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문턱에서

백화제방(百花齊放) 21(마로니에)

거북이3 2012. 7. 27. 22:39

 

 

@백화제방(百花齊放) 21. 마로니에.hwp

 

 

백화제방(百花齊放) 21(마로니에)

                                                                                                                                                             이 웅 재

5월 9일. 야탑동 먹자골목에서 점심을 먹고 성남대로 쪽으로 내려오는데, 야탑1동 주민 센터 옆길에 평소에는 보지 못하던 나무가 멋들어진 꽃을 피우고 있었다. 함께 가던 분이 말씀하신다.

“마로니에 꽃, 오래간만에 보는구먼.”

이름만 들어도 왠지 이국정서가 느껴지는 나무였다. 예전에는 이 나무는 옛날의 서울대 문리대 자리, 동숭동 쪽이 아니면 볼 수가 없었던 나무, 이름만 들어도 프랑스의 냄새가 물씬 풍기던 나무였다. 그런데 그 나무를 이런 먹자골목의 한 귀퉁이에서 만날 수 있다니! 감격스런 마음까지 들었다. 싸구려 식사를 하고 나온 우리에게, 아주 근사한 뒤풀이를 해 주는 듯한 느낌이어서 기분이 저절로 으쓱해졌다. 하긴 꽃 핀 모습이 아닌 마로니에는 분당보건소 뒤쪽 예전의 분당경찰서 옆 길 가로수로도 대면하기는 했었다. 그때는 조금 덤덤한 느낌이었었다. 그러니까 꽃이 없는 마로니에와 꽃이 있는 마로니에가 나에게 주는 느낌은 천양지차였던 것이다.

어디선가 가슴 속까지 밀고 들어오는 감미로우면서도 애절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60년도에 히트를 쳤던 박건의 “그 사람 이름은 잊었건만…”이라는 곡이었다. 제목부터 사람을 꼼짝 못하게 하는 신비스런 힘을 발산하는 곡이 아닌가 싶다. ‘이름마저도 잊은 그 사람’이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것 하고는 다르다. ‘잊었건만…’, 이름마저 잊은 사람이라면 생각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안개처럼 아련한 추억 속에 자꾸만 그 모습이 떠오르는 것이다.

루루루루 루루루 루루루루 루루루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

눈물 속에 봄비가 흘러내리듯

임자 잃은 술잔에 어리는 그 얼굴

눈물, 봄비, 임자 잃은 술잔… 분위기는 충분히 조성되어 있다. 거기에 주인공은 마로니에가 피어 있을 때, 이름마저도 잊혀진 그 사람, 그러나 사랑했던 사람과 같이 있었던 것이다.

아 청춘도 사랑도 다 마셔 버렸네

그 길에 마로니에 잎이 지던 날

그 사람과는 마로니에의 잎이 지던 날, 서로 헤어져 버리고 말았던 모양이다. 그리고는 다 잊었는 줄 알았는데, 잊혀지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 하고 그 잊혀진 옛날을 애타게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문득 대학시절을 떠오르게 만드는 노래였다.

마로니에는 나무도 크고 잎도 커서 가로수로 적합한 나무이다. 그래서 세계 4대 가로수로 꼽히는 나무라고 한다. 특히 프랑스 파리의 가로수로서 명성을 떨쳤던 나무이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에서도 가로수로 많이 심기 시작했단다. 음수(陰樹)인 때문에 배수가 잘 되는 곳이라야만 하기에, 아무 곳에나 심을 수 있는 가로수는 아니다. ‘그 사람 이름은 잊었건만…’ 그 꽃이 피어오르는 모습을 보면, 아련하게 옛 추억에 잠길 수 있는, 그런 분위기를 가져다주는 곳에 심어야 하는 나무이다. 그와 같은 분위기, 동숭동 옛 서울 문리대의 분위기를 살리려는 의도였을 게다. 분당 서울대 병원에서도 마로니에를 만나볼 수가 있었다.

이파리는 일곱 장, 부챗살처럼 퍼져 있어야 한다. 그 무성한 이파리 사이에서 탑 모양으로 솟아오른 꽃대에 작은 꽃 수십 개가 한데 어우러져 자체가 하나의 꽃다발처럼 보이는 마로니에 꽃. 열매는 8월쯤이면 호두 비슷하게 익기 시작한다. 겉껍질을 벗기고 보면 밤[栗]을 닮았다. 마로니에(marronier)라는 말도 밤을 뜻하는 마롱(marron)과 비슷한 말이다. 게다가 ‘나도밤나무과’에 속한다. 이런 여러 가지 측면으로 보아 밤과의 친연성이 매우 강하다. 밤을 닮은 열매, 먹음직스럽다. 그러나 먹으면 안 된다. 독성이 강하다. 아무 생각 없이 먹었다간 정신이 혼미해지거나 실신하는 수도 있다.

‘밤나무’와 ‘너도밤나무’, ‘나도밤나무’는 어떻게 다른 것일까? 열매를 날로 먹었을 때,

‘밤나무’의 밤은 단맛이 나는데 비해, ‘너도밤나무’는 쓰고 아린 맛이 나서 먹을 수가 없다. 그러나 ‘너도밤나무’는 생김새 등이 밤나무와 비슷하다. 하지만 ‘나도밤나무’는 종(種) 자체가 다른 나무다. 그것은 나무의 이름을 보아서도 얼핏 구분이 되지 않을까 싶다. ‘너도밤나무’는 ‘밤나무’와 비슷한 것으로 인정을 해 준다는 뜻이 함축되어 있는 명칭이라 하겠다. 그러나 ‘나도밤나무’는 다른 사람들이 인정을 해 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나도밤나무’라고 박박 우기는 나무라는 말이 아닌가? 그렇게 우기는 근거는 나무의 잎만은 밤나무와 비슷하여 일반인들이 밤나무로 오인하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마로니에를 그 잎이 일곱 장이라고 하여 흔히 우리말로 칠엽수라고 부른다. 칠엽수는 일본 원산의 나무로 열매에 가시가 있는 마로니에와는 달리 열매에 가시가 없다. 그리고 지금까지 말한 것들은 사실 이 칠엽수에 관한 것들이었다. 여태껏 마로니에로 알고들 지냈었기에 이 글에서도 또한 그렇게 회상해 본 것이다.

마로니에는 서양칠엽수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요, 가시 유무에서만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일 뿐이라서 기존의 관념에 무임승차한 것이라 여긴다면 다행이겠다.

마로니에의 열매는 사라자(娑羅子)라고 하며 약용으로 쓰인단다. 꽃말은 ‘친분’ 또는 ‘천재’라고 하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마로니에의 이미지하고는 좀 거리가 있는 듯한 느낌이며, 마로니에에게서는 그 전설조차 찾아볼 수가 없어서 서운하기 그지없었다.

                                                                                                                                                   (2012.7.25.16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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