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고전 수필

(고전수필 순례 19) 목내이(木乃伊) 변증설(辨證說)

거북이3 2008. 8. 3. 10:36
 

(고전수필 순례 19)

       목내이(木乃伊) 변증설(辨證說)

                                                          

                                                           이규경 지음

                                                           이웅재 해설

   

 무릇 사람의 지체(肢體)는 약(藥)으로 삼을 수도 없고 또한 먹을 수도 없는 것인데, 약으로 삼고 먹기도 한 것이 경방(經方)1)과 사책(史策)에 실려 있어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다. 지금 그 잔인(殘忍)스러운 일을 굳이 기록할 필요는 없겠으나, 이미 세간(世間)에 살면서 세간에 있는 일을 전혀 모른다는 것도 어찌 혼매(昏昧)하고 무지한 자가 되고 마는 것 같아 두어 조목을 채록한다.

 천방국(天方國)은 옛날 균충(筠沖)의 땅으로서 일명 천당(天堂), 또는 묵가(黙伽)라고도 한다. 그곳의 공사(貢使)는 흔히 육로를 따라서 가욕관(嘉峪關)2)으로 들어온다. 서역에서는 대국으로서《황명사(皇明史)》에 자세히 나타나 있다.

 "그 나라는 사시가 항상 여름처럼 덥고 우박이나 눈ㆍ서리가 내리지 않아서 초목이 모두 잘 자라며, 토지가 비옥하여 조ㆍ보리ㆍ과일ㆍ기장이 풍성하다. 사람들은 모두 헌걸차고 큼직하게 생겼는데, 남자는 머리를 깎고서 베로 머리를 동여매었고, 여자는 머리를 땋아서 머리 위로 틀어 올리고 얼굴은 모두 가리고 내놓지 않았다. 회회교(回回敎)라는 것이 있는데,  교조 마합마(馬哈麻 마호메트)가 맨 처음 이곳에서 행교(行敎)하다가 죽어 장사지냈는데, 그 묘정(墓頂)에는 항상 빛이 나서 주야로 사라지지 않으므로, 후인들이 믿고 따라서 오래도록 교세(敎勢)가 쇠퇴하지 않아, 사람들이 모두 착해지고 나라에는 까다로운 정치가 없으며 또 형벌도 없어 상하가 모두 안락하고 도적마저 없어서, 서역에서는 이 나라를 낙국(樂國)이라 칭한다.

 나라의 풍속은 술을 금하고, 절에 예배를 하되, 매월 초승이면 왕 및 신민(臣民)들이 다함께 하늘에 절을 하고 큰 소리로 외쳐서 하늘을 찬양하는 것을 예로 삼았다. 절은 사방으로 나누어 매방(每方)이 90칸(間)으로서 도합 3백 60칸인데,…(중략)… 황금으로 각(閣)을 만들었고, 당(堂) 주위의 담장은 모두 장미로(薔薇露)와 용연향(龍涎香)을 흙에 섞어서 쌓았으며, 검은 사자[黑獅] 두 마리를 만들어 세워서 문을 지키게 하였다.…(중략)…

 오이[瓜]와 과일, 그리고 여러 가지 가축도 모두 중국과 같은데, 서과(西瓜;수박)와 감과(甘瓜;참외)는 혼자서는 들 수 없을 정도로 큰 것이 있으며, 복숭아도 무게가 4~5근(斤)이나 되는 것이 있으며, 닭이나 오리 같은 가축도 무게가 10여 근이나 되는 것이 있으니, 이는 모두 제번(諸藩 ;모든 藩國, 제후의 나라)에는 없는 것들이다.”

