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 문화 체험기

(서유럽 문화 체험기 29)피에타, 죽은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

거북이3 2016. 3. 22.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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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유럽 문화 체험기 29)
              피에타, 죽은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
                                                                                                                                           이   웅   재


  다음 벨베데레(Belvedere) 정원으로 나갔다. 이곳엔 대리석 조각상들이 대거 전시되어 있었다. 먼저 아폴론상을 보았다. 네로 황제의 별장에서 발견된 것이라고 한다. 석고상이 아니었다. 대리석으로 조각한 상이었다. 그런데 어쩌면 저처럼 섬세할 수가 있을까? 팔에 걸친 의상의 주름 하며, 전신상의 비율이 아주 조화로웠다. 거기에 남성으로서의 심벌도 아름다웠다. 전혀 외설스럽지가 않다. 여성이라면 몰라도 남성의 나신이 이처럼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 이 상의 앞에서는 남성들이여, 절대로 사진을 찍지 말 것이니라. 아쉬운 점 중의 하나는 오른쪽 손가락이 잘려나간 것이었다.
  라오콘(Laocoön) 군상(群像)은 아폴론상과는 어떤 면에서 대조적이었다. 더할 수 없이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라오콘은, 트로이 전쟁 때 그리스 군(軍)의 목마를 트로이성 안에 끌어들이는 것을 반대해서 신의 노여움을 사게 되어, 두 마리의 큰 뱀에게 두 아들과 함께 살해당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름다움은 누구나 추구하는 바라서 오히려 쉽게 구현할 수 있을 터이지만, 저토록 괴로워하는 모습을 실감나게 표현하기란 지난한 일이 아닐까 싶었다.
  잠시 휴식을 취할 겸 ‘피냐(Pigna)정원’이라 부르기도 하는 솔방울정원으로 나갔다. 약 4m 높이의 거대한 솔방울 모양을, 그 아래 양쪽에 있는 청동으로 만든 공작새가 지키고 있었다. 가운데에는 많은 인물상이 새겨져 있는 분수대이지만 아직 분수를 뿜고 있지는 안았다. 솔방울은 늘 푸른 빛깔을 띠고 있어서 고대 로마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단다. 다시 그 아래로는 분수에 물을 뿜고 있는 인물상이 있었는데 얼핏 보면 ‘진실의 입’을 가진 인물상과 비슷하게 보였다. 그리고 그 양쪽에는 앉아 있는 사자상 2마리가 한가로워 보였다.
  다시 그 앞쪽, 잔디밭 사이로 난 보도 가운데에는 구리 재질로 된 오염된 모습의 커다란 지구본이 보인다. 이 지구본은 고정되어 있는 것으로 보였지만, 가이드가 손으로 돌리니 빙글빙글 돌아가기도 했다. 가이드가 아닌 일반인들이 돌리는 것은 금한단다. 고대의 조각이나 그림들이 소중한 것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지구도 소중한 것이라는 점을 일깨워주면서 모두가 더 이상 지구를 병들게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지도록 만들어주는 좋은 조형물이라고 여겨졌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성베드로대성당으로 갔다. 대성당 바로 밑 지하 동굴에는 15세기까지 성 베드로를 시작으로 대다수의 역대 교황과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등을 포함한 백 개가 넘는 무덤들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성당에는 수많은 조각품들이 있는데, 무엇보다도 미켈란젤로가 25세 때 당시 교황청 주재 프랑스 대사였던 추기경의 주문으로 제작한 작품 이라는 ‘피에타(Pieta)’를 보려고 많은 사람들이 북적대고 있었다. 피에타란 ‘비탄’의 뜻이라고 한다. 성모 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안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조각상이다. 내가 보기에는 비탄이라는 제목과는 달리 모든 것을 체념한 듯 거의 무념무상의 지경에 빠진 듯한 표정으로 여겨졌다. 지극한 슬픔은 모든 표정을 표백시켜 버리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이렇게 사람이 바글바글한 곳에서는 특별히 주의를 해야 한다. 자칫 소매치기라도 당하는 날엔 성모 마리아의 ‘비탄’ 못지않은 절망에 빠질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이 작품은 자신의 작품에 서명하지 않는 것으로 널리 알려진 미켈란젤로가 유일하게 서명을 남긴 작품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방탄 유리관 안에 전시되어 있었다. 언젠가 어떤 청년이 쇠망치를 가지고 이 작품을 12번이나 내리쳐서 크게 손상되는 수난을 겪은 이후, 이처럼 유리관 안에 모셔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중 거의 완벽하게 복원시키느라고 많은 애를 먹었단다. 어느 곳에서나 가끔 비상식적인 사람들이 있기 마련인 모양이었다.
  이제는 바티칸 시국과도 이별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성베드로광장으로 나오면서 보니 성당 내부로 통하는 문은 5개였다. 그 중 오른쪽 끝에 있는 문을 ‘Holy Door(聖門)’라고 부른단다. 이 문은 원래 100년마다 한 번씩 열다가 50년으로 기간 단축을 했고 또다시 매 25년마다 성년(聖年=禧年)으로 삼아 기념하여 개방된다고 하는데, 성년의 첫날 오직 교황만이 은망치로 벽돌로 된 벽을 두드려 문을 열어 순례자들이 출입할 수 있게 한다고 했다. 희년은 원래 유대인들이 7년마다 안식년을 지내던 풍습인데 작년에는 정기 희년이 아니라 프란치스코(Francesco) 교황이 선포한 ‘자비의 특별 희년’이었단다. 그런데 성문(聖門)을 통과해 구원을 받으려면 통행료를 내라는 사기꾼들이 생겨나자 프란치스코 교황은 직접 “예수는 통행료를 받지 않습니다. 구원은 무료입니다.”라며 주의를 환기시키기도 했단다.
  광장으로 나오면서 본 교황청 출입문을 지키는 스위스 근위병들도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근위병은 130여 명이 있다고 하며, 그들은 빨강, 파랑, 노랑이든가 주황이든가 3색으로 된 특이한 근무복을 입고 있어서 사람들의 눈에 확 띄었는데 ‘미켈란젤로가 디자인했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가이드는 우리나라 ‘김봉남 씨가 만든 옷’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는데, 글쎄, 나는 심정적으로 두 가지가 다 믿어지지 않았다.
  광장 중앙에는 이집트에서 약탈해온 오벨리스크가 우뚝 서 있었고, 원주가 주욱 늘어서 있는 반원형으로 된 주랑(柱廊)의 지붕 끝에는 역대 교황과 성인들의 조각상 140개가 늘어서서 우리들을 배웅하고 있었다. (16.3.21. 15매, 사진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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