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망증(健忘症)
이 웅 재
손에 들고 있던 안경을 쓰고 안방으로 건넌방으로, 거실로 주방으로, 심지어는 화장실과 베란다에까지 들락날락 하며 안경을 찾고 있는 나를 보고 마누라가 묻는다.
“무얼 찾는데?”
“안경!”
“내 참, 눈에 쓰고 있는 건 뭔데?”
“응? 아, 여기 있었군.”
“아니, 그렇게 건망증이 심해요?”
“업은 아이, 3년 찾는다고 하지 않았어?”
“말이나 못 하면….”
마누라가 혀를 끌끌 찬다. 그러는 마눌님은 또 어떤가? 철마다 새로 입어야 할 옷을 찾느라고 법석을 떨 때가 한두 번이 아니질 않는가? 며칠 전만 해도 그렇다. 날씨가 차가워지면서 머플러를 해야겠다고 찾기 시작하는데, 하루 종일 찾고도 모자라 이튿날까지 부산을 떠는 것이 아닌가? 방마다, 옷장마다, 장롱 위쪽에 얹어둔 여행용 가방까지 뒤져보지 않은 곳이 없다. 탈진 상태에까지 이르렀는데, 내가 외출할 일이 생겨서 내 방의 옷걸이에 걸려 있던 옷을 꺼내다가 보니 그 아래쪽에 무슨 플라스틱 통이 하나 눈에 띈다. 얼른 잡아끌어 꺼내고 보았더니 아하, 그 속에 온갖 머플러가 차곡차곡 정리되어 들어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을 본 마눌님 왈,
“너무 잘 두었었군.”
가끔은 건망증 때문에 뜻밖의 횡재를 하기도 한다. 가을이 되어 지난봄에 입었던 양복을 새로 꺼내 입었더니, 어럽쇼, 상의 안주머니에서 5만 원짜리 지폐 10장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느님, 부처님, 알라님, 옥황상제님, 고맙고 또 고맙고 고맙습니다. 하늘에 대고 수십 번 인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요즘 너나없이 왜 건망증이 이처럼 심해졌는지 모르겠다. 세상살이가 그만큼 복잡해져서 그런 것일까? 곰곰 생각해 보면 그런 때문만도 아닌 듯싶다. 공자 시대에도 건망증은 많은 얘깃거리를 만들어 내질 않았던가? 『공자가어(孔子家語)』 「현군편(賢君篇)」에 보면 ‘사가망처(徙家忘妻)’라는 말이 나온다. 이사를 가면서 아내를 잊었다는 말이다. 최근에는 ‘사가망처’를 비틀어서 ‘사가망부(徙家忘夫)’라는 말이 생겨나고 거기에 따른 유머들이 인터넷에 유영(遊泳)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성들의 목소리가 커지다 보니까 하루 세 끼를 꼬박꼬박 마누라가 챙겨주는 밥을 먹어야 하는 ‘마포불백(마누라도 포기한 불쌍한 백수)’인 ‘삼식(三食)이’가 책상머리에 써 붙인 좌우명의 첫 번째가 ‘인명재처(人命在妻)’라고 한다든가, 이사 갈 때면 잽싸게 이삿짐 나르는 자동차에 올라타야지만 마누라로부터 버림받지 않게 된다든가 하는 얘기들 말이다. 마누라가 버리고 갈까봐 ‘다른 건 몰라도 장롱은 싣고 가겠지’ 싶어서 장롱 속에 숨어들어서 이제나 저제나 기다렸더니 종무소식이라든가 하는 시답잖은 얘기도 이젠 유행에서 한참 뒤처진 얘기라고들 한다. 웬만한 아파트에는 붙박이장이 있기 마련이어서 다 낡아빠진 장롱은 그냥 버리고 간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말하자면 의도적으로 잊어버리는 경우가 아닐까 싶기는 하지만, 우스갯소리의 소재가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하는 경우도 있을는지 모르겠다.
요즈음에는 동창회에 나가서 서로 이야기하다가 상대방의 이름을 부르려고 하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 친구의 이름이 입안에서만 뱅뱅 돌고 생각이 나질 않을 때가 있어 답답하기 그지없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러다 치매가 오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다. 하지만 지하철 유실물 센터에서 하루에만 수천 건의 유실물이 쌓인다는 얘기를 들으면 살아가는 일 자체가 힘든 현대 사회에서 건망증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더구나 자기 집 전화번호가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은 건망증이요, 식사를 하고도 먹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치매라고 한다던가, 아내 생일을 잊어버리는 것은 건망증이요, 아내 얼굴을 잊어버리는 것이 치매라는 말을 들으면 느긋한 마음이 들기까지 한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 보면 ‘건망증’이란 그리 몹쓸 현상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자어 표기에서 ‘튼튼할 건(健)’ 자를 쓴다는 것 자체가 ‘잊어버리는 증세(忘症)’ 자체가 건전하고 건강한 현상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는 의미는 아닐까? 그렇다, 한 번 겪은 일을 영원히 잊어버리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살기가 어려워질까?
내 가장 친한 친구, 그래서 요사이도 함께 어울려 각 일병(各一甁)씩의 소주를 마시는 술친구 영식이도 초등학교 땐 무슨 일 때문에서였는지 박 터지게 싸우지를 않았던가? 다섯 살 때 원산 큰아버지댁엘 가서 그 귀한 잣죽을 두어 사발 마시고서는 이틀 동안이나 설사를 좍좍 하게 되어 고생고생하지 않았던가? 불고기를 너무 많이 먹고 체하여 애를 먹었던 기억, 용봉탕을 대접받고 위경련을 일으키는 바람에 사경을 헤매던 일은 또 어떤가? 그런저런 기억들이 그 대상들을 대할 때마다 생생하게 기억이 된다면 아무리 배가 고파도 마음대로 음식물을 먹을 수가 없을 것이 아닌가?
다람쥐는 겨우내 먹으려고 도토리를 여기저기 나누어서 저장해 두는데, 나중에 어디에다가 저장을 해 두었는지 몰라서 그 도토리가 싹이 나서 자라 숲을 이루게 된다고 하지 않던가? 우리, 가끔은 어려운 세상살이 때에 따라서는 대범하게 잊어버리고 지내봄은 어떨까 싶다. (14.11.10. 15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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