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쓰기

(수필 쓰기 6) [사고의 폭을 넓히자 ① 신의(信義)]

거북이3 2008. 10. 25.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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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쓰기 6) [사고의 폭을 넓히자 ① 신의(信義)]

                                                          이 웅 재

 널리 알려진 우스개 하나를 들어 보자.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공중목욕탕엘 갔다. 먼저 온탕 속으로 들어간 아버지가 말했다.

 “어, 시원해! 너도 들어오너라.”

 “정말?”

 그러면서 아들이 들어왔다.

 “엇 뜨거!”

 아들이 화들짝 놀라 탕 밖으로 뛰쳐나가면서 하는 말,

 “믿을 놈 하나 없네!”


 박경리는 일찍이 1957년에 ‘불신시대’라는 소설을 썼다. 믿을 놈도 없고, 믿을 것도 없는 시대다. 광우병 공포,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 유전자변형농산물(GMO) 수입 확대, 이물질 가공식품…. 무얼 믿을 수 있는가? 식용색소, 방부제 첨가 식품, 농약으로 범벅이 된 야채류…. 요즘엔 합성수지의 원료로 사용되는 멜라민 첨가 식품으로 또 떠들썩하다. 어른들은 별로 그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미사랑 카스타드’를 위시해서 식약청에서 발표한 멜라민 함유 과자 목록만 해도 210여 가지나 된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상군열전(商君列傳)에는 사목지신(徙木之信)이라는 말이 나온다. 전국시대 진(秦)나라 효공(孝公) 때의 법가(法家)를 대표하는 인물인 상앙(商鞅)은 새로운 법을 제정 공포하였으나, 백성들이 이를 믿지 않을까 걱정하였다. 그래서 그는 기다란 나무막대기를 시장의 남문(南門)에 걸어두고 이를 북문으로 옮기는 사람에게는 10금(十金)을 주겠다고 포고했다. 그러나 백성들은 이를 이상하게 여겨 옮기는 사람이 없었다.  다시 50금(五十金)을 내걸자, 한 사내가 시험 삼아 옮겨 보았다. 상앙은 즉시 그에게 상금을 주어 거짓이 아님을 내보였다. 이렇게 하여 신법을 공포하였는데, 태자(太子)가 그 법을 어겼다. 상앙은 법이 잘 지켜지지 않는 것은 상류층 사람들이 지키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태자의 보좌관과 그의 스승을 처형하였다. 이후 백성들은 기꺼이 법령을 준수하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생겨난 고사성어가 사목지신(徙木之信) 또는 이목지신(移木之信)이다. 믿음의 중요성을 드러내는 말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믿음의 중요성을 알게 해주는 일을 찾아보자. 나는 가끔 인사동엘 간다. 버스를 타고 갈 때면 종로2가를 지나면서 보신각(普信閣)을 바라보곤 한다. 서울의 정중앙에 있는 보신각, 그게 왜 거기에 있을까?

 이성계와 함께 조선을 건국한 정도전은 한양성곽을 어떻게 쌓아야 할 것인가 하고 고심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많은 눈이 내렸는데, 다른 곳은 눈이 다 녹았는데 특별히 눈이 녹지 않는 곳이 있어서 바로 이곳을 따라 성곽을 쌓고, 4대문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처음에는 대문을 세우면 무너지고 세우면 무너지고 했다는 것이다. 도대체 그 이유를 알 수 없어 애를 태우던 중 누군가에게서 ‘도성의 모양이 학을 닮았는데, 가운데를 진압(鎭壓)하지 않고 성문부터 세우니 날개 한번 퍼덕이면 무너질 수밖에…’ 하는 소리를 들었단다. 그 말을 따라 보신각을 세운 후 사대문을 건립하니 별 탈이 없었다고 한다. 야사 자체야 믿어도 그만, 안 믿어도 그만이겠지만, 사대문과 보신각의 의미만은 새겨두어야 할 것 같다.

 사대문은 정동의 흥인지문(興仁之門 : 동대문), 정서의 돈의문(敦義門 : 서대문), 정남의 숭례문(崇禮門 : 남대문), 정북의 홍지문(弘智門→肅淸門→肅靖門; 북대문)이다.


                         홍

                            

 돈문     보각      흥지문

                            

                         숭


 인의예지신 (仁義禮智信) 오상(五常)의 정 중앙에 신(信)이 있다. 믿음이 사라지면 인의예지도 존재할 수가 없음을 말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것을 좀더 확충시켜 보자. 동서남북중은 그대로 좌우전후중으로 되고 다시 청백적(주)흑(현)황, 목금화수토가 된다. 그리고 중앙을 제외하고 났을 때는 춘하추동으로도 구분할 수가 있다. 이를 다시 도표화하여 보도록 하자.

