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동상(銅像)
이 웅 재
‘첫 번째 휴가의 마지막 날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는 정(鄭英吉)병장의 명구(名句)를 실감 있게 느끼면서 귀대하던 날이었다. 귀대 시간은 이십 시까지였지만, 나는 오전 열한 시경, 부대가 있는 A시에 도착했다. 몇 시간 일찍 들어가서 그 동안 낯설어진 생활을 다소나마 익혀 놓자는 속셈에서였다. 그러나 계급과 명령과 의무만 돋보여지는 부대로 들어갈 생각을 하니, 까마득한 느낌이 들었다.
‘철모가 무거운 병사’란 남들이 듣기엔 차라리 낭만적인 말로 치부되리라. 하지만, 미군들에게나 알맞을 그 무쇳덩어리의 벙거지를 뒤집어쓰고 두어 시간만 지내보라. 생각만 해도 골치가 지끈거릴 것이다. 그러니 쉬이 부대 쪽으로 발걸음이 떨어질 리가 없었다. 며칠 동안의 휴가는 그야말로 아주 먼 옛날의 감미롭던 추억으로까지 생각될 지경이었다. 저절로 나의 발걸음은 부대가 있는 곳과는 반대쪽인 ‘얌전이네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외출을 나와 있을 친구라도 몇 명 만날 수가 있었으면…. 그들과 어울려 쓴 쐬주라도 한 잔 하고프다는 아주 조그마한, 그러나 무척 절실한 욕망이 나를 휘감기 시작했던 것이다.
우리들의 외출은 항상 그러한 소소한 욕망들―예컨대, 영화 구경이나 한 프로 한다든가, 아니면 분위기가 괜찮은 다방에서 커피 잔을 마주 들고 자질구레한 잡담이나 실컷 해댄다든가, 또는 아까운 그 시간들을 너무 헤설피 보내고 말았다는 아쉬움을 잘근잘근 씹으면서 쓴 쐬주 잔에 취해 얼큰해진 얼굴로 기고만장 떠들어댄다든가 하는―에 의해 때워지는 것이 고작이었다.
얌전이네 집은 시장 한 구석에 있었다. 그 집은 밥집 겸 술집이었다. 사십대를 넘어서 오십 고개에 접어드는, 해방 후 일본에서 귀국했다든가 하는 것밖에는 알려지지 않은 아주머니 한 분이 두 딸과 함께 생계를 잇기 위하여 벌여놓은 싸구려 음식점이었다. 큰딸의 나이가 열여덟쯤 되었을까, 둘째는 이제 열 살 안팎이었다. 아마 씨가 다른 딸이라서 그렇게 터울이 지는 것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들 간의 추측일 뿐, 그런저런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고, 우리도 물어볼 만한 얘기는 아닌 것 같아서 궁금한 대로 그냥 지내는 터였다.
그 큰딸 이름이 얌전이였다. 물론 본 이름이야 따로 있겠지만, 집안 식구들끼리도 항상 "얌전아―" 하고 불렀고, 또 그 생김새도 얌전이 같아 보여서, 우리는 그 집을 얌전이네 집이라고 명명해 버린 것인데, 뭐 특별한 옥호(屋號)라도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도 못한 처지라서 그 이름은 그대로 굳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얌전한 개 부뚜막에 먼저…’ 어쩌구 하는 말을 곧잘 차용하여, 누가 먼저 얌전이를 '따 먹나' 하는 것을 공공연한 내기로 삼아 관심들을 쏟고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얌전이는 어딘가 남자를 바칠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그 집은 언제부터인가 우리들의 단골이 되어 있었고, 그 집 아주머니도 다른 일반 손님들보다는 우리에게 훨씬 잘해주는 것이었다. 누군가는 확신이라도 하는 듯, 얌전이 어머니가 얌전이 신랑감을 구하느라 우리에게 특별히 잘해주는 것이라고도 했으나, 우리는 누구 하나 얌전이의 신랑감이 되어보겠다는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그 집엘 드나드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오십 줄에 가까워진 아주머니가 아들 하나 없이 딸 둘만 데리고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 보기에 딱하기도 했고, 또 우리도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하다 보니 그 집을 자주 이용하는 것일 뿐이었다.
내가 얌전이네 집의 ‘백반, 탁주, 소주, 오뎅, 기타 안주 일절(’일체‘라야 올바른 표기일 테지만)’이란 휘장을 들치고 들어섰을 때에는 아직 아는 얼굴들은 하나도 보이질 않았다.
“아줌마! 나 백반 하나 하구 막걸리 한 되만 줘!”
나는 길쭉한 나무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면서 주방 쪽을 향하여 소릴 질렀다. 음식들은 곧 얌전이가 쟁반에 받쳐 들고 왔고, 이어서 아주머니가 막걸리 주전자를 건네주자, 얌전이는 “자, 한 잔 쭈욱 드세요!” 하면서 컵에 넘칠락말락 잔을 채우고는 쌩끗 웃어 주었다. 술을 먹을 땐 , 그렇게 꼭 첫 술잔은 얌전이가 따라주는 게 얌전이네 집의 관례였다. 아마 그 맛에 단골이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장시간 버스를 타고 온 나는, 백반 한 그릇을 후딱 비워 버렸다. 그리고 예의 그 얌전이가 따라준 첫 술잔을 들어서, 앞쪽 벽을 바라보며, 거기 붙어있는 ‘술은 인류의 적이다! 마셔서 없애자!’라는 흐뭇한 표어(?)를 확인하면서 주욱 들이켜고 있을 때였다.
사격 때마다 ‘백발일중(百發一中)’의 실력을 과시(?)하여 기합을 도맡아 받으면서도 ‘신체발부(身體髮膚)는 수지부모(受之父母)라, 발부까진 몰라도 내 목숨만은 꼭 불감훼상(不敢毁傷)하야 우리 부모님께 반납해서 효지시야(孝之始也)를 삼으리라.’는 정병장류의 문자를 제일 많이 인용함으로써 정병장에게 ‘특등 명사수(命死守)’라는 별명을 얻은 송(宋東允)상병이 허겁지겁 휘장을 걷어치우며 들어왔다.
“야, 뭐, 뭐하는 거야? 비, 비상이 걸렸는데…. 어어라? 배, 배짱 편하게 막걸리 타령이라….”
그는 약간 바보스러운 면모를 지니고 있었지만, 그런 대로 사람이 좋아서, 나는 곧잘 그와 어울려 막걸리 잔을 같이 나누었었다. 그런 그가 무척은 허겁대는 걸 보니, 비상은 비상인 모양이었다. 그래서 아무도 낯익은 얼굴들이 없었구나, 생각을 하면서 나는 일부러 한 마디 눙쳐 보았다.
“비상이, 걸렸으면… 쓰러졌겠네요. 그까짓 쓰러진 비상쯤이야….”
그러나 송상병의 표정은 굳은 채로였다. 평소의 헤설픈 웃음기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는 손짓으로 나를 불렀다. 나는 표정이 약간 굳어짐을 느끼며 그의 옆으로 다가갔다.
“무, 무장 공비가 대, 대거 침투했단 말야, 아, 알겠어?”
나는 깜짝 놀랐다. 술맛이 확 달아나 버렸다. 그냥 비상이라면, 나는 아직 귀대 시간이 남았으니, 천천히 노닥거리다가 들어가도 될 것이었지만, 이건 아무래도 일찍 들어가 상황을 기다려야만 할 것 같았다.
“아, 아직 정확한 건 모르니까, 이, 일체 보안유지하고 가, 같이 들어가자!”
