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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호의 문학 세계

거북이3 2014. 10. 16. 01:03

 

 

     강석호의 문학 세계

                                                                                                                                이 웅 재

  별세계를 창조하는 강석호만의 시각

  이 글은 강석호의 문학적 업적 및 출판계에 끼친 공로로서 세우게 된 문학비 제막에 헌정하는 글이다. 따라서 이 글은 무슨 거창한 논문이나 비평문으로서의 성격보다는 그의 문학세계를 들여다보기 위한 해설이나 안내의 글쯤으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나는 항상 수필을 쓸 때 창의성을 중시한다. 창의성이란 다른 사람이 아닌 나만의 시각으로 사물을 바라보아야만 생기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건물 밖에서 안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치자. 이때 건물 밖의 모든 사람들은 “저 사람이 지금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건물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저 사람이 지금 건물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고 말한다. 같은 일을 두고 한 사람은 ‘들어가고 있다’고 말하고, 다른 한 사람은 ‘들어오고 있다’고 말한다. 시각의 차이는 그렇게 하여 생겨난다.

  나만의 시각, 그것이야말로 모든 사물을 새롭게 탄생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다. 오직 하나뿐인 나만의 시각으로 바라본 세계에 대한 글은, 만약 그것을 내가 쓰지 않는다면 영원히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사실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러니까 그 세계에 대한 글을 쓰지 않는 일은 일종의 자기 부정이요, 따라서 하나의 죄악으로 치부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강석호의 글에서는 바로 강석호만의 시각이 두드러진다는 점이 무엇보다도 반가운 일이다. 그로 인해서 나 자신의 시각도 그만큼 확대되고 있다는 데에서 나는 무한한 고마움을 느낀다.

  그는 평범한 일상의 모습을 평범하지 않게 바라보는 눈을 가진 것이다. 그래서 평범한 일상도 그의 눈을 거치면 특수한 일로 변신을 한다. 그것은 바로 ‘새로운 세계’인 것이다. 그 새로운 세계는 강석호에게서만 일어나는 현상, 바로 강석호의 세계인 것이다. 다른 사람이라면 지나쳐 버리고 말았을 세계, 별 의미가 없는 세계일 것인데, 그는 거기서 남다른 의미를 찾아내고, 남들은 설계할 수 없는 별세계를 창조해 내는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우리가 일상적으로는 대해볼 수 없는 전혀 별개의 세계, 고차적인 문학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게 된다. 말하자면 그 세계는 아등바등하면서 살아가는 현실적인 우리들을 속진(俗塵) 하나 없는 더할 수 없는 청정(淸淨)의 세계, 보다 고차적인 순정(純正)한 세계로 함입(陷入)하게 만들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강석호의 문학세계를 우리 함께 탐색해 보기로 하자.

  출발점은 ‘움직임’

  그의 작품은 ‘움직임’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가 펴낸 수필집의 제목에서도 “세월이 흐르는 소리”(교음사, 2003.11.30.)라든가 “흔들리는 나뭇잎”(교음사, 2008.7.20.)처럼 움직임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주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 직접적으로 움직임을 제목으로 삼지 않은 “고마운 착각”(교음사, 2000.11.15.)이나 “나의 窓門”(좋은 수필사, 2009.9.5.)도 거기에 실린 작품 대부분이 움직임과 관련된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흔들리는 나뭇잎’이라는 작품부터 보기로 하자.

  나뭇잎이 흔들린다. 흔들리는 것은 나뭇잎만이 아니다. 살아있는 것은 모두 흔들린다. 생명체만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세월도 흔들리고 마음도 흔들린다. 세상 모두가 흔들리고 나아가서는 우주공간이 흔들린다.

  흔들리는 것과 움직이는 것은 동의어다. 다만 흔들리는 것은 타력에 의한 흔들림이요, 움직이는 것은 자력에 희한 몸짓이다. 움직임과 흔들림의 결과는 변화이며 변화의 힘은 위대하다. …흔들리는 것은 삶의 원천이자 보람이다. (흔들리는 나뭇잎)

  그는 스스로 “움직임과 흔들림의 결과는 변화이며 변화의 힘은 위대하다.”고 했다. 고인 물은 썩는다. 움직여야 변화가 이루어지고 변화가 되어야 발전이 따르게 마련이다. 우리들은 흔히 나무는 한 곳에만 자라고 있기에 움직이지 않는 존재로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의 생각은 다르다.

  대추는 작년에 심었는데 그것도 심은 해를 잊고 주렁주렁 열려 주었고, 모과는 재작년에 뿌리가 언 것을 심어선지 시원찮아 금년 봄에 다른 것으로 교체를 했다. 그런데 그것도 수십 개나 열렸다가 조금 떨어지고 열네 개나 남아 있다.

우리 집 정원의 유실수들은 이렇게 착각을 해도 한결같다. 심은 첫해도 거르지 않고 서로 질세라 경쟁이다. 착각을 잘하는 나를 닮아서일까. 착각도 이런 착각은 고맙기만 하다.(고마운 착각)

  심은 해마저 잊고 열매를 주렁주렁 맺어주는 대추나무나 모과, 강석호는 그들의 착각이 고맙다고 하고 있다. “서로 질세라 경쟁”하는 나무들, 거기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엄청난 노력이 내재되어 있다. 그러한 노력이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 수 있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는 말이다. 가만히 있어 가지고는 열매를 맺게 할 수가 없었을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강석호는 나무들의 그 치열한 노력이 고맙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들은 겨울에 죽어 있어야 새봄을 맞아 다시 소생할 수 있다. 죽음의 시간이 없으면 소생이란 있을 수 없다. 인내와 포기와 양보가 없으면 소유와 영광을 얻을 수 없다. 아무리 철학자와 같이 항상 홀로 서서 사색하고 구도자처럼 하늘을 향하고 시인처럼 순수한 마음, 장군처럼 늠름한 모습이라도 겨울의 죽음을 갖지 못하면 생명을 얻을 수 없다. 겨울의 그 잔인한 인고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면 견인주의자도 안분지족의 성자도 될 수 없다. (나목裸木들의 인고忍苦를 보며)

  ‘죽음’이란 ‘늙음’이 불러오는 현상이다. ‘늙다’ ‘죽다’는 동사이다. 곧 움직임이 있는 말이다. ‘늙다’의 상대어로 생각하고 있는 ‘젊다’는 형용사이다. 거기에는 움직임이 없다.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젊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활력이 ‘늙다’ 속에서는 찾아볼 수가 있다는 말이다. 늙은 사람들이 젊은 사람들에게 큰 소리 칠 수 있는 유일한 말이, “자네, 늙어 봤나? 나는 젊어 봤네.”라는 것은 그저 우스갯소리만은 아닌 것이다. ‘늙다’나 ‘죽다’에는 움직임이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어떤 시인은 낙엽을 일러 버림받은 여행자라고 안타까워 했지만 온갖 잎새들이 다 떨어져버린 나목, 그것은 청산(淸算)의 의미가 있다. 봄부터 다해온 모든 노력을 단풍으로 정성껏 꽃을 피우고 잘한 것, 못한 것 가릴 것 없이 모두 無로 돌리고 다시 시작하는 청산의 작업이다. 낙엽이 떨어져 주어야 다시 새잎이 난다. 그것은 새로운 창조이기도 하다.(은행나무와의 사연)

  “낙엽이 떨어져 주어야 다시 새잎이 난다. 그것은 새로운 창조이기도 하다.” 그렇다, 창조를 위해서는 늙고 또 죽어야 하는 것이다. 강석호의 글에는 이러한 원리가 아주 자연스럽게 드러나 있다. 그의 글은 늘 변하고 있으며, 항상 새로워지고 있다.

