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문화 체험기

[대만 문화 체험기 2] ‘천등(天燈)’을 날리고, ‘적교(吊橋)’에서 사진을 찍다

거북이3 2017. 6. 3. 10:48



대만 문화 체험기 2. ‘천등(天燈)’을 날리고, ‘조교(吊橋)’에서 사진을 찍다.hwp



[대만 문화 체험기 2]

           ‘천등(天燈)’을 날리고, ‘적교(吊橋)’에서 사진을 찍다

                                                                                                                                               이 웅 재


  대만 여행 제2일 5월 8일이다.

  Platinum Hotel에서 아침 식사 후, 7eleven에 가서 58°짜리 금문고량주(金門高粱酒)나 한 병 사려고 했다. 가격표에 ‘60’이라고 붙어 있기에 100원(NT$)을 내었다. 그런데 계산원이 150원이라고 한다. 진열대의 가격표에 ‘60’이라고 씌어 있었다니까 가서 보고서는 잘못된 것이라면서 ‘150’이라고 가격표를 다시 붙인다. 기분이 썩 좋지 못해서 사질 않았다. 술은 출국 시 신세계 인천공항 면세점용 사은카드 1만 원권 2개가 있어서 사 오려고 했었지만, 하필이면 술과 담배 구매에는 쓸 수 없다고 하여 ‘무수리’(無술+이)가 되었던 나는 이런 저런 이유로 대만에서의 3박 동안에는 그 좋아하는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못하고 두보(杜甫)의 7언율시 ‘등고(登高)’의 미련(尾聯)만 읊조리고 지낼 수밖에 없었다.


  艱難苦恨繁霜鬢(간난고한번상빈)/ 潦倒新停濁酒杯(요도신정탁주배)

  [艱難(간난)애 서리  귀믿터리 어즈러우믈 심히 슬허노니,/ 늙고 사오나오매 흐린 숤 盞(잔) 새려 머믈웻노라.-‘분류두공부시’에서]

  등고절(登高節; 重陽節, 음력 9월 9일)에 술잔을 멈추었던[停] 것을, 많은 사람들이 늙고 병들어서 ‘단주(斷酒)’를 했다고 해석들을 하고 있다. 술을 좋아하는 두보가, 만년에 수전증(手顫症)까지 앓았다고는 하지만, 등고절에 등고까지 했는데, 술 한 잔도 안 마셨다? 이해가 되지 않는 나는 잠시 상념에 잠겨 있던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해석하는 쪽이지만, 그래서 ‘斷’이 아닌 ‘停’ 자를 썼다고 생각하지만, 오늘만큼은 ‘단주’라는 해석을 따르면서 그 심정을 이해하려고 애를 써 보았다.

  7eleven의 술값에 대해서는 나중 귀국 직전에 들렀던 면세점 ‘Everrich’에서 0.75L짜리 금문고량주 2병을 1000원(NT$) 조금 못 주고 샀던 것으로 본다면, 병당 한화 2만 원 정도인 셈이니(1000NT$×40÷2=20,000원), 그 절반 정도의 술 한 병에 150NT$(원화 6000원 정도)이었으면, 비교적 싼 편이었다고 하겠으나, 당시에는 가격표를 고쳐 달아놓는 바람에 살 마음이 싹 가셔졌던 것이요, 덕분에(아니, ‘얼결에’라야 할까?) 나는 대만에서의 완전 ‘금주’의 기록을 세웠으니, 글쎄 잘한 일일까, 못한 일일까?

  오늘 첫 관광지는 소원을 담은 천등(天燈)을 날려보내는 스펀[十分: ‘매우, 아주’의 뜻, Shihfen]이었다. 냇가로 달리는 버스를 타고 가며 보니, 한글로 ‘지용엄마’라고 쓴 가게도 보였다. 타국에서 보는 ‘지용엄마’는, 실물도 아닌 간판으로만 만나 보는 경우이면서도, 누군지 모르지만 반가웠다. 그래서 외국에 나가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고 하는 말이 생기질 않았나 싶었다.

