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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 문화 체험기 8)
Human Fish는 눈이 없다
이 웅 재
동굴은 깊었다. 깊은 건 빨아들이는 힘이 강하다. 그래서 자꾸 끌려가게 마련이다. 함몰(陷沒), 함몰이 되는 거다. 그렇게 되고 나면 참으로 난감하다. 그 깊은 수렁에서 헤어 나오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여기저기에 있는 종유석과 석순에게 계속 끌려 다니고 있었다.
동굴은 어두웠다.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더욱 눈을 크게 뜨고 정신을 집중시켜야 한다. 그래도 잘 안 될 때에는, 할 수 없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는 거다. 그렇게 하면 노력 절감의 효과까지도 덤으로 얻을 수가 있다.
동굴은 축축했다. 축축함은 모든 사물을 ‘늘어지게’ 만든다. ‘늘어짐’은 ‘느려짐’을 동반한다. ‘깊고’도 ‘어두우니’ 더욱 느려진다. 그러다 보니 이것은 어떻고 저것은 어떻다고 일일이 나름대로 생각해 보기보다는 ‘어두움’에서 오는 현상과 마찬가지로 그저 다른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을 따라다니는 것이 편하다.
그래서 나는 대중을 따르기로 했다. 종유석과 석순들은 정말로 다양했다. 국내에서도 단양의 고수동굴(古藪洞窟), 울진의 성유굴(聖留窟), 태백의 용연굴(龍淵窟)이나 제주의 만장굴(萬丈窟), 협재굴(狹才窟) 등은 이 포스토이나 동굴에 비하면 속된 말로 ‘쨉(잽)도 안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다는 삼척의 환선굴(幻仙窟)도 그 길이가 6.2km, 아직 발굴되지 못한 것까지 합쳐도 한 10km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하지만, 이곳에 비하면 절반도 채 못 되는 형편이니 말이다.
넓은 천장(天障)에 국수 가닥처럼 보이는 종유석들이 매달려 있어 스파게티처럼 보인다는 스파게티 홀도 볼 만했고, 1차대전 때 러시아 죄수들이 만들었다고 하는 러시안 다리도 관심을 끌었다. 출렁다리였다면 더욱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말이다. 완벽한 순백색의 석순은 ‘Diamond’라는 이름으로 불린다고 한다. 이 석순이 동굴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의 석순이라는데, 내가 보기에는 꼭 아이스크림과 같은 모양으로 보였다. 다이아몬드야 세계에서 제일 큰 놈이 우리나라에 있지 아니한가? 북한에 있다는 것이 좀 마음에 걸리지만…. 그런 다이아몬드가 어디에 있느냐고? 그건 바로 ‘금강산(金剛山)’, 우리는 다이아몬드를 ‘금강석(金剛石)’이라고 하지 않는가?
지하 궁전처럼 느껴지는 콘서트홀(Concert Hall)도 인상적이었다. 이 거대한 콘서트홀엔 10,0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그 넓은 공간을 휘휘 둘러보는데, 영어 가이드가 광장의 한쪽으로 서더니 관광객들을 자기 주위로 도열시킨다. 그리고는 느닷없이 한 곡을 뽑았다. 콘서트홀의 진가를 보여주기 위한 이벤트인 모양이었다. 거기 화답하여 나도 한 곡 뽑고 싶었지만, 참았다. 이곳 천장은 외부의 표면까지 그 두께가 비교적 얇은 편이라서 연주를 계속하면 균열이 생길 위험이 있어서, 앞으로는 이곳에서 음악회를 개최할 계획은 없다고 하는 실정이니, 나도 거기에 동참하여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는 나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속으로 중얼거릴 것이다.
‘피이, 음치라서 못 부른다는 소리는 쏙 빼 먹는구먼.’
이것저것을 보고 있는 중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이 있기에 부랴부랴 서둘러서 가보니 거기에는 조그마한 수족관 속에 ‘Human Fish’가 전시되어 있었다. 학명으로는 “proteus anguinus”라 한다는데, 이곳 동굴 속의 영원한 어둠에 적응을 한 생명체다. 이놈은 눈이 퇴화되어 버려서 없다. 이 휴면 피쉬는 길이가 약 30cm로 동굴 속에서 사는 양서류 중에서는 가장 큰 종류라고 한다. 어둠 속이라서 특별한 보호색도 없어 백인종과 비슷한 색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다리도 4개고 인간의 수명과 비슷하게 약 80~100년 정도 살 수 있다고 하여 속칭 Human Fish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그 본래 이름은 ‘올름(Olm)’으로 도룡뇽을 닮았다. 평생 동굴 안의 물속에서만 산다고 한다. 그런데 동굴 지하에 있는 피비카(Pivika) 강의 물이 넘칠 때면 더러 물에 쓸려 동굴 밖의 피비카 강으로 나올 적이 있단다. 사람들은 이것을 처음에는 공룡의 새끼라고 믿었다. 눈마저도 없어서 ‘눈 신 꼴’ 안 보고도 잘 살아왔던 ‘올름’은 그만 사람들의 입초시에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사람을 닮아 돈도 좋아하는 존재로 바뀌었다. 슬로베니아의 동전에서 이 ‘올름’의 모양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얘기다. 이제는 범위를 더욱 넓혀서 포스토이나 동굴의 마스코트가 되어 우편엽서에서도 찾아볼 수 있고, 기념품 상점의 가판대에서는 인형으로 변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여기저기 놓여 있는 휴지통, 그리고 상점 간판의 모델로서도 활동하고 있는 놈이다. 나도 분명 놈의 사진을 찍었는데, 재주도 좋지, 시력도 없다면서 어떻게 내 핸드폰의 사진들 틈에서 몰래 도망쳐 나갔는지 모르겠다. 조규옥 시니어조선 명예기자의 글에서 사진을 인용하게 된 소이(所以)다.
동굴을 구경하면서 나는 한 가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동굴을 정비하느라 그런 것이라고 마음을 눙쳐 보기도 하지만, 가끔 가다가 보면 종유석이 인위적으로 잘라져 나간 것들이 발견되었던 것이다. 비전문가인 내가 보기에는 그건 아무래도 양심이 잘라져 나간 모습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게 깊고, 어둡고, 축축한 동굴 ‘탐방’을 마쳤다. 동굴 관광에 할애된 시간은 약 1시간 30분이었다. (16.8.29.15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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