  인정의 기미(機微)를 잘 포착한 솜씨

  그의 작품에서는 미묘한 인정의 기미를 느껴볼 수 있어서 반갑기도 하다. 인정의 기미란 논리로써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설명으로써 보여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체험으로써 은연중에 느낄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J씨는 애써 가꾼 상추를 따서 주었을 뿐 아니라 그것도 새벽 단잠을 깨울까봐 아무 소리도 않고 비닐 보자기에 넣어 살짝 대문 너머에 던져 놓은 것을 생각하니 고맙기 그지없다.(뜻밖의 선물)

  ‘새벽 단잠을 깨울까봐 아무 소리도 않고 비닐 보자기에 넣어 살짝 대문 너머에 던져 놓은 것’을 직접 대면함으로써 그 기미를 느낀 것이요, ‘고맙기 그지없다’는 것은 그 인정의 기미에 대한 지은이의 반응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어느 날 퇴근을 하고 집에 와보니 박은 모두 죽어 있었다.…

  한참 후에야 알고 보니 초등학교 5학년짜리의 소행이었다. 이 녀석이 저녁에 소변을 보러 나와 제딴엔 거름을 준다는 갸륵한 생각에서 박에다 바로 방뇨를 했기로 어린 박은 그 고마움을 감당치 못하고 그날 따라 유난히 뜨거운 땡볕에 그만 시들어버린 것이다.(박꽃)

  그렇다. 사랑한다고 다 사랑은 아닌 것이다. 잘못된 사랑은 때에 따라서 이처럼 그 사랑하는 대상을 죽일 수도 있음을 우회적으로 잘 드러내준 표현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가끔 약자의 애처로운 모습을 보면서 동정의 마음을 금치 못하여 일부러 그에게 친절을 베풀 때도 있는데, 그것은 약자로 보이는 당사자로서는 오히려 더욱 배길 수 없는 마음의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사람을 ‘인간(人間)’이라고 하는 것은 아닐까? 사람과 사람의 사이에는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인정의 기미가 도사리고 있다는 말이다.

  아내에게 우산을 달라고 했더니 신장 옆에 깊숙이 넣어두었던 우산을 꺼내며, 이건 아버지가 쓰시던 것이니 잘 보관했다 잊지말고 가져오라고 했다.…

  슬하에 남긴 자녀는 7남1녀. 나는 그중 장남으로 어머님 다음으로 아버지의 고생스런 인생역정을 알고 있어 좀더 사시면서 자녀들의 효도를 받지 못하고 가신 것이 안타깝고 슬프기 그지없다.…(아버지의 유산)

  ‘안타깝고 슬프기 그지없’음을 은연중에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말, “잘 보관했다 잊지 말고 가져오라”는 말, 그 말 속에 인정의 기미가 숨어 있는 것이겠는데 그저 지나가는 말처럼 처리해 주고 있는 그 담담함, 우리는 거기서 인정의 기미란 것이 어떠한 것인가를 어렴풋이나마 체득하게 된다.

  옛날 서구에서는 소금으로 월급을 지불했다고 한다. 생활의 기본이 소금이었다고 볼 수 있다. 샐러리(Salary)의 어원도 소금값(salarium)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아내가 나의 식성을 배려하지 않고 음식을 짜게 했을 때는 신경질이 나다가도 소금이나 간장을 조금만 더 넣으면 짜고 조금만 적게 넣으면 싱거우니 그 정도를 어떻게 맞출 것인가. 그렇다고 소금이나 간장을 저울에 달아서 넣을 수도 없지 않은가.

간을 맞춘다는 것은 이 세상의 어떤 맞춤보다 어렵다는 것을 절감한다. 아울러 주부들의 고심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이해하며 스스로 위안의 길을 택하고 만다.(간 맞추기)

  인정의 기미를 느끼게 해 주는 일은 아마도 그 ‘간 맞추기’처럼 힘드는 일이 아닐까? 그것을 강석호는 슬쩍 눙치면서 잘 드러내주는 얼핏 쉬운 것 같으면서도 쉽지 않은 솜씨를 발휘하고 있어서, 작품 하나하나가 머릿속에 은근히 똬리를 틀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계단을 올랐으면 내려와야 하는 것이 철칙이다. 높이 오른 사람은 많이 내려와야 하고 적게 오른 사람은 적게 내려와야 한다.

높이 출세한 사람은 내려올 땐 허전하고 실망이 크지만 적게 번 사람은 내리막길이 되어도 별로 걱정할 것이 없다.

그러므로 높이 올랐다고 해서 너무 좋아할 것도 아니요, 적게 올랐다고 해서 크게 실망할 필요는 없다.

계단은 한 계단 한 계단 성실히 오르고 내리면서 깊은 상념에 젖어보는 데 멋이 있다.(계단을 오르며)

  “높이 올랐다고 해서 너무 좋아할 것도 아니요, 적게 올랐다고 해서 크게 실망할 필요는 없다.”는 것만으로는 인정의 기미를 드러내 준 것이 못 된다. 그래서 “상념에 젖어보”라고 했다. 머릿속에 떠오른 갖가지 생각들, ‘인정의 기미’란 그 속에서 모르는 사이에 그 생각하는 사람에게 찾아오게 마련이다. 그러다 보면 다음과 같은 역설적 인정도 느껴볼 수가 있을 것이다.

  도둑놈 없으면 우리 같은 가난뱅이는 못살아요. 도둑놈 때문에 먹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빌딩의 수위도, 방범대원도 모두가 도둑놈 때문에 먹고 살고, 경찰은 더 그렇지요.(門을 고치며)

  가족에 대한 사랑

  강석호는 가끔 8불출이 된다. 그런데 그 8불출의 강석호를 보면서, 나는 왜 저와 같은 8불출이 못 되는 것일까 하는 마음이 들고, 그의 8불출이 내심 부럽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의 부모 사랑, 아내 사랑, 자식 사랑 등은 그만큼 특별하다.

  아버지는 올해 춘추가 일흔이시다. 일제 때 잠깐 일본 구경을 하셨을 뿐 고향에서 줄곧 농업에 종사하신 평범한 농부시다.

