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문화 체험기

[필리핀 문화 체험기 3] 아파트는 거의 모두 북향이었다

거북이3 2018. 3. 14.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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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 문화 체험기 3]

           아파트는 거의 모두 북향이었다

                                                                                                                                       이 웅 재

  2월 7일(수) 맑음.

  8시가 넘어서 기상을 했는데 사위는 9시쯤 출근을 하였다. 원래는 8시 출근이라는데 오늘은 양해를 구했다고 했다.

  어긋났다. 이번 여행은 아무래도 어긋났다. 지난번 미국 여행 때와는 상황이 아주 다르다는 점을 간과했던 것이 문제였다. 그때는 사위가 한 달 정도 휴가를 내어서 차를 빌려 가지고 함께 미국과 캐나다를 두루 돌아다녔는데, 이번에는 휴가를 내지 못한 것이다. 그러니 천상 딸내미와 함께 여기저기 구경을 다녀야만 할 판국인데, 딸내미는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또 데려오고 해야 하기 때문에 돌아다닐 시간적 여유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우리 내외가 이곳의 여행사를 이용해서 다니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는데, 글쎄, 그건 아무래도 ‘무리’이지 싶었다. 우리나라 같지 않아서 이곳 여행사는 믿을 만하지 못하다고 하질 않던가? 가자는 곳으로 가지를 않고 엉뚱한 데로 끌고 가기도 하는가 하면, 툭 하면 팁이나 달란다고 하니 말이다. 하다못해 우리끼리 마닐라 시내라도 구경하였으면 좋겠는데, 그것도 쉽지가 않았다. 지리도 모르는 처지에 말도 제대로 통할 수 없는데다가, 또 여기저기 가난한 동네도 많아 때로는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사위가 출근하고 난 다음, 핸드폰의 나침반을 작동시켜 보았다. 그랬더니 아파트는 북동향이었다. 한국의 고급 아파트는 거의가 남향인데 여기는 다르다고 했다. 일년 내내 더운 날씨이다 보니 여기서는 남향이 ‘별로’로, 대부분 북향집을 선호한다고 했다. 한국 전통의 풍수가 맥을 출 수 없는 곳이었다.

  지금의 이 아파트는 15억 정도 나가는 집이란다. 그런 아파트를 월세 300만 원씩에 내놓은 집인데, 10개월분에다가 보증금 개념은 따로 없지만, 그 비슷하게 1개월분을 더 얹어서 3,300만 원에 세를 얻었단다. 10개월이 지나면 재계약을 해야 하는 실정이다.

  이곳에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나라처럼 다주택 보유자들이 아니라 주택임대업을 하고 있는 회사들이기에 개인들처럼 빨리 임대가 안 된다고 안달을 하거나 하는 일이 없는데다가, 임대를 하기 위한 아파트들을 여기저기 부동산업자들에게 마구 내놓지를 않고 주로 한 곳에만 내어놓기에, 부동산업자들이 중개업을 하기 위해서는 그 회사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수가 없다고 한다. 더구나 중개 수수료는 한 달치 월세, 그래서 1개월분을 더 받는 것이요, 월세를 깎아주면 그만큼 중개업자가 받을 수 있는 수수료도 적게 될 수밖에 없는 처지라서 임대료를 깎아주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

  이곳으로 오기 전, 그러니까 필리핀으로 파견 근무 초에는 근처에 있는 Ascott 호텔에서 2개월 정도를 지냈다고 한다. 그쪽은 마닐라에서도 가장 집값이 비싼 동네였는데, 돈 문제가 아니라 아이들의 학교 때문에 지금의 아파트로 옮겼단다. 그 호텔 옆쪽에 있는 샹그릴라(Shangri-La) 호텔이 마닐라에서는 가장 좋은 호텔로 알고 있는 호텔이라고 했는데, 우리는 나중 먼발치로만 구경을 하였다. 지금의 이 아파트를 선택한 이유는 차량을 사용할 수 없는 일이 생긴다든가 할 때, 걸어서라도 학교엘 다닐 수가 있는 곳이라서, 학생들이 있는 집들은 이곳의 아파트에 많이들 살고 있는 모양이었다. 거주민들은 대부분 외국인라고 했다.

  50여 평이 넘는 아파트는 쓸모없이 거실만 덩그렁했다. 방은 2개, 아니 부엌 옆의 자그마한 가정부의 방이 하나 더 있으니 3개, 화장실은 2개였다. 넓은 거실에는 바닥에까지 콘센트가 있었다. 인건비가 싸기 때문에 이곳에 사는 한국인을 비롯한 외국인들은 모두가 가정부를 두고 있었지만, 딸내미는 식구들 중에 다른 사람이 끼어드는 것이 싫다고 가정부는 두지를 않고 그 방은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보관하는 창고로 사용을 하였다.

  건축 기술의 부족 때문인지, 여기 사람들의 인지 능력에 문제가 있어서인지 화장실 바닥이나 샤워실 같은 곳의 배수시설은 짜증을 나게 했다. 한마디로 수평 조절이 제대로 안 되어 물이 잘 빠지지를 않았다. 해서 화장실에서는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물밀개’라는 것을 사용하였다. 고여 있는 물을 한쪽 끝에 일자로 된 고무 바킹 같은 것을 붙여놓은 막대기로 밀어서 하수구로 빠지게 만드는 기구였다. 나중에 해변가 호텔에 갔을 때도 샤워실 물은 잘 빠지지를 않았었다. 뿐만 아니라 방들도 사각형 형태를 제대로 지키지를 못해서 큰 틀에서 볼 때에는 별 문제가 없지만 자세히 보면 약간씩의 불일치를 보이는 형태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베란다쪽 창문 밖으로 내려다보이는 풍경은 마음에 쏙 들었다.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의 공간은 녹색으로 눈을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공원이었다. 온갖 열대성 큰키나무들 사이사이에는 예쁜 꽃들도 색색으로 피어 있었고, 자그마한 호수까지도 있어 더욱 정겨웠다. 오른쪽 끝으로는 야외 수영장도 보였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가끔 아이들 유모차를 밀고 다니는 여인들이나 정원을 관리하는 아저씨들의 일하는 모습이 보이는 한가한 풍경이었다. 여인들은 대부분 보모들이라고 했다. 청원 경찰, 가정부, 보모, 건물 및 공원 관리인, 운전기사…등등 이곳에는 주민들보다도 고용된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시선을 돌려 맞은편의 아파트들을 살펴보았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이 느껴졌다. 우리나라의 아파트들은 위아래가 일자로 되어 있는데, 이곳 아파트들은 달랐다. 맨 위층은 물론이요, 가끔은 중간 층의 경우에도 군데군데 밖으로 튀어나온 지붕 같은 것이 보였다. 오른쪽으로 높게 서 있는 고층빌딩은 그렇지 않았지만 아파트로 보이는 집들은 거의가 그랬다. 아마도 태풍이라든가 사나운 비가 들이치는 것을 방비하기 위한 구조물은 아닐까 싶었다.

(18.3.14.15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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