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국내)

강촌에 살고 싶네

거북이3 2008. 5. 29. 22:44

강촌에 살고 싶네

                                                             이 웅 재


 춘천 쪽으로 다니다 보면 늘 오른쪽 차창 밖으로 보이는 강촌(江村)엘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했었다. 그런데 마침 사목회(四木會)의 두 번째 나들이를 강촌으로 가자고 하기에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강변을 따라 유스호스텔· 캠프촌· 민박촌 등의 숙박시설과 각종 놀이시설이 많아 대학생들이 즐겨 찾는 단골 MT 장소라서 그럴까? 이름만 들어도 낭만적인 필이 꽂혀오는 곳이 바로 강촌이었던 것이다. 

 나훈아의 노래 ‘강촌에 살고 싶네’가 또한 강촌의 그런 이미지에 일조를 했을 것이다.


   날이 새면 물새들이/시름없이 날으는…// 냇가에 늘어진/ 버드나무 아래서// 조용히 살고    파라/ 강촌에 살고 싶네.


 덧붙인다면 두보의 시 ‘강촌’이 또 있다.


맑은 강 한 굽이 마을을 감아 안고 흐르는데(淸江一曲抱村流)

긴 여름 강촌에는 일마다 그윽하도다.(長夏江村事事幽)…

늙은 아내는 종이에다가 바둑판을 그리고(老妻畵紙爲棋局)

어린 아들은 바늘을 두드려 고기 낚을 낚시 바늘을 만드는구나.(稚子敲針作釣鉤)…


 그러나 사람이 사는 곳 어디엔들 술수(術數)가 없을까보냐? 기왕에 낭만을 내세웠으니 이왕이면 기차여행을 하자고 하여 4.24.10:30 무궁화 1811열차를 타고 2시간 조금 못 걸려 도착한 강촌역의 역사(驛舍)엔 온갖 낙서들로 빼곡했다. 무슨 사연들이 그리 많던가? 제 이름자 하나 남기겠다는 심리는 나를 선전하자는 것이요, 나를 선전하자는 것은 남과의 경쟁에서 이기자는 암묵적인 의도가 개재되어 있음이 아니겠는가? 그것은 이미 두보의 시에서도 느낄 수 있는 바였다. ‘일마다 그윽한’ 강촌의 여름날, ‘바둑판’을 그리고 ‘낚시 바늘’을 만든다고 하지 않았는가? 겉으로는 평화스럽고 여유롭게 보여도 힘없는 늙은 아내와 천진스런 어린 아들이 그리고 만드는 것까지도 먹고 먹혀야 하는 물건들인 것이다. 저 빼곡한 낙서들에는 벌써 시장의 악다구니가 느껴지고 있다는 말이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그러한 낙서들 가운데에는 반드시 ‘사랑해!’ 라는 말이 빠지지 않는다는 점이라고나 할까?

 강촌역의 역사 자체가 벌써 그런 상반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얼핏 보면 시골 간이역 역사다운 조촐한 모습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가파른 절벽 위에 계단식으로 지어진 역사라서 삶의 고단함을 무언으로 말해주고 있는 듯한 것이다. 역무원은 아예 없이 ‘승차권은 아래 상자에 넣어 주십시오.’라는 부탁의 말과 함께 승차권을 넣는 상자가 새삼 신선하게 느껴지는가 하면, 이정표 하단 부분에 씌어있는 ‘낙서금지’가 또한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역사를 뒤로 하고 왼쪽으로 강을 끼고 조금 걷다 보니 시장기가 느껴진다. 시간도 12시가 훨씬 넘은 시간이었거니와 오른쪽으로 즐비하게 늘어선 음식점들 때문이었다. 무얼 먹는다? 항상 음식을 사 먹을 때마다 하게 되는 고민을 체면치레로 잠깐 하고 나서 우리는 닭갈비집으로 들어섰다. ‘춘천’ 하면 떠오르는 것이 ‘닭갈비’와 ‘막국수’인데, 그 중에서 가나다순으로 정한 것이었다.

 식당 앞쪽 길 건너편에는 오토바이가 잔뜩 세워져 있었다. 속칭 ‘사발이’라고 하는 4륜 오토바이였다. 저놈들이 유원지를 무법 질주해서 골칫거리라는 신문기사를 읽어본 듯도 싶었다. 보험가입규정도 없는데다가 도로 주행이 아닐 경우, 도로교통법의 적용도 어려운 실정이라는 것이었다. 이 역시 강촌의 한적하고 여유로운 느낌과는 대조적인 이미지를 가져다주는 ‘장기판’이요, ‘낚시 바늘’이 아니겠는가?

 점심을 먹은 후, 우리는 문배마을을 보러 가기로 하고 식당에서 제공해주는 자가용을 타고 등산로 입구로 갔다. 매표소에서 입장료를 내고(대인 1,600원, 65세 이상 무료) 스적스적 걷기 시작했다. 평소 관절에 문제가 있었기에 무리를 하지 않으려는 생각이었다. 등산로 왼쪽은 봉화산(烽火山;487m)이었고, 오른쪽은 검봉산(劍峰山;530m)이었다.

 쉬고 걷고 걷고 쉬기를 반복하여 고개의 정상을 넘으니, 이럴 수가? 눈앞에 시골의 전형적인 마을 모습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산성(山城)이 있는 곳이라면 이상할 게 없었지만, 이곳엔 산성 따위는 안 보이지 않는가? 그런데도 산 정상 바로 턱 밑에 떠억 버티고 있는 마을이라니? 더욱 놀라운 것은 여기저기 자동차들도 보이는 일이었다. 좀더 내려가 보니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우리가 올라온 쪽으로는 차도가 없었지만, 그 반대편 쪽은 산의 경사도도 완만했고 찻길도 나 있었던 것이다.

 2만여 평의 분지, 그러니까 마을로 한 걸음 내려서면 그곳이 그냥 산 아래의 평지처럼 느껴지는 시골마을이었다. 6.25 전쟁도 모르고 지나갔다는 오지마을, 이곳이 바로 문배마을이란다. 딴은 여기저기 하아얀 배꽃이 피어있는 것도 보였다. 배꽃 혼자서는 심심할 것 같아서인가, 사이사이에 복숭아꽃도 바알갛게 피어 색깔의 조화를 이루어주고 있었다. 더욱이 인상적인 것은 마을 앞쪽에 조성되어 있는 2,000여 평의 생태연못이었다. 2002년 6월 이곳을 찾는 관광객의 휴식과 저 아래쪽 구곡폭포의 폭포수 공급을 위해 인공적으로 만든 호수란다. 호수를 빙 둘러 쳐놓은 하얀색의 목책(木柵)이 어느 동화 속의 나라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켜주고 있었다.

 이곳이 있음으로 해서 강촌은 다시 살아났다. ‘장기판’과 ‘낚시 바늘’을 잊게 해주는 ‘장하강촌사사유(長夏江村事事幽)’가 그렇게 다소곳이 내 품에 들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나훈아의 ‘강촌에 살고 싶네’도 아직 유효기간이 널널하게 남아있음도 틀림없을 것이었다.

강촌에 살고 싶네.hwp
0.03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