  공부는 많이 못 하셨지만 두되가 남달리 뛰어나 한번 보고 들은 일은 그대로 모방을 해내는 재능을 가지셨고, 성품이 너무도 인자롭고 자상하여 자신은 굶고 헐벗어도 남은 입히고 먹여야 속이 편하고 그러면서도 모질지 못하여 항상 남의 궂은 일만 도맡아 식구들의 원망의 대상이 되셨고 실컷 좋은 일을 했는데도 이웃이나 형제간에 원망을 들을 때마다 화 한번 크게 내시지 않고 ‘아니다, 아니다’를 연발하시는 것이 고작이시다.(아버지와 석물)

  아버지를 공부도 많이 못 하셨고 평범한 농부라고 하면서도, “실컷 좋은 일을 했는데도 이웃이나 형제간에 원망을 들을 때마다 화 한번 크게 내시지 않고 ‘아니다, 아니다’를 연발하시는 것이 고작이시다.”라고 표현했다. 그런데 그 “고작이시다”라는 말은 어떠한 말보다도 더욱 아버지를 돋보이게 만들고 있는 언술이 아닌가? 내세우지 않으면서 더욱 크게 내세우는 그 솜씨는 웬만한 8불출들로서는 엄두도 못 낼 표현이라 하겠다. 8불출 등급 중에서 하수들은 언감생심, 엄두도 내지 말라는 경고로까지 들린다.

  제주도 여행을 아내에게 양보하고 어머니께 허락까지 받아준 나의 마음은 기쁘기 그지없었다.…게다가 어머니는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마음의 정표를 내놓았다. 아내에게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그간 며느리와 고운 정 미운 정이 다 들었고 특히 이번 감기를 앓는 동안 간병을 통해서 고마움을 느낀 나머지 모처럼 떠나는 여행길에 뭔가 정성을 표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아내는 60평생에 시어머니로부터 처음 받은 봉투를 들고 몸둘 바를 모르고 어린애처럼 좋아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도 기쁘다 못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노모가 내민 봉투)

  아내뿐만 아니라 자신마저도 눈시울이 뜨거워지게 만드신 어머니, 역시 8불출의 급을 떨어뜨리지 않는 솜씨다. 어디 그뿐이랴? “60평생에 시어머니로부터 처음 받은 봉투를 들고 몸둘 바를 모르고 어린애처럼 좋아했다.”라는 표현은 또 무엇인가? 은근슬쩍 아내마저도 곁들여서 자랑하고 있지를 않은가? 부모 자랑이야 듣는 사람 입장에서도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마음으로 들어줄 수 있지만, 아내 자랑은 우리 한국 사람들 정서로서는 쉽게 공감하려고 하지를 않을 터수임을 이미 간파하고, 이처럼 교묘한 수법으로 자랑을 하고 있으니, 모르는 체 들어줄 수밖에는 없겠다. 그는 “어머니는 움직이는 고향이었다.”(움직이는 고향)며 최상의 헌사를 드리면서, 다음의 글에서는 아내에 대한 자랑도 작심하고 드러내고 있다.

  지금 되돌아보니 당신과 내가 만난 지 어언 40여 년,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살아온 것은 천만다행이지만 그간의 삶을 되돌아보면 나는 당신의 신세만 지고 살아온 것 같소.…

  지금 당신의 협심증은 그때 얻은 병이라고 생각되오. 월말이면 무조건 돈을 빌려오라고 졸랐고 당신은 친척이다, 친구다, 아는 사람이면 모두 찾아가고 체면과 자존심을 다 버리고 아쉬운 소리를 하였으니 그 괴로움이 오죽했겠소.…

  그리고 내가 항상 말하지만, 당신의 음식 솜씨 하나는 일품이오. 자식자랑 마누라자랑은 팔불출이라고들 하지만 그것만은 그런 핀잔을 무릅쓰고 여러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있소.(인고忍苦의 세월 딛고 피어난 목련화여)

  영탄법까지도 동원된 제목하며, 같은 진주 강씨인 세종 때의 명신이며 시서화(詩書畵) 삼절(三絶)로 이름이 자자했던 강희안(姜希顔)의 『양화소록(養花小錄)』의 화목구등품제(花木九等品第)에서는 7등에 이름을 올린 목련화에 비견한 아내 사랑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숙연한 느낌까지 들게 한다. 그러한 그의 손녀 자랑에도 귀를 기울여 보자.

  그런데 나는 아들이 학위와 직장과 집, 그리고 아들을 얻은 것도 좋았지만 1학년짜리 손녀가 우리말과 글을 배워 유창하게 구사하는 것이 더 자랑스러웠다. 우리말을 가르치기 위해 일부러 거리가 먼 한국인 유치원과 교회에 보내면서 틈틈이 한글과 우리말을 배우게 하고, 또 집안에서는 애비 에미가 꼭 한국말을 쓰면서 아이가 배우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등 남달리 노력한 결과였다. (손녀와 모국어)

  이 또한 단순한 손녀 자랑으로 그치질 않고 있다. 아들과 며느리도 덩달이로 등장을 한 것이다. 그런데 손녀 자랑이 다른 할아버지들처럼 그저 손녀라는 이유 때문으로 사랑스럽다는 것이 아닌 점이 관심을 끈다. “우리말과 글을 배워 유창하게 구사하는 것이 더 자랑스러웠다.”고 하였다. 그는 그만큼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보다 한국인으로서의 사람됨에 더 손녀를 사랑했던 것이다. 그만큼 우리말과 글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다고 하겠다.

  우리말에 대한 관심은 다음과 같은 글에서도 찾아볼 수가 있다.

  문제된 ‘패러다임’과 같은 말도 그에 상응하는 꼭 맞는 말을 찾기가 어렵다. 언어순화의 경우 외래어도 문제지만 인터넷에 횡행하는 우리말의 준말이나 농어, 비어에 대한 대책은 더 시급하다고 본다.

  외래어 사용의 선별적 작업과 본격적인 언어순화운동이 정부 차원에서 범국민적으로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외래어 우리말 바꿔 쓰기)

  참고로 그의 가족의 구성원들을 살펴보면 형제는 “7남1녀”(미완의 묘지명)이었고, ‘같은 솥밥을 먹는 식구는 어머니와 우리 부부’ 세 사람이라고 했지만, 그 어머니도 돌아가셨고 지금은 두 내외만 따로 살고 있다.