부대는 조용한 침묵을 안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내무반 문을 열었을 때, 거기에는 화가 잔뜩 나 있는, 주번사관 완장을 두른 쪼인타가 서 있었다. 아차! 싶었다. ‘신고’용 담배 한 보루를 잊은 것이었다. 걸핏하면 사병들의 쪼인트를 까는 것으로 해서 쪼인타란 별명이 붙은 김(金相河)상사. 그는 사병들 간에 악질로 평판이 자자하게 나 있는 본부중대 인사계였다. 그는 늘 준위 진급을 못 하는 것을 불만으로 여기고 있었고, 계급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아 더욱 악착스런 성깔만 부리는 ‘우거지 포장지 같은’ 자였다. 나는 제풀에 불안감이 번져 와서 그 자리에 멈칫 서 버렸다.
“뭐 하는 거야! 동작 봐라! 비상사태 아래서 뒈지고 싶어서 환장들을 했나?”
그는 악을 쓰고 있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움찔했다. 송상병이 그의 앞으로 다가가서 신고를 했다.
“북진! 제1 내무반 사, 상병 송동윤 다, 다녀왔습니다. 며, 명령대로 극장, 다방, 술집 등 사, 사병들이 있을 만한 곳은 저, 전부 다녀봤습니다만, 아, 아무도 없었습….”
“뭐이야!”
쪼인타가 그의 말을 막으면서 소리를 빽 질렀다.
“아, 아니…, 인솔한 이일병밖에 어, 없었습니다.”
“알았어! 정신은 어디다 팔아먹고 다니나? 보고도 제대로 못 하고! 들어가!”
송상병은 어기죽어기죽 자기 자리에 가 앉았다. 모두 침상 제2선에, 앉은 채로 차려 자세였다.
“이한석! 넌 어디 있었나?”
쪼인타는 내 온몸을 훑으면서 물었다. 불행하게도 내 양 손에는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았다. 그것은 나를 무척 죄송스럽다는 생각 속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비상 탓입니다. 비상이라는 바람에 그만 깜빡 잊고 만 거예요, 나의 마음 속 웅얼거림이 쪼인타에게 들려질 리는 없었다.
“어디 있었느냔 말이다.”
침상 제2 선의 대열이 움찔 놀라고 있었다. 움찔, 움찔, 움찔.
“네, 얌전이네 집에….”
저런, 저런…이왕이면 다른 곳을 주워대지 않고…빵집, 다방, 얼마든지 있지 않느냔 말이다. 아니, 다방 이름까지도 들먹일 필요 없이, 지금 마악 차에서 내리는 길이었노라고, 좀더 천연덕스럽게 얘길 하면 될 텐데…, 이 멍충아. 침상 제2 선은 그렇게들 말하고 있었다. 얼떨결에 얌전이네 집을 뱉어버린 나도 그건 같은 생각이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얌전이네 집에 있었습니다.”
“뭐이야! 이 새끼!”
쪼인타의 오른손이 내 왼쪽 뺨에 날아옴과 동시에, 왼발은 내 오른쪽 정강이에 힘껏 와 부딪쳤다. 나는 “어이쿠!” 소리와 함께 뒤로 벌렁 나자빠질 뻔하였으나 간신히 몸의 중심을 바로 잡았다. 입술에서는 찝찔한 피가 수액처럼 끈적거렸다.
“이일병은 오늘 휴가 귀대하는 것입니다!”
내무반장 정병장이었다. 제대가 얼마 남지 않아, 날짜만 세는 병에 걸려 있는 그는, 그럴 듯한 문자 쓰기를 좋아했고, 쪼인타의 신경질에도 이따금씩은 갑자기 잊어버렸던 생각이라도 났다는 듯이 이유를 달아 말대답을 하는 버릇이 붙어 있었다. 그런대로 그는 내무반장이란 책임도 있어, 내무반원들에겐 상당히 아량을 베풀어 주고 있는 편이었고, 우리 모두는, 그래서 그에 관한 일인 한, 두루두루 불편함이 없도록, 주인을 따르는 충견(忠犬)마냥 순종하고 있는 터수였다.
침상 제2 선은 모두가 내무반장의 말이 지당하다는 듯한 표정들이었다. 그러나 쪼인타도 그런 걸 모르고 하는 소리가 아닐 것이었다.
“그래서…?”
쪼인타의 눈길은 내무반장에게로 돌려졌다. 잔인스러울 정도의 비웃음이 담긴 눈총이었다. 모두들 등골을 오싹 떨었다.
“….”
정병장도 더는 대꾸하지 않았다. 온몸으로 자신의 말을 막아버리는 쪼인타를 의식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어쨌단 말이야?”
쪼인타는 잽쳐 물었다. 다시는 그 따위의 비호를 하지 못하도록 아주 못을 박아 버리자는 심보에서일 것이다.
“그렇단 것뿐입니다.”
정병장은 피식 웃음꼬리를 곁들이며 말했다.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은 바늘구멍보다도 작다는 걸 깨달을 때쯤이면, 쪼인타, 너는 네가 받아 처먹은 신탄진, 아리랑, 그리고 때로는 양말 쪼가리며 넥타이, 러닝셔츠, 팬티…등의 부피로 말미암아 제아무리 노력을 하더라도 그 구멍을 빠져나갈 수는 없을 것이다, 정도의 비웃음일지도 몰랐다.
“좋아. 하지만 그런 전우애는 똥개에게나 줘 버리는 것이 좋을 거야, 알겠나?”
쪼인타는 잠시 뜸을 들였다. 그것은 그의 상투적 수법이었다. 그 뜸을 들이는 동안의 공포 분위기를, 그는 사냥개의 코끝처럼 냄새 맡으며, 자기 혼자만의 자족감을 만끽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쪼인타에게 있어서는 자신의 행동이 우발적인 울화통이 터져서 이루어지는 사적 제재가 아니라는 시위일 터이었지만, 우리들에게는 더욱 못 견딜 괴로움이었다.
“이한석! 제자리로 들어가!”
천천히 뜸이 들고 있었다. 내무반의 공기는 어느 쪽에서부터인지 알 수 없게 조금씩조금씩 옭죄어들고 있었다. 위태위태한 정적이 쌓여지고 있었다. 와르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이 불안스런 정적. 저 새낀 지옥으로 전출 명령이라도 나질 않나?
나는 또박또박 그의 앞을 지나 내 자리로 가고 있었다. 벼락을 예상하게 되니 오히려 차분해지는 마음이었다. 오른쪽 정강이가 무척 아팠다.
“이 새끼야! 동작 좀 빨리 취하지 못하겠어?”
그는 다시 한 번 내 궁둥이를 걷어찼다. 나는 그 서슬에 밀려 내 자리까지 털썩 엎어지면서 밀려가 앉았다.
“모두들 배낭을 꾸린다! 이건 연습이 아니니까 빠뜨려 먹는 게 없도록. 런닝구, 빤수, 양말은 있는 대루 전부 배낭 속에 집어넣고, 세면도구도 물론 함께 넣는다! 모포는 배낭 위아래 두 개, 그리구 우의는 위쪽으로. 삽이나 곡괭이, 통일화도 단다!
그리구 또 항고두 잊지 말구! 다 꾸린 사람은 군화를 신구 제자리에 대기한다! 이십 분 후에 오겠다!”
그 이십 분이란 게 말하자면 뜸을 들이는 시간, 유예시간인 것이다. 쪼인타는 제2 내무반으로 갔다.
“저걸 그저 요걸로….”
정병장이 M2-CAR 소총을 들고 중얼거렸으나, 아무도 그 말을 받아 잇지는 않았다. 그저 묵묵히 배낭들을 꾸리고 있었다. 마치 잠시 후에 다가올 그 ‘어떤 상황’을 잊기라도 하려는 듯이….
“미안해요. 괜히 나 때문에….”
나는 어정쩡하게 말을 해 놓고는, 오히려 그 얘기를 한 게 더 미안쩍어짐을 느끼고 있었다.
“듣기 싫어! 병신 새끼처럼 일찍 귀대해 가지구….”
