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등정기

(백두산 등정기 6) 위화도를 바라보며

거북이3 2007. 7. 22. 14:37
 

(백두산 등정기 6)

          위화도를 바라보며       

                                                                                                            이   웅   재

 제2일(6월 20일. 수) 가랑비.

 6:50 출발. 6:50이면 너무 이른 시각 같지만, 우리나라 시간으로 하면 7:50분이니 무난한 시간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출발 직전 인원 점검을 해 보니 한 사람이 남는다. 더러 나 같은 거북이가 있어서 늦게 오는 사람 때문에 인원수가 부족한 경우는 보았어도 이처럼 남아보기는 처음이다. 알고 보니 다른 차를 타고 온 한 젊은 여인이 우리 차를 탄 때문이었다. 같은 여행사의 버스라서 혼동한 모양인데, 옆자리, 앞뒤자리의 사람이 다른 것도 몰랐다니 그 젊은 나이에 걱정이 아닐 수가 없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자리에서는 언제나 고문관 한두 사람이 끼이게 마련이라는 생각으로 쓸데없는 남의 걱정 붙들어 매 두기로 하니 나름대로 오히려 재미있는 일로 치부되었다.

 엊저녁에 잠깐 보았던 압록강 변으로 가고 있었는데 길이 막힌다. 웬일인가 싶어 밖을 내다보니 저 앞쪽 높은 건물에서 불이 난 모양이다. 소방차들이 줄줄이 모여들고 삐뽀~ 삐뽀~ 하는 소리가 요란하다. 옆길로 돌아가서 유람선엘 올라탔다. 그리고 압록강 단교를 한 바퀴 돌았다. 강심 제일 깊은 곳이 중국과 북한의 경계선이라는데 그렇게 따지고 보면 잠깐 북한 쪽 영토를 침범하여 U턴을 한 셈이다. 북한 쪽 압록강 변에는 전시용으로 만들어 놓은 건물들이 띄엄띄엄 보였고, 그 사이에 대형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21세기의 태양 김정일 장군 만세!’

 북한의 태양은 김정일이었다. 우리의 태양은…태양은…, 그래, 우리에게도 태양이 있었다. 그것도 영어로 된 태양이…. 그건 바로 ‘선(SUN)’. 한 동안은 인기가 좋았던 담배 이름이 아니던가? 담배는 건강에 안 좋다던데…. 북한의 태양도 별로 좋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그러니 굶어죽는 사람까지 나오게 되는 것일 터였다. 저토록 태양이 떠 있는데 왜 날씨는 이리 우중충하고 추적추적 비마저 내리고 있는 것일까? 무슨 볼 일 때문인지 군데군데 무더기 지어 앉아있는 사람들이 있어 손을 흔들어 주었더니 그들도 답례를 한다. 그런데 특별한 일이 있어 나와 앉아있는 것 같지는 않고, 저들마저 전시용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7:45 집안(集安)으로 이동하다. 전에는 ‘輯安’으로 쓰더니 요사이에는 ‘集安’으로 쓰고 있었다. 4~5시간 걸린단다. 버스는 압록강 변을 끼고 달리고 있었다. 오른쪽으로 큰 섬이 하나 나타난다. 위화도(威化島)란다. 압록강 안에 있는 섬 중 가장 큰 섬으로 명나라를 치러 가던 군대를 돌린 곳이다. 갑자기 이성계가 미워진다. 그때 명나라를 치고 만주벌판을 다시 찾았더라면…하는 아쉬움 때문이다. 역사라는 것은 ‘만약’이란 것을 용인치 않는다고 하지만 말이다. 경제특구를 만들려고 지었던 건물 여러 채가 주인 없이 방치되어 있다. 가끔 사람들이 보이기도 하지만, 상주인구는 아니고 농사짓느라 출입하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압록강 물은 생각처럼 깨끗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거기서 수영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여자들도 있었다. 물이 깨끗하지 못해서 나중에 반드시 샤워를 해야만 한단다. 위화도 건너 쪽으로 아파트가 보이는 곳은 신의주 중심가라는 가이드의 말에 백발이 성성한 노인 한 사람이 훌쩍인다. 신의주가 고향이라는 것이다. 자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건만, 그걸 보고 있는 사람들은 때때로 숙연해지기도 한다. 일체유심조였다.

 조금 더 가니 애하(愛河)가 나타난다. 압록강 지류였다. 애하대교를 지나 계속 달리다보니 조그마한 시내가 나온다. 그 건너가 북한 땅이었다. 웃통 벗고 일하는 사람들이 보이기도 한다. 건너편 냇가 쪽으로는 드문드문 큰 나무들이 있었는데,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그런 곳마다 군인들이 감시하고 있단다. 겨울에는 얼음이 얼어 냇물을 건너가서 먹을 것이나 담배 등속을 주며 북한 군인과 대화를 해볼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북한의 군인들은 대체로 16~7세 정도. 아직 제대로 된 사회 물정을 모르는 나이들이라 위에서 시키는 대로 제 임무를 수행할 것이었다. 따라서 사상 문제 따위로 접근하면 절대로 안 된다고 했다.

 압록강 변에는 나무들이 별로 없었는데 적정을 살피려고 시야 확보를 위해 다 잘라낸 때문이었다. 그것은 금강산 쪽에서도 이미 목도한 바였다. 북한의 무기 공장은 대부분 이 지역에 밀집되어 있단다. 혹시라도 전쟁이 발발했을 경우, 이 무기 공장들을 잘못 폭격을 하게 되면 중국 땅을 치게 될 수도 있게 하기 위한 것이란다. 폭격을 당한 중국은 자동적으로 전쟁에 참여하게 되리라는 계산에서인 것이다. 다른 한편,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안전성을 확보할 수도 있기 때문이고.

북한 TV에서는 저녁 8:00~8:30까지 한 30분 정도 간략하게 외국뉴스를 내보낸단다. 따라서 자세한 외국 소식을 알기는 힘든 편이지만, 외국엘 나갔다 오는 사람들의 입소문을 통해서 어느 정도의 세상 돌아가는 모습은 알고 있다고 한다. 서민들이 직접 받아보지는 못하지만 남한에서 쌀과 비료 따위를 무상지원해 주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에서는 교육은 대학교까지도 무상이고 병원도 무료이다. 그러나 절대적으로 약품이 부족하다. 그래서 중국에서 약을 얻어가지고 가서 치료를 받기도 한단다. 가이드는 조선족이라서 ‘북한’의 발음이 ‘부칸’이 아니고 ‘부간’이었다. 연음(連音)보다도 절음(絶音)에 가까운 발음을 하고 있었다. 언어현상 하나에서도 열린 사고가 못 되고 닫힌 생활이 드러나는 것이었다.

 평양에는 통일거리가 있다고 한다. 그곳에는 도로 양쪽으로 20~30층짜리 아파트가 들어서 있단다. 그러나 지금은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않은 곳, 통일 후 남조선 사람들이 와서 살 곳이라는 것이다. 언제쯤이나 그곳 통일아파트에서 살아볼 날이 찾아올 것인지…. 잔뜩 찌푸린 날씨는 아직도 못마땅한 투세였고, 이리저리 휘날리는 빗발은 길옆 쪽에 좌판을 벌이고 있는 우산과 비닐로 된 비옷 장수만 신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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