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수필 순례 11)
주소인설(酒小人說)
남용익 지음
이웅재 해설
옛날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술을 사랑함이 심하여 성현에 비함에까지 이르렀다. 나도 또한 매우 좋아하였으므로 역시 성(聖)이라 하고 현(賢)이라 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크게 깨우쳐 술은 성도 아니고 현도 아니며 참으로 소인이라는 것을 알았다.
대개는 술이 입술로 들어오면 그 빛깔이 시원스럽고 그 맛이 향기로우며 갈증이 나는 목구멍을 축여 주고 답답한 마음을 툭 트이게 하여 정신을 맑게 해 주고 기운을 밝고 활기가 있게 해 주는데, …(중략)… 또 술이 뱃속으로 들어가면 기분이 좋아지고 몸이 날아갈 듯해져서 근심 걱정이 저절로 사라지고 즐거운 흥취가 스스로 일어나서 진득해지고 순박해지는데, 이것은 말하자면 따사로운 봄기운에 만물이 소생하는 듯하던 안자(顔子)의 기상과도 같으니, 이것이야말로 성현다운 교화가 있음에 비할 바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술기운이 온몸에 배고 뼛속에 스며들어 점차 중독되면 그 기운을 없애고자 하나 없앨 수가 없어서 날마다 정신이 흐리멍덩하게 되면, 입술에 닿는 것은 모두 저 간교로 임금을 속이고, 권력을 휘두르다 결국 안녹산(安祿山)의 난을 유발했던 간신 이임보(李林甫)의 꿀맛 같던 아첨과 같고,…(중략)…
그리하여 듣고 보는 것이 모두가 그 술에 사역되어, 밤낮 없이 주악을 베풀고 잔치만 즐기는 것은, …(중략)… 잠자리에서 방탕함은…(중략)… 오왕 부차(夫差)를 미혹시켜 멸망하게 만든 것과도 같다.
심지어 심성을 상실하여 미치광이 같은 말과 망령된 행동을 마구 지어서 가정을 어지럽히고 공무를 포기하기에 이르러서는, …(중략)… 참소로써 어진이를 배척하여 한나라를 기울게 했던 것과도 같다.
뿐만 아니라, 끝내는 오장·육부가 손상되고 온갖 병마가 틈을 타 발생하고 원기가 날로 깎여 명을 재촉하고 몸을 망치게 되어서는, …(중략)… 은주(殷紂)를 망하게 만들고,…(중략)… 송(宋) 나라를 넘어지게 했던 것과도 같다.
또한, 술병[酒病]이 든 사람이 때로 뉘우쳐서 혹독하게 자책하고 경계하여 여러 날 술을 안 마시기도 한다. 그러나 갑자기 술맛이 생각나면 저도 모르게 군침을 흘리게 되는 것은 …(중략)…와도 같고, 정치를 문란시켜서 나라를 어지럽게 한 …(중략)… 당 덕종(唐 德宗)과도 같다.
이렇게 된 뒤에는 온갖 좋은 약으로도 그 증세를 낫게 할 수 없고, 맛 좋은 팔진미라 하더라도 그 위장을 조양(調養)할 수가 없다. 죽이나 밥이 눈앞에 가까이만 와도 구역질을 참지 못하게 되지만, 만일 천천히 밥알을 한 알씩 입안에 넣고, 억지로라도 한 술씩 떠먹어서 점점 밥 기운이 술기운을 이겨 술힘이 밥힘에 밀리게 되면 그때부터는 정신이 살아나고 의지가 안정되어 자연히 술을 마시고 싶은 생각을 잊게 된다. 이것은 이를테면…(중략)… 것과도 같은 것이다.
아! 밥과 술은 다 곡식에서 오는 것이다. 그러나 밥은 곡식의 성질을 온전하게 보존하여서 그 맛이 담담할 뿐 감칠맛이 없다. 그러므로 하루에 두 끼니만 먹으면 그만이고 일생 동안 늘 먹어도 물리지 않으며, 사람으로 하여금 건강히 오래 살게 만든다. 이것이야말로 군자가 천성을 온전히 보전하여 그것으로 임금을 섬겨 서로 미워하거나 싫어함이 없이 덕을 높이고 어진이를 높여서 나라를 이롭게 함과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술은 곡식의 성질을 어지럽혀 누룩으로 띄우고 술을 빚어 그것을 걸러 마시는데, 더러는 소주로 만들기까지 하면서 반드시 독한 것을 미주(美酒)로 여긴다. 사람마다 모두 그 맛을 좋아하여 백 잔이고 천 잔이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퍼마셔대어, 마침내 사람의 오장·육부를 상하게 해서 명을 재촉하고 있으니, 이것은 바로 소인이 천성을 해치고 그 잘못된 천성으로 임금을 섬기되 서로 헐뜯고 미워하며, 덕 있는 이와 어진 이를 멀리하게 해서 나라를 해롭게 하고 제 집을 망치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닌가?
이래서 우(禹) 임금이 술을 싫어하여 술을 만든 의적(義狄)을 내쫓은 것이며, “서경(書經)”에 ‘주고(酒誥)’편을 넣고 “시경(詩經)”에 ‘빈지초연(賓之初筵)’편을 두게 된 것이다.
나는 젊어서부터 술을 매우 좋아하였다. 그러다가 근래에 와서야 비로소 술을 멀리 하나 아직도 끊지는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래서 이 글을 지어 내 자신을 경계하는 한편, 나라를 다스리고 가정을 가진 이들을 경계한다.
해설:
*“韓國文學槪論”(한국문학개론편찬위원회 편. 혜진서관. 1991)에서는 “동문선(東文選)” 중의 ‘설(說)’을 “어떤 사물에 대한 해설을 쓴 글, 크게는 논(論) 속에 포함되나, 일반적인 논보다는 가벼운 해설에 중점이 주어진 글”이라고 하고, ‘논’에 대해서는, “오늘날 논설과 같은 성격의 글”이라고 하면서, 이를 ‘비평수필’(pp.542-545)로 본다고 하였다.
지은이 남용익(南龍翼: 1648∼1692)의 자는 운경(雲卿), 호는 호곡(壺谷), 시호는 문헌공(文憲公)이다. 정시문과(庭試文科) 병과로 급제, 여러 벼슬을 지내고, 1655년 통신사의 종사관으로 일본에 갔다 와서 사가독서(賜暇讀書: 1년 정도 휴가를 얻어 독서에 전념하던 제도) 후 문과중시(文科重試)에 장원, 예문관·홍문관의 대제학을 거쳐 이조판서에 이르렀다. 기사환국(己巳換局) 때 명천으로 유배, 그곳에서 죽었다. 문장에 능하고 글씨에도 뛰어났다. 저서로는 “기아(箕雅)”, “부상록(扶桑錄)”, “호곡집(壺谷集)” 등이 있다. 이글은 “호곡집” 권18에 실린 글이다.
** 번역은 민족문화추진회의 이승창의 것을 따랐으나 맞춤법, 띄어쓰기와 문맥을 살리기 위한 부분적 윤문은 해설자가 하였으며, 주(註)가 필요한 사항은 가급적 번다하여 문맥의 흐름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생략을 하였으며, 나머지는 번역자가 번역문 속에서 알 수 있도록 설명을 곁들였기에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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