오셨소?" 하고 물었다.

 "네, ①달이 하도 밝기에······."

 "음! 참 밝소."

 허연 수염을 쓰다듬었다. 두 사람은 각각 말이 없었다.

 푸른 하늘은 먼 마을에 덮여 있고, 뜰은 달빛에 젖어 있었다.

 노인이 방으로 들어가더니, 안으로 통한 문소리가 나고 얼마 후에 다시 문소리가 들리더니, 노인은 방에서 상을 들고 나왔다. 소반에는 무청김치 한 그릇, 막걸리 두 사발이 놓여 있었다.

 "마침 잘 됐소, 농주(農酒) 두 사발이 남았더니······." 하고 권하며, 스스로 한 사발을 죽 들이켰다. 나는 그런 큰 사발의 술을 먹어 본 적은 일찍이 없었지만 그 노인이 마시는 바람에 따라 마셔 버렸다.

 이윽고, "살펴 가우." 하고 노인의 인사를 들으며 내려왔다. ②얼마쯤 내려오다 보니, 노인은 그대로 앉아 있었다.


 초고(草稿)에서는 밑줄 친 ①이나 ②가 없었다고 가정해 보자. 논리적으로 보아서는 ①과 같이 이유 제시의 문장은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 말은 초면인 두 사람을 함께 농주(農酒)까지 마시게 만들어 주는 계기를 마련하는 동기를 부여했을 뿐만 아니라, ‘하도 밝은 달’로 하여 무언 중에서도 그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농익은 정(情)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빼 놓을 수 없는 대화가 되었다. 물론 그 ‘농익은 정’은 서술의 성격상 빠질 수 없는 ‘농주(農酒)’라는 소재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 ①‘달이 하도 밝기에…….’가 없었다면, 그 뚝뚝 듣는 정의 농도가 반감되었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 밑줄 친 ②가 없었다면? ‘서사(敍事)’의 성격상으로는 그 문장이 없어도 무방하겠지만, 주제의 효과적인 표현을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될 문장이 아니던가? ‘그대로 앉아 있는 노인’이야말로 이 작품에서 받게 되는 감동의 여운을 ‘그대로’ 느끼게 만들어 주는 천금 같은 문장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네 번째는 ‘삭제(削除)의 원칙’이다. 주제의 표출과는 상관없이 쓸 데 없이 덧붙은 부분, 중복된 표현, 유사한 표현 등등을 걸러내는 과정에 해당하는 원칙이다. 튼실한 과일을 수확하려면 적당하게 꽃을 따주어야 하고, 수형(樹型)을 제대로 잡으려면 알맞은 형태로 전지(剪枝)를 해야 하듯이, 당장은 아까워 보이더라도 눈 질끈 감고 잘라 버릴 수 있는 부분은 싹뚝 잘라 버려야만 한다.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 베이컨의 ‘학문에 대하여’라는 글에서도 “사람의 천부(天賦)의 능력은 마치 천연 그대로의 식물과 같아서 학문으로 전지(剪枝)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천부(天賦)’의 것도 ‘전지(剪枝)’가 필요한데, 우리 글쟁이들이 쓰는 글에서야 말하여 무엇하랴? 쓸데없는 ‘사족(蛇足)’은 잘라 버려야 한다. ‘사족(蛇足)’과 관련된 『전국책(戰國策)』「제책(齊策)」의 고사를 보기로 하자.


초(楚)나라의 영윤(令尹) 소양(昭陽)이 위(衛)나라를 치고 다시 제(齊)나라를 치려 할 때, 제나라의 세객(說客) 진진(陳軫)이 찾아와서 말했다.

 "초나라의 어떤 사람이 제사를 지내고 좋은 술 한 잔을 내리자,그 하인들이 내기를 했습니다. 그 내기란 바로 땅바닥에 뱀을 제일 먼저 그리는 사람이 그 술을 마시기로 한 것입니다. 드디어 한 하인이 뱀을 다 그린 후 술잔을 잡고 말했습니다. “나는 뱀의 발까지 다 그렸다.”

 그러자 다른 사람이 재빨리 뱀 그림을 완성하고는 말했습니다. “뱀은 본래 발이 없는데, 자네는 어찌 발을 그렸는가?” 하며 술잔을 빼앗아 마셔버렸습니다. 장군은 지금 위나라를 치고 다시 제나라를 치려고 하시는데 나라의 최고 벼슬에 계시는 장군이 거기서 더 얻을 것이 무엇이며, 만에 하나라도 제나라와의 싸움에서 실수를 하게 된다면 뱀의 발을 그리려다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과 똑같은 결과가 될 것입니다.”

 이에 소양은 과연 옳은 말이라 여겨 군대를 철수시켰다.


