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허삼관 매혈기(許三觀 賣血記)를 읽고
(위화 장편소설/최용만 옮김. 푸른 숲. 2004. 342 p.)
이 웅 재
이 소설은 평생을 피를 팔면서 살아온 허삼관(許三觀)의 얘기이다. 이것은 요즘 얘기는 아니다. 그렇다고 아주 오래된 이야기도 아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들은 지나간 시절을 회상하게 된다. 작가는 “지나간 삶을 추억하는 것은 그 삶을 다시 한 번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고대 로마의 시인인 마티에르의 말을 끌어들인다. 그 말대로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난했던 시절의 나의 삶을 다시 한 번 살아보았다. 그런데 그것은 단순한 재생이 아니라, 전체적인 조망이 가능한 삶, 나름대로의 비판이 수반되는 삶이라서, 내 삶의 굴곡을 때로는 후회하고 때로는 다행으로 여기면서 반추해 보았다.
작가는 또한 이 소설을 “평등에 관한 이야기”라고도 했다. 하이네의 경우에도 “삶이란 고통의 한낮이기 때문에 죽음만이 유일한 평등임을 알았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기실은 삶이란 ‘불평등’이라는 점을 드러내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아주 재수 없는 일을 당했을 때 다른 사람들도 같은 일을 당했다면 괜찮다고 생각’한다는 말에서, 우리들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얼마나 많은 평등을 갈구하며 살아왔는가를 생각해 보게 만든다.
허삼관은 처음 다른 사람이 피를 파는 것을 보고 그냥 덩달아 피를 팔아 보았다. 한 번 피를 팔면 35원을 받는데, 반년 동안 쉬지 않고 땅을 파도 받을 수 없는 돈이었다. 피를 늘어나게 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먹을 수 없을 때까지 물을 마셔야 한다. 뿐만 아니라 오줌이 마려워도 참아야 한다. 그렇게 해서 판 피를 두고 허삼관이 말한다.
“제가 공장에서 일해 번 돈은 땀으로 번 돈이고, 오늘 번 돈은 피 흘려 번 돈이잖아요. 이 피 흘려 번 돈을 함부로 써 버릴 수는 없지요.”
그러고는 그 돈으로 꽈배기 서시(西施)라고 불리는 출중한 미모를 지닌 허옥란(許玉蘭)을 아내로 맞이한다. 그런데 그녀는 허삼관에게 시집오기 전에 하소용(何小勇)과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그녀가 아이를 낳는다. 진통으로 고통스러워하는 그녀의 악 쓰는 소리를 들어 보자.
“허삼관! 이 개자식아, … 난 아파 죽겠는데, 넌 어디로 도망간 거냐구….”
“아이야! 아이고 아파!…허삼관, 네가 날 또 이렇게 죽이는구나…. 아이야! 널 죽이고 말 거야….네가 무릎을 꿇고 내게 빌어도 난 너랑 안 잘 거야….”
그녀는 아들 셋을 낳았다. 이름은 일락, 이락, 삼락이었다. 그녀가 탄성을 지른다.
“내가 분만실에서 고통을 한 번, 두 번, 세 번 당할 때 당신은 밖에서 한 번, 두 번, 세 번 즐거웠다 이거 아냐?”
그런데 일락이는 자라면서 하소용을 빼어 닮는다, 거기서 생기는 많은 갈등. 그 일락이가 대장장이 방씨의 아들을 돌로 찍어 그 치료비 때문에 가재도구를 모두 빼앗기게 되자 가산을 되찾기 위해 다시 피를 판다. 그런데 그와 같은 심각한 장면들이 바보스러움으로 환치되면서 빙긋이 웃음을 머금게 만든다. 고도의 수법이다. 루쉰의 ‘아큐정전’을 읽는 듯한 착각을 가지게 만든다. 아무리 같은 중국의 작가라고 하지만, 사람이 다르고, 더군다나 번역된 글에서 그처럼 유사한 느낌을 가지도록 만들고 있을까? 글도 나라마다의 색깔이 있는 모양이다.
작가는 허옥란에게만 짐을 지우지는 않았다. 허삼관도 같은 직장 동료인 임분방(林芬芳)과 정사를 벌이게 만든다. 바로 평등을 위한 장치일 것이다. 허삼관은 다리가 부러져 병원에 누워있는 임분방에게 뼈다귀 등을 사 주기 위해서 또 피를 팔았는데, 그만 그 사실이 허옥란에게 알려지는 바람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기도 한다.
다음번의 피 팔기는 문화대혁명 과정에서 먹고 살기가 힘들어져 생일날에까지도 옥수수죽을 먹어야 하는 일을 겪은 다음이었다. 그날 그는 말로만 요리를 해서 식구들에게 먹여 주었다. 그리고는 식구들에게 맛있는 밥 한 끼를 먹여주기 위해서 피를 판다.
그리고 하소용이 트럭에 치어 죽게 되자 한때 흐뭇해하기도 한다. 그건 어쩌면 우리들의 모습 그대로가 아닌가? 우여곡절 끝에 하소용의 아들인 일락이를 자신의 아들로 받아들이고, 일락이가 간염으로 다 죽게 되자 하소용의 부인에게까지 가서 돈을 빌리는가 하면, 그를 먼저 상해의 병원으로 보낸 다음, 뒤미처 상해로 가면서 병원비를 벌기 위해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까지도 계속 피를 파는 허삼관을 보면서 우리는 그의 사람됨에 콧날이 시큰해지기도 한다.
상해 병원에 도착하여서는 또 어떤가?
“일락아, 방금 들어와서 네 침대가 빈 걸 보고, 난 네가 죽은 줄 알고…” 그러면서 허삼관은 눈물을 쏟아내는 것이었다.
그의 나이 예순. 이제는 아들 셋이 모두 결혼해서 분가하여 자식들을 낳고 살고 있어서, 생활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런데 예전에 피를 팔았을 때 먹던 돼지간볶음과 황주 두 냥이 먹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자신을 위해서 피를 팔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병원을 찾았으나…,이제는 늙었다고 피를 사지 않겠다는 젊은 혈두의 말에 그만 기가 팍 죽어버리고 만다. 그 혈두는 삼락이보다도 어렸다. 그가 말했던 것이다.
“알겠냐고요. 당신 피는 가구 칠감으로 딱 알맞다니까…. 거기나 가보시지 그래요….”
허삼관에게서 그 말을 전해들은 허옥란이 말했다.
“그 자식, 삼락이보다도 어린 자식이 감히 그렇게 말하다니. 우리가 삼락이를 낳았을 때 세상에 있지도 않았던 자식이 말이야….”
그 말을 듣고 허삼관이 하는 말이 이 소설의 맨 끝 문장이다.
“그걸 가리켜서 좆털이 눈썹보다 나기는 늦게 나도 자라기는 길게 자란다고 하는 거라구.”
(06. 8. 19. 원고지 15매)
'독서(요약)' 카테고리의 다른 글
白居易 「醉吟先生傳」 (0) | 2017.12.12 |
---|---|
만들어진 제3의 성 환 관 (0) | 2006.10.05 |
김삿갓(이웅재 정리) (3) | 2006.08.15 |
궁궐의 꽃 궁녀 (신명호 지음. 시공사. 2004. 294p.)[이웅재 요약] (0) | 2006.08.14 |
장편소설 “아내가 결혼했다”를 읽고 (0) | 2006.06.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