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어떤 친구를 사귈까요

거북이3 2020. 7. 29.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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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친구를 사귈까요
이 웅 재

아무리 예쁜 꽃이라도 가지에 달려 피어 있을 때라야만 아름다운 법이다. 그런데 어쩌다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능소화(凌霄花)가 그런 꽃 중의 하나이다. 이 꽃은 꽃이 질 때에도 꽃 자체는 시들지 않고 꽃받침만 부러져 떨어지므로 떨어진 꽃도 싱싱한 모습 그대로이다. 마치 사람을 보고 방긋 웃는 듯 요염하기까지 하다. 사람들이 이 꽃을 ‘능소화(能笑花)’라고 부르기도 하는 까닭을 알 수 있을 듯하다. 그렇게 싱싱한 꽃이 통째로 떨어지다 보니 열매를 보기가 힘들어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어쩌다 열매를 맺을 때도 있다고 한다. 참고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꽃은 내가 알기로는 참나리(대신 珠芽가 달린다), 치자, 개나리, 제주상사화, 메꽃(그래서 鼓子花라고도 한다) 등이 있다.
꽃이 좋아 한 줄기 얻어다가 아파트 발코니에 심은 지 벌써 7~8년, 단독주택에 살고 있을 때라면 그 아름다운 꽃송이가 내 가슴을 여러 해째 울렁거리게도 했으련만, 아직도 꽃이 피려는 기색은 감감무소식이다. 아무래도 환경이 바뀌어서 그런가 보다. 그럼에도 나는 ‘내년에는 피겠지….’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한다. 화분에 심겨진 야자수는 금년에도 꽃을 피웠으니 말이다. 오래 걸리기는 하겠지만, 언젠가는 바뀌어 버린 환경에 적응하리라는 기대를 야자수를 통해서 다시 한 번 희망해 본다.

환경이란 사실 중요한 것이다. 동양사상의 대표적 주자인 공자와 노자에게서도 환경은 매우 중요한 몫을 하지 않았던가? 공자는 추운 북쪽 지방 출신이었기에 기후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어 매사에 규범을 중시하는 사상을 확립했을 것이다. 그러나 노자는 반대로 비교적 따뜻한 남쪽 출신이다. 어디를 가나 따먹을 수 있는 나무의 열매들이 있었고, 아무데서나 잠을 자도 추위 걱정을 별로 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었다. 그래서 노자는 자연을 그대로 놓아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여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사상을 널리 폈던 것이다. 환경은 이렇게 성인들의 사상 확립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러니 보통 사람들에게야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때에 따라 환경은 변할 수가 있다. 내가 기르고 있는 능소화처럼 말이다. 귤화위지(橘化爲枳)라는 고사성어를 생각해 보자. '강남의 귤(橘)을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지(枳)]가 된다'는 말이다. 좀더 알기 쉬운 말인‘남귤북지(南橘北枳)’로 바꾸어 보면, 보다 쉽게 이해가 된다. 환경이 변하면 그에 따라 질(質)도 변한다는 이치를 아주 잘 보여주는 고사성어이다. 사람도 환경이 변하면 그 변한 환경에 적응해 살아가게 마련이다.

친구를 사귈 때에도 우리는 이러한 환경론에 유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더부룩한 쑥도 삼밭에서 자라면 버팀목 없이도 곧게 자란다고 하지 않던가? ‘봉생마중불부이직(蓬生麻中不扶而直)’이라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좋지 못한 친구를 사귀면 그 친구처럼 좋지 못하게 된다고도 한다. 그 좋지 못한 것에 물이 들어 버린다는 것이다. ‘근주필적 근묵필치(近朱必赤 近墨必緇)’라는 말도 있다. 주사(朱砂)를 가까이 하면 반드시 붉게 되고, 먹을 가까이 하면 반드시 검게 된다는 말이다.

정말일까? 옛날 사람들이 말하던 것이 현대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까? 시대가 변하고 사회가 변했는데도 그 말들이 오늘날에도 변함없는 진리를 나타내는 말이 될 수 있을까? 살아가노라면 옛 사람들의 말이 때로는 시효가 지나서 쓸모없는 경우도 많이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봉생마중불부이직(蓬生麻中不扶而直)’은 아직도 유효한 말이었다.
나는 몇 년 전 발칸반도의 크로아티에 있는 최초의 국립공원이자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는 플리트비체(Plitevice)를 다녀온 적이 있다. 공원 입구에는 ‘UNESCO 세계문화유산’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우리를 반겨 주었다. 그러나 나는 그 근처 녹지에서 만난 샛노란 민들레꽃이 더 반가웠다. 그 민들레 군락의 모습은 약간 특이했다. 민들레는 로제트(rosette) 식물이다. 활짝 핀 장미를 닮았다고 해서 이름이 붙은 로제트 식물은 줄기가 짧고 잎이 땅 표면으로 넓게 퍼진다. 그러다 보니 키 큰 식물들이 만들어내는 그늘 때문에 그들과 함께 살아가기는 힘들어서, 흔히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나 논밭의 둑, 목초지 같은 곳에서 자란다. 그런데 이곳의 민들레는 달랐다. 이곳의 민들레들은 의외로 키가 컸던 것이다. 주위의 무성한 풀들과 경쟁하여 햇빛을 받으려니, 자신들의 키를 키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좋은 친구를 사귀자. 배울 만한 점이 있는 친구를 사귀자. 따뜻한 친구를 사귀자. 그래야 나도 좋은 사람, 따뜻한 사람이 될 수가 있다. 세 사람이 함께 하면 반드시 스승이 있게 된다고 했다.[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 누구에게서라도 우리는 배울 수가 있다. 그러나 가급적이면 나보다 조금 더 훌륭한 사람을 친구로 삼음이 좋겠다. 너무 차이가 나는 사람은 쫓아가려다가 때에 따라서는 가랑이가 찢어질 수도 있겠으니 말이다. 적당하게 배울 만한 사람, 포기하지 않고 본받을 만한 사람을 친구로 사귀도록 하자.

마지막으로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말을 덧붙인다.
“유익한 벗[益友]이 셋이요, 손해되는 벗[損友]이 셋이다.
올곧은 사람, 성실한 사람, 견문(見聞)이 많은 사람은 유익하고, 편벽된 사람(자기 중심적인 사람), 아첨을 잘하는 사람,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사람은 해로우니라(益者三友, 損者三友. 友直, 友諒, 友多聞, 益矣. 友便, 友善柔, 友便佞, 損矣).
(20.7.29. 15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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