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 고전수필 순례 14)
노송(老松)
강희안 지음
이웅재 해설
『격물론(格物論)』에서 말하기를,
“소나무가 큰 것은 둘레가 여러 아름이 되고 높이는 열 길이 넘으며 가지런하지 않은 많은 마디가 있고 껍질은 지극히 거칠고 두꺼워 마치 용의 비늘과 같다. 뿌리는 이리저리 서려 있고 가지는 구불구불하다. 사시장철 푸르고 푸르러 가지와 잎의 빛깔이 변하지 않는다. (음력) 봄 2,3월에 그 순이 돋아나고 송화(松花)가 피어서 솔방울을 맺는다. …”
우헌(愚軒: 금나라 시인 趙元의 호. 만년에 실명하였으나 시적 명성은 더욱 높아졌다.)은 「괴송요(怪松謠)」에서는 이렇게 노래하였다.
“뉘라서 너를 심어 몇 해나 되었는고? 꼬불꼬불 뒤튼 모습 규룡(虬龍: 전설에 나오는 상상의 동물. 용의 새끼로 빛이 붉고 양쪽에 뿔이 있다고 한다.)을 닮았구나. 갈라진 비늘 괴이하기 그지없고 용맹스런 이빨 허공을 잡아당겨 마른 가지마저 젊은 모습으로 둔갑시켰구나!”
부재(符載: 당나라의 시인. 벼슬이 관찰어사에 이름.)는 「식송론(植松論)」에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 소나무를 숭산(崇山: 중국의 五嶽 중의 中嶽)이나 대산(垈山: 泰山)에 심어 놓으면 신선이 마신다는 밤중에 내리는 맑은 이슬 기운(항해[沆瀣])이 안쪽에 서리고, 일월의 밝은 빛이 바깥쪽을 비치며, 상서로운 봉황새가 그 위에서 노닐고, 졸졸거리는 샘물이 그 아래로 흐르며, 신령스런 바람이 사방에서 일어나서 피리소리 따위는 무색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 뿌리는 황천까지 뻗쳐가고 그 가지는 푸른 하늘을 어루만질 듯하니, 가히 명당의 기둥감이요, 큰 집의 들보감이 되니 온갖 나무 중의 으뜸이로다."…
류유주(柳柳州: 당송 팔대가의 한 사람인 당나라의 시인 柳宗元. 柳州의 자사를 지낸 때문에 柳柳州라고 한다.)는 최군(崔羣: 당나라 사람으로 벼슬이 吏部尙書에 이르렀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소나무는 바위틈에서 나서 천 길이나 높이 자라 그 꿋꿋한 심지와 굳센 본성으로써 얼음과 서리를 이겨내고 차가운 겨울을 이겨낸다. 그러므로 군자는 그를 의빙(依憑)한다."
소나무를 옮겨 심을 때에는 굵은 뿌리를 끊어 버리고 사방의 잔뿌리만 남겨 두면 쓰러지고 만다. 반드시 춘사(春社: 입춘 후 다섯 번째 戊日) 전에 흙으로 덮고 북돋아 주면 백이면 백 다 살지만 이때를 놓치면 결코 살지 못한다.
무릇 노송을 볼 때 가지와 줄기가 가파르게 들쑥날쑥 구부러지고 틀어지며 말라붙은 묵은 등걸이 많고, 잎이 바늘처럼 가늘고 짧으며 솔방울 매달린 짧은 가지에는 만년화(萬年花: 이끼의 한 종류임)가 눌어붙어 있고, 바위 사이에 붙어사는 것을 상품으로 친다.
그러나 그런 소나무는 그 품성이 약해서 잘 살지 못하니 옮겨 심을 때에는 당년에 굵은 뿌리를 끊고 흙으로 잘 덮어 두었다가 다음해에 옮기면 쉽게 산다.
혹시 산에 있는 소나무를 화분에다가 옮겨 심어 살게 하려면 곧은 가지는 굽혀서 잡아매고 긴 잎은 짧게 끊어 준다. 이렇게 해서 몇 해를 잘 기르면 바위 사이에서 자란 나무와 비슷하게 된다. 노송에 솔방울이 없으면 노송의 맛이 없으니 다른 나무의 솔방울이라도 가지 끝에 매달아 두는 것이 좋다.
