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베트남 문화 체험기

(캄보디아, 베트남 문화 체험기 6) 드디어 나도 신이 되다

거북이3 2007. 2. 20. 02:33
 

(캄보디아, 베트남 문화 체험기 6)


        드디어 나도 신이 되다

                                                                        이   웅   재

 

  이제 3층 천상계가 눈앞에 다가왔다. 경사도 70도의 계단 40개, 말로만 듣고 사진으로만 보아서는 그 가파름이 실감이 잘 되지 않는다. 고혈압과 고소공포증 환자는 올라가지 말라는 주의사항을 적어놓은 표지판도 있었다. 더구나 계단은 그 폭이 매우 좁아서 정상적으로 발을 디디고서는 오를 수가 없고 약간은 옆으로 디디고 지그재그식으로 올라가야만 되어 있기에 보기만 해도 상당히 위험해 보였다. 그런 계단을 여러 사람이 함께 올라야 하는 것이다 보니 나 혼자만 잘한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었다. 만일 위쪽의 어느 한 사람이 발을 헛디디는 날에는 그 밑에서 오르던 사람까지도 함께 굴러 떨어질 수밖에는 없는 일이기에 ‘여기까지 와서’ 목숨을 걸 일이 있을까 싶어 처음에는 포기해 버릴까 했었다. 더구나 나는 요즈음 무릎이 좋지 않아 늘 다니던 국립공원 탐방도 중지하고 있는 실정이 아니던가?

 우리 일행 몇몇 사람도 계단에 붙기 시작했다. 뭐 신의 궁전에 오르면서 뻣뻣이 서서 오르지 못하게 하기 위해 그처럼 가파르게 만들어 놓았다나 하는 말을 들으니 은근히 오기가 발동한다. 그래, “여기까지 와서” 신의 궁전엘 들러보지 못하다니…. 해서 나도 따라 붙었다. 계단은 정말로 가팔랐다. 사실 가파르다고 생각하게끔 하는 그 설명들 때문에 더욱 가팔라진 것일 터이다. 그렇게 가파르다고 생각하니 아닌 게 아니라 점점 더 가파르게 느껴져서 도저히 아래쪽을 내려다볼 수가 없었다. 중간쯤 오르니 다리도 차츰 아파지고 있었다. 하지만 어쩌랴? 중간에서는 내려오는 일이 더욱 위험한 것을…. 다행인 것은 가끔 가다가 계단에 작고 둥그런 홈이 패어 있는 것이었다. 아마도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 만들어 놓은 배려인 듯싶었다. 어쨌거나 그 홈을 찾아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다 보,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히로다’, 드디어 나도 신이 되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하는 말을 듣고는, “큰일 났다, 올라오지 말 것을….” 하는 후회가 앞섰다. 바로 그 계단 하나씩 오를 적마다 한 살씩 더 살 수가 있다는 것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40계단을 올라왔으니 40년을 더 살 수 있다는 말이니, 어찌 식겁(食怯)하지 않을 수가 있을 것이랴? 이제까지는 더러 미지의 세계에 대한 나름대로의 호기심도 있고 때로는 아기자기한 삶의 즐거움도 있어서 그럭저럭 살아왔지만, 앞으로도 40년, 늙은이로 구박받으면서 그 긴 세월을 어찌 살아가랴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쩔 것이랴? 이왕 올라왔으니, 이곳저곳 구경이라도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신의 궁전도 여기저기 헐고 무너져 내린 상태였다. 그리고 지금은 비슈누신도 수리야바르만 2세도 만나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회랑 곳곳에서 선택받아 3층까지 올라와 있는 압사라들은 만나볼 수가 있어 다행이었다. 여행객들에게 압사라들과 함께 사진 찍기에 좋은 장소를 손가락질로 가리켜주는 캄보디아의 소년은 1달러를 위해서 매우 친절했다. 그가 손짓하는 구석진 곳의 압사라는 정말로 3층까지 올라올 만한 자격이 충분한, 아주 풍만한 가슴을 지닌 농염한 모습의 천상무희였던 것이다.

 중앙 돔 위쪽으로는 이름 모를 나무도 한 그루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 보였고, 군데군데 불상을 놓고 향을 피워놓은 곳도 있었다. 그 곁에는 어김없이 1달러짜리 향이 준비되어 있음도 물론이었다.

 3층의 중앙에는 목욕탕도 있었다. 바위로 짜 맞추었으면서도 물이 새지 않았던 목욕탕의 건축술도 놀라웠지만, 이곳까지 어떻게 계속 물을 공급했을까 하는 점도 매우 궁금했다. 하지만 가이드는 신화만 전할 뿐이었다. 마치 우리의 옛 신라 시절, 서라벌 포석정의 유상곡수(流觴曲水)처럼 저절로 물이 채워지고 흘러가고 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마태복음 제1장을 떠올렸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

 아니, 그와 같은 표현은 우리의 삼국유사 김알지조(金閼智條)에도 나온다.

 ‘알지(閼智)는 열한(熱漢)을 낳고 열한이 아도(阿都)를 낳고 아도가 수류(首留)를 낳고 수류가 욱부(郁部)를 낳고 욱부가 구도(俱道)를 낳고 구도가 미추(味鄒)를 낳았는데… ’

 그뿐인가? 이와 같은 표현은 조선왕조실록의 이태조의 세계(世系)를 서술하는 부분에서도 나오는 것인 바, 약간의 변형을 시켜보면 아주 절묘한 경구(警句)가 되는 것이다.

 ‘선은 선을 낳고….’ 아니면, ‘악은 악을 낳고….’ 그것도 아니면, ‘욕망은 욕망을 낳고….’

 욕망은 욕망을 낳고…, 글쎄, 그런 곳에서 압사라들에게 몸을 씻기고 있는 수리야바르만 2세가 부럽지 않았다면 거짓말일까? 거짓말이라고 한다면,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겠지?’

 부정스러운 마음을 가지는 사람은 내려갈 때 화가 있을진저. 그래서 걱정을 했지만 다행이었다. 내려가는 쪽에는 안전 쇠줄이 가설되어 있었던 것이다. 예전에 어떤 프랑스인 부부가 여기서 내려가다가 그 남편이 떨어져 죽은 일이 있었는데, 그 부인이 다시는 그런 사고가 발생하지 말라고 쇠줄의 가설비용을 부담한 덕분이란다. 그러니까 나는 그 프랑스인이 죽은 것을 고마워해야  하는 불경함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나중에 내려와서 보니 이곳의 어린아이들은 내려올 때에도 올라갔던 곳에서 밑을 내려다는 자세의 엉덩방아로 시시덕거리며 내려오고 있었다.

 앙코르와트 관람을 마치고 나올 때에는 성곽이 허물어진 곳이 길이 되어 그곳으로들 다니고 있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까지 등록된 곳의 관리 상태로는 낙제점이 아닐까 여기지기도 했지만, 계속되는 유적지의 관광을 하고 난 다음의 느낌으로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쪽으로 마음을 너그럽게 가지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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