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회에서 다녀온 사목리 (도라산 기행 1)
이 웅 재
’08.5.22. 오늘은 사목회에서 판문점으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우리나라 최북단에 위치한 도라산역(都羅山驛)엘 다녀오기로 한 날이다.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은 1000년 사직의 신라를 고려의 왕건에게 바치고 송악(현 개성)에서 왕건의 딸 낙랑공주(樂浪公主)와 결혼하여 노후를 보내게 된다. 낙랑공주는 나라를 잃은 경순왕의 괴로운 마음을 달래주고자 수도 개성에서 20여 리 떨어진 도라산 중턱에 암자를 지어 주었다. 경순왕은 아침저녁으로 이 산 마루에 올라 옛 신라의 도읍지 서라벌이 있는 쪽을 바라다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도라'란 바로 신라의 도읍이라는 뜻으로 당시 경순왕이 있던 곳이라서 그런 명칭이 붙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신라의 마지막 태자인 마의태자가 개성으로 들어가면서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본 곳이라서 ‘도라산’이라고 했다는 전설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개성 관아에 나가있던 관리들이 한양으로 돌아오면서 두고운 미기(美妓)들을 못 잊어 돌아보았다고 하여 ‘도라산’이라 했다고도 한다.
서울역에서 9:50행 열차를 타고 10:20경 임진강역엘 도착했다. 물론 가는 길에는 평소 집에서 내가 담가 아끼던 ‘야관문주(夜關門酒)’로 일잔씩을 하는 일도 생략할 수가 없었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만으로도 도심에서 찌들던 심신을 아주 시원스레 재충전시켜 주고 있어서 임진강역까지의 운임 1,400원이 아깝지 않았다. 도라산역은 여기서 한 정거장를 더 가야 하는데, 어차피 이곳에서 새로 차표를 끊어야 하기 때문에 우리들은 일단 여기서 내려서 임진각 등을 둘러본 후에 관광버스를 타고 도라산역으로 가기로 했다.
임진강역에 내리자 이정표가 내 눈 앞으로 확 다가온다.
평양 209km, 서울 52km. 그러니까 평양까지의 물리적인 거리는 서울의 4배 정도밖에 되지 않는 거리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현실적인 거리는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곳, 심리적인 거리는 더욱 멀고도 먼 곳, 거의 무한대에 가깝게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 평양이 아니던가?
우리는 먼저 가까운 곳에 있는 ‘경기평화센터’엘 둘러보았다. 공교롭게도 경기평화센터는 문산읍 ‘사목리(沙鶩里)’에 있었다. 사목회에서 사목리를 보러온 것이다. 거기 전시되어 있는 작자 미상의 ‘분단의 상처’라는 시 한 편을 옮겨본다.
통일아, 어디만큼 왔니?
통일아!
통일아!
어디만큼 왔니?
철조망 뚫고 앞산 너머만큼 왔니?
혹시 다리 아프다고 쉬고 있지는 않니?
(중략)
우리 모두의 마음 담아
너에게 편지도 쓰고
노래도 불러 줄께
힘들어도 한 발짝 한 발짝
우리에게 다가오렴
활짝 핀 통일꽃
한 아름 들고서
남과 북 얼싸안고
널 맞을 마음
벌써부터 두근두근
또 다른 전시물에 붙은 설명엔 ‘인간 역사의 99%는 전쟁으로 점철되어 있다.’라는 말도 있었다. 인간, 그 얼마나 잔인한 동물인가? AI(조류 인플루엔자)를 예방하겠다고 병에 걸리지도 않은 수만 마리의 닭이나 오리를 산 채로 생매장하는 권리는 누구에게서 부여받은 것인가? 우리나라에서는 한 사람도 걸려본 적이 없는 광우병 때문에 난리법석을 떠는 것은 또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까? 미얀마를 강타한 사상 최악의 사이클론이나 남한 면적의 1/2을 강타한 중국 쓰촨성 지진은 그러한 인간들의 반생명적인 취향을 경고하는 자연의 계시는 아닐 것인가? 두려워진다.
둥근 기둥 주위를 감싼 철조망은 천장까지도 온통 뒤덮고 있었는데, 그 사이 군데군데 달리아 같은 붉은 꽃이 피어있는 모습도 인상적이었고, 탤런트 김혜자가 아프리카의 가난에 찌든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 ‘나눔의 실천’도 가슴에 뭉클 전류를 느끼게 했다. 많은 사람들의 기원이 담겨 있는 메모판에서는 “다시는 전쟁이 없는 나라 되길…”이라는 소원이 우리 모두의 눈길을 잡아끌기도 했다.
그 경기평화센터 앞쪽에는 자연보호헌장비를 비롯해서 임진강지구전적비, 통일의 횃불, GUAM이나 일본계 미군 장병의 한국전쟁참전기념비, 무궁화찬양비, 남북평화통일기원시비 등 많은 비석들이 세워져 있었다.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있을까마는 한꺼번에 그처럼 많은 비들이 몰려 있으니, 개개의 비문들을 읽어볼 엄두마저 나지 않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라고 할 수가 있었다.
그 중 미국군 참전 기념비 하나를 보자.
참전 연인원 572천명
사망 33629명
부상 103284명
실종 5178명
저쪽 등나무 그늘 아래에서는 병아리 같이 노란 옷을 입은 유치원생들이 모여서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는데, 그런 게 모두 이처럼 전 세계가 우리나라를 지켜준 덕분이 아니겠는가? 저절로 콧등이 시큰해지고 있었다. (08.5.27. 원고지 15매 정도)
(출처; Daum지역님 : 경기평화센터에서)
'기행문(국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촌에 살고 싶네 (0) | 2008.05.29 |
---|---|
미카3-244 (도라산 기행 2) (0) | 2008.05.28 |
우이령길을 걸으며 (0) | 2008.04.17 |
돌무덤 위에는 할미꽃이 피었더라 (0) | 2007.04.03 |
문학마을 가는 길 (0) | 2006.03.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