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문화 체험기 8[끝]. 제주도와 맞바꿀 만하다는 취옥백채(翠玉白菜).hwp
[대만 문화 체험기 8(끝)]
제주도와 맞바꿀 만하다는 취옥백채(翠玉白菜)
이 웅 재
2017.5.10(수). 맑음. 대만 여행 제4일(마지막 날).
오늘은, 국립고궁박물원[國立故宮博物院]을 견학하는 날이다. 영국의 대영 박물관,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과 함께 세계 4대 박물관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고궁(故宮)’은 단지 옛날 궁전이라는 뜻의 ‘고궁(古宮)’이 아니고, ‘사라진 왕조의 궁전’, 곧 ‘명·청대 황제가 거처하던 궁궐’인 자금성(紫禁城)을 가리키는 말이다. 대만에 웬 ‘자금성’인가? 고궁박물원에 전시된 문물들이 원래는 자금성에 소속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국공 내전 시기에 고궁(자금성)에 있었던 유물 대부분이 파손되거나 유실될 우려가 있어서 장개석이 피난민을 이주시킨다는 명목으로 미군에게서 군함을 빌려 대만으로 옮겨 놓았던 것이다. 더군다나 청조의 마지막 황제인 부의(溥義)는 나이가 들면서 점차 이 고궁의 유물들을 팔아치우기 시작했고, 그렇게 되자 아랫사람들도 너도 나도 몰래 유물들을 빼돌려 처분하기에 이르자, 그와 같은 유물의 보존책을 강구하였던 것이니, 생각하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대만 사람들은 말한다. 자금성에 그냥 두었더라면 전란으로 모두 파손되었거나 아니면 일본으로 반출되고 말았을 것이라고. 아니면 나중 모택동이 몽땅 팔아 없앴을 것이라고. 그래서 처음에는 이 유물들을 대만으로 옮긴 장개석을 도둑놈이라 욕을 했지만, 나중에는 무사히 보관해 주어서 감사하고 있다고 한다.
전시유물 대부분이 1천여 년 전 송나라 초부터 수집되어진 것들이고, 또한 고대 중국 황실의 소장품 중 최고의 것들이라고 한다. 중국의 문명은 원‧명‧청보다는 한‧당‧송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래서 더욱 다행스러운 일이다. 중국 역사의 보물창고라 불리는 이곳은 총 69만 점의 보물을 3개월을 주기로 교체하고 있는데도 아직 겹치는 유물이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교체 전시되는 이곳의 모든 유물을 보려면 총 30년이 걸린다는 말도 있을 정도이다. 전시하지 않는 유물은 3000m가 넘는 고봉(高峰) 200개에 보관한다고 하니 유물의 방대함도 놀랍거니와 그의 보관을 위하여 얼마나 정성을 들이고 있는지에 다시 한번 놀랐다.
고궁박물원의 입장 시 배낭을 가지고 들어갈 수는 없다. 음식물도 휴대 불가다. 과거에는 사진 촬영도 할 수가 없었다. 사진만으로도 돈이 될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작년부터 사드 때문에 관광객이 푹 줄게 되자 핸드폰 촬영의 경우에는 플래시만 터뜨리지 않으면 용인하고 있단다.
‘꽃보다 할배’가 유럽을 다녀오더니 다음엔 대만엘 다녀왔다. 고궁박물원이 다큐멘터리가 아닌 예능 프로그램의 촬영을 허가한 것도 ‘꽃보다 할배’가 처음이라고 하였는데, 이곳의 보물들이 얼마나 대단했으면, 루브르 박물관에서는 출구만 찾고 그늘만을 좋아하던 백일섭 할배가 해설자만 졸졸 따라다녔던 것이랴?
이곳의 최고 인기 전시품은 단연 취옥백채(翠玉白菜)다. 다른 유물들은 3개월마다 교체된다고 했다. 그러나 이 취옥백채는 교체 전시되지 않는 유일한 품목이다. 흰색과 녹색을 지닌 천연 통옥을 조각한 작품이다. 옥은 경도(硬度)가 강해서 칼로 깎을 수가 없어 실로 갈아서 부자(父子) 3대에 걸쳐 완성했다는 치밀한 세공품이다. 흰색과 녹색이 도는 옥을 자연스럽게 배추의 아래와 윗부분으로 나누어 배치하고, 그 윗부분 이파리에는 여치와 메뚜기까지도 천연덕스럽게 함께 조각해 놓았는데, 청나라 광서제(光緖帝)의 왕비인 서비(瑞妃)가 혼수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과거 삼성의 이병철 회장이 이 작품을 보고 감탄하여 팔라고 말을 붙였다가 ‘제주도 정도와 맞바꾼다면 혹시 모르겠다’는 답을 들었다는 명품이다. 대만의 유한부인들이 선호하는 액세서리에 이 취옥백채의 모양을 본뜬 것이 많은 것도 이해할 만하다. 이와 같은 배추를 늘 먹고 사는 대한민국 국민은 모두 위대한 사람이라는 생각도 든다. 나중 면세점에 들렀을 때 ‘한백옥조각 관세음보살(漢白玉彫刻 觀世音菩薩)’의 가격표가 NT$(대만의 원)으로 690,000원이었으니, 대충 70만 NT$으로 잡고 여기에 40을 곱하여 보면 한화 2800만 원 정도가 되는 셈인데, 거기에는 바로 취옥백채의 모조품도 이 관세음보살보다도 훨씬 큰 것이 있었으니, 그 가격은 아무래도 1억 원 정도는 훌쩍 넘지 않을까 여겨졌었다.
꼭 보고 싶었던 보물 중에 육형석(肉形石)을 볼 수 없었던 것이 매우 아쉽다. 대만인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동파육(東坡肉)을 닮은 돌로 송나라 때 소동파(蘇東坡)가 즐겨먹던 돼지고기를 닮은 물건이다. 항주(杭州)로 좌천된 동파 소식(蘇軾)은 틈틈이 돼지고기를 쪄서 먹곤 했었는데, 요리를 하던 중 오랜 친구가 찾아와 바둑을 두다가 바둑에 열중한 나머지 타는 냄새가 나도록 고기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음식이 바로 동파육(東坡肉)이요, 그 모양과 똑같이 생긴 옥돌이 육형석인데 그것이 보이질 않는 것을 보니 아마도 이번 전시에서는 빠졌던 것이 아닌가 싶었다.
소동파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가는 서로 상반된다. ‘원생고려국 일견금강산(願生高麗國 一見金剛山)’이란 시구를 남겨 금강산의 진가를 드높여 주었다는 쪽과, 고려의 사신이 오는 것을 반대했던 사람이라는 평가가 그것이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에도 고려를 싫어해서는 아니었던 것이니 이참에 소동파를 미워하는 마음은 버렸으면 싶다. 송나라는 군사력이 약했고 고려와의 무역은 늘 적자였다. 더구나 고려의 사신들 대접을 위하여 막대한 국고를 들여야 했었다. 그래서 소동파는 고려의 사신이 자주 오는 것을 반대하였던 것이다. (17.6.20. 15매, 사진 19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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