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7시다
이 웅 재
저녁 7시다. 술시(戌時)다. 거실에서 나는 내 방으로 들어간다. 이 방은 신성불가침한 장소이다. 컴퓨터가 있고, 침대가 있고, 컴퓨터 옆으로는 보통 크기의 TV도 있다. 한쪽으로는 내 옷을 걸어놓는 옷걸이가 커튼으로 가려져 있다. 컴퓨터를 하려면 멋지게 조각이 되어 있는 용틀임 무늬의 의자에 앉아야 한다. 젊었을 적 아내와 함께 논현동 가구 매장에서 거금을 주고 사들인 의자이다. 그 당시 내게는 좀 과중한 금액으로 느껴지는 탁자와 의자 5개였었는데, 어쩐 일인지 나는 내 주머니 사정도 고려하지 않고 그것을 덜컥 샀다. 아마도 의자가 5개였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물론 그 용틀임 무늬가 내 마음속을 집요하게 파고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지 싶지만, 나는 우리 식구 5명에 꼭 알맞은 의자 5개에 방점을 찍고 아내를 설득하여 그것을 샀던 것이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지금은 그 이름을 잊었지만, 이것을 만든 사람이 어느 대학의 교수였다는 매장 책임자의 소개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그 이후 장한평(長漢坪) 고가구점 같은 데를 둘러보면서도 우리 집의 그 용무늬 탁자와 의자 같은 것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니, 더러 있기는 했다. 그러나 어쩌다 만나볼 수 있는 그 가구들은 조각 자체가 너무나 얄팍했고, 또 정밀하지가 못했다. 지금도 나는 믿는다. 우리 집의 이 용무늬 가구의 위용과 예술적인 미를 뛰어넘는 가구는 없을 것이라고.
이야기가 좀 다른 곳으로 흘렀다. 8불출에 하나를 더하여 9불출 소리를 들은 만할 정도로 가구 자랑을 늘어놓은 것은, 기실 그 왼쪽 옆에 놓여 있는 자그마한 다탁(茶卓)을 말하기 위함이다. 그 다탁은 뭐 특별한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평범한 물건일 뿐이다. 하지만 내게는 매우 소중한 물건인 것이다. 그건 사실 다탁이라기보다는 주탁(酒卓)이라고 해야 바른 명칭일 것이지마는, 그런 낱말은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올라 있는 낱말이 아니니, 그냥 편하게 ‘술상’이라고나 해 두자. 그 ‘술상’을 띄워주기 위해서 예전엔 임금이나 앉을 수 있다고 하는 ‘용틀임 무늬의 의자’를 끌어들였던 것이다.
술상, 정말로 좋은 이름이다. 이 글 첫머리에서 ‘술시(戌時)’ 얘기를 했다. 7시에서 9시까지의 시간을 가리키는 전통적인 시간 표현의 단어, 얼마나 좋은가? 그것은 바로 ‘술을 마시기에 딱 좋은 시간’이 아니던가? 나는 이 ‘술시’가 되면 내 방에서 꼭 일잔(一盞)을 한다. 하루 중에서 그 시간은 정말로 즐거운 시간이요, 행복한 시간이요, 황홀한 시간이다. 그래서 나는 말한다. “술은 인류의 적이다, 마셔서 없애자!”라고. 나는 오늘도 인류의 적을 없애기 위하여 고군분투(?)를 한다.
당신이니까 솔직하게 말하겠다. 사실 “술은 인류의 적이다, 마셔서 없애자!”라는 말은 외면적인 의미만으로 해석해서는 안 되는 말이라는 점을 알아야만 한다는 것을 솔직하게 털어 놓는다. ‘마셔서 없애자?’ 그게 마셔서 없어질 물건인가? 많이 마실수록 술의 생산량은 그만큼 늘어나게 마련 아닌가? 그렇다, 내가 말하는 “마셔서 없애자!”라는 말은, 내가 마시는 양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생산량을 늘리라는 말의 에돌림을 이용한 구호인 것이다. 말하자면 내가 마실 술이 절대로 줄어들어서는 안 된다는, 나름대로의 강력한 주문(注文)을 위한 주문(呪文)인 것이다. 그러니까 일종의 ‘반어적 표현’이라는 말이다.
술이 왜 그렇게 좋은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읽다가 흐트러뜨린 상태로 방바닥에 어지러이 흩어져 있는 책들에 시선이 갔다. 거기 한가운데 펼쳐져 있는 책에는 허균의 「사우재기(四友齋記)」가 있었다. 그는 자신이 세상 물정을 잘 모르고 거짓되고 미덥지 못하여 세상과는 잘 맞지 않으므로, 요즈음의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꾸짖고 떼 지어 배척하므로, 옛 사람들 셋과 벗하면서 자신이 거기에 끼어들고 보니, 사우(四友)가 되어 재(齋)의 이름을 ‘사우재(四友齋)’라 이름하였다고 했다. 그가 벗하겠다는 옛 사람 셋은 진(晉)의 처사 도원량(陶元亮; 陶淵明)과 당나라의 한림 이태백(李太白), 그리고 송나라의 학사 소자첨(蘇子瞻: 蘇東坡)이었다.
가만히 보니 허균 자신도 그렇지만 그의 벗 세 사람도 모두가 ‘술’에는 일가견이 있는 인물들이었다. 도연명은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어린아이 손잡고 방에 들어서니 항아리엔 향기로운 술이 가득하네. 술 단지 끌어 잔 들어 자작(自酌)하며 뜰의 나뭇가지들 바라보고 웃음 짓는다.(携幼入室 有酒盈樽 引壺觴以自酌 眄庭柯以怡顔)”라고 읊었을 뿐만 아니라 음주시(飮酒詩) 20편을 남기기도 하지 않았던가?
이태백의 “석 잔이면 대도(大道)에 통하고 한 말이면 자연과 하나 되네(三盃通大道 一斗合自然).”라 노래한 「월하독작(月下獨酌)」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오죽하면 “이태백이 주태백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채석강(彩石江)에서 뱃놀이하며 술을 마시다가 강물에 비친 달을 따려고 하다 빠져서 기경상천(騎鯨上天)했다는 말까지 생겨났을까?
소동파도 「적벽부(赤壁賦)」에서 노래했다. “손님은 기뻐서 빙그레 웃고서, 술잔을 씻어 다시 술을 권하노니, 안주와 과일도 다 떨어지고, 술잔과 쟁반들도 모두 흩어졌는데, 배안에서 엇갈려 서로 베고 누우니, 동쪽하늘이 이미 밝아오는 것도 몰랐더라(客喜而笑 洗盞更酌 肴核旣盡 盃盤狼藉 相與枕藉乎舟中 不知東方之旣白).”
이제 내 서재는 ‘오우재(五友齋)’라 명명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무례하고도 참람(僭濫)한 생각을 하여 보며 질끈 오징어다리를 물어뜯는다. 그 퀴퀴한 맛이 후두융기(喉頭隆起)를 갓 통과한 술맛을 재빨리 따라잡으며 합일된다. 그 둘 사이의 환상적인 결합, 필설로 표현할 수가 없다. 구미(歐美) 지방 사람들은 이런 맛도 모르고 살다 죽겠거니 하는 생각을 하니 불쌍하기가 짝이 없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이다. (14.9.12. 16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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