  나의 가족은 금년 미수를 맞은 어머니와 우리 부부, 그리고 2남1녀의 자녀가 있다. 자녀들은 모두 결혼하여 저들도 가족을 이루었다. 그중 장남은 해외에 나가 있어 얼굴 보기도 쉽지 않고 한 지붕 밑에서 같은 솥밥을 먹는 식구는 세 사람 밖에 안 된다. (가족사진)

  섬세한 감성(대 여성관)

  대상에 대한 감성적인 글은 대부분의 경우 이성에 대한 표현에서 두드러진다고 하겠다. 얼핏 보면 여성에 대해서 살가운 정을 보이지 않는 듯한 강석호의 글에서도 이 점은 다르지 않다. 그러니까 일상생활에서는 조금 무덤덤하게 대하는 듯싶기도 하지만, 글 속에서는 그 속내가 그대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하얀 모시 적삼이나 남방 셔츠 아래 가느다랗게 은근히 비치는 두 줄의 하얀 속치마 끈이나, 적당히 짧은 스커트 밑에 하얗게 드러난 쭉 뻗은 두 다리의 각선미는 선잠이 번쩍 깨이는 산뜻한 여성의 매력이며, 치마 끝을 휘잡아 허리끈으로 잘끈 동인 날렵한 한복차림에 은근히 드러난 허리와 둔부의 둥근 선의 자국은 오랫동안 우리의 양속을 지켜온 고상하고 아름다운 여성의 매력이 아닌가.(자국의 전설)

  그의 대 여성관은 이처럼 복합적이다. 이 글의 전반부와 후반부를 대비적으로 살펴보자. 전반부에서는 한마디로 현대적 여성의 미적 특성을 칭미했는데, 후반부는 그와는 아주 다른 전통적 여성의 미를 상찬하고 있지 않은가? 그 찬양의 순서로 본다면 ‘짧은 스커트’가 먼저요, ‘날렵한 한복차림’이 뒤를 이었다. 그의 연륜으로 보아 ‘날렵한 한복차림’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는 없으나, 그래도 현대를 살아가다 보니 ‘짧은 스커트’가 먼저 눈에 들어오기에 그랬을 것이다. 어쨌든 그는 ‘쭉 뻗은 두 다리의 각선미’와 ‘은근히 드러난 허리와 둔부의 둥근 선’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다. 하기야 그러한 아름다움을 싫어할 남성들이 있을 수 있을까? 그러니까 그는 대부분의 남성들이 선호하는 여성상을 대변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 운전수도 하얀 블라우스에 검은 선글라스를 낀 여자운전수였다. 여간 멋있는 것이 아니었다. 옆에 남자가 졸고 있는데 짐작컨대 그 남자와는 부부간으로 밤새껏 남편이 운전을 하고 오다 피곤하니 잠깐 눈을 붙이게 하고 여자가 대신 운전을 하는 모양이었다.

  육중한 트럭에 연약한 여자, 그리고 깨끗하고 하얀 블라우스의 조화는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었고 그 옆에서 잠을 자고 있는 남편이 더없이 부러워 보였다.(여자 버스 운전수)

  이제부터 그와 가까이에 있는 여성들은 ‘깨끗하고 하얀 블라우스’와 ‘검은 선 글라스’를 착용할 일이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남편을 위해 주는 그 고마운 마음씨’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외모보다도 마음씨가 더 아름다웠던 여인으로는 “로마의 휴일”로 널리 알려졌던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이 있다. 그녀는 만년에 아프리카의 소말리아(Somalia) 등 전 세계 50여 곳을 돌아다니며 봉사하는 삶을 살았다. 그녀는 빌 클린턴 대통령 취임식이 있던 날, 63세의 나이로 숨졌다. 그녀가 타계했다는 뉴스는 대통령 취임식보다도 먼저 전달되었다. 이제 우리 주위의 여성들은 오드리 헵번을 닮아갈 일이다.

한편 여성 자체에 대한 글이 아니고 ‘동국(冬菊)’에 대한 서술이지만, 그 동국을 한 여인으로 의인화하여 쓴 다음과 같은 글도 그가 좋아하는 여성상이 어떤 것이라는 점을 은연중에 드러내 주고 있다고 하겠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초겨울 아파트 지하 주차장 계단에서였다. 많은 꽃나무들이 앙상한 가지만으로 겨울을 보낼 채비를 서두르고 있는데 주인으로부터 버려져 파리한 얼굴, 가냘픈 몸매로 나의 눈을 사로잡았다. 쫓겨난 공주처럼 애처로우면서도 귀여운 그 자태는 살며시 가슴에 싸안고 나의 체온을 더해 주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어려운 역경에도 미소를 짓는 끈질긴 그녀의 삶의 의지에 경도되었다. 조금만 햇볕과 수분을 공급하면 그 어느 여인보다도 탐스럽게 피어 진한 향기를 발휘해 줄 것만 같았다. 그렇게 확신한 나머지 그에게 손을 내밀어 아파트 정원으로 데리고 나와 햇볕을 쪼이고 물을 주고 정성을 다했다. 그리고 매일이다시피 출퇴근길에 그를 만났다. 하루가 다르게 점점 커가는 몸매와 젖가슴, 겹겹이 싸여 가는 얼굴의 선명한 색채, 그것은 신비롭기까지 했다.

  짙푸른 치마폭, 한들거리는 머리카락과 손놀림은 연인간의 입맞춤이자 간절한 포옹 그것이었다. (지하실에 핀 冬菊)

  인용이 길어졌는데 어쩌면 이는 그가 좋아하는 여성상의 또 다른 일면을 표현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애처로우면서도 귀여운 자태’에 자신의 체온을 더해주고 싶은 마음씨, 그 마음씨가 ‘햇볕을 쏘이고 물을 주고 정성을 다했’던 것이다. 거기에 보답한 동국(冬菊)은 그에게 신비로움까지도 느낄 수 있게 하여 주었다. 정성이 헛되지 않은 것을 보는, 읽는 사람의 얼굴에는 저절로 감사의 미소가 떠나질 않게 된다.

  밀가루 음식에 뿅 가는 사람

  강석호는 서민이다. 서민은 서민다워야 한다. 강석호는 서민답다. 라면을 예찬할 정도로 그는 서민 중에도 서민 취향을 가진 사람이다.

  나는 아내가 멀리 출타한 때나 외출하여 늦을 경우 기회는 이때다 하고 일부러 일찍 들어와 라면을 직접 끓여 먹을 때가 많다. 라면을 끓여 먹는 재미를 생각하면 아내가 자주 외출을 하거나 끼니 준비를 제대로 해놓지 않고 갔으면 싶을 때가 많다.…

나는 라면뿐만 아니라 인스턴트 냉면도 좋아한다. 특히 도토리 냉면을 좋아하는데 냉면을 삶아 맑은 물이 나오도록 씻어 스프를 넣고 비벼 먹으면 그 또한 별미이다.(라면 예찬)

  외국에 나가서 오랫동안 입에 맞지 않는 음식에 질렸을 때라면 모른다. 융프라우에선가는 라면 한 그릇에 2만 원도 받는다니까 조금은 고급 음식으로 취급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경우는 그런 특수한 상황이 아니잖은가? 더더군다나 다른 사람이 정성껏 끓여주는 라면도 아니고, 아내마저 출타한 틈에 혼자 끓여먹는 라면 예찬은 아무래도 좀 지나친 것 같은 느낌이다. ‘라면뿐만 아니라 인스턴트 냉면’까지도 그토록 좋아한다니 이건 아무래도 지나친 서민 취향은 아닐는지?

