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문턱에서

백화제방(百花齊放) 26. 양귀비

거북이3 2012. 8. 19.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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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화제방(百花齊放) 26. 양귀비

                                                                                                                                                         이 웅 재

 

서울비행장 후문 쪽, 성남시에서 가꾸는 꽃밭에는 관상용의 양귀비꽃도 한창이라고 했다. 이 관상용 양귀비는 화초양귀비, 꽃양귀비 등으로도 불리는데, 좀더 멋진 이름으로는 우미인초가 있다. 초한지(楚漢志)에 나오는 항우(項羽)의 연인인 우미인(虞美人)의 무덤에서 돋아난 꽃이라서 붙은 명칭이란다. 하지만, 사실은 우미인초보다도 우리가 흔히 부르는 양귀비라는 명칭이 최고의 찬사를 겸한 명칭이 아닐까?

양귀비(楊貴妃)는 원래 당 현종(玄宗)의 후궁이자, 며느리이다. 서시(西施), 왕소군(王昭君), 초선(貂蟬)과 더불어 중국의 4대 미인 중의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이름은 양옥환(楊玉環)이며, 원래 현종의 아들인 수왕(壽王) 이모(李瑁)의 비(妃)로 17세 때 궁궐에 들어왔다가 현종의 눈에 들게 된다. 현종은 그녀를 화산(華山)의 도사로 출가시켜 수왕에게서 빼내고, 궁 안에 도교사원 태진궁(太眞宮)을 짓고 다시 이곳을 관리하는 여관(女官)으로 불러들인다. 이 때 양귀비의 나이 22세, 그녀는 27세 때 귀비가 되고, 그녀의 애인 안녹산의 반란이 일어나면서 당나라는 서서히 몰락하게 된다. 전형적인 경국지미(傾國之美)인 것이다. 오죽하면 아름다운 꽃마저도 양귀비가 나타나면 부끄러워서 잎을 말아 올린다고 수화(羞花)라고 했을까?

하지만, 그녀의 겨드랑이에서는 냄새가 심하게 나는 ‘액취증(腋臭症)’ 환자였을 것이라고 한다. 해서, 그녀가 목욕하고 난 물이 장안 시내를 흘러갈 때마다 장안은 그녀의 냄새로 진동했고 천하의 남자들은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고 한다.

얘기가 조금 제 길을 벗어났는데, 최고의 찬사와는 정반대의 위치에 놓여있는 관상용 양귀비의 명칭은 ‘개양귀비’다. 개양귀비는 몸통에 털이 많다. 이곳의 양귀비가 바로 털이 많이 나 있는 개양귀비인 것이다.

양귀비의 꽃은 꽃잎이 보통 넉 장이다. 열매는 항아리처럼 생겼다. 그 속에 마치 좁쌀 같은 씨가 들어 있어서 이름을 ‘앵속(罌粟)’이라고도 한다. ‘앵(罌)’ 자는 ‘항아리’라는 뜻이고, ‘속(粟)’ 자는 조[좁쌀]을 가리킨다. 비슷한 뜻으로 ‘미낭화(美囊花)’라고도 한다. ‘쌀이 가득 들어있는 주머니’라는 뜻이다. 꽃보다 씨를 가지고 그 이름을 삼았다는 데에 특징이 있다고 하겠다.

양귀비 중 몸통과 가지에 털이 없는 놈은 개인으로서는 절대로 재배해서는 안 되는 양귀비, 곧 아편(阿片) 성분이 있는 양귀비이다. 아편이란 유럽 각국어인 opium의 한역(漢譯)으로, 현재 아편의 최대 산지는 동남아시아의 타이, 미얀마, 라오스의 3국이 메콩 강에서 만나는 산악 지대로, 미얀마 동부 샨 주에 속한다. 별명은 골든 트라이앵글 (Golden Triangle), 곧 ‘황금의 삼각지대’이다.

아편 성분이 있는 양귀비는 물론 개양귀비의 경우에도 꽃의 빛깔이 다양하며 관상가치가 아주 높아 많은 원예품종이 개발되어 있는 실정이다. 서양에서는 이를 ‘포피(poppy)’라는 귀여운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양귀비꽃의 피기 전 꽃봉오리는 무척 겸손하다. 어떠한 경우라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것이다. 수줍어서 그럴까? 아님, 짐짓 수줍은 체해 보이는 것일까? 꽃잎은 아주 여리디여리다. 조금 불만인 점은 개양귀비의 꽃은 해당화의 꽃잎처럼 홑꽃잎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홑꽃잎일 뿐만 아니라 더할 수 없이 여리디여리다. 겹꽃잎의 양귀비도 있다. 그 양귀비는 여춘화(麗春花)라고 부른다.

또 한 가지의 단점은 아름다운 모습과는 달리 향기가 없는 것이 개양귀비이다. 이럴 때는 개양귀비라는 이름이 ‘딱’이다. 미인 양귀비가 독특한 체액의 냄새를 풍기는 여인이어서 ‘경국(傾國)’이 된 것을 교훈으로 삼으라는 의미일까? 이름답게 뇌쇄적(惱殺的)인 향기를 지닌 양귀비가 나왔으면 좋겠다. 그런 양귀비가 나온다면 시쳇말로 ‘대박’이 날 텐데 말이다.

양귀비의 약점은 또 있다. 양귀비는 옮겨 심으면 거의 100% 실패한다. 고추, 상추, 배추, 오이 등 웬만한 채소들은 모종으로 재배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대부분의 화초들도 조금만 주의하면 옮겨 심을 수가 있다. 그런가 하면, 대부분의 나무 종류는 삽목(揷木: 꺾꽂이)을 해도 웬만하면 살아나는데, 요놈의 양귀비는 어찌된 영문인지 옮겨 심는 것을 용납하지 않아서 밭에다가 씨앗을 직파(直播)해야만 하는 특성이 있다. 까다로워서 그만큼 애지중지 대우를 해 주는 것일까?

그리스 신화에서는 곡물과 대지의 여신인 데메테르(Demeter)가 저승의 지배자 하데스(Hades)에게 빼앗긴 딸 페르세포네(Persephone)를 찾아 여기저기를 헤매다가 지쳤을 때 이 꽃을 꺾어서 스스로 위안을 찾았다는 전설이 있다. 또 이와는 다른 전설도 있긴 하지만, 그 내용이 조금 복잡하여 생략한다.

꽃말은 그 꽃의 빛깔에 따라 다르다. 흰 양귀비는 망각, 붉은 빛은 위안, 가장 화려한 자주색깔은 허영, 사치로서 양귀비다운 꽃말이라고 하겠다. 잠깐, 그럼 개양귀비는? 별 볼 일이 없다. 그래서 개양귀비가 아닌가? 바로 ‘덧없는 사랑’이란다.

경기도 포천에 가면 양귀비를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는 ‘뷰식물원’이 있다. 3천여 평의 넓은 땅에 3만 그루가 넘는 양귀비꽃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라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곳이다.

양귀비는…인도의 국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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