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등정기

(백두산 등정기 4) 단동 지방의 짙게 내뿜는 밤꽃 향기

거북이3 2007. 7. 21. 15:16
 

(백두산 등정기 4)

    단동 지방의 짙게 내뿜는 밤꽃 향기

                                                                                                          이   웅   재


 버스는 만주벌판을 종주하고 있었다. 가도가도 옥수수 밭이었다. 어쩌다 벼농사를 짓는 곳도 더러 보이는데 벼농사를 짓는 사람은 거의가 조선족이란다. 그런가 하면 말을 이용해서 농사를 짓는 사람은 한족(漢族)이요, 소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조선족이라고 했다. 어쩔 수 없는 핏줄의 흐름이라고나 할까?

 시원스레 달리던 버스가 속도를 줄인다. 도로 앞쪽으로는 ‘좌도봉폐(左道封?)’라는 입간판이 보인다. 편도 2차선 고속도로가 공사로 인하여 1차선으로 줄어들고 있었다. 그런데도 차는 막히지 않았다. 그만큼 차량 운행이 뜸했다. 때로는 2차선 전체가 폐쇄되고 반대차선의 1차선으로 달려야 하는 때도 있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짜증스런 정체가 이어질 터이지만, 여기는 그럴 염려가 없었다. 워낙 넓고 넓은 만주 벌판이었기에 …. 만주 벌판, 만주 벌판. 그것은 우리들에게 매우 친숙한 말이 아니던가? 부여, 고구려, 발해…. 과거 만주 벌판은 우리 민족들이 그 웅지(雄志)를 펼치던 무대였던 것이다. 창 밖으로 보이는 푸른 들판 위로 서러운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그 강물은 미루나무 밑으로 끊임없이 흐르고 있었다.

 도로의 양 옆으로는 미루나무들이 주욱 늘어서 있었다. 그 미루나무들은 아직은 키가 작았다. 미루나무….어째서 가로수 대용으로 미루나무를 심었을까? 미루나무는 그 성장 속도가 엄청나게 빠른 수종이다. 그런 나무를 심었다는 건, 그래,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버드나무를 가로수로 심었던 것과 같은 의도에서가 아닐까? 뒤처진 경제를 ‘만만디’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그러니까 ‘빨리빨리’의 상징적인 식수(植樹)로 보인다는 말이다.

 어쩌다 나타나는 동네. 보통은 거의 비슷한 형태의 단독 가옥들이 띄엄띄엄 모여 있었다. 아마도 우리나라의 시골 풍경을 묘사하는 글이었다면 ‘띄엄띄엄’이라는 말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때는 틀림없이 ‘옹기종기’라는 말을 썼으리라. 서로서로 정감 있게 모여 있는 모습이 ‘옹기종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넓은 들판을 영위해 나가는 이곳 사람들에게서는 그와 같은 푸근한 정, 친밀스런 정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하다.

 가끔은 조금 큰 마을도 나타난다. 그런 곳에는 더러 아파트도 보이는데 거의가 6층 이하의 저층이었다. 땅이 넓은 지역이라서 그런가 했더니 그게 아니고 그래야 엘리베이터 설치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나라와도 마찬가지였다.

 국가공무원들은 과장급 이상이 되면 무상으로 아파트가 공급된단다. 그러니 공무원들은 철밥통인 것이다. 그들은 봉급 자체는 별로 중요하지 않게 여긴다. 그건, 그건…바로, 우리의 60년대가 아닌가? 아니, 어느 나라고 간에 그 유형은 조금씩 달라지고는 있지만, 요사이에도 철밥통의 공무원들은 도처에 널려있지 않은가?

 중국은 아파트의 넓이를 ㎡로 표시한다. 그러니까 평으로 환산하려면 대략 3.3으로 나누어야 하는 것이다. 요즈음은 우리나라에서도 ‘평’이란 단위를 쓰지 못하고 ㎡로 표시하게끔 법이 바뀌었지만, 이러한 도량형 표기의 통일은 중국보다 뒤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은 지도자 한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모든 것이 쉽게 통제되는 사회인 것이다.

 중국의 아파트는 대체로 30평 정도가 많다고 했다. 가운데가 통로이고 통로 양쪽으로 방이 있는데, 햇볕이 잘 드는 쪽 방 하나만 거주공간으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대체로 창고 등 다른 용도로 사용한단다. 거주공간의 바닥은 한국식 온돌을 닮은 장판을 까는 등 요샌 모든 면에서 한국식 아파트를 선호한다고 했다. 중국식은 건물만 덩그러니 지어 놓고 입주자들이 자신들의 취향이나 필요에 따라서 내부 구조 및 실내 장식을 하는 식이었는데, 차츰차츰 한국의 완제품식인 아파트로 점차 변화해 간다는 것이다.

 회사원들의 봉급은 대졸자의 경우 한화 35만 원~ 100만 원 정도, 몇 년 전에 비하면 놀랄 만큼 상승된 임금이다. 한국 기업이 많이 진출하다 보니까 그들의 봉급에 영향을 받아 하루가 다르게끔 임금 인상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에 거주하는 한국 교포는 약 250만 명, 미국에 거주하는 교포의 숫자와 엇비슷하다. 일본에는 그 절반 정도, 전 세계의 교포를 합치면 약 700만 명이 된다니,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따라서 교포들의 권익과 관련된 제반 행정 절차도 시급히 정비되어야 할 것이다.

 단동에 가까워지자 야산이기는 하지만 점차 산이 많아진다. 그리고 모든 산에는 밤나무 일색이었고, 밤꽃이 한창이었다. 단동의 특산물이 밤이었더라는 점이 어슴푸레 기억의 한 구석을 찾아든다. 수절 과부들을 미치게 했다는 그 밤꽃 향기가 차창을 뚫고 버스 안까지 스며드는 듯했다.

 나는 어렸을 적 방고개에 살았었다. 방고개는 바로 ‘밤고개’의 음전(音轉)이었다. 밤은 껍데기가 세 개나 된다. 처음부터 접근을 저어케 하는 가시로 이루어진 겉껍질, 맨손 ? 맨몸으로 덤볐다간 낭패를 볼 수가 있다. 하지만 그건 요령만 있으면 쉽게 벗겨버릴 수 있는 차단막이다. 그 다음에는 보기에도 반질반질하고 예뻐 보이는 일반적 견과류의 껍질이 나온다. 이제 그것만 벗기면 달콤한 과육을 맛볼 수 있을 것으로 여기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다른 견과류와는 달리 밤의 경우에는 그 육질을 맛보려는 사람들을 밀어내는 또 하나의 장치가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보늬’. 그 떫디떫은 보늬마저도 벗겨야지만 드디어 밤의 실질적인 육체인 달짝지근하고도 향기로운 과육을 맛볼 수가 있다. 하필이면 그러한 밤의 꽃향기가 남성성의 상징이랄 수도 있는 정액의 냄새를 닮았을까?

 아마도 그건 ‘사랑’이라는 것이 그만큼 여러 단계의 세심한 벗기고 벗김을 당하는 복잡하고도 힘겨운 과정을 거쳐야지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을 깨우치게 해 주려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