  이렇게 손님을 귀히 여기고 신발을 직접 챙기는 서민적인 사장과 유머와 위트가 있고 만인의 애인 같은 포용력과 책임성 있는 참모, 그리고 믿음직한 종업원들이 있는 한 우리 매식자들은 외롭지 않을 것이다.(나의 단골식당…대청마루)

  사장부터 서민적이라고 했다. 그런 곳을 ‘애인 같은 포용력’을 느끼면서 찾아가는 그가 서민적이 아니라면 누가 서민적일 것이랴? 음식뿐만 아니라 음식점까지도 이처럼 서민적인 곳을 선호하는 강석호는 진정 서민적 취향을 가진 사람이라 아니할 수가 없다. 그러한 그가 서민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맨몸으로 건너도 숨이 가쁜데 예순 중반쯤 된 할머니가 인근 농수산물 시장에서 푸성귀며 과일들을 사서 손수레에 가득 싣고 허겁지겁 건너온다. 미처 건너기 전에 빨간 불이 켜져 달려오는 모습이 무척 힘들어 보인다.…

세상은 소수자의 희생에 의해 건설되어간다고 한다. 셋방살이 지하층에서도 인재들이 크는 것은 그런 할머니나 어머니들의 사랑과 헌신과 희망에 의한 것이라 생각할 때 그 할머니의 고된 모습이 생기롭기만 하다. 바람결에 흩날리는 흰 머리카락은 삶을 위한 강인한 깃발이다. (손수레 끄는 할머니)

  손수레 끄는 할머니는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에서도 만날 수 있는 우리 시대의 드물지 않은 풍경 중의 하나이다. 영화에서는 아내와 사별하고 아들, 며느리, 손녀와 함께 사는 할아버지 만석(이순재 분)이 손수레 끄는 할머니 이뿐(윤소정 분)과 만나 사랑을 싹틔우는 낭만이 있어 훈훈한 이야기로 반전하기도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이 실상이다. 그러한 할머니에 대한 애틋한 정의 표현은 그의 서민친화적인 면모를 여실하게 드러내주는 작품이라 하겠다.

  며칠 전 지병인 통풍이 발생하여 승용차를 몰고 인근 병원으로 가서 치료를 받고 주차장으로 나오니, 한 노인이 리어카에 종이박스를 주워다 가득 싣고 있었다. 모아둔 박스를 모두 한 리어카에 실으려니 부피가 커서 미끄러지자 그것을 다시 주워 올려 노끈으로 묶느라고 애를 쓰고 있었다.

  그냥 보고만 나오기가 딱하여 발끝의 아픈 통증을 무릅쓰고 흩어지는 박스를 붙들고 묶음줄을 같이 당겨주며 말을 걸었다.(폐지 줍는 노인)

  ‘폐지 줍는 노인’도 같은 맥락의 글이다. “발끝의 아픈 통증”을 느끼면서도 그러한 ‘통증을 무릅쓰고 흩어지는 박스를 붙들고 묶음줄을 같이 당겨주며 말을 걸’고 있는 강석호는 진정 마음이 다사로운 사람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빵 굽는 노인’을 보자.

  사람은 일손을 놓고 놀다보면 한이 없고, 편안이 오히려 무료와 불편을 부르기 쉽다. 더욱이 어느 정도 노력할 수 있는 건강이 있는 사람이라면 적당히 일을 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인생의 남은 마지막 여력을 최후까지 다하여 생산에 투입한다는 것은 노년의 보람이자 아름다움이다.(빵 굽는 노인)

  이 글을 보면, 나이가 들어 할 일이 없다고 일손을 놓고 노는 일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겠다. 일을 찾아 나서자. 그는 “인생의 남은 마지막 여력을 최후까지 다하여 생산에 투입한다는 것은 노년의 보람이자 아름다움”이라고 하였다. 삶의 평범한 진리가 이러한 평범한 듯 보이는 표현 속에 녹아 있음을 간과하지 말 일이다.

  그는 정원의 잡초를 뽑거나 나무들을 전정하고 벌레를 잡아주는 것 외에 아파트에서 버린 다 죽어가는 화초들을 모아 재생시켜주고 계절마다 특색 있는 꽃들을 손수 심고 가꾸어 아파트 정원을 꽃밭으로 만들어 놓는다.…

고된 일이라도 스스로 즐겨 하면 고달픔을 모르고 아무리 쉬운 일이라도 남이 시켜서 하면 지루하기 그지없다는 말을 되뇌게 하는 모습들이다.(아파트 경비원)

  역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 경비원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다. 조그마한 일이라도 정성을 다하는 그 마음씨, 고된 일이라도 스스로 즐겨 하는 모습, 하찮게 버려진 생명도 알뜰살뜰히 보살펴주는 손길, 강석호는 그러한 사람들의 따뜻한 인정에 못내 고마운 감정을 떨쳐 버리지 못한다.

  30대로부터 쉰 안팎의 중년 아줌마들이 공사장 인부들이 벽돌을 나를 때 쓰는 다리 없는 지게를 지고 혹은 큰 함지를 이고 저 아래 약방 앞에서 산꼭대기까지 연탄을 나르고 있는 것이다.…

  비록 가난은 할지언정 진실과 성실로 삶을 점철해가는 이런 골목 풍경은 우리 동네 같은 변두리에서가 아니면 좀처럼 볼 수 없는 진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이들이 자랑스럽기만 했다.(자랑스런 行列)

  “산꼭대기까지 연탄을 나르”는 중년 아줌마들에게서도 그는 안쓰러운 마음보다도 자랑스러움을 느끼고 있다. 가난하더라도 성실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그는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흔히 그러려니 하고 지나쳐 버리는 생활의 단면을 그는 놓치지 않는다. 친서민적인 정서를 드러낸 글들 중에서도 특히 그는 책을 읽는 사람, 공부하는 여인들에게 높은 점수를 매겨주고 있기도 한다.

  사당 전철역에서 수원 쪽 출구로 나오면 버스정류장 앞에 떡볶이장수와 뻥튀기장수 옆에, 연탄불 화덕에 고구마와 오징어, 가래떡을 구워 파는 아줌마가 있다.…

  이 아줌마는 손님이 없을 때는 책을 열심히 읽고 있다.…그녀는 아주머니가 아니라 당년 70세의 노인이었고 성경은 1년에 한 번씩 완독하는데 그간 세 번을 완독했다는 것이다.(거리의 대화)

  주부들의 경우는 한 가정의 어머니요, 며느리요, 아내로서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아이들 학교 보내고 남편을 출근시키고 또 시부모님을 위한 점심식사나 간식 준비는 물론 외출의 허락을 받기 위해 갖은 애교와 서비스를 하고 달려 나오는 그 모습은 아름다움의 극치이다.(공부하는 女人들)

  그가 특히 책 읽는 사람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직접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는 사람인 연유도 작용하고 있을 것이기는 하지만, 그는 특히 교양서의 독서열이 지극히 낮은 현실을 개탄하면서 나라의 장래에 대한 우려감을 드러내고 있는데, 이러한 현상은 우리 모두가 함께 걱정해야 만 할 일이 아닌가 싶다. 다음과 같은 글은 우리 모두가 공감하고 있는 일이 아닐까?