  스펀은 그저 시골 마을에 불과하다. 철도가 마을 중심을 가로지르며 지나가고, 그 철도를 중심으로 양쪽에 상가 건물들이 조금 늘어져 있는 곳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그 철도는 마을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이겠는데, 이곳은 정반대였다. 이 철도는 1시간에 한 대 지나가는 핑시선[平溪線] 이외에는 기차가 다니지 않는다. 마을 주민들은 그런 사정을 이용하여 이곳을 관광지로 변모시켰다. 다른 곳에 비해서는 비교적 고지대인 점을 감안하여 ‘천등 날리기’를 고안해낸 것이다. ‘꽃보다 할배/대만’ 마지막 편에서 신구와 이서진도 이곳에서 천등을 날렸다고 한다.

  단색 천등은 150원, 4색은 200원이라는데, 우리는 필수 여행 코스로 지정된 곳이다 보니까 단색이었고 그것도 단체였으니 아마도 150원보다도 낮은 가격을 지불하지 않았을까 싶었지만, 그런 것을 일일이 신경 쓰다가는 여행의 맛을 깨뜨리는 일, 그저 시키는 대로 따르기만 했다.

  우리는 4명이 천등 하나를 날렸다. 천등은 4면으로 되어 있어서 각각 1명이 1면에 붓글씨로 소원을 쓴 다음, 도우미가 하라는 대로 하면 되었다. 나는 ‘家族 健康, 芝‧佽潞 発展’이라고 쓰고, 딸 한아와 임서방 얘기는 못 썼기에 아내에게 앞으로 몇 년간 가서 지낼 ‘필리핀 생활 무사’를 쓰라고 하여 다른 2명과 함께 천등을 날렸다. 천등은 잘 날아갔다. 우리의 소원도 아마 잘 이루어질 것이었다. 모든 사람들의 그런 믿음 때문에 이곳 ‘스펀’은 오늘도 대만원이었다.

  천등을 날린 후, 철길을 따라 흔들다리인 ‘징안댜오챠오[靜安吊橋]’까지 갔다. 거기서도 사진 몇 장을 찍었다. ‘조교(吊橋)’란 현수교(懸垂橋)의 옛적 표기다. ‘조(吊)’는 ‘조(弔)’와 같다. 끈을 매단 작살이나 활을 어깨에 멘 사람의 그림이 갑골문의 ‘弔’라고 한다. 해서 튼튼한 케이블로 지탱되는 현수교를 조교라고 했으나, 현수교를 나타낼 때에는 그 모양의 유사성 때문인지 ‘弔’보다는 ‘吊’자를 썼고, 그 음도 ‘조교’보다는 ‘적교’라는 말을 많이 쓴단다. ‘吊’이나 ‘弔’의 의미가 ‘죽음’과 연관되는 터수라서 요즈음에는 ‘조교’나 ‘적교’라는 말은 거의 쓰지를 않는데, 여기에 와서 보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석탄을 운송하기 위해 지어진 다리였던 ‘정안현수교’는 사진을 찍기 위한 장소로 용도 변경이 되어 있었기에 우리도 한 장 ‘찰칵’ 아니할 수가 없었다. 출렁다리라서인지 재미 삼아 건너갔다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건너가 보았자 평범한 숲밖에는 별 볼 일이 없는 곳, 그러니 이 다리는 사실상 용도 폐기된 다리, 이름 그대로 ‘조교(吊橋)’가 되어 있었다. 이때에는 ‘적교’보다는 ‘조교’라는 명칭이 꼭 얼울리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명칭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날씨는 엄청 더웠다. 32℃라고 했다. 입구에는 가게 2개가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 가게들로 모여들었다. 그리곤 모두들 아이스크림이나 빙수들을 사 먹고 있었다. 오히려 천등을 하는 선로변의 가게들보다 이쪽의 장사가 훨씬 더 잘 되었다. (2017.6.3. 15매, 사진 14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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