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문화 체험기

(동유럽 문화 체험기 8) 부다와 페스트를 연결해 주는 세체니 체인 다리

거북이3 2006. 7. 22. 16:02

(동유럽 문화 체험기 8)

      부다와 페스트를 연결해 주는 세체니 체인 다리

                                                              이   웅   재


 헝가리(Hungary)란 훈(Huns)족이 세운 땅[Gary]이라는 뜻인데, 정작 헝가리 인들은 헝그리(hungry)란 말이 연상된다고 그 말을 기피하고 스스로 머저리가 된다. 머저리(Magyar)공화국이라 하는 것이다. 인구의 95% 정도가 마자루(또는 머저리)족이기 때문이다.

 훈족의 시원(始原)을 흉노(匈奴)족, 또는 우리 한(韓)족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이 우리 한민족과 유사한 점은 몽골반점이 있을 뿐만 아니라, 어순이 우리와 같고(성을 먼저 쓰고 이름을 나중에 쓰는 것도), 활을 사용했다, 매운 것을 잘 먹는다는 점 등이다.

 헝가리, 볼펜을 처음 만든 나라이기도 하다. 헝가리산 비타민 C는 식물성이라서 몸에 잘 흡수되는 것이니 구매해도 좋단다. 말이 나온 김에 가이드는 헝가리산 중에서 쓸 만한 물건들에 대해서 설명한다.

 먼저, 악마의 발톱. 넘어져서 다친 데 바르는 크림인데, 한약으로 만든 것이란다. 상처가 남지 않게 하는 약으로 효능이 탁월하다고 해서 나중 2통을 샀다.

 다음, 와인. 여기서 2~3만 원 하는 것이 한국에 가면 20~30만 원 한단다. 가격 때문이 아니라 맛이 어떤가 보기 위해 프랑스의 루이 14세가 ‘왕의 와인, 와인의 왕’이라고 했다는 토카이(Tokaji)와인 2병을 샀다. 1병으로서는 혹시 맛이 좋았을 때 약이 오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3에서 6까지의 숫자로 당도가 표시되는데 숫자가 높을수록 당도가 높고 가격도 비싸다고 했다.

 그리고 돌 냄비. 4개가 세트로 되어 있는 것인데, 50만 원 정도 한다. 한국에 가면 250~260만 원 간단다. 그걸 무거워서 어떻게 가지고 다니나? 사지 않아야 할 정당한 이유가 있어서 안 샀다.

 또 한 가지 가이거(geiger). 한 벌에 40~50만 원 정도 가는 옷이다. 이것도 한국에 가면 120만 원 정도 한단다. 가이드의 말이 쇼핑보다는 여행을 즐기라 했는데, 지당한 말이다. 그래서 당연히 안 샀다. 아, 이건 내 경우에 한하는 얘기다. 다른 사람들은 엄청, 엄청 많이 샀다.

 부다페스트에 도착하여 시민공원을 지나서 영웅광장 쯤에서 현지 가이드가 승차했다. 남자였다. 그는 지금 지나고 있는 곳이 40여 개의 대사관 들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라면서 한국대사관은 촌스럽게스리 살색 건물로 지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게 전화위복이 되었단다. 여권을 잃어버린 관광객이라든가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대사관을 찾아 오려고 할 때면 그 우스꽝스러운 빛깔 때문에 아주 쉽게 찾을 수가 있어 편리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었다. 자기소개를 하는데 이곳 유학생 회장을 지냈단다. 우리 가이드가 우우~하면서 야유를 한다. 그 소리가 끝나자 현지 가이드 왈,

 “유학생이 4명이었지요. 아, 그리고 또, 회장은 나이순으로 뽑는답니다.”

 버스에서 내려 식당으로 가는데 좌우의 건물들이 모두 고색창연하다. 건물마다 인물조각상 장식이 많았고, 양파 모양의 지붕도 이국정취를 북돋워 주었다.

 중식 후 우리는 왕궁의 언덕으로 향했다. 부다 언덕에 처음 왕궁을 만들었던 사람은 베라4세(소금광산의 수호신 '킹가' 공주의 아버지)였고, 마차시 왕 시절(1458-90)에  황금기를 구가했단다. 전통적으로 부다 지역은 왕궁 등 행정관서로, 페스트 지역은 주로 주거지역으로 이용되었던 곳이다. 그 두 지역을 연결시켜주는 다리가 세체니(Szechenyi) 다리이다. 이 다리는 부다와 페스트를 연결해주는, 다뉴브 강에 제일 먼저 만들어진,  ‘이슈트반 세체니’ 백작에 의해 건설된 다리로 1949년에 완성되었다. 그는 배로 강을 건너서 아버지 장례식에 참석해야 되는데 날씨가 아주 나빠서 8일간이나 강을 건널 수가 없었다. 그 아픈 기억이 이 다리를 건설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밤에 불을 밝히는 전구가 사슬처럼 보여서 세체니 체인(사슬) 다리라 불린단다.      버스는 이 다리를 건너 우리를 왕궁의 언덕 아래쪽에 내려 주었다. 성으로 들어가는 문의 양 쪽으로는 우리나라 절 입구의 금강역사 비슷한 조상(彫像)들이 각각 3개씩 배치되어 있어 놈들에게 눈인사를 하고 마차시(Matyas) 성당으로 향했다. "베라4세"에 의해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이 건설되었고, 14세기에 현재의 모습과 같은 고딕 양식으로 바뀌었으며, 마차시왕 시대에 80m의 고딕 탑이 세워지면서 마차시 교회라 부르게 되었단다. 높이는 88m.   성당을 끼고 왼쪽으로 돌아서 내려오면 힐턴 호텔 앞에 어부의 요새가 보인다. 이곳 중세 방어벽은 어부 협동조합이 방어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성벽의 이름은 근처 어시장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휴식 시간을 가지면서 쇼핑도 하였다. 앞서 말했던 악마의 발톱과 와인을 산 곳도 여기였다. 그리고 우리는 대통령 영빈관 앞을 지나갔다. 경비병이 있을 법한데 보이질 않는다. 조금 후에 보았더니 경비병 2명은 관광객과 기념사진을 찍느라고 자리를 비운 것이었다. 세상 많이 변했다. 드디어 왕궁으로 가 보았다. 왕이 살았던 적은 한 번도 없단다.

 자리를 이동하여 겔레르트(Gellert) 언덕을 올랐다. 그 끝 쪽 정상에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독립을 기념하기 위해 모스크바 쪽을 향해 세웠다는 종전기념비인 높이 14m의 자유의 여신상이 서 있었다. 시의 거의 중심에 있어서 부다페스트의 전망대라고도 하는 곳이다. 뉴욕에만 있는 줄 알았던 자유의 여신상을 여기서 대하게 되니 조금은 얼떨떨했다. 그녀는 자유를 기념하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자유를 염원하기 위한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것인가? 자유란 그렇게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면서도 쉽사리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나는 자유의 여신상을 바라보면서 절실하게 느꼈다. 자유의 여신상-그건 분명 하나의 아이러니였다.

                                  (06. 7. 21. 원고지 15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