정병장이었다. 그의 그런 식의, 사내다운 걱정의 표현에 나는 다시 한 번 나의 잘못을 뉘우쳤다. 어쩌다가 그만 깜빡 까먹고 맨손 귀대를 했느냔 말이다.
“에이, 더러워서….”
송상병은 그 잘못이 자신에게도 얼마만큼 있었다고 여겼음인지, 한 마디 하고는 침상 아래로 가래침을 칵! 하고 뱉었다. 침은 탁 소리를 내며 시멘트 바닥에 떨어졌다.
“에이, 빨리 작전이라도 나가 한바탕 전투라도 해 봤음 좋겠다!”
누군가가 투덜대었고, 그제서야 저마다 한 마디씩 지껄이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에 시간은 조용히 흘러가서, 이윽고 이십 분이 지났다. 예고대로 쪼인타가 눈알을 부라리며 들어왔고, 우리들은 다 꾸린 배낭들을 각기 제자리의 침상 제4 선에 정렬해 놓은 후 복도에 일렬로 섰다. 쪼인타는 약간 흘러내린 주번사관 완장을 핀으로 다시 꽂으면서 정렬된 배낭에 일별(一瞥)을 보내고는 내무반을 휘이 둘러보았다.
누군가의 목젖으로 꼴깍 침 넘어가는 소리가 조그마하게 들려왔다.
“도대체 정신 상태가 틀려먹었단 말야! 배낭을 다 꾸렸으면, 청소를 해 놔야 할 게 아니야! 야, 이 개새끼들아! 그래 이게 신성한 내무반 꼬라지야? 돼지우리보다 나을 게 뭐가 있느냔 말이다. 개다가 이 가래침은 또 뭐야, 엉? 이거, 누가 뱉었어?”
쪼인타는 드디어 아주 적절한 꼬투리를 잡아냈다는 듯이 득의만만하게 외쳐댔다.
“….”
“….”
“이 새끼들 봐라? 뱉은 사람이 없다, 이거야? 그럼, 내가 뱉었나!”
쪼인타의 악에 받친 목소리가 갈라져 나오자, 송상병이 우물쭈물 앞으로 나서려고 하고 있었다. 그것을 정병장이 눈짓으로 막았다. 어차피 마찬가지인 거다. 분통은 이미 터진 것이었고, 이제 송상병이 나선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이다. 쪼인타가 지금 가래침 때문에 흥분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든 좋아! 군대란 원래 단체다, 이거야. 누가 뱉었건 이건 너네들 공동 책임이란 건 알겠지? 이 개새끼들아!
똥개는 똥도 핥아 먹는다, 저 가래침은 너희들이 뱉은 거니까 너희들 혓바닥으로 핥아 먹도록 해줄 테다! 내무반장!”
“네!”
“이리 나왓!”
정병장이 그의 앞으로 나갔다.
내무반은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긴장으로 팽팽해졌다.
“핥아!”
“….”
“핥으란 말얏!”
“….”
“못 핥겠다, 이거지? 그 자리에 엎드렷!”
그렇게 한 명씩 불러서는 ‘핥아! 핥아!’를 외쳐댔고, 그리고는 엎드려뻗쳐를 시키는 것이었다.
“이 새끼들, 오늘 줄초상이 날 줄 알아!”
그는 계속 씨근덕거리며, ‘핥아! 핥아!’를 되뇌다가 끝머리에 가서는 ‘엎드렷! 엎드렷!’으로 대체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만큼 그의 울화통에 가속도가 붙어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다가왔다.
“곡괭이 자룰 하나 빼 와! 개 같은 놈들! 엉덩이가 시원하도록 안마를 시켜주지.”
그는 잔인한 웃음을, 마치 음미라도 하는 듯 입가에 흘리며, 나에게 명령했다. 나는 나의 배낭에서 야전삽을 끌러서 그에게 건넸다.
“엎드렷!”
“….”
나는 엎드리지 않았다.
“이 새끼가….”
엎드려 있던 모든 내무반원들이 걱정스런 눈총으로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고들 있었다. 정병장은 나에게 눈짓으로 엎드릴 것을 종용하였고, 송상병은 겁먹은 얼굴로 내 쪽을 향해 눈만 껌뻑거리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가래침을 노려보면서, 그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똥개는 똥도 핥아 먹는다? 그러는 너는 뭐냐? 우리가 똥개라면, 쪼인타, 넌 뭐냔 말이다. 나는 가래침 앞에 섰다. 그리곤 몸을 구부려 두 눈 딱 감고 그걸 핥아 버렸다. 쪼인타도 놀란 모양이었다. 바야흐로 빳다가 ‘춤을 출’ 계제였는데, 엉뚱한 데서 복병이 나타난 셈이 되어버린 것이다.
속이 메슥메슥했다. 그러나 나는 꾸욱 참았다. 빳다가, 줄초상이 무서워서 그런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다른 동료들을 생각해서도 물론 아니었다. 그것은 나로서도 왜 그랬는지 명확하게 얘기할 수 없는 심경에서 우러난 순간적인 행동이었을 뿐이었다. 굳이 분석해 본다면, 쪼인타에 대한, 아니 그의 말을 빌자면, ‘똥개보다도 못한 새끼들’보다도 더욱 못한 인간인 쪼인타 자신에 대한 일종의 반항심에서였을 것이다.
그런 것은 어쨌든, 쪼인타는, 의외의 나의 행동으로 해서 예정했던 빳다를 충분히 휘두르지 못한 채, 그게 못내 억울하기라도 한 듯, 한동안 되지도 않는 말들을 이리저리 주워섬기며 씨부렁거리다가, 전원 제자리 대기를 명하고는 내무반에서 나가 버렸다.
쪼인타가 나가고 난 내무반은 썰렁했다. 모두들 침통한 얼굴로 말 한 마디 없었다. 그러다가 우리들은 어느 새, 한명 두명 자기 자리의 침상 위에 벌렁벌렁 누워 버렸다.
밤중이 되도록 쪼인타는 다시 내무반에 나타나지 않았다. 누군가가 쪼인타는 본부중대 P․X에서 혼자 술을 퍼 처먹고 있더라는 뉴스(?)를 전해 왔으나, 아무도 거기 대꾸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하여 우리들은 드러누웠던 그 자세대로 점호도 없이 그냥 취침을 하여 버리고 말았다.
“기상!”
그건 누구에게나 딱 질색인 소리였는데, 아직도 머릿속이 몽롱한 것으로 보아, 그 소리는 통상 예정 시간보다 빠른 게 틀림없었다.
‘아침 늦잠은 우리를 살찌운다.’는 정병장의 신조(信條)도, 그러나, 오늘만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기상!”
겨우 두 번째의 그 소리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모든 병사들은 비싯비싯 두 눈을 비비며 일어나는 것이었다. 기상이라고 해야, 엊저녁 구두끈도 풀지 않은 채로 그냥 침상에 누워 잠들었던 터라, 매트리스를 개고 담요를 털고 하는 등의 부산을 피울 필요도 없었다.
아직 내무반 안엔 한쪽 구석의 형광등이 그대로 켜져 있는데다가, 창문 밖이 캄캄한 걸 보면, 일러도 무척 이른 시간임이 분명했다. 더군다나 말번(末番) 불침번도 ‘기상!’ 소리에 함께 일어나서는, ‘벌써 내 차례야?’ 어쩌구 잠이 덜 깬 수작을 하는 걸 보면, 아직도 새벽 서너 시밖에는 되지 않은 듯싶었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역시 세 시 삼십 분, 평일 같으면 아직도 두세 시간쯤은 너끈히 더 잘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 새끼들아, 출동 준비야, 출동 준비!”
제2 내무반의 주번하사 연(延昌秀) 병장이었다.
“전달!”