  책이 천대받는 세상, 영상과 소리에 밀리다보면 어디까지 밀릴 것인가. 그러나 책이 우리 인간과 떨어질 수는 없을 것이다.

국고를 들여서라도 문고본을 많이 만들어 지하철에 염가로 보급하는 운동이 일었으면 한다. (지하철 단상‧Ⅳ)

  강석호의 수필을 일람하면서 느낀 점은 주로 설명의 방법을 썼다는 점이 불만이라 하겠다. 아니, 때에 따라서는 설명으로만 끝나지도 않고 논평이 우세한 작품도 적지 않았다. 그것은 아마도 그가 평론가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평론가로서의 무의식적 비평의식이 작용한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수필의 경우에서는 이왕이면 객관적인 묘사의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대상 인물에 대한 느낌을 읽는 사람이 직접 느낄 수 있도록 표현하여 주었더라면 훨씬 더 좋은 글로 인상지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가진다. 하지만, 억지로 가르치려고 하지 않고 스스로를 반성하는 자세를 보임으로써 다른 사람에게도 그러한 마음이 전염되도록 한다는 점이 그 단점을 보완시켜 주고 있었다.

  후회는 아름답고 지순한 것. 그것은 잘못의 결과이지만 거기에 비오듯 쏟아지는 눈물이 있고 비통한 절규와 미련없는 청산과 진실이 있다면, 그것은 개과천선의 좋은 기회가 된다.(이 후회의 계절에)

  사회비평적인 글들

  평론가로서의 특성이 두드러진 글들은 다음과 같은 몇몇 글에서 찾아볼 수가 있지만, 비평적인 성향이 강한 글에서는 아무래도 문학성 자체는 두드러지지 못할 수밖에 없기에 이 부분에서는 한두 작품만을 살펴보는 것으로 그치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을 만날 때도 차를 한 잔 나눈다거나 식당에서 또는 주석에서 자리를 같이하여 이런저런 사적 얘기를 나누고 보면 처음 만나는 사람은 금방 친해질 수 있고 친한 사람은 더욱 두터운 교분을 나눌 수 있는 것이 인간의 상정이다.

  그러나 이러한 순수한 정을 잘못 이용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서정쇄신과 관령하여 공무원들은 숟가락질을 함부로 했다간 큰일날 경우가 있다.(숟가락질)

  일반적인 경우라면 함께 밥을 먹는다는 일은 무척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금방 친해질 수 있고 친한 사람은 더욱 두터운 교분을 나눌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아나가기 위한 기본적인 일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일이랄 수 있는 밥 먹은 일, 그것을 함께 한다는 것은 모든 행위들 가운데서도 제일 원초적인 동질성을 공유하는 일이라 할 수가 있기에 어떤 행위보다도 더욱 서로를 가깝게 만들어 주는 일일 터인데, 그런 면에서 공무원들은 자유로울 수가 없어 안타까운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그 자리엔 72세의 노파가 17세의 손자놈과 함께 움막을 치고 살았는데 그 움막이 헐리게 되자 손자놈은 어디론가 도망을 쳐버렸고, 움막을 헐고 동사무소에 가서 보상금 15만원을 신청하니 항공촬영도에 그 움막이 나타나 있지 않아 보상비 책정에서 빠졌다고 거절을 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당장 갈 데도 없는 노파의 딱한 사정을 보다 못한 동네 사람들이 다시 움막을 치고 며칠간이라도 거기서 기거를 하게 하고 식사는 아직 남아 있는 동네 사람들이 돌아가며 제공해 주면서 동장과 협의하여 보상금을 타주기로 했다는 것이다.(철거현장)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연상케 하여 주는 광경이다. 우리 주위에는 이런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들은 대다수의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그러한 소외자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일은 사회 비평적 역할 중에서도 우선적으로 다루어져야 할 일들임에 틀림없다. 강석호는 그런 점을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작품은 앞에서 언급한 그의 서민친화적인 면모를 보이는 글들과도 맥이 통하는 작품이라 하겠다.

  문학과의 인연

  그는 소년시절부터 문학과 친했던 사람이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목동이었습니다.…

  『로빈슨 크루소』,『보물섬』,『엄마 찾아 삼만리』,『방랑하는 소년』,『안데르센 동화집』,『성웅 이순신』,『발명왕 에디슨』 등 무슨 책이든 한번 손에 잡았다 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어댔습니다. 그리고 일기도 열심히 쓰고 중학교 때는 영어단어를 외웠는데 작은 콘사이스를 하나를 다 떼기도 했습니다. 그때의 독서와 일기쓰기가 오늘날 나를 글쟁이로 만든 것이라 믿습니다. (그리운 목동 시절)

  『로빈슨 크루소』,『보물섬』,『엄마 찾아 삼만리』…아련한 향수마저 느끼게 만드는, 어렸을 적 많이 들어보던 책 제목들이다. 강석호는 이러한 책들을 위시하여 “무슨 책이든 한번 손에 잡았다 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어댔”다고 한다. 그가 바탕이 튼튼한 글쟁이가 될 수 있었던 원인이다. “작은 콘사이스를 하나를 다 떼기도” 하였다니 놀라지 않을 수가 있다. 그러한 기초 위에 세워진 ‘강석호의 문학세계’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아성을 이룰 수가 있었던 것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진주시와 인접한 군내의 시골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았고 하숙처가 없어 학교 숙직실에서 홀로 기거하다 보니 외롭고 적적하여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본격적으로 문학서적을 탐독하며 틈틈이 습작에도 열정을 쏟았다.…

내게 행운의 기회가 왔다. 4‧19 이듬해 어느 가을날 《경남일보》편집국장인 김수성 시인이 나를 만나자고 하여 약속한 다방에서 만났더니 당시 연재하고 있는 소설의 작가가 사정이 있어 중단하게 되었는데 그 뒤를 바로 이어 내가 연재소설을 써보라는 것이었다.…소설의 제목은 〈나발이〉.…나를 필자로 선정한 김수성 편집국장도 만족해했고 많은 동료 문인들, 그리고 시민 독자들이 좋은 평을 해주었다. (내 문학의 고향)

  신문 연재소설로도 이름을 드날렸던 강석호, 그의 또 다른 면모가 보인다. 그가 글쟁이가 되지 않았다면 과연 무엇이 될 수 있었을까 하는 걱정마저 들지 않는가? 그 자신도 고백한다.

