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베트남 문화 체험기 9)
당신, 뱀의 정령과 매일 4시간씩 동침할 능력 있나요?
이 웅 재
앙코르의 미소를 가슴 속에 새기고 난 우리 일행은 바프온(Baphuon) 사원으로 향했다. 이 사원은 현재 복원 중이라서 비공개 사원이다. 복원을 위해서 해체한 돌 30만 개에 일일이 번호를 매겨 놓았었는데, ’75-79년까지의 폴포트 정권에 의한 대학살로 복원의 책임을 맡았던 프랑스인들이 죽어가면서 그 설계도도 함께 행방불명이 되는 바람에 지금은 원형대로 복원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한다. 그 동안 5차례나 붕괴되기도 했고, 복원을 하기 위해 준비했던 흙은 세월이 지나면 굳어져 버리게 되다 보니 졸속 복원을 위해 콘크리트를 사용하기도 하고 있다고 했다. 금년 말쯤이면 복원이 끝나 일반인들에게 공개될 가능성도 있다는 사원이었다.
바프온이란 ‘숨긴 아이’라는 뜻이란다. 한 때 크메르 왕이 형, 씨암(Siam)제국의 국왕이 동생이던 적이 있었단다. 그런데 씨암 제국의 왕이 왕세자를 크메르 제국에 보내어 왕세자로서의 수업을 받게 했었는데, 그의 영리함을 보게 된 크메르 제국의 대신들이 그를 일찍 제거하지 않으면 후환이 두렵다고 계속 간하는 바람에, 크메르왕은 할 수 없이 조카의 목을 베어 버리고 말았단다. 당연히 국제 분쟁으로 이어져서 씨암 제국이 침략해 들어왔고, 크메르 제국에서는 모두가 죽게 되더라도 크메르의 왕세자만은 살려야 한다고 숨겨 두었던 곳이 바로 이 바프온이었다고 한다. 그 피비린내 나는 역사의 현장이 지금 저렇게 폐쇄된 채로 쓸쓸히 서 있는 것이다.
번호가 매겨져 있는 몇몇 돌들을 만져 보았다. 돌이 무슨 말이 있을까마는 손에 닿는 감촉이 꺼칠꺼칠하면서도 푸석푸석한 느낌이었다. 왕세자 하나는 큰삼촌에게 목이 잘려 죽고, 또 다른 왕세자 하나는 작은삼촌 손에 죽지 않기 위해서 숨겨졌던 곳의 돌들, 그 돌들도 이제 제자리로 돌아가 복원되기는 글러 버렸으니, 이 또한 앙코르의 비극이 아닐까 보냐?
앞쪽에는 큼지막한 인공호수가 있었는데, 왕비와 공주가 사용하던 목욕탕이라고 했다. 국왕과 왕자가 사용하던 목욕탕은 건물 뒤쪽에 있었다든가? 모계 중심사회의 일면을 보여주기도 하는 유적이라고 했다. 이 사원에는 남성 성기 모양의 링가(Linga)가 모셔져 있다고 하였으나 비공개라 아쉽게도 관람할 수가 없었다.
바프온 사원을 지나 ‘하늘의 궁전’이라는 피미아나카스(Phimeanakas) 궁전으로 가는 길목엔 처녀 하나가 앉아서 손을 벌리고 있었다. 다리가 없었던가? 아마도 지뢰의 피해자인 듯한데, 그 꽃다운 나이에 관광객들 앞에서 앵벌이를 하고 있는 모습이 하도 딱하게 보여 지나치던 걸음을 되돌려 거금 1달러를 쾌척하고서야 마음이 편해졌다. 아가씨는 ‘감사합니다’ 하는 말을 잊지 않았다.
피미아나카스는 왕궁과 맞붙어 있었다. 옛날 원나라 세관원으로 앙코르 톰에 거주했던 주달관(周達觀)의 기록에 의하면 3층 꼭대기는 황금으로 입혀져 있어 황금탑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고 한다.
3층은 성소, 아방궁이다. 하지만 그곳은 의무적인 섹스가 이루어지던 장소였단다. 옛날 달의 정령과 머리 아홉인 나가신 사이에서 머리 일곱인 소마 공주가 탄생했단다. 그 공주가 꽃다운 나이가 된 시절, 나날이 여위어 가더라는 것이다.
알고 보니 가운시나 왕자를 짝사랑하는 상사병에 걸려서 그렇게 말라가게 된 것이었단다. 왕자를 그리워하여 그녀가 흘린 눈물은 근처를 온통 물바다로 만들어 버리게 되었고, 드디어 아버지인 나가 신도 딸의 사랑을 모른 체할 수만은 없어 몰래 가운시나를 훔쳐보았는데, 저런! 남자가 남자를 보아서도 한눈에 뿅! 갈 정도로 잘 생겼더란다. 그래 할 수 없이 인간(왕자)과의 결혼을 허락했단다.
문제는 소마 공주는 신(神)의 몸이라서 영원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데, 왕자가 태어날 때 신에게서 받은 수명은 30년이었다는 것이었다. 당시 왕자의 나이는 19살, 앞으로 살 수 있는 기간은 11년일 뿐이었다. 그래서 소, 돼지, 개의 수명을 30년씩 단축시켜 그것을 왕자에게 주었단다. 그래야 120년, 공주의 영원한 생명에 비하면 아주 짧은 시간일 뿐이었다.
그러나 가운시나 왕자는 자신이 죽은 다음에도 계속 후손들로 하여금 소마 공주를 외롭지 않게 해 주겠다고 맹세를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가 신은 9개의 머리로 근처의 물을 다 빨아들이고 땅만 남게 만들었으며, 왕자가 죽은 후에도 왕의 자리에 오른 사람은 매일 왕비와 잠자리를 하기 전 이 하늘의 궁전에 올라가 소마 공주와 4시간에 걸친 동침을 해야만 되었다는 것이다.
성기를 둘씩이나 가진 뱀, 교미 시간이 72시간이나 된다고 해서 뭇 남성들이 정력제로 잡아먹는 뱀과의 동침에서 코와 귀가 유난히 큰 크메르의 임금님들은 얼마나 많은 정기를 받았던 것일까? 결과론적으로 보아 앙코르 제국은 멸망하여 오랜 동안 세상의 이목에서 사라졌던 것을 상기하면, 너무 지나친 정력의 소비로 왕 자신의 체력도 바닥이 났고, 그것이 그대로 왕국의 멸망으로 이어졌던 것은 아닌지? 다르게 생각한다면 임금님들의 지나친 호색으로 경국(傾國)의 역사를 초래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추단(推斷)을 해 보기도 하였다.
이 피미아나카스 궁전의 3층으로 오르는 계단도 고바위, 앙코르와트의 3층에 버금가는 곳이라는데, 이미 한번 3층 계단을 올라보았기에 이곳에선 다시 3층으로 올라가 보는 관광은 주어지질 않았다. 실은 압사라와의 동침이 가능했던 앙코르와트의 3층과 소마 공주와 의무방어전을 치러야 했던 피미아나카스의 3층을 외관상으로만이라도 비교해 보고 싶었는데 좀 아쉬웠다. 하기야 매일같이 4시간씩 뱀의 정령과 동침할 만한 근력이 있을 턱이 없는 내가 아쉬워해 보았자 말짱 쓰잘데기 없는 일이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애써 비관할 일만도 아닌 듯싶다. 바로 내가 뱀띠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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