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다방 이야기(백령도 기행 1)
이 웅 재
꼭두새벽부터의 나들이는 어렸을 적의 추억을 떠올리게 해주는 설렘이 있다. 08.5.30.새벽 6:40까지 인천 연안여객터미널에 집결해야 하는 일정 때문에 휴대폰의 알람 기능을 설정해 놓고서도 시간시간마다 눈이 떠지다 보니까 제대로 된 잠을 잘 수가 없는 것은 당연지사, 그러지 않아도 감기 기운 때문에 축 처진 몸이 영 찌뿌드드하기 그지없다. 내 친구의 부부와 아내 친구의 부부, 그렇게 세 부부가 백령도엘 함께 가기로 한 것이었는데, 마음과 육체가 나들이에 대하여 서로 각각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었다.
7:10. 마린브리지호를 타고 인천항을 떠났다. 약간 흐린 날씨이기는 했으나, 비가 내리겠다는 일기예보와는 달리 선창 밖으로는 비교적 푸르고 잔잔한 바다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준다. 당연히 온몸이 산뜻하고도 상큼해야 정상일 텐데 그렇지 못한 것은 역시 컨디션이 좋지 못한 때문일 것이다. 소청도, 대청도에서 잠깐씩 머문 여객선은 점차 높아지는 파도와 싸우며 예정시간보다 30분 이상 연착하였다.
우리를 마중 나온 백령여행사의 기사 겸 가이드는 젊은 남자 분, 나직하고도 정확한 발음으로 안내를 해주고 있었다. 소청도엔 300명 정도, 대청도엔 1400명 정도의 주민이 살고 있고, 백령도에는 4500명 내외의 주민이 거주하는데, 소청도․ 대청도 사람들은 주로 어업으로 생활을 하고 있지만, 백령도에서는 농업인구가 전체 인구의 40%를 넘어서는 곳이라고 하였다.
백령도는 서해 최북단의 섬으로 원래 황해도 장연군(長淵郡)에 속했었으나 광복 후 옹진군(甕津郡)에 편입되었다고 했다. 지금의 행정구역 명칭은 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면으로 백령도의 원래의 이름은 따오기섬, 한자어로 곡도(鵠島)였었는데, 따오기가 흰 날개를 펼치고 공중을 나는 모습처럼 생겼다 하여 백령도(白翎島)로 바뀌었단다. 한국에서 14번째로 큰 섬이었는데, 최근 화동과 사곶 사이를 막는 간척지 매립으로 면적이 늘어나 8번째로 큰 섬이 되었단다.
진촌리 이화장 모텔에 짐을 풀고 점심을 먹고 나와 버스에 올랐는데, 버스는 떠날 생각을 않는다. 무슨 일일까 궁금해 하기도 하다가 차츰 짜증이 날 무렵에야 여인 서너 명이 다른 버스에서 내려 우리 버스로 허겁지겁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어느 곳을 가나 그런 사람들은 한두 명씩 있게 마련인 모양이다. 그 여인들은 나중에도 시간을 지키지 않아 어떤 남성 여행객으로부터 야단을 맞고 종국에는 서로 악다구니의 말싸움으로까지 번지기도 하여 다른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도 했다.
가이드가 나직나직하게 말하고 있었다. 이곳에는 술집은 별로 없고 다방이 한 열 곳 정도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다방이 까치다방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다방 이름은 주인의 아들놈의 이름을 딴 것인데, 주인의 성씨가 조씨라고 했다. 한번은 TV에서 9월 말쯤인가 VJ특공대를 방영하면서 백령도 체육대회를 중계한 적이 있었단다. 해병대 여단 연병장에서 치렀던 그 체육대회에서는 진기한 일이 한두 가지가 벌어진 것이 아니란다.
하나는 사격대회에서 사격왕의 자리를 민간인에게 빼앗겨 전 부대에 비상이 걸리기도 했었고, 더욱 사람들의 입초시에 오르게 된 일은 바로 축구 경기에서였다는 것이다. 그때 바로 그 까치다방 아들이 선수로 출전을 하게 되었고 마담은 레지 10여 명을 인솔하고 아들 응원에 나섰다는 것인데…. 하필이면 백넘버가 18번이었다지 않은가?
“18번, 조까치 잘 한다, 잘 해!”
게임이 무르익자 응원도 열을 띠게 됨은 당연한 일. 게다가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응원하는 말도 짧아져서 ‘18번’의 ‘번’자도 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더란다.
“18, 조까치, 잘 한다!”
그걸, 한번 정리해서 들어보자.
“씨팔, 좃같이 잘 한다!”
가이드는 말했다.
“나중에 혹시 까치 다방에 들어가시는 일이 있더라도, 절대로 주인장 성씨는 물어보지 마세요. 큰일 납니다!”
웃자고 한 얘기일 것이다. 의도대로 모든 사람들은 웃어 주었다. 그런데 나는 웃지 않았다. 왜? 모든 게 시들한 때문이었다. 그놈의 감기 기운 때문에 도저히 흥이 나질 않는 것이다.
그러는 중에 버스는 심청각으로 향했다. 길 양쪽으로는 백령도의 상징이랄 수 있는 해당화가 화사하게 피어 있었고, 그 향기가 그윽하고도 은은하게 코를 간질이고 있었으나 내게는 그것도 재채기만 나게 만드는 일일 뿐이었다. 심청각 뒤쪽의 심청 상(像)은 그저 먼빛으로만 보고 내려왔다.
황해도 장산곶과 백령도 사이의 두무진(頭武津) 앞바다에는 심청이 몸을 던졌다는 ‘인당수(印塘水)’라는 낯익은 이름의 급류지대가 있고, 이곳에 얽힌 전설이 심청전과 같음을 고증하여 1999년 10월에 2층 규모의 심청각 전시관을 준공하였다는 것이다. 다른 때 같았으면 좀더 자세히 전시관을 둘러보았겠으나 기침은 자꾸 나오고 콧물도 뜬금없이 주르륵! 흐르는 통에 도저히 관심이 가질 않았다.
섬 유일의 절 백련정사로 가는 길에 다시 가이드의 우스갯소리가 이어졌다. 섬 안에는 목욕탕이 딱 하나 있는데, 물이 아주 좋다고 했다. 일주일에 3번만, 1시~5시까지만 영업을 하는 때문에 가 보기가 어려운 목욕탕이란다. 한 번은 4살짜리 아이가 엄마하고 목욕탕엘 갔는데 엄마의 물건이 자신의 것과 다른 것을 보고 호기심에서 물었단다.
“엄마, 그게 뭐야?” 대답이 궁한 엄마, “응, 이거 수세미란다.” “그거, 얼마짜린데?” “응, 1000원.”
다음 번 목욕을 갈 때는 아빠하고 가라고 했는데, 이놈 또 아빠에게 묻더란다.
“아빠, 그게 뭐야?” 엄마에게서 대충 얘기를 들은 터라, 아빠 왈, “이거, 수세미란다.” “그거, 얼마짜린데?” “응, 이거 2000원.” “엄마껀 1000원인데, 아빠껀 왜 2000원이야?” “응, 엄마껀 튿어진 거고, 아빠껀 손잡이도 있고 딸랑이도 두 개 있잖아?”
그 아이가 자라서 수세미 장수가 될 줄 알았더니, 여행사 가이드가 되었다나? “그게 바로 저에요.”
그래도 나는 흥이 나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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