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제방(百花齊放) 19(붓꽃, 꽃창포, 창포).hwp
백화제방(百花齊放) 19(붓꽃, 꽃창포, 창포)
이 웅 재
모란꽃 옆에는 금낭화만 있는 게 아니라 붓꽃도 그 청초한 모습으로 다소곳이 피어 있었다. 붓꽃, 꽃이 피기 전의 꽃봉오리가 선비들이 애지중지하는 붓촉의 모양과 어쩌면 그리 닮았는지, 사람들은 그 꽃을 붓꽃이라고 불렀다. 보라색이 선명한 그 꽃은 새색시처럼 얌전하게 처신하고 있다. 그 붓촉을 잡고 애틋한 사랑의 편지라도 쓰고 싶게 만들어주는 멋진 꽃이다.
붓꽃은 잎이 가늘고 뾰족하며, 비교적 키가 작은 편이다. 붓대 끝에 봉(鋒)이 하나만 달려 있듯이 붓꽃은 한 가지에서 대개 한 송이의 꽃만 피운다. 잎의 한가운데를 세로로 통하고 있는 굵은 잎맥인 잎줄기[중륵(中肋)]가 없다. 붓꽃은 각시붓꽃, 제비붓꽃 등 그 종류가 많은데, 각시붓꽃은 우리나라가 원산지로 흔히 야산의 구릉지, 낙엽수 그늘에서 자생한다. 각시란 작고 여린 새색시 같다는 뜻으로 붙은 명칭이다. 각시붓꽃에는 서글픈 전설이 따른다.
이야기는 멀리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라와 백제가 마지막 명운을 건 혈전 황산벌 전투에서 화랑 관창(官昌)은 어린 나이에도 용감히 싸우다가 죽는다. 그에게는 무용이라는 정혼한 각시가 있었는데, 각시는 관창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마음을 변하지 않고 시간만 나면 그의 무덤을 찾아 슬픈 나날을 보내다가 관창을 따라 죽고 말았다. 사람들은 각시를 관창의 무덤 옆에 묻어주었다. 이듬해 그곳에서는 보랏빛 예쁜 꽃이 수줍은 듯 피어났다. 꽃 모양이 생전의 각시를 꼭 빼어 닮았다고 해서 각시붓꽃이라고 불렀는데, 잎사귀는 관창의 칼처럼 삐죽삐죽하게 생겨서 각시의 관창을 사모하는 마음이 그대로 드러났다고들 했다. 무용의 변함없는 사랑이 가슴을 울린다. 얼핏 보아 밝은 느낌의 빛깔인데도 불구하고 선입견일까,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노라니, 저절로 서글픈 마음이 들기도 한다. 꽃말은 ‘신비로운 사람’ 또는 ‘존경’이란다.
붓꽃은 꽃창포와 흔히 혼동된다. 꽃창포는 키가 크며 줄기 마디마디마다 꽃을 피운다. 잎은 붓꽃보다 넓은 편이며 습기가 있는 숲 가장자리 등에 자라는 습지식물로 대체로 노란 꽃을 피운다. 붓꽃에도 멸종 위기의 노란 붓꽃이 있어서 혼동되는데, 노란 붓꽃은 꽃대도 두 개씩 올리는 게 특징이라서 더욱 구분이 쉽지 않다. 노란 꽃창포는 잎이 얇고 부드러우며 그 끄트머리는 하늘하늘한 모습으로 밑쪽으로 쳐져 있다. 꽃의 모양도 자세히 보면 서로 다르다. 붓꽃은 꽃 안쪽에 조갯살 같은 화려한 무늬가 있는 반면, 꽃창포는 꽃의 안쪽에 역삼각형의 노란색 무늬가 있어서 구별된다.