  나는 자위하며 산다. 글을 쓰는 것은 어쩔 수 없이 타고난 생리이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누가 막는다면 숨이 막혀 죽을 정도로 그에 대한 집념이 강하다.(내게 문학은 무엇인가)

  “숨이 막혀 죽을 정도로”, 글에 대한 집념이 강하다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이 말 한마디로 그의 문학에의 길은 설명이 되고도 남는다. 그러한 그가 보는 ‘수필’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아니, 어떤 것이어야 할까?

  아침 풀잎에 맺힌 영롱한 이슬방울 같고 창밖을 지나쳐버린 예쁜 여인의 옆모습과 같고 장독대에 별스럽지도 않게 한쪽 구석에 놓여있는 항아리와 같고 건널목을 지나며 살짝 던져주는 낯선 이의 미소 같은 것, 아니면 기와집의 날렵한 추녀 끝이나 산밑에 찌그러져 가는 초가집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세월이 흐르는 소리』의 책 머리에 쓴 ‘수필을 위하여’)

  산뜻하면서도 은근하고, 설레게 하면서도 덤덤하게 바라볼 수 있는 존재, 그것이 수필이라는 말이겠다. 그 참신한 비유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그와 같은 수필을 쓰려고 노력하지 않을 수가 없다. 햇볕이 좌악 내리쬐면 기화해 버리고 말겠지만, 자신의 모든 힘을 다 바쳐 동그란 체형을 유지한 채 빛을 뿜어대는 이슬방울은 베잠방이라도 입고 그 이슬에 젖어보고 싶다는 마음을 불러일으켜 주고 있고, 지나쳐버린 예쁜 여인의 옆모습은 왜 또 그렇게 다시 보고 싶어지는지! 하지만 그 얼굴은 아쉬움만 남기고 이미 과거 속으로 묻혀버리지 않았는가? 장독대 한쪽 구석에 놓여있는 항아리가 왜 우리의 마음자락을 붙잡고 있는 것인지, 산 밑에 찌그러져 가는 초가집은 무엇 때문에 우리에게 아련한 그리움을 모락모락 피어나게 만들고 있을까? 한마디로 수필은 논리가 아니라는 것이면서도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는 또 하나의 굳건한 세계라는 말이다. 그러면서 안타까움을 표한다.

  스포츠에서 세계 챔피언이나 우승을 하면 큰 상금과 각계각층의 후원금에다 연금까지 주고 귀국할 땐 환영퍼레이드를 펼치며 취재경쟁에 열을 올리지만 과학이나 물리화학 의학 또는 음악, 미술, 문학 등에 대해서는 그 대우와 보도가 미미하기 그지없다.(변강쇠 천국)

  홀대받는 분야 중에서도 과학이나 물리화학 의학은 그나마 앞자리를 차지했다. 과학보다도 예술은 더욱 찬밥 신세요, 그 찬밥 중에서도 특히 문학은 제일 마지막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나 공감하고 있는 생각이다.

한편, 문단 여적이라 할 수 있는 문학 주변의 이야기들도 관심을 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어쩌면 그가 아니고서는 그와 같은 일화가 존재할 수 없었을 일이었기에 아주 소중한 자료로서의 의미마저 띠는 글이기도 하다.

  5․16 이후 김현옥 서울시장과 친하여 김 시장이 서울을 개발할 때 선생에게 말죽거리 땅을 싼 값에 사게 하여 뒤에 몇 갑절의 이익을 남기고 부자가 되었다는 소문도 자자했으나 실제와는 다르다는 얘기다. 다만 용산의 한 하천을 복개하여 큰 건물을 짓고 관리를 했으나 그것도 얼마지 않아 남의 손에 넘어갔다는 얘기를 들었다.(내가 만난 이병주 선생)

  소설가 이병주 선생에 대한 항간의 근거도 없는 소문을 잠재워 주는 글도 나름대로 소중한 일이 아니겠는가? 잘못된 소문은 특정 작가 개인에게도 치명적이겠지만, 문학계 전반을 위해서도 근절시켜야 할 일임에 틀림이 없다.

  그때 선생님은 92세, 수강생들이 드리는 꽃다발을 받고 매우 즐거워하며 건강이 좋지 않은데도 활짝 웃곤 했다.

그리고 그의 작품과 신상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는데 비교적 자상하고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그 「5월」의 소녀는 누구를 연상했냐고 물었더니 그냥 빙그레 웃기만 했다. 금아 없는 이 세상 그 5월의 소녀는 어디서 무엇을 할까. 신록이 무르익은 이 계절에 선생님 생각과 함께 그녀가 그립기만 하다. (琴兒 선생과 「5월」과 나와)

  금아(琴兒) 선생에 대한 그리움은 「5월」의 소녀에 대한 궁금증과 함께 우리의 마음을 잔잔히 적셔주고 있다.

  선생의 장점은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남다른 것은 남의 험구를 하지 않는 것이었다. 아무리 실수를 하고 잘못을 저질러도 다른 사람 앞에서 그 사람을 비하하거나 흉보지 않았다. 사람들은 두 사람만 모여도 남의 말을 하게 되고 남의 말 하는 재미로 모인다는 말도 있는데 조여사님은 그렇지 않았다. (조경희 여사님을 추모함)

  조경희 여사의 인품도 우리는 강석호로 말미암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가 하면「수필의 날 제정 경위」를 밝혀준 글도 나중에 아주 소중한 자료의 가치를 지닐 것임에 틀림이 없다.

  무엇보다도 수필가로서의 김소운(金素雲)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한 공적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친 일이 아닐 것이다. 김소운이 남긴 수필이 2백 편이 넘는다면서 “김진섭, 김광섭, 피천득, 이양하, 한흑구, 윤오영 등과 함께 이 땅의 수필문학사에 하나의 맥을 있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평가는 아주 소중한 평가라고 하겠다.

그는 ‘소운의 친일성’이라는 소제목의 글에서, 소운의 친일성과 관련된 내용들을 정리해 보이면서 결론적으로 말했다.

  다행히 그가 사세하기 전 해 대한민국 정부는 문화훈장을 그에게 수여했다. 그것으로 그의 친일적 정치적 오해가 모두 풀렸다고 간주해도 좋을 것 같다.

  겉으로 나타난 몇몇 친일적 작품만 가지고 한 인간의 전체를 평한다는 것은 지나친 오만이요 폭거란 느낌을 갖게 한다. 물론 그의 친일적 작품들은 그의 이력에 남긴 하나의 오점이 되겠지만 그것을 상쇄하고도 남을 공적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되리라고 본다.(김소운의 친일성과 그 수필의 위상, 김소운 수필선집 5, 제2부 명수필 작가론, 아성출판사, 1978, pp.160~161.)

  그러면서 김소운 수필세계의 특징을 다음의 다섯 가지로 요약하여 보여주었다.