줄기가 늙고 구부러지지 않은 것은 담쟁이덩굴을 심어 그 덩굴을 뻗어가게 하고, 사흘에 한 번씩 물을 주고 그늘진 곳에 두지 말고, 장마가 계속되면 뿌리를 덮어 주는데 습기에 썩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노송은 뿌리가 약하여 추위를 견디지 못하니 아주 추울 때에는 토굴 속에 들여 놓아야 한다. 화분은 질그릇을 사용할 것이다.
국초(國初)에 의빈(儀賓: 부마 등 왕족과 통혼한 사람) 한 분이 살림은 돌보지 않고 평소에 꽃 가꾸기를 좋아하였다. 다른 사람의 집에 기화이초(奇花異草)가 있다는 말을 들으면 천금을 아끼지 않고 꼭 사들이곤 하였다. 일찍이 노송 한 분을 얻었는데 모양이 자못 기괴(奇怪)하였다. 스스로 감탄하여 "이 노송은 용이 서린 듯 범이 쭈그린 듯하니, 비록 태산 꼭대기에 있는 소나무일지라도 이보다 더 뛰어나지는 못할 것이다." 하고 심히 사랑하였다.
하루는 반인(伴人: 수행원)이 찾아 왔다. 의빈이 안에서 나오기 전에 반인은 의빈의 뜻을 알아보려고 가만히 노송의 화분 앞으로 다가가서 차고 있던 칼을 빼어 노송의 묵은 가지를 잘라 버리고 솔비늘을 긁어서 한 주먹 쥐고 있었다. 의빈이 나와 보고 깜짝 놀라 어찌 된 일이냐고 묻자, 반인이 꿇어앉았다가 머리를 들고 아양 떠는 웃음을 지으면서, "옛 가지를 없애고 새 가지를 키우려 했다."고 답했다. 의빈이 껄껄 웃으면서 "모난 대지팡이를 둥글게 만들고, 옛 구리병을 닦고 씻어 희게 만들었다는 속담이 있더니 과연 이런 일을 두고 한 말이로구나!"하고 말하고 끝내 나무라지 않았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이 그 넓은 도량을 모두 칭찬하였다.…
♣해설: 강희안(姜希顔: 1417 -1464)은 15세기 대표적인 선비화가로 자는 경우(景愚), 호는인재(仁齋), 본관은 진주(晋州)이다. 1460년 호조참의 겸 황해도관찰사, 1462년에 인순부윤(仁順府尹)으로서 사은부사(謝恩副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1463년에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가 되었다.
성격이 온화하고 말이 적으며 청렴 소박하고 영달을 구하지 않았다.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는 그 당시로서는 선구적인 화풍을 구사하고 있다. 시, 서, 화에 능하여 삼절(三絶)이라 일컬어졌으며, 정인지 등과 함께 정음 28자에 대한 해석을 상세하게 덧붙였고, "용비어천가"의 주석을 붙일 때도 참여하였다.
국내 최초의 원예서로 알려진 『양화소록(養花小錄)』은 직접 화초를 키우면서 알게 된 화초의 특성과 재배법 등을 자세하게 기록한 책이다. 꽃과 나무의 품격과 상징성을 서술하면서 자연의 이치와 천하를 다스리는 뜻을 함께 담아냈다는 점이 특장이다. 이 글은 『양화소록』에 실려 있는 첫 번째의 글이다. 같은 책에서 ‘정송오죽(正松五竹)’이라 하여 소나무는 정월, 대나무는 5월에 심어야 잘 산다고 하고, 또 ‘정송오죽(淨松汚竹)’이라고도 하여 소나무는 깨끗한 곳에, 대나무는 질척질척한 곳에 심어야 잘 자란다고도 하였다.
번역은 이병훈 역『양화소록』(을유문화사, 2009년 개정판 4쇄)을 참고하였다.
'우리의 고전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속 ․ 고전수필 순례 16) 김시습전(金時習傳) [하] (0) | 2010.06.06 |
---|---|
(속 ․ 고전수필 순례 15) 김시습전(金時習傳) [상] (0) | 2010.05.25 |
(속 ․ 고전수필 순례 13) 산가서(山家序) (0) | 2010.04.13 |
(속 ․ 고전수필 순례 12) 아이들이 지켜야 할 사소한 예절 이것저것 (0) | 2010.04.04 |
(고전수필 순례 41) 부녀자들이 지켜야 할 사소한 예절 이것저것 (0) | 2010.0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