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 문화 체험기

(발칸 문화 체험기 24-1)물소리를 들으면서 잠을 잤을 라스토케

거북이3 2017. 7. 11.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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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 문화 체험기 24-1)

           물소리를 들으면서 잠을 잤을 라스토케

                                                                                                    이 웅 재

  플리트비체를 떠나 크로아티아의 수도인 자그레브(Zagreb)로 가는 도중 우리는 라스토케(Rastoke)엘 들렀다. 플리트비체와 자그레브의 꼭 중간쯤에 있는 작은 마을이라서 네비게이션에서도 잘 안내되지 않는 곳이다. 여기는 원래 예정에도 없던 곳인데 우리의 가이드 문성진 씨가 특별히 서비스를 하는 덕분에 구경을 하게 되었다.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에서 흘러내려온 코라나(Korana) 강의 물줄기가 마을로 흘러들어 많은 작은 폭포와 호수를 만들고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을 ‘작은 플리트비체’라고 부른단다. 플리트비체에서 사진 촬영을 제대로 못하면서 세세한 경치를 놓치고 만 나에게는 이곳이야말로 이번 발칸 여행에서 가장 마음이 끌렸던 곳이었다. 한 마디로 말하여 이곳은 이태백(李太白)의 ‘산중문답(山中問答)’ 속에 나오는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이었다.

  이곳은 약 300년 전부터 폭포수를 이용해 물레방아를 설치하면서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라스토케는 속칭 ‘방앗간마을’이라고 불린다. 물레방아는 물 위에 설치하는 것인데 그 방아를 집 안으로 끌여들인 것이 이 마을의 특징이었다. 당연히 집 거실 밑이나 주방 밑으로 폭포수, 곧 물이 흐르고 있는 마을이다. 한 마디로 강물 위로 집이 들어서 있는 곳이다. 따라서 지형 자체는 움푹 꺼진 곳이다. 마을 위로 강을 건너지르는 다리가 놓여 있어서 그 특이한 지형을 전체적으로 알기 쉽게 만들어주고 있었는데, 깜빡 그 사진은 찍지를 못했다. 마을 전체의 아기자기한 모습에 매혹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 마을은 다리 아래쪽 계곡으로 가는 길을 따라서 둔치 쪽으로 내려가야 하는 곳이다.

  첨부하는 사진의 맨 앞에 라스토케의 입장권을 올려 놓았는데, 실은 “꽃보다 누나”를 촬영할 때까지만 해도 입장료를 받지 않던 곳이라고 한다. “꽃누나”의 김자옥 씨는 이곳의 동화처럼 아기자기한 모습에 마음을 홀딱 빼앗겨서 눈물까지 흘렸다고 하였다. 그녀의 외국 여행은 이곳이 마지막이었다니 지상에서의 가장 빼어난 경치를 즐겨보다가 간 그녀는 어찌보면 행운아였다고나 할까?

  입장권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입장권에 보이는 라스토케는 한마디로 ‘별로’였다. 아마도 라스토케의 특성을 드러내 보이고자 물이 잔뜩 불었을 때의 사진을 택하여 입장권에 이용한 모양이다. 그러나 라스토케는 그런 모양보다는 작은 폭포수가 되어 떨어져 흘러가는 잔잔한 물과, 그리고 그 물을 이용한 물레방아, 푸른 초원을 더욱 아기자기하게 만들어주는 예쁘장한 집들, 그런 것들을 오밀조밀한 모습으로 보여주었어야 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어떻게 이러한 풍경이 이루어졌을까?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볼 수가 없는 이러한 특이한 지형은 무슨 조화 속으로 생겨났을까? 둔치처럼 보이는 곳에 어찌 집을 짓고 살 수가 있었을까? 그 둔치가 그냥 보통의 흙처럼 무른 곳이었다면 그 위에 집을 짓고 산다는 것은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이처럼 특이한 풍경을 보여줄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바로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처럼 오랜 시간에 걸쳐 바닥이 석회화되어 단단하게 굳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동굴 속 석회암으로 된 종유석 따위처럼 말이다. 그래서 물 위에 집을 짓고 거실이나 부엌의 아래로 물이 흐르도록 설계한 집을 지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어떤 집들은 언덕을 이용하여 지어진 것들도 눈에 띄었다. 그래서 강물의 여기저기에만 폭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살고 있는 집 아래를 흐르면서 지나온 물도 언덕 아래쪽으로 떨어지면서 작은 폭포를 이룬다. 한밤중 잠을 자려고 자리에 누우면, 등어리 아래쪽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으리라. 그 기분이 어떠했을까? 어쩌면 그 소리는 자장가 소리보다도 더 정겹게 들렸을지도 모른다. 그런 집에서 한 밤쯤 자 보고도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처지가 야속했다.

  물 흐르는 소리에는 거의 예외없이 ‘ㄹ’음(音)이 사용된다. ‘ㄹ’은 그 음성학적 명칭이 유음(流音)이듯이 흐르는 소리, 굴러가는 소리에 적합한 음운이라고 할 수가 있다. 바닷물이든 강물, 냇물이든 물이 흘러가는 소리는 대부분이 이 ‘ㄹ’음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졸졸, 줄줄, 쫄쫄, 쭐쭐, 촐촐, 출출’을 비롯하여, ‘출렁출렁, 주르륵, 철철, 콸콸’ 등등 물이나 액체의 움직임에서는 이 ‘ㄹ’음이 빠지지 않는다. ‘ㄹ’은 그 글자의 생김새도 구불구불 리듬을 타고 흘러가는 모습이다. 그런 물소리를 들으면서 잠을 잔다면 그야말로 주르르륵 잠도 잘 오지를 않을까? 흐르는 물을 이용하여 송어를 기르는 집에서는 마을 입구의 광고판에서 볼 수 있었듯이 송어구이를 팔고 있어서 한 번 먹어보고도 싶었으나, 우리는 플리트비체에서 이미 배불리 점심을 먹은 터, 그저 마음속으로만 먹었다고 치고 그냥 지나칠 수밖에는 없었다.

  마을에는 그 옛날의 물레방아도 보존되어 있었고, 원두막 같은 목조 건물도 보였다. 한 곳에는 옛날 이곳의 일상생활 용품들을 전시해 놓은 일종의 박물관도 있어서 이것저것 구경을 하며 사진도 찍었다. 스팔라토로 보이는 노란 꽃들도 보였고, 얼핏 포도송이가 달린 것처럼 보이는 나무도 있었는데, 아무리 보아도 포도덩굴은 아니었다. 그리고 어느 개인 방송사에서 나온 것인지 젊은 남녀 몇 명이 고양이를 요리조리 움직이게 유도하면서 열심히 사진을 찍는 모습도 귀여운 고양이 모습과 함께 이 마을의 평화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보기에 좋았다.

  마을을 대충 구경하고 더위에 땀도 식히고 다리도 쉴 겸 마을 초입에 있는 카페에들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일행 중 몇 안 되는 남자 중 한 분이 맥주를 사서 같이 마시자고 하여 라스토케에서의 마지막 추억은 술로 마감하였다. (17.7.11. 15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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