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 문화 체험기 35. 천국의 문과 지옥의 문은 결국 같은 문이 아닐까.hwp
(서유럽 문화 체험기 35)
천국의 문과 지옥의 문은 결국 같은 문이 아닐까
이 웅 재
다시 골목길을 요리조리 걸어서 단테의 생가에 이르렀다. 지옥과 연옥(煉獄)엘 가고 싶지 않으면 단테의 “신곡(神曲)”을 볼 일이다. 그리고 천국이 궁금하면 베아트리체(Beatrice)와 같은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 천국을 경험해 보는 일도 나쁘지는 않을 터. 그러나 ‘칠칠한 나이’가 코앞으로 다가왔으니 생각만으로도 지나친 호사(豪奢)가 아닐까 싶다.
‘단테의 생가’라고는 했지만, 한동안 단테가 살았을 것으로 여겨지는 곳에 지어놓은 박물관일 뿐이다. 그러니 ‘절대 가지 말라’고 권하는 카페도 있다. 단테는 피렌체에서 태어나 활동했지만, 30대 후반에 들어서는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쫓겨나서 죽을 때까지 고향으로 돌아가지를 못했다. 그가 지은 “신곡”도 유랑지에서 쓴 것이다. 피렌체 출신이었던 단테는 “신곡”을 피렌체 방언으로 썼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피렌체 방언을 배우기 시작했기에, 피렌체 방언은 이탈리아의 표준어가 되기도 했다. 그는 죽기 직전까지도 피렌체로 돌아가고 싶어했으나, 돌아가지 못하고 말라리아로 사망했다. 그래서 그는 라벤나(Ravenna)의 산 프란체스코(San Francesco) 성당 근처에 묻혔다.
살아생전 단테를 반역자로 몰아 추방했던 피렌체는 1세기쯤 지난 후에야 그의 진가를 깨닫고 라벤나에 단테의 유골을 반환해 달라고 계속 요구하였으나 번번이 거절당하자, 일방적으로 산타크로체 성당에 그의 가묘(假墓)를 조성해 놓았다. 그러니까 피렌체에 있는 단테의 생가나 그의 묘는 모두가 가짜라는 말이다.
단테의 생가라는 곳의 외벽에는 천으로 단테의 사진을 걸어놓은 것이 있고, 그 아래쪽으로는 단테의 흉상도 있어 그것을 배경으로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거북이는 워낙 솜씨가 메주라서 사진을 제대로 찍지를 못하여 흉상이 보이지 않아 씁쓸하다. 산타크로체 성당 앞 왼쪽에는 단테의 동상도 있었다. 동상은 옆쪽으로 독수리를 거느리고 있고 기단 사면의 모퉁이에는 각각 사자가 지키고 있었다. 역시 단테가 나에게 사진 찍히기를 극구 거부했던 모양이라서 찾을 수가 없었다.
산타크로체(Santa Croce) 성당은 단테의 생가라는 곳에서 좀더 걸어가면 나온다. 산타크로체란 ‘거룩한 십자가’라는 뜻이라고 했다. 지하에는 수백 년에 걸쳐 피렌체 주교들을 매장한 무덤들이 있다. 게다가 “피에타”를 조각했던 미켈란젤로의 무덤 등 276기의 유명인들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곳이다.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의 묘도 여기에 있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의 가묘도 있다. 이렇게 이름난 사람들의 묘를 한 곳에 모아놓은 것은 바람직한 일일까 아니면 무모한 일일까? 순례자나 관광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한 곳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볼 수가 있으니 반가운 일일 수 있겠지만, 한밤중이면 그 여러 사람들의 영혼이 함께 몰려나와 저마다 자기만이 그 분야에서는 최고라고 서로 다투기라도 한다면 얼마나 끔찍스러운 일이 될까 매우 걱정이 된다.
산타크로체 성당 부속건물 중에는 가죽의 도시 피렌체답게 온갖 가죽 제품을 만드는 가죽학교도 있다. 유럽에서도 이탈리아의 가죽이 가장 유명한 까닭도 바로 이러한 가죽 제품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의 덕분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유명할 뿐만 아니라 그만큼 많이 생산이 되기에 가격 면에서도 여기 피렌체가 대체로 저렴한 편이라고 한다. 어쩌다 가죽을 파는 상점에라도 들르면, 남자들이야 시큰둥하지만 여자 분들은 그렇게 신명이 날 수가 없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지만, 한국의 여성들이 죽고 나면 가죽 가방이 남는다는 것은 이제 진리가 되어버린 듯하다.
골목길은 우리를 꽃의 성모마리아 성당이라는 두오모 성당으로 끌고 갔다. 세례를 받아야지만 들어갈 수 있다는 이 성당은 3층으로 되어 있다. 3위1체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란다. ‘냉정과 열정 사이’라는 일본 영화의 배경으로 널리 알려진 성당이지만, 가는 곳마다 있는 두오모 성당이라서 관심은 반감되었다. 오히려 두오모 성당의 맞은편에 있는 산 조반니(San Giovanni) 세례당이 더 관심을 끌었다. 우리에게는 세례 요한으로 널리 알려진 피렌체의 수호성인 조반니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곳으로, 단테가 세례를 받은 곳이기도 하단다.
이 세례당이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두오모 성당과 마주한 동쪽의 문 때문이다. 이 문은 기베르트(Ghiberti)가 당대의 유명 예술가들과 협업으로,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로부터 솔로몬의 이야기까지 구약성서의 내용을 담아 청동으로 제작하여 금도금을 입힌 문으로, 미켈란젤로가 보고서 감명을 받아 ‘천국의 문’이라고 했다 해서 유명해졌다. 나중에 로댕이 와서 보고는 너무나 감동이 되어 화가 나서 ‘지옥의 문’이라고 폄하했다고 한다. 그렇다. 미켈란젤로의 천국의 문과 로댕의 지옥의 문은 같은 문이다. 다르다면 그것을 대하는 사람의 마음이 달랐을 뿐이다. 아니, 아니다. 천국의 문이 지옥의 문일 수도 있고, 지옥의 문이 천국의 문일 수도 있는 것이다. 천국과 지옥이라는 것은 결국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허상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싶다.
다음으로는 천국과 지옥을 연결시켜주고 있는 베키오 다리까지 갔다.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이면서 아르노 강의 강폭이 가장 좁은 곳에 만들어진 다리이기도 하단다. 하지만 그런 것은 천국과 지옥의 구분이 별로 중요하지가 않은 것처럼 중요한 사항이 아니다. 베키오 다리가 유명한 까닭은 다리 위에 있는 보석 상점들 때문이니까. 그래서 베키오 다리는 여자 분들에게는 천국이었고, 사내들에게는 지옥이었다.
(16.3.7. 15매, 사진 2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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