 이 나라에서 나오는 목내이(木乃伊)3)에 대해, 도구성(陶九成; 明 陶宗儀)의《철경록(輟耕錄)》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천방국에 78세 된 노인이 있었는데, 그는 사신(捨身)4)해서 중생을 구제할 것을 자원하여 일체 곡기를 끊고 오직 몸을 깨끗이 씻고 꿀[蜜]만 먹었더니, 한 달이 지나니 대소변이 그대로 꿀이었다. 그가 죽자 나라 사람들이 그의 시신을 석관(石棺)에다 넣으면서 꿀을 가득 채워 시신이 잠기도록 하고는, 그 관에다 장사지낸 연월일을 새겨서 묻어놓았다가 백 년이 지난 뒤에 파서 열어보니, 밀제(蜜劑)가 되어 있었다. 사람들의 뼈가 부러질 때 이 밀제를 조금만 복용하면 즉시 나았다. 그러나 저 천방국에도 이런 것을 흔히 얻을 수는 없는데, 속칭 이를 밀인(蜜人)이라고 한다."

 《화한삼재도회(和漢三才圖會)》에 상고하건대, 아란타(阿蘭陀; 南蠻國 곧 네덜란드)의 토산물 중에 목내이가 있다고 하였으니, 서북쪽 제번(諸藩)들도 천방국의 밀인(蜜人) 법제(法製)를 모방하여 기화(奇貨)로 삼은 것이다.…(하략)…

      

해설: 

*지은이 이규경 (李圭景, 1788년 ~ 1856년?)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로서, 자는 백규(伯揆), 호는 오주(五洲) 또는 소운(嘯雲), 본관은 전주이며, 이덕무(李德懋)의 손자이다. 그는 벼슬에는 전혀 나가지 않고 평생 재야에서 저술에 힘썼으며, 19세기 최고의 백과사전이라는 평을 듣는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를 지었다. 이 글은 그 인사편1 인사류1 신형(身形)에 나오는 글이다.

 한편, 이러한 미라를 만드는 까닭은, 최치원의 “가야보인법(伽倻步引法)” 등에서 유추해볼 수가 있겠다. 가야보인법은 도교의 시해(尸解)를 성취하는 방법에 대해 쓴 책으로 ‘보인’이란 ‘보사유인(步捨游引)’의 준말로 步는 혼백이 걸어나감을, 捨는 시신을 버려둠을, 游는 천지간을 자유자재로 오유(娛游)함을, 引은 500년의 시간이 경과한 연후에 지상에 남겨두었던 시신을 끌어올려다가 혼백과 합쳐서 온전한 신선이 되는 방법을 가리킨다. 한 마디로 시신이 남아 있어야 온전한 신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시해’라는 말을 한국고전번역원에서 검색해 보면 총 4,648건의 자료가 검색되는 것으로 나타날 정도로 예상 외로 많이 쓰이던 말이다.

 석송(石松) 김형원(金炯元;1901년~?)의 시 중에서도 ‘숨 쉬는 목내이(木乃伊)’라는 것이 있다.

** 번역은 한국고전번역원의 것을 따랐으나 맞춤법, 띄어쓰기와 문맥을 살리기 위한 부분적 윤문과 주(註)의 보충은 해설자가 하였음을 밝혀둔다.

             (08. 8. 2. 원고지 16매)   http://blog.daum.net/leewj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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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尾註)

1)경방(經方); 醫書를 일컫는 말. 医=方. 方은 方技(異聞․ 奇事) 또는 方術을 의미한다. 의술    을 신비스런 능력을    드러내는 것으로 여겨서 사용하는 말이라 할 수 있겠다.

2)가욕관(嘉峪關); 감숙성(甘肅省) 주천현(酒泉縣) 가욕산(嘉峪山)의 서쪽에 있던 관(關)의 이름으로 명초(明初)에     설치한 것으로 서역(西域)에서 입공(入貢)할 때에는 반드시 이 관을 통하여 왔다.

 

3)목내이(木乃伊);밀랍(蜜蠟), 곧 미라(mirra).

4)사신(捨身); 報恩, 또는 修行을 위하여 자기의 생명을 끊고 三寶에 귀의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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