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수필 순례 10)
국선생전 (麴先生傳)
이규보 지음
이웅재 해설
국성(麴聖)의 자는 중지(中之)이니, 주천(酒泉) 고을 사람이다. 어려서 서막(徐邈)1)에게 사랑을 받아, 막(邈)이 이름과 자를 지어 주었다. …(중략)…아비 차(醝: 흰 술)에 이르러 비로소 벼슬하여 평원독우(平原督郵)가 되고, 사농경(司農卿) 곡씨(穀氏)의 딸과 결혼하여 성(聖)을 낳았다.…(중략)…
손님이 아비를 보러 왔다가 눈여겨보고 사랑스러워서 말하기를,
“이 애의 심기(心器)가 출렁출렁 넘실넘실 만경의 물결과 같아 맑히려 해도 맑아지지 않고, 뒤흔들어도 흐려지지 않으니, 그대와 더불어 이야기함이 성(聖)과 즐김만 못하네.” 하였다. 장성하자 중산(中山)의 유영(劉伶)과 심양(潯陽)의 도잠(陶潛)과 더불어 벗이 되었다. 두 사람이 일찍이 말하기를,
“하루만 이 친구를 보지 못하면 비루함과 인색함이 싹튼다.” 하며, 서로 만날 때마다 며칠 동안 피곤을 잊고 마음이 취해서야 돌아왔다.
고을에서 …(중략)… 불러서 청주종사(靑州從事)로 삼았다. 임금이 …(중략)… 말하기를,
“이가 주천(酒泉)의 국생(麴生)인가? 짐이 향명(香名)을 들은 지 오래였노라.” 하였다. …(중략)… 무릇 조회의 연향과 종묘의 모든 제사에서 작헌(酌獻)하는 예를 맡아 임금의 뜻에 맞지 않음이 없으므로 임금이 그의 기국(器局)이 쓸 만하다 하여 올려서 후설(喉舌)의 직에 두고, 후한 예로 대접하여 매양 들어와 뵐 적에 교자(轎子)를 탄 채로 전(殿)에 오르라 명하였으며, 또한 국선생(麴先生)이라 하고 이름을 부르지 않으며, 임금이 불쾌한 마음이 있다가도 성(聖)이 들어와 뵈면 비로소 크게 웃으니, 대저 사랑받음이 모두 이와 같았다.
성품이 온순하므로 날로 친근하며 임금과 더불어 조금도 거스름이 없으니, 이런 까닭으로 더욱 총애를 받고 자못 방자하니,…(중략)…중서령(中書令) 모영(毛穎)이 상소하여 탄핵하기를,
“행신(倖臣)이 총애를 독차지함은 천하가 병통으로 여기는 바이온데, 이제 국성(麴聖)이 보잘것없는 존재로서 요행히 벼슬에 올라 위(位)가 3품(品)에 이르렀고, 내심이 가혹하여 사람을 중상하기를 좋아하므로 만인이 외치고 소리 지르며 골머리를 앓고 마음 아파하오니, 이는 나라의 병을 고치는 충신이 아니요, 실은 백성에게 독을 끼치는 적부(賊夫)입니다. 성(聖)의 세 아들이 아비의 총애를 믿고 횡행 방자하여 사람들이 다 괴로워하니, 청컨대 폐하께서는 아울러 사사(賜死)하여 뭇사람의 입을 막으소서.”
하니, 아들 혹(酷) 등이 그날로 독이 든 술을 마시고 자살하였고, 성(聖)은 죄로 폐직되어 서인(庶人)이 되고, 치이자(鴟夷子 술항아리)도 역시 일찍이 성(聖)과 친했기 때문에 수레에서 떨어져 자살하였다.
치이자가 익살로 임금의 사랑을 받아 서로 친한 벗이 되어 매양 임금이 출입할 때마다 속거(屬車)에 몸을 의탁하였는데, 치이자가 일찍이 곤하여 누워 있으므로 성(聖)이 희롱하여 말하기를,
“자네 배가 비록 크나 속은 텅 비었으니, 무엇이 있는고?” 하니 대답하기를,
“자네들 따위 수백은 담을 수 있네.”하였으니, 서로 희학(戲謔)함이 이와 같았다.
성이 파면되자, 제(齊→ 臍: 배꼽) 고을과 격(鬲→膈: 가슴과 지라 사이) 고을 사이에 뭇 도둑이 떼 지어 일어났다. 임금이 명하여 토벌하고자 하나 적당한 사람이 없어 다시 성(聖)을 발탁하여 원수(元帥)로 삼으니, 성이 군사를 통솔함이 엄하고 사졸과 더불어 고락을 같이하여 수성(愁城)에 물을 대어 한 번 싸움에 함락시키고 장락판(長樂阪)을 쌓고 돌아오니, 임금이 공으로 상동후(湘東侯)에 봉하였다.
뒤에 상소하여 물러가기를 빌었다.
“신(臣)은 본시 옹유(甕牖: 항아리 뚜껑. 별 볼 일 없는 존재)의 아들로 어려서 빈천하여 사람에게 이리저리 팔려 다니다가, 우연히 성주(聖主)를 만나 성주께서 허심탄회하게 저를 후하게 받아 주시어 침닉(沈溺)에서 건져내어 하해 같은 넓은 도량으로 포용해 주심에도 불구하고 홍조(洪造)에 누만 끼치고 국체(國體)에 도움을 주지 못하며, 앞서 삼가지 못한 탓으로 향리(鄕里)에 물러가 편안히 있을 때 비록 엷은 이슬이 거의 다하였으나 요행히 남은 물방울이 유지되어, 일월의 밝음을 기뻐하여 다시 벌레가 덮인 것을 열어젖혔습니다. 양이 차면 넘어지는 것은 물(物)의 떳떳한 이치입니다. 이제 신이 소갈병(消渴病)을 만나 목숨이 뜬 거품보다 급박하니, 한 번 유음(兪音)을 내리시어 물러가 여생을 보전하게 하소서.”하였으나 임금은 윤허하지 않고…(중략)…병을 치료하게 하였다.
성이 여러 번 표(表)를 올려 굳이 사직하니, 임금이 부득이 윤허하자 그는 마침내 고향에 돌아가 살다가 천명으로 세상을 마쳤다.…(하략)…
해설:
*이번 호와 다음 호에서는 술과 관련된 글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번 호의 ‘국선생전’은 동국이상국전집 제20권에 나오는 글로 술에 대한 긍정적인 글이요, 다음 호에서 소개할 남용익의 주소인설(酒小人說)은 부정적인 글이다. 부정적인 글에는 임춘의 ‘국순전(麴醇傳)’도 있지만, 그 형식이 ‘국선생전’과 유사하기에 ‘주소인설’을 택하고자 한다.
‘전(傳)’이 수필이어야 함은 이미 (고전수필 순례 6) ‘공방전(孔方傳)’에서 언급을 했으며, 이와 같은 글은 寓話隨筆에 속할 수 있다는 점을 밝혔다.
지은이 이규보는 ‘(고전수필 순례 2) 외부(畏賦)’에서 소개하였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 번역은 민족문화추진회의 것을 따랐으나 맞춤법, 띄어쓰기와 문맥을 살리기 위한 부분적 윤문은 해설자가 하였음을 밝혀둔다.
http://blog.daum.net/leewj1004
1) 서막은 삼국 시대 위(魏) 나라 사람으로 당시 금주령이 엄한 속에서도 항시 술에 취했고, 술을 중성인(中聖人) 이라고 높여 부르기까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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