 사람들은 더러 무슨 일을 할 때,보다 잘하고 싶은 마음에서 종종 쓸데없는 일을 덧붙여서 일을 그르치기도 한다. 일종의 ‘노파심(老婆心)’ 때문이라고나 할까? 노파심, 그건 ‘필요 이상으로 남의 일을 걱정하고 염려하는 마음.’을 가리킨다. 줄여서 그냥 ‘파심(婆心)’이라고도 한다. 그 비슷한 말에는 ‘기우(杞憂)’도 있다. ‘하늘이 무너질까 땅이 꺼질까’ 하고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는 얘기이다. 그림을 그리다가 아주 훌륭한 그림을 완성해 놓고도 무언가 미심쩍은 생각에서 마지막 덧칠을 하는 일, 그것이 바로 사족인 것이요, 그것이야말로 ‘군더더기’, 후회 막급한 행위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런 군더더기는 가차 없이 잘라 버려야 한다.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일을 ‘산고(産苦)’에다 비유하기도 하지만, 출산(出産)의 경우와는 다른 것이 글짓기이기도 하다는 점은 명심하자. 자식의 경우에는 심신을 막론하고 장애자를 출산하더라도 그 자식을 버릴 수가 없다. 아니, 오히려 그 장애 때문에 부모는 그 아이를 평생토록 보살펴 주어야만 하는 일이요, 그 장애 때문에 그 아이가 더욱 소중하게 여겨질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글쓰기에서는 다르다. 잘못된 것은 고쳐야 한다. 불필요한 부분은 잘라 버려야 한다. 그렇게 잘라 버리는 것, 그것이 바로 ‘삭제의 원리’에 해당하는 일이다.

 그래서 필자는 말한다. 초고는 가급적 예정했던 작품의 길이보다는 길게 쓰라고. 그리고 퇴고의 과정에서 과감하게 잘라 버리라고. ‘박기는 어렵고 빼기는 쉽다.’라는 것은 남녀 관계에서만 해당하는 말은 아니다. 덧붙이기는 어렵고 빼 버리기는 쉬운 것이 퇴고에서의 실질적인 과정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덧붙이자. 그것은 바로 ‘문법에 맞는 글쓰기의 원칙’이라 할 것이다. 맞춤법, 띄어쓰기, 문장부호 등등의 자질구레한 것들을 바로잡는 일이다. ‘자질구레한 것들’이라고 해서 무시하면 안 된다.

 필자는 젊었을 시절, 통영 지방의 어느 여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적이 있다. 그 학교는 그 지방에서 ‘문예’면에서는 단연 독보적인 학교였는데, 어느 시점에선가 그 점이 먹혀들지 않기 시작했고, 바로 그런 시기에 필자가 그곳에 부임하게 되었다. 그 학교에스는 ‘서울에서, 그것도 국문학과 출신의 선생님이 오신다고’ 뻥튀기된 기대감으로 부풀어 있었다. 헌데, 기적적으로 그 학교는 예전의 명성을 다시 되찾을 수가 있었다. 하다못해 그 지방에서 행해진 백일장에서 몽땅 그 학교 학생들만 입상하게 되어서, 일부러 몇 명은 다른 학교 학생들에게 양보를 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졌었다.

 어떻게 문예 지도를 했으면 그렇게 되었을까? 모든 사람들이 필자의 능력을 과대 포장하여 칭송들을 하는데, 정말로 송구스러워서 쥐구멍을 찾아야만 될 형편이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건 분명히 필자의 지도(指導) 때문이었음이 틀림없었다.

 그러면, 필자의 지도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표준어 사용, 잘못된 표기법, 문장 부호의 올바른 사용, 띄어쓰기 등등을 강조하고 바로잡아 주었을 뿐이었다. 그것이 무어 그리 대단하냐고? 하지만, 그건 때로는 대단하다. 다음 글을 보자.

 

 “나는 약속 시간에 늦을까봐 급히 밥을 먹읐다.


 경상도도 가장 남쪽에 있는 지방, 그곳에서는 ‘ㅡ’와 ‘ㅓ’의 구별이 힘들다. 그러니까 ‘먹었다’를 ‘먹읐다’로 표기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누가 ‘먹읐다’라고 쓴 글을 당선작으로 뽑아줄 것인가? 문학작품에서는 사투리도 오히려 작품성을 높여주는데 기여하기도 하지만, ‘먹읐다’와 같은 표기 문제는 이와는 별개의 문제이다.


 다른 예를 하나 더 보자.


요즘처럼 입시에 목을 매지 않았던 1950년대쯤이었던가? 꼭 입학을 시켜야 할 학생이 하나 있어서 유명대학교의 총장이 입시위원에게 부탁을 했더란다.

 “이 학생은 꼭 합격을 시켜 주시길 바랍니다.”

 영어작문 시험이었단다. 학생이 쓴 문장은 달랑 ‘I am a boy’였다는 것이다. 채점 위원이 과락을 간신히 면하는 60점을 주려고 펜을 돌렸다. ‘6’자를 쓰려던 그 위원은 도중에 ‘0’자로 바꾸었단다. 당연히 그 학생은 낙방을 했다. 이유는 문장 끝에 온점(.)을 찍지 않은 것이었다. 마침표가 없으니 문장이 완결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웅재 제2수필집 “믿음직한 남편 되기”의 책머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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