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 건강검진
이 웅 재
오늘은 정기 검강검진일이다. 건강검진, 건강한지 아닌지를 미리미리 검진하여 위험 요소를 제거하기 위한 제도이니 참으로 고마운 제도라고 하겠다. 그런데 그게 무척은 신경이 쓰인다. ‘혹시라도 어디가 나쁘다는 결과가 나오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 때문이다. 젊었을 때는 ‘검진 결과’ 같은 데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이젠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하면 할수록 오히려 ‘신경이 많이 쓰이고’ 있었다. 한 마디로 늙었다는 말이다.
“6층 탈의실로 가세요.”
접수를 끝내자 아가씨가 상냥하게 말한다. 탈의실에서 HP이며 시계 따위도 모두 옷장에 넣어두고 탈의를 마친 나는 환자복 주머니에 옷장의 열쇠를 조심스레 집어넣고 혈압을 재러 갔다. 혈압측정기 앞에는 두세 사람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해서 나는 그 앞 의자에 앉아 그분들의 혈압을 다 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다른 사람들 손목에는 팔찌도 시계도 아닌 무언가를 차고 있지를 않은가? ‘무얼까?’ 궁금증은 금세 풀렸다. 그래, 그거였구나. 얼핏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목욕탕 탈의실의 사물함 열쇠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것을 발목이나 손목에 걸고 지내는데, 지금의 그 모습이 바로 그 열쇠를 차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제는 그런 것까지도 눈에 설게 보이는 것이다.
그럭저럭 아내의 차례가 왔다. 그런데 이럴 수가? 200이 넘는 수치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이번에는 내가 재어 보았다. 나도 140이 넘게 나왔다. 나는 고혈압 환자이기 때문에 늘 약을 먹고 지내기에 보통 120 내외가 나오곤 했었다. 이상해서 놀라는 모습을 본 옆에 있던 한 여인 왈, “여기는 높아요.” 만약의 오진에 대한 예방 차원에서일까? 난 절대로 ‘높은 사람’이 아닌데 말이다.
아내는 혈압 때문에 포기하고 나만 ‘위 내시경을 ’받기로 하고 데스크로 갔다.
간호사가 말했다.
“위 내시경을 하려면, 7000원 내셔야 하는데요.”
나, “예?”
간호사는 수납 담당이었다. 본인 부담액이 10%란다.
나, “난 돈 없어요.”
간호사, “예?”
이번에는 간호사가 “예?”라고 반문한다.
나, “난 돈 없다니까요.”
간호사, ‘멍~.’
나, “돈은 항상 마누라에게 있다니까요.”
간호사, “아, 예에.”
처음에 “예?”라고 짧게 묻던 간호사는 드디어 내 말을 알아들은 모양이다. 그 증거가 ‘아,’라는 말 하나가 덧붙고, ‘예에.’라는 발음이 길어진 일이다.
검사를 받으면서 보니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HP을 가지고 다녔다. 왜 그래도 된다는 소리는 안 하였는지? 나중에 아내가 위내시경을 할 수가 없어서 나와 떨어지게 되고 나보다 모든 검사가 먼저 끝나서 한참을 기다리다가 내게 전화를 걸었을 때, 마침 나도 탈의실에서 옷을 입고 나오는 때라서 쉽게 만났지만, 그러지 않았더라면 서로 떨어져서 귀가를 하거나 무작정 기다리기만 하여야 했을 뻔했다.
나는 난생 처음으로 비수면 위내시경 검사를 받았다. 아내 얘기가 70이 넘으면 수면 내시경을 잘 안 해 준단다. 아마도 나중에 깨어나지 못하는 일이 생길까봐 그러는 모양이다. 늙으면 모든 게 불편하다. 아니, 슬프다. 그러니 늙지 말아야 하는데, 왜 나는 늙었는지 모르겠다. 앞으로는 만나는 친구들마다에게 ‘절대로 늙지 말라.’고 말을 해 주어야 하겠다.
기초 체력 검사인가를 할 때에도 슬펐다. 시력, 청력, 키 등 다 줄어드는데, 왜 혈압, 체중, 허리둘레 등은 늘어나는가 말이다. 늘어나야 할 것은 줄어들고, 줄어들 것은 늘어나고 있으니, 이것도 분명 슬퍼할 목록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색상 검사는 하지도 않는다. 전에는 빠지지 않던 것이었다. 그게 무어 그리 대수로운 일이냐고? 그렇다. 내게는 그게 엄청 중요한 일이다. 고입 때다. 중학교까지는 어떻게 어떻게 졸업을 했지만, 고등학교는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궁리궁리 끝에 국비로 공부할 수 있는 학교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바로 교통고등학교였다. 나중 철도고등학교를 거쳐 요즘엔 ‘한국철도대학’인가로 바뀐 학교이다. 시험은 그런대로 괜찮게 치렀다고 생각했는데, 결과는 낙방이었다. 하도 허망한 결과라서 아주 힘들게 학교 당국에 입학시험의 결과를 알아보았다.
아니, 이럴 수가? 성적으로는 합격이 되고도 남았다. 그런데 왜? 바로 신체검사에서 ‘적록 색약’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신호등을 잘못 볼 수가 있어서 결격 사유라고 했다. 원서 접수시에는 그런 조건을 알지 못했던 것이 대실책이었다. 최근에는 색맹이나 색약, 그런 것은 운전면허 시험 때도 문제가 되지 않으니, 건강검진에서도 빠져 버리고 만 것이다.
마지막 의사와의 일대일 대면에서였다.
의사 왈, “술을 너무 많이 드셔서 앞으로 삼 년밖에 못 사실 거에요.”
문진표를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그래서 물었다.
“삼 년이라니요?”
의사 왈, ‘귀가 어두우시군요. 제대로 못 들으셨네요.’라고 하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
“앞으로 삼십 년밖에 못 사신다고요.”
“뭐라고요?”
삼십 년밖에 못 사신다니까요.”
나는 의사의 목소리보다 훨씬 큰 소릴 버럭 질렀다.
“아니, 지금 저한테 욕을 하시는 겁니까?”
“욕이라니요? 삼십 년을 더 사실 수 있다고 했는데…”
“그게, 그게 욕이 아니고 뭡니까?”
늙으면, 이렇게 욕을 먹고 살아야 하는 법인 모양이다. (18.10.6.15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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