 

                                            

                                                       북악(이마)

                                                       玄(神)武門

                                                       黑水,黑龍江

                                                       높바람,된바람

                                                       北風,黑風,東風

                                                        後玄武

                                             [智]北,後,黑(玄),水,冬,子坐

                                                           

                                                         

 

 酉坐,秋,金,白,右,西[義]       [信]中,黃,土       [仁]東,左,靑,木,春,卯坐 

               右白虎                    중악(코)                                         左靑龍

               西風,秋風,金風                                                              東風,春風,靑風

               하늬바람,늦바람                                                            샛바람

               迎秋門                                                                        東宮,春宮,靑宮 

               서악(광대뼈)                                                                 建春門

                                                                                               동악(광대뼈)

                                           [禮]南,前,紅(朱),火(化),夏,午坐 

                                                          前朱雀

                                                          麻風,熱風,薰風

                                                          마파람

                                                          光化門

                                                          남악(턱)

                                       

 이 모든 것들이 중앙의 ‘信’이 없으면 그만 와르르 무너지는 것이다. 사람 사이에서도 그렇고, 사회 속에서도 그렇다. 아니,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믿음은 중요한 것이요, 더 나아가 국제적인 외교 관계에서도 믿음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물에 빠져 죽게 된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으려고 한다. 믿을 것은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믿자, 믿자. 믿지 못하면 아무것도 유지될 수가 없다. 부부 사이에 믿음이 없다면 어떻게 한평생을 살아나갈 것인가? 설사 남편이, 또는 아내가 바람을 피우더라도 그래도 가정만은 지킬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부부관계가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최진실이 자살했다. 왜? 온갖 루머, 악성 댓글 속에서 믿음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최진실, 너마저…’ 하는 네티즌들의 의혹을 감당할 수가 없었기 때문인 것이다. ‘진실’이라는 이름을 ‘진실’이지 못하게 만드는 무책임한 네티즌들…, 그녀가 사채업자였든 아니었든 악플을 달았던 사람들에게 그녀를 단죄할 권한이 있었을까? 대한민국에는 엄연한 사법기관이 존재하고 있는데, 그들이 어떻게 한 사람을 그처럼 비참한 자살로 몰고갈 수가 있다는 말인가?

 ‘信’ 자는 ‘人 + 言’이 합친 것이다. 사람이 한번 말한 것은 지켜야 함을 의미한다. 물론 지킬 가치가 있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뜻이다. 때에 따라서는 지키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 될 때도 있다. 미생지신(尾生之信)이 그런 경우라 하겠다.

 

 춘추시대, 노(魯)나라에 미생(尾生)이란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사랑하는 여인과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웬일인지 그녀는 시간이 되어도 약속장소에 나타나질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다. 계속 물이 붇고 있었으나 미생은 그녀와의 약속을 굳게 믿고 기다리다가 결국 교각(橋脚)을 끌어안은 채 익사(溺死)하고 말았다. 장자(莊子) 도척편(盜跖篇)에 나오는 고사이다. 포주이사(抱柱而死)라고도 한다.


 앞에서 말한 사목지신(徙木之信)도 따지고 본다면 강압에 의한 믿음의 창출이므로 바람직한 믿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열전의 뒷부분을 보면 그러한 점을 알아차릴 수가 있다.

 효공이 병으로 세상을 뜨자 태자가 혜왕(惠王)으로 즉위하였다. 왕은 전날의 보좌관과 스승이 처벌받았던 일을 상기하고 상앙을 파면하였다. 상앙이 사직하고 상읍으로 돌아가는데 왕은 다시 그를 체포하라는 영을 내렸다. 상앙은 재빨리 국외로 탈출하고자 간신히 국경의 함곡관(函谷關)에 닿아 한 여인숙에 들어갔다.

 여인숙 주인이 말했다. "상앙 어른께서 정하신 법률에 따라 증명서가 없는 사람은 재울 수가 없습니다." 결국 상앙은 자신이 제정한 법률에 의해 거리에서 사지를 찢기는 거열(車裂)형에 처해지고 구족(九族; 고조·증조·조부·부친·자신·아들·손자·증손·현손까지의 同宗 친족 곧 자신을 시작으로 하여 직계친은 위로 4대 고조, 아래로 4대 현손까지이며, 방계친은 고조의 4대손이 되는 형제·종형제·재종형제·삼종형제를 포함한다.)이 멸문되었다.


 이제 바람직한 믿음의 일례를 살펴보자. 계찰괘검(季札掛劍)의 고사는 바로 이러한 ‘믿음의 숭고함’을 보이고 있는 예이다. 사기(史記) 오태백세가(吳太伯世家)에 나오는 오나라 왕 수몽(壽夢)의 아들 계찰(季札)의 일화가 그것이다.

 

 계찰은 처음 외국에 사신으로 떠났을 때 도중에 서(徐)나라의 군주를 알현하게 되었다. 서나라의 군주는 계찰의 보검(寶劍)을 마음에 들어했다. 계찰은 속으로 그 뜻을 알아차렸지만,  중원(中原)의 여러 나라를 돌아다녀야 하였기 때문에 그에게 검을 줄 수가 없었다. 사신으로서의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다시 서나라를 지나가게 되었는데, 서나라의 군주는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계찰은 자신의 보검을 풀어 그의 무덤 옆 나무에 걸어놓고 떠났다. 처음부터 마음속으로 칼을 그에게 주려고 결심하였는데, 그가 죽었다고 해서 어찌 뜻을 바꿀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었다. 말로 한 약속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저 혼자 마음 속으로 한 약속도 이처럼 중히 지켰으니, 계찰이여, 영원하라! 모름지기 계찰의 신의를 본받는다면, 이 세상 정말로 살만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훗날 계찰은 자신에게 맡겨진 왕위(王位)마저도 사양하였으니 그는 진정으로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믿음직한 사람의 제일인자가 아닐 것인가?

 계찰괘검(季札掛劍), 불신의 시대에 옛날 계찰의 그 신의가 진정으로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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