이리 뛰고 저리 뛰던 주번하사는 한바탕 법석을 떨어 놓았으니, 이제 제일 단계의 임무는 끝났다는 듯, 본중 중대 사무실 앞에 떠억 버티고 서서 ‘전달’을 걸었다.
“전달!”
“전달!”
아래 위 내무반에서 똑같은 복창(復唱)이 우렁차게 터져 나왔다.
“각 내무반은…”
“각 내무반은…”
“지금 즉시…”
“지금 즉시…”
“연병장으로 집합하여…”
“연병장으로 집합하여…”
“실탄과 건빵을 수령한다!”
"실탄과 건빵을 수령한다!”
실탄? 실탄! 그 소리는 새벽 찬 공기를 가르면서 싸늘한 전율을 안겨다 주고 있었다.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물건, 아니, 사람을 죽이기 위한 물건이 아닌가?
훈련소에서, 그리고 기성 부대에 와서도 간혹 실시해 본 실탄 사격 때마다 우리들은 얼마나 흥분들을 했던가? 코끝을 찌르는 매캐한 화약 내음은, 누구라도 흥분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그런 강렬한 충동을 가져다주는 마법을 지니고 있었다. 그 속에서는 살인이 미덕이 되는 전혀 새로운 질서의 체계를 맛볼 수가 있는 것이다.
실탄? 실탄! 그것은 두려우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손아귀 속에 지니고프다는 치열한 욕망을 불러 일으켜주는 물건이었다. 인간의 마음 속 어느 구석에 그런 엄청난 음기(陰氣)가 깃들여 있는 것일까? 마구, 마구 쏘아대 보고픈 것이다. 자아, 연병장으로, 연병장으로….
“연(延)씨 병장 앞으롭니까, 마당 장(場)자 연병장입니까?”
누군가가 연병장 가득히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피비린내, 아니, 자기 마음 속 어느 구석에서 꼼지락대고 있는 들뜬 살기(殺氣)를 숨기기 위하여 일부러 익살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 말에 대꾸하는 사람 없이, 병사들은 연병장으로 잘도 모여들었다.
여기저기서 담뱃불들이 번쩍거리기 시작했고, 잠시 후, 약간 웅성거리는 잡음 속에서, 규정된 양의 실탄과 건빵이 배급되었다.
그 무렵에야 중대장 실에서 술에 취해 취침하던 주번사관 쪼인타가 부스스 일어나 나왔고 이어서 각자의 숙소에서 비상 대기하고 있던 영외 거주 장병들이 속속 병영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한 시간 이내로 그들 모두는 사단 연병장으로 옮겨 갔고, 여기저기 부릉부릉 시동을 걸고 있는 여러 대의 GMC에 각각 분승하고 있었다.
동작이 느린 송상병은 엊저녁에 긴장했던 탓인지 배가 아프다면서 정문 앞쪽 연병장 한 구석에 가서 쪼글트리고 앉아 끙끙, 대변을 보고 있었는데, 다행히 날은 아직도 밝아올 기색조차 없어 아무에게도 들킬 염려는 없었다. 그래도 그는 연신 누가 볼까 걱정을 하며, 제길헐, 화장실 다녀올 시간도 없이 이 야단일 건 뭐야, 개똥보다도 내 이 사람 똥을 그 놈의 쪼인타 아구창에 퍼 넣었으면 시원하겠다, 씨부렁거리고 있었다.
사열대쪽에서는 작전 참모의 지시가 마이크를 통해서 목소리만 들려왔고, 출발 명령이 내리기 직전에야 그의 용무는 끝이 나서, 김이 무럭무럭 오르는 대변 위에다 밑 씻은 휴지쪽을 부랴부랴 덮어놓고는, 마악 움직이려고 하고 있는 트럭에 간신히 올라탔다.
십여 대의 트럭은 아직도 캄캄한 어둠 속을 헤드라이트를 비치며, 동쪽으로 동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두 뺨을 갈기며 지나가는 늦가을 새벽 공기에 맞서 보기라도 하려는 듯, 논산 제이훈련소에서 배운 “백제에(의) 옛 터전에…”에서부터, 보병의 노래, 결전가 등을 거쳐 ‘전우의 시체를 넘고넘어…’까지, 하낫! 둘! 셋! 넷! 장단을 맞춰가며 군가들을 불렀다. 한 꼬투리 두려움을 꼬드기던 상념은 차츰 자취도 없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우리들의 얼굴에서는, 대신 군인 특유의 살벌한 용기들이 가득가득 피어오르고 있었다.
우리는 오후도 서너 시쯤이 잘 되어서야 목적지인 B군 N마을에 도착하였다. 그곳은 공비가 대거 침투한 동해안 산악지대에서 약간 떨어진 곳으로, 면사무소가 자리한 동네에서 조금 들어간 분지(盆地)였다.
임시 막사가 대형 텐트들로써 완성된 것은 해어스름 무렵이었고, 우리는 물론 점심마저 꼬박 굶은 채였다. 저녁 식사도 아직 준비되지 않았는데, 조 편성이 시작되었다. 임시 C․P를 관측할 수 있는 동서남북의 네 고지와 도로가 통하고 있는 양쪽 어귀에 경계호를 파고 철야 경계를 하라는 것이었다.
일 개조는 삼 명씩이었는데, 마침 정병장과 송상병, 그리고 내가 동쪽 고지의 경계 임무를 맡도록 되었다.
“이곳의 통금 시간은 오후 여덟 시다, 오후 여덟 시. 그러니까 이십 시 이후 경계호에 접근하는 자는 수하(誰何)를 요하지 아니하고 발포한다! 알겠나?”
쪼인타의 지시사항이었다.
아직 막사 주위의 배수로 설치니 뭐니 해서 잔손들이 필요했고, 따라서 경계호 구축의 임무는 쫄병들에게로 낙착이 되어서, 나는 혼자 고지로 올라갔다.
사방은 벌써 어둑신해져서 혼자 호를 파기엔 시간이 부족하여 한 동안 망연자실하고 있는 수밖에는 없었다. 이윽고 나는 오른쪽 벼랑 끝 쪽으로, 이장(移葬)해 버리고 난 빈 묘를 하나 발견하고 쾌재를 불렀다. 그곳은 시계(視界)도 매우 좋았고 가상 적지인 앞쪽은 한 길쯤 되는 낭떠러지로 되어 있어, 천연적 입지조건이 아주 안성맞춤이었다.
나는 배낭에서부터 야전삽을 떼어내 괭이로 만들어서 흙무덤 위쪽에 나 있는 찔레나무 등속을 찍어내기 시작하였다. 손등 몇 군데를 가시에 긁히기도 하고 찢기기도 하였지만 찔레나무는 비교적 쉽게 제거되었다. 다음으로는 구덩이를 메웠던 돌무더기를 치웠고, 구덩이의 원형이 어느 정도 드러난 후, 괭이를 다시 삽으로 변형시켜 가지고 구덩이의 넓이를 조금 더 넓히고, 깊이도 약간 더 깊게 팠다. 그리고는 관측을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무덤 앞쪽은 아주 툭 터 버렸다.
날은 이제 완전히 어두워졌다. 나는 주섬주섬 칼빈 소총과 배낭을 챙겨서 무덤 속으로 집어넣고는, 떼어낸 우의로 무덤 위쪽을 덮고, 그 끝을 빙 돌아가며 흙으로 묻어 버렸다. 그런대로 임시 경계호가 마련된 셈이다. 그런데 작업 시에는 워낙 급하다는 생각에 바삐 서두느라 몰랐었는데, 시체는 없으나 혼자 무덤 속에 들어가 웅크리고 있자니, 머리끝이 쭈볏쭈볏해지는 느낌이었다.
어린애의 무덤이었을까? 아니면 어른?
남자였을까, 여자였을까? 여자라면, 혹시 처녀? 처녀 귀신이라도 나타나서 내 집 내놓으라고 야료를 부리진 않을까? 처녀가 죽으면 그 영혼은 저승으로도 갈 수가 없어 이승에 남아 방황하게 된다던데….
