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지엔느

야탑교 아래에서

거북이3 2008. 8. 24. 18:53

 

    야탑교 아래에서

                                                                                   이   웅   재

 덥다. 덥다. 정말로 덥다. 아니, 이건 그냥 덥다고만 해서는 안 된다. 무덥다. 그것도 부족하다. 찜통더위라는 말로나 비슷한 느낌을 전달할 수 있을까? 사실 말로서는 표현하기 힘든 더위가 금년의 더위였다. 경기마저 바닥이다 보니 체감온도는 더욱 치솟을 수밖에 없다. 책을 보려면 눈알에 뿌우연 김 같은 것이 서려서 힘들고, TV라도 틀어놓을라치면 아나운서의 목소리마저 더위에 녹아버렸는지 흐물흐물 짜증만 난다. 이런 더위를 무어라고나 할까? 그렇다. 곰곰 생각해 보니 ‘삭석류금(鑠石流金)’이란 말이 있었다. 한 글자씩 건너뛰어서 해석하는 것이 편한 숙어이다. 그러니까 석금도 삭류할 만한 더위란 말이겠다. 돌과 쇠도 녹여서 줄줄 흘러가게 만드는 더위라는 말일 터이니 작금의 더위를 나타내주는 말로서는 매우 적절한 표현이 아닌가도 싶다.

 “때르르르르릉!” 전화 벨 소리가 울린다. 그 소리도 늘어졌다. 평소 같으면 “때르르릉!”에서 끝나야 한다. 그런데 계속 늘어진다. 더위에 처진 내 처지를 알고 느리게 느리게 잇달아 울리는 거다. 그칠 만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벨 소리는 여전히 “때르르르르릉!”이다. 그러니까 이건, 꼭 받으라는 신호다. 나는 천천히 움직인다.

 드디어 송화기를 집어 들었다.

 “여~보~세~요~.”

 “아, 이교수님, 댁에 계셨군요. 빨리 나오세요.”

 현암이다. 나보다도 연배가 훨씬 위이신 분이다. 문화원에서 함께 지내다 보니 반쯤은 친구가 된 사이이다. 그런데 웬 일이지?

 “이런 날에는 다리 밑에서 일잔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눈이, 아니, 귀가 번쩍 틔었다. 일잔이라니? 인류의 적인 술을, 마셔서 없애야 하는 사명감을 지닌 나로서는, 이게 무슨 복음의 소리인 것이냐? 헌데, 현암 선생은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조금 생각을 하노라니, 재촉이 성화다.

 “뭘 해요. 빨리 나오지 않고?”

 엉겹결에 바지를 꿰면서 물었다.

 “어디로요?”

 “탄천, 디자인 센터 앞쪽의 야탑교 아래로.”

 “알았습니다! 알았다고요.”

 허둥지둥 현관문을 나섰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니, 아뿔사!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9층까지 다시 올라가서 우산을 가지고 내려왔다. 아, 그 시간이 왜 그리 긴 것인지? 다른 때에는 거침없이 달려가던 시간이 은근히 나를 골탕 먹이려는 것 같았다. 선량한 시민답게 느긋이 지내려고 애를 쓰면서 내려오다 보니, 이런? 그 동안에 비는 이미 그쳐버리지 않았는가?

 한여름 날씨 같은 여인은 사귀질 말라고 하였던가? 그러나 문제는 없었다. 지금은 여인을 만나러 가는 것이 아니고, 술도 별로 좋아하지 않으시는 술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이니까.  일각이 여삼추, 부지런히 걸어서 탄천 산책길에 들어서니 가물가물 건너편 쪽에 나를 기다리는 두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이상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군대도 아니고, 수신호를 보기는 참으로 오래간만인데, 가만히 보니 ‘ㄷ’자의 신호였다. ‘ㄷ’자,  ‘ㄷ’자, 아, 그렇구나. IQ 150 이상은 되어야 알아낼 수 있는 수신호. 나는 천천히 동그라미 신호를 보내고, 가던 길을 거꾸로 걷기 시작했다. 상대방은 안심하였다는 듯이 다리 밑 제자리에 자리를 편다. ‘ㄷ’자를 거꾸로, 그건 아래쪽에 있는 작은 다리를 건너 자리를 펴고 있는 쪽으로 돌아서 오라는 신호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상했다. 현암 선생은 그렇다 치고, 빠지면 안 될 사람 하나가 없었다. 의아해하는 나에게 현암 선생이 말했다.

 “이런 날엔 이열치열, 한 잔 하면서 더위를 이겨내는 것이 옛적 선비들의 피서법 아닙니까?”

 말씀인즉 옳았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현암 선생은 고급의 중국술까지 한 병 가지고 오셨다. 정말로 고마운 분이다. 현암 선생뿐만이 아니다. 얼마 전의 예헌 선생은 또 어땠는가? 그때에는 청계산 자락의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선생이 가지고 온 양주를 비롯하여 이술 저술 마시고 모든 사람들이 까뿍 취해서 인사불성이 되질 않았던가?

 이야기를 하는 중에 빠져서는 안 될 분 한 분이 또 오셨다. 이분은 불교에는 도통한 분이요, 도통한 분답게 한 잔 하신 다음엔 탄천 속으로 여유롭게 유영(?), 아니, 보무도 당당하게 경보(競步) 연습을 하시는 분이신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허전했다. 누군가가 한 사람, 아니, 두 사람쯤은 빠진 듯싶었다. 아니, 아니다. 한 분은 수술 후, 건강 때문에 요즘 술을 멀리 하시는 지교수님이니까 그런 대로 넘어가도 될 일이고…. 하지만 또 한 분, 주로 독일 문학을 번역하시는 정선생님이 함께 했으면 싶어서 핸드폰을 쳤다.

 어찌 생각하면 조금은 미안스럽기도 한 것이, 여기까지 오시려면 최소한도 지하철을 한 번 갈아타야 하고, 그러지 않고 버스를 타고 와도 한 시간 정도는 걸려야 도착하실 수 있는 분이지만, 나는 꼭 오시라고 간곡히 소청했고, 선생께서는 기대에 어그러지지 않게 적당한 시간에 도착하셨다.

 그래서, 다리 아래에서의 피서는 정말로 호화로운 만찬 못지않게 사뭇 흥겹게 진행되었다. 술좌석답게 외설스런 잡담도 누가 질세라 서로 줄줄이 외어댔고, 그러다간 아주 점잖게 우리의 고전, 그 중에서도 특히 요즈음 강의하고 있는 “왕오천축국전”에 대해서도 이러쿵저러쿵 술에 젖은 의견들이 오가곤 했다. 그런데, 그 모든 얘기들은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이어져갔다. 생각할수록 모든 분들이 고매한 분들이었다. 지교수님 한 분이 더 오셨더라면 다섯 사람, 고려 시절, 오세재(吳世才)가 이끌던 ‘해좌칠현(海左七賢)’은 못 되어도 ‘성남오현(城南五賢)’쯤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그러나, 그런 것이 무에 중요한 일이 될 수 있겠는가? 더위도 피하고, 우의(?)도 다지고, 만년의 삶의 의미도 굳건히 세우고 있는 분들인데….

 나는 행복하다. 이런 분들에게 둘러싸여 술잔을 마주하며 지낼 수 있는 생활이, 그 어찌 소동파의 “배반(杯盤)이 낭자(狼藉)”했다던 일이 부러울쏘냐? 우리는 거기에다가 푸근하고 시원한 인정(人情)까지 덧보태졌는데, 어찌 기분이 째지지 않을쏘냐? 째지는 기분으로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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