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 문화 체험기 7. 포스토이나 동굴(Postojna Jama)에서 ‘야마 돌’ 필요는 없다.hwp
(발칸 문화 체험기 7)
포스토이나 동굴(Postojna Jama)에서 ‘야마 돌’ 필요는 없다
이 웅 재
블레드 섬과 성(城)을 실컷 구경한 우리는 이제 1시간 반쯤 버스를 타고 이동하여 포스토이나 동굴(Postojna Jama)을 ‘탐험’하러 간다. 그냥 구경만 하면 싱거우니까 처음 동굴을 발견했던 사람들의 마음을 가지고 가 보자는 것이다. 달리는 버스에서 차창을 통하여 내다보는 고속도로 주변의 산이나 나무, 집들이 그림과 같이 아름다워서 내 마음까지 저절로 순화되는 듯싶어진다.
슬로베니아에는 석회암이 국토의 40% 정도나 되어서 동굴이 많다. 약 5,000개의 지하 석회동굴이 존재한다. 포스토이나 동굴은 그중 가장 길어서 20km 정도가 된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종유 동굴이다. 일반에 공개돼 있는 부분은 5.2km 정도의 구간이다.
버스에서 내리니 제일 먼저 반겨주는 것이 전화 부스였다. 나는 가는 곳마다 전화 부스나 우체통, 쓰레기통들을 보면 왠지 관심이 간다. 별 것 아닌 것 같으면서도 사람들의 삶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는 비교적 소형의 조형물들이기 때문이다. 웅장한 교회나 성당, 그리고 고색찬란한 성채들 못지않게 그곳에서 살고 있는 주민들의 생활을 담고 있는 물건들, 그런 물건들은 그곳 사람들의 인간미를 드러내주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이다.
매표소 앞마당 한 쪽에는 각국의 국기들이 일렬로 게양되어 있었다. 우리나라 태극기도 그 중간쯤에서 힘차게 펄럭이고 있어 기분이 무척 좋았다. 외국에 나오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고 하는 말이 헛말은 아닌 듯싶었다. 입장권을 파는 건물에는 식당과 무료화장실이 있었다. 일반적인 경우에는 슬로베니아의 화장실 유로요, 크로아티아는 무료라고 하는 가이드의 말에 많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화장실을 이용한다.
동굴로 들어가는 곳에서는 입장객 한 사람씩의 사진을 찍는 사진사가 있었다. 들어갈 때 찍은 사진은 현상하여 전시해 두었다가 나올 때 필요한 사람들에게 찾아가도록 한다고 했다. 한장에 6유로라고 하던가? 누군가가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비싸네.’ 그래서인지 나올 때 보니 사진을 찾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러니 저 많은 사진들은 모두가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고 말 것이다.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1유로나 2유로 정도만 받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찾아갈 텐데…, 혼자서 안타까워 했다.
입구에서 조금 들어가면 동굴은 검게 그을린 듯한 모습으로 관광객들을 맞이해 주는데, 처음에는 횃불을 들고 들어갔기 때문이란다. 1872년 처음으로 관광이 시작될 때에도, 아직 전기가 가설되기 전이라서 촛불을 들고 들어갔단다. 그런데 사람마다 그 촛불의 길이가 달랐다. 어떤 사람은 긴 것, 또 어떤 사람은 짧은 것을 들고 들어갔다. 우리가 그런 차별을 받았다면, 일본말을 써서 께름칙하기는 하지만, 아마도 ‘야마’가 돌았을 것이다. 흔히 사용하고 있는 ‘야마 돈다’의 ‘야마’는 ‘やま(야마)’다. 그 뜻은 ‘산(山)’인데, 이상하게도 ‘머리가 돈다’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말이다. 아마도 그것은 ‘산’은 높은 것이기에 사람으로 치면 ‘머리’에 해당되는 것, 그래서 속된 말로 ‘꼭지가 돈다’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포스토이나 동굴을 가리키는 ‘Postojna Jama’의 ‘Jama’는 슬라브어로 ‘동굴’이라는 뜻이라고 하니, 예전에나 있었던 일을 가지고 지금 우리가 ‘야마 돌’ 필요는 없을 것 같다. 1884년엔 세계 최초로 동굴 속에 전기까지 가설하였다니 더더욱 그렇다.
우리는 한 칸에 2명씩 타도록 되어 있는 귀여운 꼬마 열차를 타고 5분 정도 내부로 이동하였다. 열차가 생기기 전 걸어서 관광을 할 때에는 빨라야 4시간 정도가 소요되었다고 한다. 시간 단축을 위해 도입된 열차는 그 의도에 적합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어서 예상밖으로 속도가 빨랐다. 멋진 장면이 보여서 사진이라도 찍으려 하면 벌써 휙 하고 지나쳐 버리곤 하였다. 머리에는 안전모를 받아 썼지만 가끔 가다가는 앞쪽의 거대한 종유석이 내 안전모를 박살내 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조마조마한 심정이 들 때도 많았다. 동굴 내부 온도는 연중 8~10도, 바람막이 점퍼가 톡톡히 제 구실을 하여 주었는데, 미리 준비하여 오지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두꺼운 옷을 대여해주기도 하고 있었으니, 여기 포스토이나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로 하여금 동굴 관광업의 수입으로 살아가고 있게 만들어주는 주도면밀함이 돋보였다.
꼬마열차에서 내린 다음에는 한 동안 걸어다니면서 종유석과 석순들을 구경하였다. 여기저기에서 현지 가이드들이 설명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각각 영어, 불어, 독일어, 스페인어의 4개 국어를 사용한다고 한다. 아쉽게도 한국인 가이드는 없었다. 아직까지 한국어 가이드가 없다니 좀 섭섭하였지만 어쩌랴?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청년 실업’이 문제라고 야단들인데, 슬로베니아어를 학습시켜 이곳의 가이드로 취업하게 해 준다면, 요즘 아이들 말로 ‘왔다’가 아닐까 싶었다. 우리가 따라간 가이드는 영어를 하는 사람이었지만, 기실 아무나 따라가도 된단다. 웬만큼 영어에 능숙해도 이런 곳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100% 알아듣기는 힘든 일, 그러니 가끔 가다가라도 한두 마디 알아들으면 다행이고, 중요한 것은 남들 웃을 때는 따라 웃고, 열심히 설명하는 가이드의 앞에 서 있을 때엔 이따금 고개라도 주억거려 주면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진은 찍어도 무방하지만 플래시는 터뜨리지 말라고 한다. 종유석의 빛깔이 변해 버려서 원래의 모양을 유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니 이런 것은 모두들 철저하게 지켜 주었으면 좋으련만, 그건 어디까지나 몇몇 사람들만의 생각에 불과한 일이었지 않았나 싶었다. (16.8.27. 15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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