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그건 알아 뭐하니?
이 웅 재
“때르르릉!”
수영장에서 돌아와 현관문을 들어서자마자 전화 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부랴부랴 수화기를 들었다.
“625×번이죠?”
번호는 맞지만, 못 듣던 남자의 목소리다.
“예, 그런데요?”
“요번에 카드를 많이 쓰셨네요.”
“네?”
“286만 원을 쓰셨는데요.”
“아니, 어디시죠?”
“카드 회사인데요.”
“안 썼는데요.”
“286만 원을 결제하셨는데요?”
“무슨 카드인데요?”
“삼×카드요.”
“전 요새 삼×카드 쓴 적이 없어요.”
“쓰신 것으로 되어 있는데요.”
“어디서요?”
“LG백화점에서요.”
LG백화점? 좀 이상했다.
“분당엔 LG백화점이 없는데요.”
“부천 LG백화점에서 쓰셨는데요.”
“부천엔 간 적이 없는데요.”
“아하, 그러면 누구 다른 사람이 사모님 카드로 썼나 보네요.”
“카드도 분실하지 않았어요.”
“그럼, 혹시 최근에 새로 보내드린 카드 받으셨나요?”
“아니요.”
“저희가 새로 보내드렸거든요. 그걸 누가 중간에서 가로챘나 보네요.”
“카드 새로 신청하지도 않았는데….”
“사용 조건이 좀더 좋은 카드를 보내드렸거든요.”
“그럼, 그걸 어디서 확인해야지요?”
“확인하시려구요?”
“예.”
“그럼, 8번을 누르세요.”
그래서 전화기 번호판의 8번을 눌렀다.
“삼×카드 윤혜영입니다.”
그래서 통화를 했더니, 새로 카드를 우송했고, 어제 부천 LG백화점에서 286만 원을 결제했다는 것이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카드를 받은 적이 없으니 내 책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해 보았다.
“카드 받았다는 사인 해 준 적이 없는데요.”
“그래도 일단 그 카드로 결제가 되었으니 돈이 빠져나가기 전에 빨리 신고해야 되지 않겠어요?”
결제하는 순간 돈이 빠져나갈 텐데…, 하는 생각 따윈 들 여지도 없었다.
“어디로 해야지요?”
“금융결제원에 사이버수사대가 있어요.”
“거기가 몇 번이지요?”
“아, 제가 연결해 드릴게요. 사모님 핸드폰 번호 좀 가르쳐 주세요. 핸드폰으로 전화 걸어드리도록 할 테니까요.”
황망 중 어찌해야 모르겠던 판에, 아이구, 친절도 하셔라 하는 생각을 하며 핸드폰 번호를 열심히 불러주었다.
3분 만에 핸드폰으로 연락이 왔다.
“사고가 난 카드가 무슨 카드지요?”
대답을 했더니, 이번에는 무슨 은행과 거래하느냔다.
“우리은행인데요.”
“잔고가 얼마나 되지요?”
잔고는 왜 물어보지? 그러나 생각할 틈이 없었다.
“100만 원 정도요.”
“그러면 결제가 안 되지 않나요?”
“아니, 마이너스통장이에요.”
“아, 그래요? 그러면 카드 번호 좀 불러주실래요? 앞면의 것 하고 뒷면의 것 중에서 끝 두 자리 번호요.”
그때 마침 카드가 내 손에 있었다. 전화 목소리를 따라 뒷면을 보던 나에게 ‘1588-××××’이라는 상담전화 번호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 이리로 한번 연락을 해 보자. 계속해서 뭔가 찜찜한 느낌이 들었던 나는 그런 생각을 했고, 그래서 카드를 찾아볼 테니까 조금 후에 다시 전화를 해 달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상담전화로 전화를 하고 자초지종을 얘기했더니, ‘그거 사기’라는 것이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서 우선 은행에다가 연락을 해 놓고 기다렸다. 사이버수사대라는 데에서 다시 전화가 왔다. 발신자 전화번호를 보려고 했더니 번호가 이상했다. 국내가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또 곧 전화번호가 사라졌다. 그래서 말했다.
“아, 아까 얘기한 우리은행엔 잔고가 별로 없어서 요새는 지급은행을 국민은행으로 바꾸어 놓은 걸 깜빡했네요.”
“그래요? 거긴 잔고가 얼마나 있는데요?”
“그 통장엔 한 1억쯤….”
놈의 목소리가 갑자기 활기에 찬 듯했다.
“빠져 나가기 전에 빨리 막아야지요.”
드디어 마지막 찬스.
“그런데, 잔고가 얼마냐고 물으시는데….”
하고 말을 잠깐 끊었다가 빠르게 말했다.
“너 그건 알아 뭐하니?”
순간, 전화가 뚝 끊기더란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퇴근해 집에 돌아온 다음 아내가 나에게 해준 말이다. 그 사기범 님, 마지막 아내의 말에 얼마나 식겁(食怯)을 했을까?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속이 다 시원해진다.
이튿날이었다. 아내는 그 속편을 설파한다.
“수영장에 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줄 양으로 그 얘길 했더니, 글쎄, 벌써 1,600만 원이나 당한 사람이 있다는 거야.”
“뭐, 1,600만 원이나? 어떻게?”
“80만 원을 결제했다면서 그걸 취소시켜 준다고 해서 시키는 대로 했대.”
“아니, 80만 원짜리라면서 어떻게 1,600만 원이나….”
“뭐, 잘못 눌렀다고 다시 한 번 누르라고 해서 다시 눌렀고, 시키는 대로 어떻게 번호를 누르다 보니 80만 원이 아닌 800만 원이 돼 버린 거래. 그걸 두 번 눌렀으니까 1,600만 원이 된 거지.”
저런, 저런?
“우리, 이젠 돈 좀 풍풍 쓰자.”
“왜?”
“어제 당신이 1,600만 원이나 벌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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