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元鍾麟 선생님께

거북이3 2010. 12. 27. 14:02

元鍾麟 선생님께


 

☆元鍾麟 선생님께.hwp

보내주신 수필집 “혼자 달린 競走”를 잘 읽었습니다.

 처음 책을 받아들고는 무척이나 반가웠습니다.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氏族 本能 때문이었지요. 저의 어머님께서 바로 元氏였거든요.

 그래서 좀 빨리 읽어보아야지 하면서도 이렇게 늦어졌습니다. 제가 책을 받은 날짜가 12월 3일이었는데, 이제야 다 읽은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수필집 곳곳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저도 정년퇴임한 후 몇 년이 지났는데, 다른 대학에서 강의 좀 해달라는 바람에 白首의 시간 때우기로 출강을 하게 되어, 틈나는 대로 읽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바대로 “잔돈푼을 아껴서 알뜰한 생활을 하듯이…‘자투리 시간’을 활용하”(p.72)다 보니 그리 되었습니다. 읽다가 덮어놓고, 덮어놓았다가 일고…하도 그러기를 반복하였더니 하드 카버의 책임에도 불구하고 나중에는 책의 일부분(마지막 4p)이 떨어져 나오기까지 하였습니다.

 맨 처음의 ‘老文學靑年’의 첫 대문, “달리기 경주에서 꼬라비로 들어오는 주자는 발이라도 절면서 들어오면 무안을 면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애교까지 있는 법이라지만 문학 경주의 낙오자는 무엇을 절고 들어와야 체면이 설는지 모르겠다.”(p.7)는 말씀은 선생님 자신의 자탄이기에 앞서 제게 내리는 채찍으로 여겨져서 처음부터 숙연한 마음이었습니다.

 선생님의 글에서는 늘 채찍질이 느껴집니다. “‘돈’과 ‘독’은 겨우 받침 하나 차이라는 것을 우리는 모르고 지내기가 일쑤다.”라면서 소개한 외국의 토막소식, “어떤 부인은 수백만 불의 돈을 벌어놓고도 굶어 죽었다”면서, “이 사람은 아마 그 돈을 저 세상의 지참금(持參金)으로 오해한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p.39)는 말씀도 돈을 상전으로 떠받들고 사는 세태를 날카롭게 비판하시는 말씀으로 들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요즘에도 돈이 되는 일이라면 나 몰라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요즈음 전에 있던 대학 교수 한 분이 도서관 매뉴얼을 만드는데,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윤문(潤文) 작업을 부탁하는 것을 거절하지 못한 것도 그와 같은 어리석은 짓이었겠지요?

 선생님의 글에서는 언제나 솔직담백함이 느껴집니다. 수주 변영로 선생의 “酩酊四十年”의 ‘백주에 소를 타고’와 같은 글이 바로 그 부끄러운 실수마저도 솔직하게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오히려 높이 평가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컨대 ‘式場에서’(pp.131~139)와 같은 글을 보면, 그 실수담이야말로 선생님의 진면목을 드러내주는 무엇보다도 소중한 ‘진실됨’을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생각됩니다. 앞으로 저도 그 점 많이 배워보고자 합니다.

 뿐만 아니라 선생님의 글에서는 항상 겸손함이 느껴집니다. ‘小生의 作品은’에서 다른 분들이 선생님의 작품에 대한 평을 소개하면서 하신 말씀, “인삼, 녹용 같은 자양분이 없고 기껏 기호식품인 과일 정도라는 말일 것”(p.215)이라는 표현을 읽으면서, 저는 그 ‘기호식품인 과일 정도의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글이라도 계속 쓸 수 있다면’ 하는 소망을 가져 보았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어느 전시회에서 실수로 그림을 거꾸로 걸었더니 바로 걸었을 때보다 그림이 더 돋보였다”(p.217)는 말씀대로 “역(逆) 또한 진(眞)이다”라는 철학적인 명제를 따라보고자 하는 마음마저 듭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저는 글뿐만이 아니라, 다른 생활의 측면에서도 선망(羨望)의 염(念)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그 하나는, “나 혼자서 일본 학생 대표 5명을 조선씨름, 일본 스모 두 판씩 10판을 메꽂자 우리 측에서는 발을 구르며 환호했다.”(p.252)는 씨름을 비롯해서, '배구 학교대표 선수', ‘연식정구와 농구’, ‘탁구부의 창설’, ‘테니스’…등등 못 하시는 운동이 없음을 보고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그러한 운동으로 하여, “나는 지금까지 스포츠를 즐긴 덕분에 앞길이 잘 풀렸고 건강도 유지한 것으로 생각한다.”는 말씀에도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고, “부정과 반칙으로 얼룩진 승자는 지탄의 표적이 되지만 정정당당하게 겨뤄서 진 패자 쪽에는 큰 갈채를 보내는 것도 그런 연유라 하겠다.”는 말씀에도 전적으로 동감을 하면서, 저는 왜 운동이라면 움츠러들기부터 하였는지 못나게 여겨지는 것입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공부는 그런대로 했는데, 항상 체육 점수만이 ‘우’를 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것도 다른 과목 점수를 생각해서 최대로 좋게 준 점수였지만 말입니다. 요새는 몸무게가 72~3kg을 넘나들지만, 대학 시절만 해도 55kg을 넘지 못해서 별명이 ‘빗 사이로 막가’였었고, ‘제발 살 좀 쪄 봤으면…’ 하는 것이 소원이었으니, 운동 잘 하는 사람이 부럽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또 한 가지, “미국에서는 가장 지독한 욕이 ‘평생 과수원이나 해 먹고 살아라!’라고 한다.”지만, 과수원이든 농사든 퇴직 후에 정성을 쏟고 지낼 수 있는 내 소유의 땅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해 보기도 한답니다.

 선생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곳곳에서 감명도 받았고, 구절구절마다에서 배울 점도 많이 발견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남겨주시기를 바랍니다.

 늘 건강하십시오.


           2010.12. 26.    이   웅   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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