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의 죽을 고비
이 웅 재
성년이 된 이후로는 내게 죽을 고비가 찾아오지 않은 것을 보면, 이왕 세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으니 이제는 나름대로 세상살이를 즐기다가 오라는 염라대왕의 너그러운 배려 덕분이 아닐까 싶었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2007년 봄에 다시 죽을 고비를 맞게 되었다. 그해만 넘기면 대학교에서도 정년으로 퇴직할 몸인데, 왜 갑자기 호출을 하였던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인심 쓰는 김에 그냥 정년을 마치고 오라고 할 일이지, 웬 심통이었을까? 어쩌면 몸무게도 55kg 정도밖에 나가지 못하던 친구가 70kg도 넘게 인격(똥배)까지 갖추고 지내는 것이 아니꼽고 눈꼴이 시어서 그랬던 것은 아닐까도 여겨지지만, 그 심보를 누가 알 수가 있으랴?
날씨도 화창한 4월 25일이었다. 11시에 상담실 회의가 있어서 내 차 SM5를 몰고 학교로 가는 길이었다. 경충대로 롯데캐슬아파트 앞쪽 건널목에서였다. 빨간 불이 들어와서 내 앞쪽의 차량 두엇이 멈춰 섰고 나도 그 뒤에 멈춰서 신호가 터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뒤쪽으로는 따라오는 차량은 없었고, 한 30여 m쯤 되는 곳에 흰색 차 한 대가 보일 뿐이었다. 언제쯤이나 파란 불로 바뀌려나 생각하고 있는데, 이게 무슨 청천의 벽력인가? 갑자기 꽈다당! 하는 소리와 함께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 순간 나는 깜빡 정신을 잃었다. 그러나 그 시간이 길지는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차가 받친 것이었다. 에어백이 터지면서 가슴을 타격하는 바람에 잠시 실신을 했던 것 같았다.
정신을 차려야지…, 마음속으로 다짐하며 몸을 움직여 보았다. 다행히 온몸이 뻑적지근하였으나 움직일 수는 있었다. 차 문을 열었다. 삐그덕 소리를 내기는 했지만 문도 열렸다. 밖으로 나오니 잠깐 어지럼증이 일어서 두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면서 마음을 가다듬었다. 눈을 떠 보니 내 차는 두 차의 사이에 끼여 있었다. 뒤쪽에서 내 차를 세게 받아버린 것이었다. 좀더 자세히 보니 내 차는 형편없이 찌그러져 있었다. 그리고 앞쪽 봉고의 밑쪽으로 들어가 버려서 움직일 수가 없는 상태였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것이 천만다행이었던 상황이었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내 차는 붕 떴을 것이고 그 다음 떨어질 때에는 에어백도 별무소용이었음에 틀림없었다. 내 몸이 이처럼 무사할 수 있게 된 것도 내 차가 앞차에 끼여서 옴짝달싹 못하게 되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호랑이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아날 수가 있다.’ 나는 최대한 마음을 진정시키면서 사고 현장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먼저 수첩을 꺼내어 내 앞뒤 차의 번호부터 적었다. 뒤차, 그러니까 내 차를 받은 차는 경기33 4085 흰색 아반떼였고, 앞차는 봉고 90 나 1275번이었다. 그리고는 교원나라 자동차 보험회사 educa에 사고 신고를 하고 있었더니, 앞뒤 차의 운전사들도 나와서 나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기에 그들의 전화번호도 물어서 적어 놓았다. 그들의 얼굴에서는 차가 저 정도로 망가졌는데도 죽지는 않아서 다행이라고 여기는 눈치들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자 나는 맥이 탁 풀렸다. 그리고는 몸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그 자리에 픽!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
눈을 뜨니 병원이었다. 나중에 보니 사고 현장에서 가까운 곤지암의 연세정형외과였다. 거기서 X-Ray를 여러 장 찍었다. 그리고 안정하고 있는 동안 아내에게 전화를 해서 자동차 사고가 났으니 좀 와 달라고 했다. 아내는 말했다.
“스스로 처리할 일이지 왜 집에 있는 사람까지 부르는 거야?”
“글쎄, 좀 와 봐. 여기 병원이야.”
그때에야 아내는 허둥지둥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달려왔다. 아내가 왔을 때에는 나는 다시 멀쩡했다. 해서 사고의 뒷수습부터 하기 시작했다. 내 차는 근처에 있는 OK공업사에 들어가 있다고 해서 태재고개에 있는 르노삼성 정비공장으로 이동시켜 달라고 하고, 택시를 타고 집 근처 차병원으로 와서 다시 X-Ray를 여러 장 찍고 치료를 받은 후, 집에 가서 안정을 취하라고 하여 집으로 왔다. 가끔 가슴이 너무 아파서 처음 갔던 연세정형외과에 가서 X-Ray 검사도 다시하고 약도 타다가 먹곤 하였다. 병원에서는 무거운 것은 절대로 들지 말고 밤에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다든가 하면 큰 병원으로 속히 가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7/5에 마지막 진찰을 받았다. 그동안 에어백 충격 때문에 심장에 문제가 있을까 싶어 여태 관찰한 것이고, 뼈는 앞으로도 3개월이 지날 때까지는 조금씩 아프겠지만 별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사고 처리를 하는 과정에서는 상대방 보험회사에서 ‘내 차가 앞차를 받고 튕겨서 뒤차를 받았다는 둥’ 억지 주장을 하기도 하였으나, 앞차의 운전자가 증언을 해 주는 바람에 별 문제가 없었다. 그렇게 대부분의 일들은 마무리가 되었으나 차가 문제였다. 파손 정도가 심하여 수리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상대방 다이렉트 보험사에서는 차량보상비로 1,400만 원 정도만을 주겠다고 했다. 도리가 없었다.
새로 사는 차는 SM7로 정했다. 생애 마지막 차량 구입이 될 터이니 약간 무리를 해서라도 대형으로 사자는 아내의 강력한 제의였던 것이다. 취득세까지 합하여 3,200여만 원이 들었다. 내가 냈든, 내가 당했든 사고란 당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사고란 어쨌든 엄청난 손실이니까 말이다.
죽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삼고 스스로 위안을 받을 수밖에는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이제까지 나는 이렇게 네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앞으로 다시 죽을 고비가 찾아오면 이제는 반갑게 맞이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M 몽테뉴는 말했다.
“최상의 죽음이란 미리 예기치 않았던 죽음이다.”
셰익스피어는 “리처드 2세”에서 말했다.
“죽음을 제외하고서는 아무것도 우리 것이라고 부를 수 없다.” (14.12.28.15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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