정병장과 송상병은 왜 올라오질 않고 있는 걸까?
나뭇잎이 시릭시릭 갈리고 있었다. 바람이 이는가 보다. 눈앞에 희뿌연 게 날린다. 아, 진눈깨비였다. 갑자기 낭떠러지를 타고 무장공비들이라도 나타나면 어쩌나? 왜 빨리들 올라오지 않는 걸까? 아무래도 이건 쪼인타의 수작일 것 같았다. 각본대로 무슨 구실을 붙여 정병장, 송상병을 붙잡아 두고 나를 골탕 먹이려는 것이리라. 쪼인타, 쪼인타….
순간, 시뻘건 두 줄기의 불덩어리가 눈앞을 휙휙 스치는 것이었다. 끼리릭―. 음산한 울음소리도 있었다. 그 소리는 저승에서부터 울려나오는 듯, 깊숙한 귀기(鬼氣)를 머금고 있었다. 사이, 푸드득! 둔중한 날갯짓이 내 경계호의 지붕인 우의를 할퀴는 것이 아닌가! 소총 자물쇠를 풀 여가조차 없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문득문득 정신이 혼미해지기도 했다. 도리 없이 죽게 되나 보다.
“이곳은 까마귀 떼와 살쾡이 등속이 특별히 많은 곳이라서 밤중엔 꽤 으스스하겠는 걸….”
애써 정병장의 도착 성명(?)을 떠올리며 태연하려 하였으나 나는 번번이 속아 넘어갔다.
누군들 안 그러겠는가? 깊어가는 가을 밤, 의당 오기로 되어 있는 사람들은 오지 않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두려워지는 마음인데, 희끗희끗 진눈깨비까지 내리고, 까마귀 떼의 기분 나쁜 날갯짓과, 살쾡이들의 음산한 울음소리, 게다가 한술 더 떠서 무장공비의 보이지 않는 모습…, 누군들 안 놀라겠는가? 처녀 귀신은 산발을 했을까? 원한에 사무친 시퍼런 칼이라도, 핏방울이 뚜욱뚝 떨어지는 입에다 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완전히 삼류영화의 유치한 장면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쪼인타의 각본엔 이러한 나의 상상까지도 충분히 배려되어 있으리라. 쪼인타다운 각본이었다. 거기에 내가 왜 이렇게 말려들고 있을까? 이젠 여덟 시도 훨씬 넘었을 것이다. 오늘밤은 어차피 나 혼자 지새워야 하는 것이 아닐까?
여덟 시가 넘었다, 여덟 시가 넘었다…. 차츰 마음이 가라앉고 있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체념과, 주어진 상황에의 익숙해짐, 그것은 엄청난 용기를 내게 가져다주었던 것이다.
내 마음은, 더할 수 없이 차분해지고 있었다. 무한한 포근함, 끝없는 아늑함. 애초부터 그럴 것이었다. 잘못은, 내가 쪼인타를 잊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그의 솜씨, 그의 각본이란 걸 잊고 있었던 때문이었다. 나는 무덤 속에 누워, 고픈 배를 건빵으로 때우며, 마치 무덤의 옛 주인공이 그러했듯, 편안하게, 진실로 편안하게 하룻밤을 지냈다.
그로부터 며칠 동안은 별다른 일이 없었다. 위험한 곳에 C․P를 주둔시키지도 않았겠거니와, 설사 놈들이 이 근처를 지나게 된다고 하더라도, 대부대를 상대하여 제놈들 쪽에서 먼저 총질을 해대거나 하여, 자기들의 위치를 노출시키지는 않을 것이었다. 해서, 매일 밤의 경계호 근무를, 그럴 듯한 휴식시간으로까지 생각하는 축들도 있을 정도였다.
처음엔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긴장들을 했었지만, 별일 없을 거라는 생각들이 점차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이 되어 갔고, 군화끈도 풀지 않고 교대로 가수면(假睡眠)을 취하던 병사들은 까짓것 오고프면 와라, 네놈들이 먼저 우리를 보게 된다면, 네놈들 편에서 몰래 도망치기에 바빠할 놈들이 아니냐, 뱃심들 편하게 군화끈 풀고, 작업복 벗고, 게다가 드르렁드르렁 반주(伴奏)까지 곁들여 가면서 잠 속으로 굴러 떨어지는 것이었다. 통금 시간이 이십 시요, 통금 이후에는 수하(誰何)마저도 필요 없이 발포가 명해지기까지 했으니, 이건 순찰도 있을 수 없어, 내 코라도 베어 가슈, 난 모르겠소, 였던 것이다.
그것이 그만 화근이 되어 버렸다. 사람이란 편하면 더욱 편해지고 싶어하는 존재였던 것이다. 그 무기력한 생활은 하나의 타성으로 굳어져 그대로 낮 시간에까지 옮아왔던 것이다.
중식을 끝낸 우리들은 타성화된 생활이 이끄는 대로, 대낮부터 경계호 속으로 기어들어가 잡담꽃을 피우다가, 몰려오는 식곤증을 물리칠 수 없어, 기분 좋은 오수(午睡) 속으로 빠져 들어갔던 것이다.
한참 멋진 꿈들을 꾸고 있는 판국인데, “기상!” 소리가 바로 머리맡에서 들려왔다. 그 소리는 며칠 동안 잊어버렸던 소리였었는데도, 우리들을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도록 만들어 주었다. 우리는 호 밖으로 불려 나갔다. 거기에는 쪼인타가 야전침대 머플러를 들고 대기하고 있었다. 우리들도 물론 잘못한 일이었지만, 일부러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 예견을 했노라는 표정으로 미리 빳다까지 대령하고 서 있는 쪼인타도 옳다고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한 번쯤은 ‘만에 일이라도’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상사(上司)로서의 주의 정도는 주었어야 옳지 않았을까?
우리는 아주 흠씬하게 두들겨 맞았다. 정병장은 고참이라고 그래도 조금 사정 보아가며 때렸지만, 송상병과 나는 그의 유감없는 실력 발휘에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쪼인타의 실력과 송상병의 엄살(?)과 그리고 나의 오기(傲氣)는 서로 하나의 조화를 이루면서 근 두 시간여를 이끌어 갔다. 우리들의 엉덩이는 시퍼렇게 멍이 들었고 거기다가 ‘작전 종료 후 사단 영창 십 일’이라는 공갈 섞인 부상(副賞)까지도 달갑지 않게 받아야 했던 우리는, 분이 덜 풀린 쪼인타의 욕설로서 일관된 훈시를 받고 있던 도중, 갑자기 출동 명령을 받았다.
주민들에게서 집단으로부터 뿔뿔이 흩어져 버린 공비의 잔당 몇몇이 ××지점을 지나간다는 신고를 받았던 것이다. 신고를 접한 C․P에서는 병력 부족으로 사단장 경계병 약간 명을 놈들의 진로 차단을 위하여 투입시키기로 한 것인데, 대전투부대에 쫓기는 놈들로서는, 어차피 우리들 투입조 같은 것은 밀어젖히고서라도 도망쳐야 할 처지였고 보면, 사실 우리들은 매우 위험스런 상황 아래 놓이게 되는 셈이었다.
쪼인타는 굳이 우리조의 조장을 맡아 공비 출현지점으로 공수(空輸)되어가는 헬리콥터 기내에서도 내내 훈시를 계속했다. 훈시의 골자는 ‘너희 같은 놈들은 공비의 총알에 몽땅 맞아 거꾸러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마치 사형수를 형장으로 이끌고 가는 형리와도 같았다.
