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문화 체험기

[필리핀 문화 체험기 10] ‘우리 만남은 우연일 뿐’인 점이 다행이라고나 할까

거북이3 2018. 3. 24.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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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 문화 체험기 10]

           ‘우리 만남은 우연일 뿐’인 점이 다행이라고나 할까

                                                                                                                                         이 웅 재

  슬슬 또 먹어야 할 시간이 왔다. 식욕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 중의 하나이다. 먹어야 살고, 살아야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것이다. 요즘은 ‘먹방’이 인기다. ‘먹방’의 원래의 뜻은 ‘먹물을 뿌린 듯이 캄캄한 방’으로 ‘교도소의 징벌방’을 일컫는 은어로도 사용되는 말이다. 그런데, 그것이 ‘먹는 방송’을 가리키는 신조어로 둔갑을 하였다. 왜 그게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그건 마음껏 먹고는 싶지만, 뚱보가 될까봐 먹지 못하는 사람, 특히 잘 빠진 몸매를 가지고 싶어하는 여인들이, 자신은 먹지 않지만 다른 사람이 마음껏 먹는 것을 봄으로써 대리만족을 얻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지금 나는 ‘대리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도 많이 먹고 싶다. 이런 경우에는 한정된 분량의 음식이 나오는 음식점은 비호감이다. 말하자면 ‘뷔페(buffet)’가 제격인데, ‘간절히 원하면 소원은 이루어진다’고 했다. 내가 그만큼 간절히 원하였던 모양으로, 눈앞에 뷔페식당 “Barbara’s”라는 간판이 떠억 버티고 있었다. 주인이 여자인가? 나중에 보니 주인은 여자였다. 식당은 2층이었다.

  식당으로 가는 길에는 ‘우물’이 하나 있었다. 매우 깊은 우물이었다. 오랜 옛적에 사용하던 것으로 주위에는 잡초와 이끼가 더부룩했다. 얼마나 깊은지 안쪽으로는 우물을 깨끗이 치울 때 사용하던 것으로 보이는 쇠로 만든 발판도 설치되어 있었다. 우물 속을 내려다보는 것만으로도 과거와 교감이 되는 듯하였다.

  2층 식당으로 올라가는 계단 근처에는 낡아빠진 옛날 미군이 타던 지프차(jeep車) 한 대도 골동(骨董)의 자격을 으스대면서 파초잎을 배경으로 고색창연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저걸 개조하여서 지프니를 만들었다고? 아무래도 그 개조라는 것은 승객을 많이 태울 수 있도록 좌석을 늘리는 일이 가장 핵심적인 개조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층으로 올라가니 거기에도 별로 넓지는 않지만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고, 그 가장자리에는 ‘부겐베리아’를 비롯한 꽃나무 몇 그루도 보였다.  

  부겐베리아는 부겐빌레아(Bougainvillea)라고 불러야 올바른 이름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산세베리아’에 유추되어서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겐베리아’로 부르고 있는 꽃나무이다. 나팔꽃처럼 덩굴을 뻗으며 자라는 분꽃과 식물인데, 화려한 분홍색 이파리를 흔히들 꽃으로 알고 있지만, 꽃은 따로 있다. 우리가 꽃이라고 말하는 부분은 포인세티아처럼 일종의 꽃받침 곧 포엽(苞葉)이다. 이 포엽이 다양한 빛깔을 띄어서 아름답게 보이지만, 얼핏 보면 종이로 만들어 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여 종이꽃(paper flower)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진짜 꽃은 포엽의 중심부에 하얀 색으로 핀다. 그리고 그 꽃은 수명도 짧고, 향기도 없다. 하지만 포엽은 한 달 이상 오래가서 관상가치가 높다. 꽃이 붙지 않은 잎줄기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달려 있다. 원산지는 브라질이고, 꽃말은 정열, 꽃의 이름은 처음 발견한 프랑스의 항해가 ‘부겐빌레(Bougainville)’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햇빛을 좋아하며, 추위에 약하고, 삽목 번식이 가능하다.

  얘기가 삼천포로 빠져 버렸다. 마닐라대성당에서 보니까 중국 관광객들이 상당히 많이 왔었기에, 그들이 이리로 점심 먹으러 오기 전에 들어가 먹자고, 서둘러 “Barbara’s”로 들어갔다. 조금 있으니 바로 우리가 따돌렸던 중국인들이 떼거지로 몰려와서 식당 안이 갑자기 시끄러워졌다.

  테이블은 꽉 찼다. 해서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놓은 바람에 조금은 추운 느낌이었다. 밖에서는 더웠었는데 말이다. 식당에는 밴드도 있어서 음악을 계속 들려주었으나 썩 잘하는 연주 같지는 않았다. 더구나 조금 더 있자니까 한국 아저씨 부대가 들어왔고, 그들이 팁을 주었는지 밴드가 그쪽으로 가더니,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로 시작되는 노사연의 ‘만남’ 등을 연주하는가 하면, 그걸 또 따라 부르느라고 돼지 목들을 따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떠들썩한 중국인들 걱정을 하였던 우리는 한국사람 때문에 더 시끄러워 못 지낼 지경이었다. 제발 체통들을 좀 지키시지…. ‘우리 만남은 우연일 뿐’인 점이 다행이라고나 할까? 우리 옆으로 한국인으로 보이는 모녀가 지나가기에, 서로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호주에 산다고 하였다. 외국에 나가면 느껴지는 한 가지, 어느 나라엘 가든지 북한 관광객들은 만나보기가 힘들었다. 북한도 경제 사정이 나아져서, 이런 곳에 나왔을 때 서로 만나 즐겁게 대화라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배를 채운 후, 기사에게 아까 우리가 내린 곳으로 차를 가지고 오라고 하여 그쪽 바닷가로 가서 기다리며 보니, 한 사람은 기다란 의자에 앉아 있고 또 한 사람은 그 옆에서 다리 하나를 의자에 얹은 채, 상체를 구부리고 망망대해를 바라보고 있는 동상이 눈에 들어왔다. 바다란 누구에게나 항상 동경의 대상으로 치부되는 모양으로, 그러한 심리를 잘 드러내준 작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돌아온 후, 3시에서 4시까지는 숨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지냈다. 바이올린 가정교사가 와서 아이들을 1시간 정도 레슨을 하고 돌아간 때문이다. 그 후 화장실을 사용하렸더니, 누군가가 잘못하여 안쪽에서 잠가 놓은 바람에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딸내미가 사위에게 전화를 하여 문제를 해결했다. 알고 보면 간단한 일이었는데 방법을 몰랐던 것이다. 밖에서 드라이버로 1자로 된 홈을 돌리면 되는 것이었다.

  만사가 다 그런 법이다. (18.3.24.15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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