  첫째, 그의 수필에서는 강렬한 조국애를 느낄 수 있다.…

  둘째, 그는 따뜻한 인간애의 소유자였다.…

  셋째, 그는 유달리 女情에 약한 사나이였다.…

  넷째, 그의 수필은 진솔한 자기 고백의 표본이다.…

  다섯째, 그의 수필에는 유머와 독설과 해학에 의한 비평적 요소가 다분하다.…

  여섯째, 그의 수필에는 꽃이나 자연을 소재로 한 글이 별로 없다.(상게서, pp.161~169.)

  이처럼 김소운의 수필 세계에 경도된 강석호였기에 ‘소운문학상’을 제정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또한 그의「中南美 문학기행」을 위시한 기행문도 문학가들의 기행문 쓰기의 전범을 보여준다고 하겠지만, 글이 너무 길어지는 것 같아서 이만 줄이기로 하고 다른 것 몇 가지만을 간단하게 더 부연하고자 한다.

  정확한 표현의 추구

  굳이 플로베르의 일물일어설(一物一語說)을 말하지 않더라도 글은 정확해야 한다.

  공용화장실에 가면 으레껏 붙어있는 표어가 있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다’가 그것이다. 화장실을 깨끗이 사용하자는 뜻의 미학적 표현인데 나의 경우 그 뜻과 아름답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아 역감정을 느끼게 한다.…화장실을 깨끗이 쓰자고 강조하려면 ‘깨끗한 사람은 머문 자리도 깨끗하다’고 해야 그 표현이 정확할 것 같다.(아름다운 화장실)

  우리가 흔히 화장실에서 만날 수 있는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다’는 말에 그는 시비를 건다.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사람에 따라서는 그거 참 좋은 말이라고 생각하기도 하는 말을 두고 그는 정확하지 않은 말이라고 딴지를 건다. ‘깨끗한 사람은 머문 자리도 깨끗하다’라고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멋진 표현이라고 해서 아무데에나 써도 좋은 것은 아니다. 깨끗하게 사용하자는 것이 주된 목적인 말에 왜 ‘아름답다’라는 말을 쓰느냐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는 모든 것은 제 자리에 있어야 제격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적상산 정상 산사에서 듣던 그 풍경소리가 아니었다. 둔탁하고 단조롭기만 할 뿐 은근히 속을 씻어내고 흔들어주는 청량한 소리가 아니었다. 당초 아파트에서 제 소리가 나기를 바란 것이 잘못이었다. 맑고 깨끗한 높은 산곡을 누비고 온갖 초목을 만나 속진을 다 털어버린 청량한 산정의 바람을 맞아야 그 소리가 나는 것이지 아무렇게나 몸체를 두드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었다.(아파트의 풍경 소리)

  무주 리조트에서 문학 세미나를 할 때, 안국사 법당 풍경소리의 청아함에 이끌리어 팔고 있는 풍경을 고르고 있었는데, 어느 회원이 자기가 사 드리겠다고 하여 사 주었단다. 그는 그 풍경을 가지고 와서 아파트 출입문 안쪽 위에 매달았는데 문을 여닫을 때마다 소리가 났지만 안국사 법당에서 듣던 소리는 아니었다고 했다. “속진을 다 털어버린 청량한 산정의 바람을 맞아야 그 소리가 나는 것이지 아무렇게나 몸체를 두드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었다.”고 했다. 글을 쓸 때에도 꼭 필요한 어구는 제 자리를 찾아 있어야지만 살아있는 글이 되는 것이다.

  그는 타고난 글쟁이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소재(素材) 곧 글감이 될 수가 있다. 들이나 산에서 자라는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도 소재가 될 수 있고, 발길에 차이며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하나, 바닷가 백사장의 수많은 모래알 하나하나도 소재가 될 수 있다. 동물, 식물, 무생물…, 눈에 보이는 것은 다 글감이 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것뿐만이 아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것. 생각, 느낌, 주장…‘무엇’이라도 좋다. 하지만, 그 ‘무엇’이 글로 쓰이려면

  나름대로의 의미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일상에서의 의미 찾기, 강석호는 그 일상에서의 소재 찾기에 남다른 능력을 발휘한다. 평범한 것도 평범하지 않게 보는 눈, 그는 그 능력이 뛰어나다는 말이다. 그러한 눈은 우선 대상에 대한 세심한 관찰에서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무수한 사각형 속에서 살고 있다. 벽도 사각형, 천정도 사각형, 창문도 사각형, 책상도 사각형, 그리고 거울도 책도. 우리 주변의 물건들이 사각형 아닌 것이 별로 없다.…

  사각형은 그 모서리가 싫다. 모서리는 삼각형이 더 날카롭지만 삼각형은 그렇게 흔치 않으니 희소가치라도 있지만 사각형은 흔한 데다 90도 직각이 네 개나 있으니 그 딱딱함과 날카로움이 우리의 마음을 여간 위축되게 하는 것이 아니다.(사각형의 권태)

  “무수한 사각형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 그는 벽, 천정, 창문, 책상, 거울 등등을 관찰했다. 그리하여 “우리 주변의 물건들이 사각형 아닌 것이 별로 없다”는 결론을 도출한 후, 거기서 ‘딱딱함’과 ‘날카로움’을 발견하고, 그리고 그것들은 “우리의 마음을 여간 위축되게 하는 것이 아니다.”는 의미를 추출해 내고 있는 것이다.

  어느 날 나의 사무실을 드나드는 비둘기를 보니 암놈이 바뀌어 있었다. 처음의 수놈은 감청색에 목 뒷부분에 윤기가 자르르 흘렀고 암놈은 흰 털에 검은 점이 몇 개 등허리에 박혀있었는데 수놈은 그대로이고 암놈이 흰털에 검은 점이 많은 놈으로 바뀌어 있는 것이었다.(비둘기는 바람둥이인가)

  우리 주위에 비둘기는 많다. 공원이란 공원은 물론이요, 광장, 산책길 등에서도 비둘기는 어렵지 않게 만날 수가 있다. 그렇게 거의 일상적으로 대할 수 있는 비둘기지만 놈들의 일부일처제를 의심해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 오히려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둘기는 그 어느 새보다도 암수의 애정이 변함없이 돈독한 새라고들 알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그는 비둘기가 바람둥이는 아닐까 의심해보고 그것을 확인하기 위하여 세심하게 관찰을 하고 있었다. 그가 천생의 문학가로 자리매김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대상에 관한 철저한 관찰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갈석 강석호는 한평생을 문학인으로서 살아왔다. 자신의 글을 쓰기 위하여 살았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글을 출판하기 위하여 살았다. 그리고 많은 수필가를 길러내기 위하여 살았다. 수필가뿐만 아니라 모든 문인들의 보다 활발한 문단활동을 도와주기 위하여 문인협회의 부이사장까지도 지냈다. 그러한 강석호에게 우리 수필문학추천작가회원 일동은 범문단적인 호응을 받아 이제 그의 문학비를 헌정한다.

                                                                                                                                                          (2014.10.15. 원고지 130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