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 문화 체험기 2. 500년을 참고 기다리는 존재라도 된 것일까.hwp
(서유럽 문화 체험기 2)
500년을 참고 기다리는 존재라도 된 것일까
이 웅 재
4/18 (토) 역시 쾌청(런던).
항공기 안에서의 시간은 흐르질 않는다. 창공을 훨훨 날아다니는 새들이 부러워 비행기를 만든 인간인데, 왜 비행기를 타고 드넓고 드높은 하늘을 날면서는 답답하고 지루한 것일까? 자동차의 경우 시속 100km만 달려도 무척 빠르게 달린다는 느낌인데 평균 그 8~9배쯤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는 왜 속도감이 느껴지지 아니하고, 시간마저 정지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일까?
속세로부터 멀리 떠나 있어서 그런 걸까? 속세로부터 멀리 떠나 있다? 그렇다면 신선(神仙)이라도 된 것일까? 신선세계라면 시간이 흐르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고 하지 않던가? 온전한 신선이 되려면 최소한도 500년은 지내야 한다고 하였는데…. 최치원(崔致遠)의 ‘가야보인법(伽倻步引法)’을 보면 완전한 신선 곧 ‘시해(尸解)’를 하려면 500년은 지내야 한다고 하였다. 시해(尸解)의 방법을 적은 글 가야보인법, 여기서 ‘보인’이란 “보사유인(步捨游引)”을 줄인 말로, ‘보(步)’는 ‘혼백(魂魄)이 걸어 나감’을, ‘사(捨)’는 ‘시신(屍身)을 버려 둠’을, ‘유(游)’는 ‘천지간을 자유자재로 오유(遨遊)함’을, ‘인(引)’은 ‘5백 년 후 지상의 시신을 끌어 올려다가 혼백과 합침’을 의미하는 말이다. ‘500년을 참고 기다리는 존재’에게는 그까짓 열 시간 남짓한 비행시간쯤이야 ‘순간(瞬間)’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 아니겠는가?
아리따운 여승무원에게 부탁한 Max 한 캔으로는 간에 기별도 안 가서 레드와인에다가(아내에게 부탁해서) 다시 Hite까지 마시면서 ‘시간을 죽이느라고’ 노력하고 또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흐르지를 않고 있었다. 오후 3시에 인천공항을 떠났는데, 그렇게 시간을 죽이고 또 죽여서 그랬던지 영국 런던의 히드로(Heathrow)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같은 날 오후 5시경, 그러니까 단순 계산상으로는 2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은 셈이었다.
히드로 공항은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공항답게 혼잡했다. 공항의 가용시설을 98%나 이용하고 있다는데, 그건 바람직한 일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업무가 기계처럼 정확하게 돌아가긴 하겠지만, 한마디로 여유가 없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그것은 아기자기하다든가 섬세하다든가 하는 따위는 아예 기대하지를 말아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우리의 인천공항이 자랑스럽기 그지없다. 저절로 우러나는 자긍심에 불현듯 어깨를 곧추 세우고 허리를 주욱 펴 본다.
‘런던’ 하면 ‘안개’부터 떠올라서 김승옥의 ‘무진기행(霧津紀行)’의 분위기를 느껴보려고 했더니, 정미영 가이드의 말, “여러분께서는 정말로 운이 좋으십니다.” 오늘뿐만 아니라 내일도 쾌청(快晴)이라는 말이었다. 전용버스로 호텔까지 이동하면서 느낀 점은 ‘Heathrow’(넓은 들판)였다. 이어지는 가이드의 말, “서유럽 여행이 힘 드는 것은 무엇보다도 시차 적응에 시간이 걸린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12시쯤 되어도 잠은 오지 않을 터이니, 술이라도 한 잔 마시고 자야지만 내일 일정에 지장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얼쑤!’였다.
오늘은 푹 쉬면서 시차 적응을 해야 된다고 하여서 호텔에서 쉬면서 나름대로 이번 여행에 대한 생각 몇 가지를 해 보기로 하였다. 먼저 이번 여행은 특히 숫자 ‘4’와의 인연이 깊었다. 44세의 가이드가 제멋대로 4명씩을 한 조로 편성을 하여 발표하는데, 나는 4조에 해당되었다. 나에게는 이 ‘4’자가 잘 따르는 편이다. 그러나 그 ‘4’(four)자는 늘 내게는 나를 위해주는(for) 숫자였다. 그러니 내게는 이번 여행이 바로 ‘for for and for for’의 의미로 다가온다. 해석이 멍석인가? 하지만 생각이 현실을 바꾼다고 하지 않던가?
보통 서유럽 여행은 힘들다고들 한다. 그것은 아마도 시차 적응 문제가 타 지역에 비해서 극복하기 힘든 측면이 있는데다가 볼 것이 많아서 여행일정 자체가 빡빡하기 때문이라 생각되는데 가이드의 말대로 ‘일잔 하고’ 푸욱 자고 나면 별 문제가 없지 않을까?
여행이란 새로운 문명과 문화에의 적응이다. 빨리 적응할수록 즐거운 여행, 유익한 여행이 될 수가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괜찮지만 영국과 이탈리아에서는 핸드폰 충전을 위시한 전기제품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240V 전압을 사용할 수 있도록 3구의 콘센트 플러그의 멀티어댑터를 사용하여야 했다. 미국의 경우에는 110V를 사용해야 되지만 우리나 마찬가지로 2구의 어댑터(속칭 돼지코)만 있으면 되기에 별 문제가 없었지만…. 이런 사소한 일에서부터 이질적인 관습을 빨리 익히도록 노력해야겠다.
우리 일행은 총 37명이었는데 가이드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은 두세 명에 불과했다. 모두가 중년을 넘어선 노년에 접어든 사람들이었다. 바람직하기로는 젊은이들이 해외여행을 많이 하여야 외국의 좋은 점을 하나라도 제대로 배워서 이식시킬 수가 있을 것인데, 그렇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다. 하기야 젊은이들은 이런 패키지여행을 좋아하지 않고 개별적인 여행을 좋아하는 측면이 강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젊은이보다는 늙은이들의 해외여행이 훨씬 많은 편인 점은 재고해 보아야 할 문제라 하겠다. 더더군다나 비행기 안에서는 시간도 아주 느리게 흐르고 있으니, 계속 그러다 보면 세상은 늙은이들로 초만원이 되고 말 것이니 말이다. 이건 아무래도 ‘얼쑤!’가 아니었다. (15.8.9. 15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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