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문화 체험기 9)
아우토반을 탄생시킨 무솔리니의 애인이 살던 꼬모, 그리고 히틀러
이 웅 재
자유의 여신상 아래에 서 있는데 물방울 하나가 뚝 떨어진다. 여신상이 눈물을 흘리는 것일까? 얼핏 그런 생각을 하는 중에 물방울은 또 떨어진다. 오호라, 빗방울이었다. 오늘 밤 유람선 야경 관광이 예정되어 있는데 약간 걱정이 되었다.
내려오는 길에는 주차해 놓은 자동차들이 많이 있었는데 차종이 다양했다. 그 가운데서 국산 OPIRUS와 Rio가 보여 반가웠다. Stadion Hotel로 가는 도중에는 Han Wha Bank도 보였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에도 나오는 노란색의 국제선 동부역을 지나 호텔에 들어가 여장을 풀고 석식 후 8:45 유람선에 승선하다. 헝가리의 왕실 건물을 비롯한 대부분의 유서 깊은 건물들은 대체로 노란 빛깔이었다. 마리아 테레지안 옐로우(Maria Theresian Yellow)라고 하는 빛깔이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합스부르크의 통치자 중 18세기의 가장 중요한 인물이요, 가장 유능한 인물이며, 가장 인간적이고, 가장 매력적인 여왕으로 말년에는 나중에 얘기될 오스트리아의 빈(Wien; 영어로는 Vienna)에 있는 쇤부른(Schonbrunn) 궁전을 개축하여 그곳에서 여생을 보냈던 여제이다. 그녀는 16명의 자녀를 두었으며, 초등학교 의무교육을 처음으로 실시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녀는 합스부르크의 모든 지역의 건물들을 이 빛깔로 장식하도록 명했던 것이다.
도중에 보이는 거리 풍경은 썰렁했다. 대부분의 상점들이 철시를 한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6시만 되면 웬만한 상점은 문을 닫는다, 주 30시간 노동인 것이다. 법정 노동시간이 주 40시간이지만, 실질 노동시간은 45시간이 되는 우리나라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OECD회원국이라는 것이 오히려 부끄러울 지경이다.
선착장에 떠다니는 쓰레기들이 다뉴브 강의 이미지를 반감시켰다. 둔치 하나 없는 다뉴브 강은 잘 정리된 한강 둔치의 깨끗함이라든가 여러 가지 시설물 등에 비한다면 삭막하기 그지없는 강이다. 그런데도 이 다뉴브 강이 인구에 회자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한 마디로 강변 건물의 차이 때문으로 보였다. 유서 깊은 건축물 대 멋대가리 없이 시멘트로 발라 놓은 천편일률적인 아파트 군(群), 우리나라도 이제는 미적 감각, 예술적 정취가 물씬 느껴지는 건축물을 짓도록 의무화해야 하지 않을까?
다뉴브 강의 야경은 정말로 황홀했다. 저 멀리 자유의 여신상이 내려다보고 있었고 그 아래로 건물마다 찬란한 불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세체니 체인 다리의 반짝이는 불빛의 사슬, 그것은 잊혀지지 않는 기억을 남겼다. 늦은 시간에 호텔에 돌아와 자는 잠마저도 오늘은 무지개 빛깔을 띠고 있었다.
6월 28일, 수요일.
오늘은 오스트리아로 간다. 차창 밖으로 헝가리의 바다라고 불리는 발라톤 (Balaton)호수의 한 자락이 보인다. 바다가 없는 중부 유럽에서 가장 큰 호수란다. 우리의 여행 일정에는 발라톤 호수가 들어있지 않아서 그곳에서의 ‘Disco Ship´을 타 보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
우리가 달리는 도로에는 공사하는 구간이 많았다. 그것을 보고 가이드는 독일의 아우토반(AUTOVAN)에 대한 강의를 한다. 아우토반이란 ’자동차를 위한 도로‘라는 뜻이란다. 오직 독일만이 유일하게 고속도로에서 최고속도에 대한 법적 제한이 없고, 독일만이 유일하게 아우토반 사용료가 없다. 그런데, 한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아우토반에서의 평균속도는 시속 130km라고 한다.
아우토반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All roads lead to Rome).’는 말이 있다. 기원 전 100년 경 로마인들은 무려 85,000Km의 길을 닦았다. 군사적인 목적이었긴 하지만 로마인들의 발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던 것이다. 보통 아우토반을 처음 건설한 사람을 히틀러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처음 건설자는 이탈리아의 무솔리니(Mussolini, Benito)라고 한다. 그는 로마인의 후예답게 많은 군사도로를 개설했다. 그에게는 사랑하는(사랑이라는 이탈리아 말은 아모레[amore]) 애인이 있었다. 그 애인이 사는 곳이 꼬모였다. 꼬모호수가 있는 곳이다. 무솔리니는 군사도로가 끝나는 곳에 이 꼬모를 연결했다. 그리고 그 꼬모로 달리는 길을 그의 친구였던 히틀러가 함께 달려 보았던 것이다.
히틀러는 1차 대전이 끝나고 모두가 전후의 가난에 허덕일 때, 아우토반 건설에 착수했다. 국민들에게 국민차인 폭스바겐을 주고 아우토반을 마음껏 달릴 수 있게 해 주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국채 발행을 하여 총연장 약 4,000km에 이르는 아우토반을 건설했던 것이다. 아우토반 건설에 부수되는 조경산업 등에까지 공공노역을 실시하여 당시 600만 명이 넘던 실업자들에게 일자리를 줌으로써 전후 유럽에 치명적이었던 대공황에서 가장 먼저 벗어날 수 있게 했던 것이다.
눈, 비가 많은 아우토반 지역, 그래서 그곳의 도로 건설에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했다. 1m 깊이로 땅을 파고 50cm의 모래 ․ 자갈을 깔고, 다시 30cm 정도는 시멘트를 친 후 열선 카펫을 깐다. 그리고 나머지 20cm 부분을 아스팔트나 시멘트로 포장하여 마감하는 것이다. 이 기법은 우리나라의 고속도로에서도 그대로 시공되었다.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은 이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5,000년 동안 굶주려 왔던 대한민국 국민들을 기아선상에서 해방시켰던 것이다.
덧붙이는 얘기 하나. 아우토반은 스트레스를 날려주는 구실을 한다. 그것 때문에 우리나라 제일의 재벌 SS그룹의 총수가 손수 운전대를 잡고 신나게 달리다가 사고가 나서 허리가 굽어진 것이다. 워낙 그 치료에 엄청난 돈을 썼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고 돈이 없는 사람이었다면 전혀 운신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의 딸마저 불귀의 객이 되었다니, 아아. 인생무상이로소이다.
(06. 7. 22. 원고지 15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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