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수필 순례 17)
화당설(化堂說)
장 유 지음
이웅재 해설
천지 사이에 있는 존재치고 변화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 매가 비둘기로 바뀌고 참새가 대합으로 바뀌며 뱁새가 수리로 바뀌고 올챙이가 개구리로 바뀌며 풀이 썩어 반딧불로 바뀌는 것 등은 다른 물건으로 서로 변화하는 현상이다.
초목이 처음 나와 싹을 틔웠다가 줄기와 가지로 바뀌고 꽃과 열매로 바뀌며 또 누렇게 낙엽으로 바뀌는데, 이는 하나의 물건이 스스로 변화하는 현상이다.…(중략)…
어찌 만물만 그러하겠는가. 천지 또한 그러하다. 낮에 밝았다가 밤에 어두워지는 것은 1일의 변화요, 봄에 나게 하고 여름에 키우며 가을에 죽이며 겨울에 마감하는 것은 1년의 변화이다.…(중략)…
사람의 형체도 마찬가지이다. 처음 태어나 적자(赤子)가 되었다가 조금 자라서는 방긋 웃을 줄도 알고 말할 줄도 알고 걸어 다닐 줄도 알며 소년기를 지나 청년이 되었다가 장년기를 거치면서 쇠해지고 쇠해진 뒤에 노년을 맞아 마침내는 죽고 마는데, 이 과정의 어느 것 하나 변화 아닌 것이 없다.
성정(性情) 또한 어찌 홀로 그러하지 않겠는가? 대저 하늘이 우리에게 준 것으로 본다면 환히 밝아 지극히 신령스럽고 티 없이 맑아 지극히 선한 것으로서 잘나거나 못나거나 간에 모두 같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기질(氣質)에 구애받고 습관이 잘못 형성되면서 충동이 생기고 감정이 앞서면서 신령스러움이 미혹으로 변하고 선함도 악함으로 바뀌게 되니, 이것이 바로 바람직하지 못하게 변화하는 과정이라 하겠다.
성인께서 이를 걱정하시어 이런 사람들을 위해 가르침을 베풀고 학문을 익히게 하면서, 쇠를 녹여 틀을 만들고 먹줄을 이용해 나무를 재단하듯, 규범을 만들어 주어서 어리석은 사람도 명석해지고 나약한 사람도 바로 설 수 있게 하고 번잡스러운 사람도 평정을 되찾고 오염되었던 사람도 깨끗해지고 한쪽으로 치우쳤던 사람도 바르게 만들고 잡박(雜駁)했던 사람도 순수함을 지닐 수 있게 하였으니, 세상 사람으로서 변화하지 못할 자는 없다고 할 것이다. …(중략)…
아, 만물이 변화하는 것이나 사람의 생사(生死)와 장로(壯老) 같은 것은 천명(天命)과 관계되어 있는 것이니 진실로 사람들이 어째볼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러나 성정(性情)이라든가 습속이 일탈(逸脫)되는 것, 그리고 학문으로 변화되는 것은 사람의 행하는 바에 달려 있는 것이지 천명이 그렇게 만드는 바는 아니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은 하루도 그 방면에 힘을 쓰려 하지 않으면서 좋지 못한 방향으로 바뀌는 것을 감수하고 있으니, 겉모습만 사람일 따름이지 그 속마음은 이미 금수(禽獸)가 되었다고 할 것이니, 이 어찌 너무나도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내 친구인 평산(平山) 신공보(申功甫; 申敏一)는 순수하고 소박한 자질의 소유자로서 일찍이 우계 선생(牛溪先生; 成渾)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는데 세상 변고를 두루 거치면서도 평소에 지닌 뜻을 더욱 확고하게 견지하였다. 그러다가 지난해에는 임금에게 아뢴 일 때문에 벌을 받고 서쪽 변방에 귀양살이를 하게 되었는데 그때의 나이가 벌써 60이었다. 괴로운 상념이 마음속에 교차하는 가운데에서도 거백옥(蘧伯玉; 莊子 則陽)이 60세에 자신을 변화시켰다는 말에 느낀 바가 있어 마침내는 화당(化堂)으로 자호(自號)하였다. 대저 거백옥으로 말하면 옛날의 훌륭한 대부(大夫)로서 50세에도 49세까지의 잘못을 깨달았던 사람이었다. …(중략)…
공보가 조정에 돌아오고 나서 일찍이 나를 한번 찾아왔는데 얼굴 모습은 물론 수염이나 머리칼 하나 손상된 것이 전혀 없었을 뿐더러 그 중심이 가득차서 예전과는 달라진 듯 느껴졌다. 아마도 이 또한 변화를 자득(自得)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아, 공보는 60이 되어서도 변화하려고 뜻을 두고 있는데, 나는 지금 나이 50이 되었음에도 아직 잘못된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공보에게 너무나도 부끄럽기만 하다. 그래서 화당설(化堂說)을 지어 공보에게 주는 동시에 나의 부끄러운 심정을 스스로 토로하는 바이다. (계곡선생집 제4권)
♣해설:
*‘설(說)’을 ‘비평수필’로 본다는 점은 고전수필 순례 11 남용익의 ‘주소인설(酒小人說)’에서 밝힌 바다.
지은이 장유(張維:1587~1638)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지국(持國), 호는 계곡(谿谷), 우의정 김상용(金尙容)의 사위이고 효종비 인선왕후(仁宣王后)의 아버지이며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다.
인조반정에 가담하여 공신이 되었고, 대사간· 대사헌· 대사성․ 대제학을 지냈으며, 이괄(李适)의 난, 정묘호란 때에 왕을 호종했고, 병자호란 때는 공조판서로서 최명길(崔鳴吉)과 함께 강화론을 주장했다. 이듬해 우의정에 임명되었으나 모친상으로 사직했으며 장례 후 과로로 죽었다. 월사(月沙), 상촌(象村), 택당(澤堂) 등과 더불어 월상계택(月象溪澤)이라 하여 조선한문학의 4대가로 불린다.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많은 저서가 있었으나 정묘호란 때 거의 분실되고 『계곡만필(谿谷漫筆)』,『계곡집』등이 전한다.
** 번역은 민족문화추진회의 것을 따랐으나 맞춤법, 띄어쓰기와 문맥을 살리기 위한 부분적 윤문은 해설자가 하였으며, 주(註)가 필요한 사항은 번다함을 피하기 위하여 꼭 필요한 것만 번역문 속에 협주(夾註)로서 대신하였다.
(08. 6. 15. 원고지 15매 정도) http://blog.daum.net/leewj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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