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제방(百花齊放) 17(모란)
이 웅 재
5월 6일. 탄천 산책에 앞서 아파트 단지 여기저기를 둘러보노라니, 성남대로 쪽으로 나가는 놀이터 옆쪽에 모란(牡丹)과 금낭화가 피어 있었다. ‘牡丹’을 흔히 ‘목단’이라고 읽기도 하지만 ‘모란’이 바른 읽기이다. 모란은 작약(芍藥)과 구별이 잘 안 되는데, 가장 큰 차이점은 모란은 목본식물 곧 나무이고 작약은 초본식물 다시 말해 풀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모란은 가지에서 싹이 트기 시작하고 나무의 줄기가 있으며 때로는 사람의 키를 넘는 것도 있고 그 잎이 무성하여 풍성해 보이는데 비해, 작약은 풀인 때문에 뿌리에서 새싹이 돋으며 그 크기도 작고 줄기가 빈약해 보여 모란보다 다소 초라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모란도 약재로서의 용도가 있기는 하지만, 보다 한약방에서는 작약을 귀하게 다룬다. 그 이름에서부터 ‘藥’자가 들어 있지 않은가?
모란도 여성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작약과 구별할 때는 한 마디로 남성적인 꽃이라고 할 것이다. 향기가 별로 없는 점도 작약과는 구별되는 점이다. 모란에 향기가 없다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모란에 관한 기록이 처음 나타난 신라 선덕여왕 때부터의 관념이다. 『삼국유사』 선덕여왕 조를 보면, 당나라 태종이 홍색, 자색, 백색의 모란 그림과 씨앗을 보내 왔다는 기사가 있다. 그런데 왕은 그 그림을 보고 “이 꽃은 필시 향기가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단다. 씨를 심어 모란이 자라 꽃이 피고 보니 과연 향기가 없었다. 모란이 향기가 없다는 것을 어찌 알았는가를 물으니, 그림에 나비가 그려져 있지 않기 때문이라 답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모란에 향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잘 맡아 보면 아주 은은한 향기가 느껴진다. 그래서 모란의 향기는 난초 향기의 유향(幽香), 매화 향기의 암향(暗香)에 비해 이향(異香)이라고 한다.
모란이라는 이름은 굵은 뿌리 위에서 새싹이 돋아나므로 수컷의 형상이라고 ‘목(牡)’자를 붙이고, 원래 꽃의 빛깔이 붉었기 때문에 ‘단’(丹:‘란’이라는 음도 있다.)자를 붙여 ‘모란’이라고 했다고 한다. 당나라 때는 낙양에서 번성하였다 하여 ‘낙양화(洛陽花)’라 하기도 하고, 황금 100냥에 값한다 하여 ‘백량화(百兩花)’라고도 한단다.
설총(薛聰)의 「화왕계(花王戒)」에서는 모란이 ‘꽃들의 왕’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래서 모란은 화중지왕(花中之王)으로 대접을 받는다. 강희안(姜希顔)이 지은 『양화소록(養花小錄)』의 부록으로 실려 있는 유박(柳璞)의 『화암수록(花菴隨錄)』에서는 화목구등품론(花木九等品論)이 있어 꽃을 9품으로 나누고 그 품성을 논하였는데, 모란과 작약은 부귀를 취하여 2품에 두었다. 송나라 주염계(周濂溪)도 그의 유명한 「애련설(愛蓮說)」에서, “당나라 이래 세상 사람들이 모란을 매우 사랑하였다…모란은 꽃 중에서 부귀한 것이다(自唐以來 世人甚愛牡丹… 牡丹花之富貴者也)”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상징성 때문에 모란 그림은 이불이나 신부의 예복, 병풍 등에 수를 놓거나 그림으로 그리곤 하였다. 조선말 한양거사(漢陽居士)의 「한양가(漢陽歌)」에서도 광통교(廣通橋) 아래 잡화전에 진열된 물건 중에 모란도(牡丹圖) 병풍이 나온다. 모란도 병풍은 혼례식을 행할 때 신랑·신부의 배경으로 둘러치는 병풍이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신랑과 신부의 장래가 모란꽃처럼 부귀롭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는 것이다. 꽃말이 ‘부귀’임은 당연지사라 하겠다. 모든 꽃은 대개 봄철에 심지만, 모란만은 입추 뒤 다섯 번째 무일(戊日) 전후하여 심는다는 점은 모란이 세속적인 꽃들과는 다른 화격(花格)을 지니고 있음을 증거하는 일일 것이다.
모란에 비해 작약은 여성적인 풀이다. 잎에는 윤기가 있고 매끈하며 날렵한 모양을 하고 있다. 향기도 비교적 진하다. 모란을 화중지왕이라 하는 데에 비해서 작약은 바로 그 화왕을 모시는 재상 곧 화상(花相)이라고 한다. ‘작(芍)’은 얼굴이나 몸가짐이 아름답다는 뜻이라고도 한다. 작약에는 애처로운 전설이 전해진다.
옛날 파에온(Paeon: 그리스 신화에서는 醫術의 신이라는 뜻을 지니기도 함.)이라는 공주가 사랑하는 왕자가 있었더란다. 그런데 운명이란 늘 그렇듯이 왕자는 전쟁터에 나가 돌아오질 않고 있었다. 어느 날 눈 먼 악사(樂士) 한 사람이 공주가 살고 있는 집 앞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너무나 슬픈 내용의 노래라서 공주는 귀를 기울여 듣고 있었단다. 아, 그런데 그 노래의 내용은 왕자가 전쟁터에서 죽어서 모란꽃이 되었다는 사연이었다. 공주는 왕자의 무덤을 찾아가 그 앞에서 늘 왕자의 곁에 있게 해 달라는 기도를 올렸고, 공주의 기도는 드디어 하늘을 감동시켜 모란꽃 옆에 작약 꽃으로 피어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작약 꽃은 5월, 모란이 피고 난 다음 3주 정도 뒤에, 모란꽃이 지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피어난다.
작약에게는 또 다른 전설도 뒤따른다. 중국 쓰촨 성(四川省)의 한 선비는 하루 종일 만나는 사람도 없이 책이나 읽고 있었는데, 하루는 미모의 처녀가 찾아와 시중들기를 간청하여 함께 지내기 시작했다. 어느 날 선비의 친구인 도인(道人)이 방문하였기에 처녀를 인사시켜 주려고 하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한참 후에야 처녀를 찾았는데, 그녀의 몸은 담벼락에 거의 스며든 상태였다. 처녀는 이제 작약의 정령(精靈)인 자신의 정체를 들키게 되어 더 이상 인연을 지탱할 수 없다고 하면서 담벼락 안으로 완전히 스며들고 말았다고 한다. 작약의 꽃말인 ‘부끄러움’이나 ‘수줍음’에 걸맞은 전설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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