어느새 시간은 거의 저녁 무렵이 되어 있었다. 헬리콥터는 몇 개의 산을 넘은 후 어떤 골짜기를 더듬어 가다가 독가촌(獨家村)의 집 한 채와 거기 딸린 조그마한 화전(火田)이 일구어져 있는 분지에 이르자 낮게 떴다. 그리고 우리를 싣고 온 지원부대의 미 조종사가 지도를 보면서 손가락질을 하자, 쪼인타가 소리를 질렀다.
“자, 뛰어내려!”
나는 제일 먼저 헬리콥터에서 뛰어 내렸다. 내리자마자 오른쪽 산기슭으로 잽싸게 몸을 날렸다. 빳다를 맞은 엉덩이가 움직일 때마다 저려왔다. 내가 몸을 은폐하자마자 갑자기 ‘빵!’하는 총성이 울렸다. 나는 깜짝 놀랐다. 내 옆에는 정병장이 엎드려 있었다. 헬리콥터는 다시 날아가고 있었다. 총성은 왼쪽 기슭에서 울렸는데, 그쪽에는 쪼인타와 송상병이 붙어 있었다.
“우야꼬! 내 아들 죽는데이!”
밭 아래쪽으로부터 어떤 노파가 내달았다. 머리채를 길게 늘여 딴 처녀도 함께 달려왔다.
“저 위에서 우리 아들넴이가 냉굴(나무를) 안 하능교?”
노파와 처녀는 사색이 되어 징징 울고 있었다.
총은 송상병이 쏜 것이었다. 사실은 오발이었다. 자물쇠 장치까지 풀고 뛰어내리다가 얼결에 방아쇠에 걸었던 인지(人指)를 당겨버리고 만 것이었다.
“손들엇!
손들고 내려왓!”
쪼인타가 소리쳤다. 정병장과 나는 후유! 한숨을 길게 뽑았다. 노파의 아들은 두 손을 번쩍 들고 부들부들 떨면서 내려왔다. 철제의 그 비정한 총구 앞에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은, 한 초부(樵夫)는 그렇게 보잘 것 없었다. 그건 비단 이 초부에게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그건 우리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우리가 들고 있는, 우리가 겨누고 있는 총구에 대해서는 하등의 두려움도 느끼지 않고 있다. 겨누고 있는 것과 겨누어지는 것은 그렇게 천양지차였다. 그러니까, 두려운 것은 총구 자체가 아니라, 총구를 겨누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편이 좀더 옳은 말일 것이다.
사람이 두려운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두려운 것이다. 방아쇠를 당기고 안 당기는 것은 전적으로 총을 겨누고 있는 당사자의 마음먹기 여하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안도의 숨을 몰아쉬면서 그런 생각을 하며 쪼인타를 바라보았을 때였다.
“저기 쫌 보이소!”
처녀가 소리쳤다. 시선이 일제히 처녀의 손가락질하는 곳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무장공비임에 틀림없어 보이는 두 괴한의, 마악 분지가 끝나고 거기에 연이어진 앞쪽 산의 오부 능선쯤을 기어오르고 있는 모습이, 해어스름으로 인해 시꺼멓게 보이고 있었다.
우리는 노파와 처녀와 벌벌 떨며 서 있는 순박하지만 조금 미련스럽게 생긴 그 나무꾼을 놓아두고 급히 놈들을 뒤쫓았다. 우리가 앞산의 기슭에 당도했을 때, 놈들은 거의 팔부 능선쯤에 위치하고 있었다.
거리상으로 보아서 유효사거리는 아니었지만, 우리는 총격을 개시했다. 놈들이 능선을 넘어가 버리고 말면, 놈들의 모습은 보이지가 않을 것이요, 오히려 뒤쫓던 우리들이 놈들에게 노출될 형편이니, 유효사거리의 밖이라고 하더라도 총격을 시도해 보는 수밖에는 없었다. 놈들이 우리들의 출현을 전혀 모르고 있다면, 그런대로 몸을 은폐해 가면서 바싹 추적을 해볼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헬리콥터를 타고 온데다가 벌써 한 발의 총성을 울렸던 것이다.
“따당! 탕! 탕!”
“타타타타탕!”
“ 탕! 탕!”
코끝을 자극시키는 알싸한 화약 냄새, 어깨에 밀려오는 사만 파운드의 약실(藥室)의 압력이, 우리들 가슴의 응어리진 덩어리를 송두리째 폭발시켜주고 있었다.
“딱쿵, 딱, 딱쿵!”
“딱, 딱쿵! 피융!”
놈들도 응사(應射)하기 시작했고, 우리 주위에선 총알이 떨어져 박히는 소리가 ‘퍽! 퍽!’ 나며, 먼지가 풀썩풀썩 일고 있었다. 총격은 점점 심해져갔고, 우리들은 차츰 열기에 들뜬 사람들처럼 살기(殺氣)를 내뿜으며 방아쇠를 당기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오발을 하여 자책감으로 머쓱해져 있던 송상병은 반 미친 듯 마구 갈겨대는 것이었다. ‘특등 명사수(命死守)’의 실력으로, 그것도 유효사거리를 훨씬 넘어서버린 곳에서 아무리 갈겨대 본댔자 뭐 특별한 성과가 기대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집중 사격의 위력을 과시하는 데는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어서, 그의 그러한 난사(亂射)는, 오히려 어둠이 그 두꺼운 장막을 내리면서부터 점점 크게 자라가는 불안을 해소시켜 주고 있었다.
그날 밤은 그렇게 총격전을 한바탕 해대면서 우리가 칠부 능선쯤 전진했고, 놈들은 능선을 넘지 못하고 오른쪽으로 도망하여 대치한 채, 쌍방이 서로 침묵 속으로 들어가 버릴 수밖에 없었다. 칠흑 같은 어둠이 사방에 진좌(鎭坐)하면서 간간이 부슬비가 내렸고, 괴괴한 적막 속에 산짐승이 이따금씩 울어대어 밤은 더욱 을씨년스러웠다.
“아무래도 독가촌을 보호해야겠다. 너희들은 여기서 움직이지 말고 있어야 한다. 혹시 놈들이 시야에 나타나면 즉각 발포하도록….”
쪼인타가 불쑥 말을 꺼내더니, 스스로 생각해 보아도 속셈이 너무나도 뻔히 들여다보이는 것 같았던지 한 마디 덧붙였다.
“나와 함께 독가촌 보호에 나설 사람은 없나?”
누구 하나를 지목해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저 빈말인 것이다. 그의 말끝에는 공허가 뒤따랐다. 나는 일부러라도 깐죽깐죽 따라붙어 속을 썩혀줄까 생각하였으나, 정병장과 송상병이 잠자코 있는데, 제일 쫄병인 내가 감히 나설 계제가 아닌 것 같아 그만두었다.
“내일 아침 일찍, 놈들이 있던 저쪽를 순찰까지 하고 돌아올 테니까, 그 동안 근무 철저히 하도록…. 잘만 해서 놈들을 사살할 수 있다면 일 계급씩 특진에다가 포상휴가도 보내주겠다!”
오그라질! 특진은 제가 하고프면서, 고양이 쥐 생각해 주는군…. 요는 저녁 무렵에 보았던 독가촌의 그 처녀가 곱상하니 생겨, 수작도 좀 붙여볼 겸 편안한 밤을 지내보자는 속내렷다? 정말 저런 놈은 지옥으로 전출 명령이라도 내야 하는 건데…. 나는 그가 ‘죽이고 싶도록’ 미워졌다.
사위(四圍)는 죽은 듯한 정적뿐이었다. 오싹 한기(寒氣)가 몰려든다. 간밤의 총격전으로 수면을 고스란히 반납해 버린데다가, 산 속 가을 공기는 또 무척이나 냉랭하였다.
동녘이 희끄무레한 게 날이 새는가 보다. 밤새도록 음습한 부슬비가 내리더니, 아직도 날씨는 사흘 굶은 시에미 낯짝처럼 잔뜩 찌푸리고 있는 듯, 온통 전신이 찌부드드했다. 소변이라도 좀 보려고 일어서니, 풀잎에 맺혔던 물방울들이 후두둑 떨어진다.