꽃창포의 전설도 안타깝다. 하늘의 선녀가 제우스의 뜻을 이 땅에 좋은 소식을 전하려고 무지개를 타고 지상으로 심부름을 내려왔다가 그만 구름의 장난으로 무지개가 걷혀 버리는 바람에 하늘나라로 되돌아갈 수가 없게 되어 꽃창포로 변했단다. 꽃말은 ‘심부름’ 또는 ‘좋은 소식’이다. 화투의 오월 난초는 실은 꽃창포의 그림이라고 한다.
한편, 꽃창포는 프랑스의 국화이기도 하다. 꽃창포의 영어명은 ‘Iris’ 바로 ‘무지개’라는 뜻이다. 프랑스의 왕 클로비스는 어느 날 신비로운 꿈을 꾸었다. 천사가 용감한 기사를 상징하는 칼 모양의 잎을 가진 꽃창포 세 송이의 문양이 들어있는 방패를 주었다는 것이다. 왕은 그 꿈을 꾸고 난 후, 전국에 영을 내려 개구리 모양의 방패 문양을 꽃창포로 바꾸도록 했다. 얼마 뒤, 외국군의 침입을 무사히 격퇴하고는 꽃창포 무늬의 방패 때문이라고 생각한 왕은 더욱 더 그 문양을 소중히 여겼다. 그 후, 다시 외국군의 대대적인 침략이 있었고, 꽃창포 무늬의 방패의 힘을 믿는 프랑스군은 이번에도 역시 침략자들을 깨끗이 물리치고 큰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왕은 이에 나라의 국화를 꽃창포로 정했다는 것이다.(다음 블로그 http://blog.daum.net/penn1570 등 참조)
꽃창포는 음악의 성인인 베토벤이 좋아하던 꽃 중의 하나라고도 한다. 그는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러 갈 때에는 꼭 꽃창포를 들고 갔다고 했다.
또 하나 중요하게 구별해야 할 꽃이 있다. 예전 같으면 음력 5월 5일 단오(端午)날이면 창포(菖蒲) 삶은 물에 머리를 감는다고 했다. 이때의 창포는 꽃창포와는 또 다르다. 예전에는 흔했던 창포, 요 근래에 와서는 만나보기가 쉽지 않다. 창포는 잎의 가운데에 중륵(中肋)이 있다. 꽃은 부들처럼 핫도그 모양(그러나 부들보다는 좀 약해 보이는)을 하고 있다. 부들은 꽃대 끝부분쯤에 꿰어진 모습임에 비해서 창포는 잎을 헤집고 나오는 점이 영판 다르다. 창포는 뜯어서 냄새를 맡아보면 식물 전체에서 향기가 나고, 잎은 곧게 뻗으면서 자란다. 그래서 창포물에 머리를 감으면 저절로 머리가 가뿐해지고 은은한 향기를 풍겨난다.
창포는 천남성과(天南星科)에 속하여 붓꽃과의 꽃창포와는 그 종류조차가 다르다. 꽃이 피는 시기는 비슷하게 초여름이지만, 그 생김새와 빛깔이 아주 다르다. 창포는 작은 꽃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피고 그 색깔도 별로 예쁘지 않다. 창포는 연못이나 강가 등에서 뿌리가 물에 잠겨서 사는 수생식물로 습지식물인 꽃창포와는 그 사는 곳도 다르다.
천남성과의 식물은 독성도 강하다. 옛날 궁궐에서는 부자(附子)와 함께 사약(賜藥)으로 사용하기도 했던 식물이다. 때에 따라서는 차라리 사약이라도 먹고 죽는 편이 나을 때도 있을 터, 그래서 그런지 꽃말도 ‘전화위복’ 또는 ‘현혹’이라고 한다.
요새 탄천에는 꽃창포가 한창이다.
'계절의 문턱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화제방(百花齊放) 21(마로니에) (0) | 2012.07.27 |
---|---|
백화제방(百花齊放) 20(이팝나무) (0) | 2012.07.23 |
백화제방(百花齊放) 18(금낭화) (0) | 2012.07.17 |
백화제방(百花齊放) 17(모란) (0) | 2012.07.13 |
추석을 돌려줍시다 (0) | 2012.07.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