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문턱에서

백화제방(百花齊放) 23. 메꽃

거북이3 2012. 8. 12.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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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화제방(百花齊放) 23. 메꽃

                                                                                                                                                            이 웅 재

5월 11일. 서울비행장 후문 쪽으로 가는 탄천 산책로의 만나교회 뒤쪽에서 예상 밖으로 일찍 핀 메꽃을 만났다. 보통은 6

월 이후에 피어나는데, 그 중 성급한 놈이 엄마 몰래 살짝 세상 구경을 하러 나온 모양이다. 분홍색 꽃빛깔이 아직은 수줍은 모습이다.

메꽃의 꽃 모양은 얼핏 나팔꽃 모양으로 연한 분홍색의 꽃이 많다. 그 잎은 삼각형으로 끝 부분이 뾰족하며 꽃대 하나에서 한 개의 꽃송이만 맺혀서 핀다. 아침에 피어났다가 해가 지면 꽃도 함께 지는데 그렇게 피고 지고 하기를 두어 달 동안 계속한다.

메꽃은 얼른 생각하면 다른 과(科)에 얹힌 꽃으로 여겨지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메꽃은 당당하게 제 이름을 가지고 ‘과’의 이름을 삼았다. ‘메꽃과’, 그 속에는 생김새도 비슷한 나팔꽃을 위시하여, 좀 의외라고 여겨질 수도 있는, 다이어트 및 성인병에 좋다고 하는 고구마도 들어 있다. 이른 봄 땅 속의 하얀 줄기 곧 메를 캐서 먹어 보면 달착지근한 것이 고구마 비슷한 맛이 나는 것을 보면 고개가 주억거려질 것이다.

‘메’라는 말이 고어(古語)에서 ‘산(山)’이라는 뜻이었음을 생각하면, 예전에는 산비탈의 거친 땅에서 많이 자란 모양이지만, 최근에 와서는 논밭의 두둑이나 냇가에서도 흔히 볼 수 있게 되었다. 메꽃과로 보기에는 얼핏 납득되지 않는 풀에는 일년생 기생성 덩굴풀인 새삼도 있다. 메꽃의 원산지는 당당히 한국이라는 점도 우리에게 친근감을 주는 요인이다. 우리나라의 꽃인데도 그 전설은 유럽에서 생성되었다는 점은 좀 특이하다고 하겠다.

12세기 경 십자군 부대 어느 장군에게 충성스러운 젊은 연락병이 있었다. 그 병사는 척후병이나 돌격부대하고 장군의 주력부대 사이의 연락 및 길 안내를 책임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돌격부대는 적의 선봉부대를 무찌르고 계속 진격을 하고 있었다. 그 속도가 너무 빨라서 병사는 더 이상 돌격부대만을 뒤따를 수가 없었다. 갈림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 갈림길에서 장군의 주력부대가 빨리 쫓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 병사는 미처 후퇴하지 못한 적의 패잔병에게 발각되어 죽고 말았다.

적은 주력부대의 진격 방향을 돌격부대와 합쳐지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죽기 전 병사가 표시해 놓은 방향표지판을 돌격부대가 간 방향인 왼쪽과는 정반대로 돌려놓았다. 이를 모르고 주력부대의 장군은 표지판대로 오른쪽으로 진격을 하려다가 갓 피어난 나팔꽃 비슷하게 생긴 꽃을 보게 되었다. 그 꽃은 무엇인가를 호소하듯 간절한 모습으로 피어 있었으며 주위에는 붉은 핏자국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장군은 그것을 보고 자기의 충성스런 병사가 죽었음을 직관적으로 알아차리고 그 꽃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꽃의 줄기는 방향표지판이 가리키는 오른쪽과는 반대 방향인 왼쪽으로 감겨 있었다. 돌격부대가 왼쪽 길로 적을 섬멸하면서 진격한 것을 알게 된 장군은 먼저 간 돌격부대를 만나 함께 적을 쳐서 대승을 하였다고 한다. 메꽃의 꽃말이 그래서 ‘충성’인 것이다.

메꽃을 영어로는 ‘감는 풀(bindweed)’, 우리말로는 ‘선화(旋花: 선회하는 풀꽃)’라고 한다. 나팔꽃처럼 아침에 피어서 저녁에 지는 꽃이라고 하여 ‘주안화(晝顔花: 낮얼굴꽃)’라고도 부르고, 잎이 단검의 칼날처럼 뾰족하다고 하여 ‘천검초(天劒草: 하늘의 칼 풀)’이라는 이름도 있고, 꽃이 예쁘다 해서 ‘미초(美草)’로도 불린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이름과는 달리 별로 영예롭지 못한 이름도 있다. 바로 ‘고자화(鼓子花)’이다. 메꽃은 여러해살이 식물이므로 대체로 열매를 맺지 않고 포기 나누기로 번식을 하고 열매를 잘 맺지 않기 때문에 ‘고자화’란 불명예스러운 이름이 붙게 되었다. 열매를 맺는 경우도 더러 있는데, 열매는 둥글고 익은 씨는 난원형에 가까운 까만 모양을 하고 있다.

메꽃의 뿌리는 보리농사가 끝나고 쟁기로 논바닥을 뒤집어엎을 때, 논바닥에 하얀 모습으로 여기저기 뒤집혀 나온다. 시골에서는 아이들이 그것을 주워 날로 씹어 먹기도 하고 또는 밥을 뜸 들일 때 쪄서 먹기도 한다. 또는 굽거나 튀겨서도 먹는다. 어린 순은 나물로 무쳐 먹으며, 꽃잎은 맑은 장국으로 끓여서 먹기도 하고 식초로 무쳐서 먹기도 한다. 한마디로 메꽃은 버릴 데가 하나도 없는 완전 식물이다.

메꽃의 뿌리 곧 ‘메’는 허약한 체질을 튼튼하게 바꾸는 데 효력이 좋다. 어린이나 노인, 몸이 너무 말라서 고민인 사람, 오랫동안 병을 알아서 기력이 몹시 약해진 사람들은 두세 달 메를 쪄서 먹으면 살이 오르고 기운을 차릴 수가 있게 된다.

그런가 하면 혈압을 낮추고 당뇨병을 앓는 사람에게는 혈당치를 눈에 띄게 낮추어 주는 효과도 있다. 어디 그뿐인가? 특히 남녀의 성생활을 활기차게 도와줄 수 있는 약재로서 성가(聲價)가 높다. 남자의 경우, 음위증, 발기부전, 양기부족을 해소해 주고, 여성의 불감증을 비롯하여 생리불순, 대하증에도 효과가 뛰어나다. 이럴 때에는 메꽃을 뿌리째 뽑아 말린 다음 잘게 썰어서 1.8리터의 물에 20~30g씩을 넣고 달여서 하루에 여러 차례씩 나누어 마시면 된다.

『본초강목(本草綱目)』같은 책에서는, 얼굴의 기미, 주근깨를 없애고 얼굴빛을 좋게 한다고 하니 여성들은 특히 관심을 가져볼 만한 식물이다. 기관지염이나 동맥경화에도 좋고 신경통이나 관절염 등의 경우에는 뿌리를 말려 가루를 내어 기름에 개어 통증 부위에 바르면 효과가 있다고 하니, 메꽃이야말로 만병통치약이 아니랴 싶다.

‘충성’의 대명사, 메꽃 만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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