빗방울, 이슬방울…. 나는 거기다 내 오줌방울까지 시원스레 보태 주고는, 다시 내 축축한 자리에 와서 엎드렸다.
“제대 보름 앞두고 이게 무슨 고생이람….”
정병장이 작업복 상의 포켓에서 젖어서 쓸모없이 되어버린 화랑담배갑을 꺼내 팽개치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렇게 되믄, 자칫 복무연한이 여, 연장될지도 모르겠네요.”
송상병이 맞장구를 쳤다.
“닥쳐, 짜식아! 재수 없게스리….”
정병장의 타박이 있자, 송상병은 움찔 입을 다물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럴 가능성은 농후했다. 이렇게 이삼십 명의 대규모 무장공비가 침투했던 적은 여직 없었던 것이다. 매일매일의 신문 활자들마저도 당장 무슨 커다란 변이라도 일어날 듯 불안을 포장해내고 있었다.
“그러나 저러나 쪼인타는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저 혼자만 편안히 지내겠다고 내려가던 놈이….”
다시 정병장이 말문을 열었다.
“….”
타박을 맞아서인지 송상병은 아무 대꾸도 없더니, 부스스 일어섰다.
“이일병! 휴지나 있으문, 조, 좀 주라.”
“또 대변입니까?”
“그, 그래. 이 경을 칠 놈의 것, 꼭 새벽녘이면 새, 생각이 난단 말야.”
그는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허리춤을 붙들고 엉거주춤 서 있었다.
“저 똥마려운 상이라니…. 기념 촬영이라도 하나 해 두었으면 꼭 좋겠다! 분뇨 탄생 직전의 형이상학쯤으로 제목이라도 붙여둔다면, 격에 맞는 작품이 될 수도 있겠는 걸….”
정병장이 빈정거렸다.
“너, 너무 그러지 마세요. 이래 봬두 사, 사단 연병장에 버젓이 구, 궁둥일 까구 대변을 본 사람은 저, 저 하나밖엔 없다구요.”
“사단 연병장에?”
“네, 바로 출동하던 날이었지요. 글쎄 차는 떠나려구 부르릉거리는데, 송상병님은 연병장 한 구석에서 마냥 끙끙거리는 게 아니겠어요? 차가 떠나버릴까 봐 혼났다니까요.”
“쳇! 가래침을 핧아먹는 놈이나 사단 연병장에 푸짐하게 똥을 갈겨놓는 놈이나…. 하여간 죽이 잘 맞는다.”
우린 그 소리에 더 이상 얘기할 흥을 잃고 비상이 걸리던 날의 그 씁쓰름했던 기억을 되살리고 있었다. 용무가 급하다던 송상병도 한 동안 멍하니 서 있다가 그제서야 생각이 났다는 듯이 내게서 휴지를 얻어가지고는, 조금 떨어진 곳으로 가서 끙끙거리기 시작하였다.
송상병이 용무를 끝내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쯤, 사방은 이미 훤히 밝아 있었다. 어수선한 주위가 엊저녁의 소란을 조금쯤은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놈들은 어디론가 도망갔겠지?”
“배고파 죽겠구먼. 여태 독가촌 불침번이 안 끝났나, 아니면 복상사(腹上死)라도 한 건가? 왜 쪼인타는 소식이 없다지?”
호랑이도 제 말을 하면 온다 했던가? 능선 마루에 쪼인타의 모습이 가물거렸다.
“순찰까지 하고 오겠다더니, 고양이두 낯짝은 있었던 모양이지?”
그런데…, 이상했다. 아무래도 이상한 것이었다. 쪼인타의 행동거지와 걸음걸이는, 보면 볼수록 이상한 것이었다. 그는 뒤뚱거리며 능선을 넘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그의 뒤를 빠른 속도로 뒤쫓아가고 있었다. 풀숲에 맺혔던 물방울들이 후드득후드득 떨어지고 있었다. 이십여 미터쯤 그를 바싹 쫓아붙었을 때, 우리들은 함께 놀랐다. 저건, 저건? 쪼인타는 분명히 무장공비들의 포로가 된 것이었다. 놈들은 쪼인타를 인질로 삼아 끌고 도망치는 중이었다. 그럼, 놈들은 밤새껏 우리와 대치하고 있었다는 말인가? 지독한 놈들, 하긴 그게 더 안전했을지도 모른다. 저녁내 서로 총질을 해대었으니, 그리고 밤새껏 쥐죽은 듯 조용했으니, 어느 누가 놈들이 여태 엊저녁 그 자리에 고스란히 남아있었으리라고 생각하였을 것인가? 놈들은 수풀의 키만큼 몸을 굽히고 있어서 얼른 눈에 띠지 않았다. 저런 얼간이…, 아니, 어쩌다가…?
쪼인타는 뒤뚱뒤뚱 걷고 있었다. 놈들 중 하나는 아마도 부상을 당한 것 같았다. 왼쪽 한 놈은 아무리 보아도 쪼인타의 힘에 의지하여 걷고 있는 것으로 보였고, 오른쪽에 붙어있는 놈이 쪼인타를 총으로 위협하며 떠다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밤새껏 잠잠해서 이미 멀찍이 도망쳤으리라 생각했었는데, 여직 도망치지 못하고 있었던 것도, 한 녀석의 부상 때문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떡헌다?
놈들은 완전히 능선 위로 오르고 있었다. 가장 많이 놈들의 몸이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능선을 넘으면 숲과 나무로 해서 놈들의 몸은 은폐가 될지도 모른다. 지금 놈들을 그냥 능선을 넘게해 준다면, 추격하던 우리가 더 위험한 입장에 처해지는 것이다. 거리는 이만하면 유효사거리 내에 있다. 가장 적시(適時)인 것이다.
“사격 준비!”
정병장이 명령했다. 그의 명령은 진지했다.
“나는 왼쪽 놈이다! 이일병은 사격률이 좋으니까 오른쪽 놈을 맡아라!”
쪼인타는 놈들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럼, 나, 나는요?”
송상병이 물었다.
“네 솜씨야 특별하니까, 둘 중 아무 쪽이든 골라잡아라!”
정병장이 대꾸했다.
“시간이 없다! 빨리 조준해! 단 한 방씩으로 명중시켜야 한다!”
나는 숨을 조절했다. 가슴의 격동이 멎고, 인지(人指) 둘째 관절이 파르르 떨렸다.
“사격 개시!”
소리와 동시,
“탕!”
“탕!”
“탕!”
세 발의 총성이 울렸고, 세 명의 사람이 쓰러졌다. 명중이다! 명중! 우리는 환호성을 울렸다.
“쪼인타가 대망의 준위 진급이 되겠군!”
정병장이 씁쓸히 말했다.
“그리고 너희들은 일 계급 특진에 포상휴가다!”
“정병장님은요?”
송상병이 바보스레 물었다.
“나, 나 말이야…?”
그는 잠깐 말을 멈추었다.
“정병장님도 하, 하사 진급이 되, 되겠지요?”
송상병이었다.
“재수 없다! 하사가 뭐야?”
“왜요? 장기 하사라문 모, 몰라두 이, 일반 하사 아니예요?”
“글쎄, 재수 없다니까!”
정병장은 소리를 빽 질렀다. 제대 날짜만 세던 그였으니 충분히 이해가 가는 말이었다. 복무 기간 연장, 그는 그것이 제일 참을 수 없는 괴로움이라고 생각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아니! 그런데…?”
두 사람의 말을 막으며 내가 소리쳤다.
“어떻게 된 거죠?”
쓰러진 세 사람이 조금도 움직이질 않는 것이다. 자신 있는 거리에서의 조준 사격이었으니, 웬만한 실력이면 명중시켰으리라는 것은 이해가 가는 일이었지만, 그러나, 쪼인타만은 일어나야 할 것이 아닌가? 왼쪽에 매달리다시피 했던 놈 때문에, 쓰러질 땐 같이 쓰러졌더라도, 놈들이 뻗어버린 이상, 그는 툭툭 털고, “이 개 같은 자식들아! 고맙다아!” 소리라도 지르면서 달려와야만 할 것이 아닌가? 갑자기 한 가닥 불안한 마음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움터오르기 시작했고, 그것은 병균처럼 꼬무락거리면서 무서운 속도로 세포분열을 해, 전신으로 번져가는 것이었다.
“제대가 또 무기 연기되는 건 아냐?”
정병장이 말했다.
“…”
“…”
송상병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들은 그대로 한 십여 분 간을 묵묵히 서 있었다. 그것은 무척이나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한참 만에 우리는 뛰었다. 헐레벌떡, 놈들이 쓰러져 있는 지점을 향하여 뛰었다. 후줄근히 젖어있는 작업복 하의는 두 다리 샅을 흐르는 땀방울까지 배어들어 묵직해졌을 테지만, 그런 건 느껴지지도 않았다.
“이, 이건 도대체…?”
제일 먼저 도착한 정병장의 첫마디였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 어떻게… 돼…됐어요?”
송상병이 더듬거렸다.
“죽어 버렸어!”
순간, 우리는 서로서로 눈길을 마주쳤다. 그리고 다음 순간, 모두가 고개를 떨어뜨렸다. 죽다니…죽다니….
“…”
“…”
잠시 침묵이 흘렀다. 괴로운 침묵이 흘렀다.
“송상병! 너는 어느 쪽을 조준했나?”
정병장의 음성이 떨리고 있었다. 질식할 것만 같던 침묵 속에서 나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죽이고 싶도록 미웠던 쪼인타…‘죽이고 싶도록’ 미웠던….
“왼쪽…, 아, 아니, 오른쪽인가 봐요…. 그래요…, 왼쪽…으로 겨냥했다가…, 또…그 왼쪽에 사람이 있길래…오른쪽…으로 쐈어요.”
또다시 침묵이 흘렀다.
“저걸 그저 요걸로….” M2-CAR 소총을 들고 중얼거리던 정병장…. “왼쪽…, 아, 아니, 오른쪽인가 봐요.” 더듬거리던 송상병, 쪼인타가 ‘죽이고 싶도록’ 미웠던 나….
우리들은 각기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있었다. 누구의 잠재의식이 이런 끔찍한 사태를 야기한 것일까?
“백발일중(百發一中)”의 송상병이 실수했을 가능성, 아니, 그가 그의 말대로 오른쪽을 쏘았다면, 파르르 떨리던 내 인지(人指) 둘째 관절이 그를 쓰러뜨렸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송상병의 말을 어찌 믿는단 말인가? 그는 처음 ‘왼쪽’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정병장이 제대 말년 불만이 자신도 모르게 터져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셋 중, 한 사람의 실수는 분명하지만, 그건 누구의 실수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고, 그렇다고 누구의 실수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사격은 각각 한 발씩만 했고, 공비 한 놈과 쪼인타는 가슴에 관통, 나머지 공비는 엊저녁 다친 듯한 대퇴부 관통상과 두부에의 관통…. 주위에는 흥건히 피가 괴어 있고, 거기에 엉켜붙은 내장과 골수(骨髓)….
내가 죽인 거다…. 나는 저절로 그런 죄의식에 휩싸였다. 아니다, 아니다. 아니, 내가 죽인 거다…. 다른 두 사람도 마찬가지 생각이었다.
“김상사는 자신의 직무를 충실히 이행하기 위하여, 아침 일찍, 무장공비들의 매복 지역 순찰을 하다가 적에게 발각, 장렬한 전사를 한 것이다! 알겠나?”
부관참모 곽철근(郭鐵根) 소령은 아랫배에 힘을 주면서 말했다.
‘왼쪽… 오른쪽’과, ‘저걸 그저 요걸로…’와 ‘죽이고 싶도록 미웠던’ 우리는, 우리의 자세하고도 거짓 없는 상황보고를 받고 나서, 진지하게 말하고 있는 부관참모의 말에, 한 동안 어안이 벙벙했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역시 그는 참모감으로서 손색이 없었다고 느껴진다.
참모는 전 장병들에게 ‘고(故) 김준위(일 계급 특진을 추서하여)와 같은 충성’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고, 우리들 셋은 함께 ‘용감하게 적을 사살한’ 사병으로 규정, 정병장은 예의 그 ‘일반하사’로, 송상병은 병장, 나는 상병으로 일 계급씩 특진시킴과 아울러 포상휴가 일 개월씩을 덤으로 주었다.
포상휴가 이전에, 잘못은 잘못대로 벌을 받아야 한다며, 작전이 완전히 끝난 일 개월 후, 고 김준위가 우리에게 약속했던 ‘사단 영창 십 일’을 살게 했는데, 실상 그것은 김준위의 죽음과 관련하여 우리들에게 내린 은밀스러운 벌이었을 것이었다. 우리는 그러한 참모의 처사를 아주 송구스러운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영창에서 나와 일 개월씩 포상휴가를 떠난 우리들은, 각자가 군대를 떠나 자기집에 가 있으면서 참회하는 마음으로 지내다가 돌아왔다.
귀대하는 날, 우리는 새벽 일찍 A시에 도착하였고, 얌전이네 집에서 만나는 대신에 사단 정문 앞에서 만났는데, 우리들 각자의 손에는 예의 김상사(이제는 준위였지만)에 대한 ‘신고물’이 들려 있었다. 그것은 신탄진도, 아리랑도, 그렇다고 ‘촌지(寸志)’가 들어있는 얄팍한 봉투도 아니었고, 오색 테이프로 장식한 커다란 화환이었다. 우리가 귀대하던 날은, 바로 ‘충성심으로 뭉쳐진 김준위’의 동상(銅像)을 제막하던 날이었던 것이다. ‘마지막 휴가의 마지막 날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면서 동상 앞으로 다가서는 정하사를 따라 송병장과 나, 이상병도 동상 앞에 나란히 섰다.
동상이 서 있는 자리는 바로 작전으로 출동하던 날 새벽, 송병장이 어둠 속에서 끙끙거리며 잔뜩 쪼글트리고 앉아있던 그 장소여서, 우리는 더욱더 만감이 교차하는 속에서 그의 명복을 빌었고, 몇 달 전의 우리를 그토록 못 살게 굴던 쪼인타가 더욱 그리워졌다.
정병장이 말했다.
“김준위는 몇 달 후 노총각 딱질 떼고 장갈 가려고 했다던데….”
나는 그가 그렇게나 ‘신고물’을 밝혔던 것도 다 이유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80이 다 된 노모도 모시고 있었다는데요. 무척 효자였답니다. 같은 동네 사람들에겐 아주 상냥하고 성실한 청년으로 칭송이 자자했다고들 하더군요.”
그 말을 듣고 있던 나는 갑자기 목이 메어옴을 느꼈다. 쪼인타…, 쪼인타…. 이 세상에서는 다시 만나볼 수 없는 쪼인타…. 그가 갑자기 보고 싶어졌다. “이 새끼야! 동작 좀 빨리 취하지 못하겠어?” 등 뒤에서 쪼인타가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새끼야! 이 새끼야! 문득 뒤를 돌아보았으나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다.
몇 시간 후면 제막식을 가지게 될 김준위의 동상 위에 씌워놓은 흰 막이, 이제 봄이 멀지 않았다는 듯, 그 앞에 놓여 있는 화환을 어루만지면서, 불어오는 살랑 바람에, 팔랑팔랑 나부끼고 있었다.
(한맥문학. 05. 2월호. pp.11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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