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쓰기 7) [산문에서의 운율 및 소리마다의 빛깔]
이 웅 재
얼마 전, 길을 가다다 소방서 앞을 지나다가 ‘불불불 불조심!’이라는 표어를 보았다. 나는 그 표어를 보고 뭔가 꽉꽉 막히는 듯한 느낌에 휩싸였다. ‘자나 깨나 불조심!’, ‘꺼진 불도 다시 보자!’와 같은 더할 수 없이 훌륭한 불조심 표어들이 언젠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더니, 느닷없이 ‘불불불 불조심!’이 우리들의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불불불 불조심!’, 그것은 아무리 해도 친근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것은 표어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 아닌가?
‘불’이라는 글자의 발음은 ‘ㅂ’, ‘ㅜ’, ‘ㄹ’ 세 개의 음운으로 이루어졌다. ‘ㅂ’는 양순음, 입술에서 나는 소리이다. ‘ㅜ’는 원순모음(圓脣母音), 입술을 둥글게 하고 내는 소리이니, 거기까지는 별 문제가 없다. 문제는 ‘ㄹ’이다. 이 ‘ㄹ’은 설전음(舌顫音)으로서 혀를 굴리듯 혀끝을 윗잇몸에 대었다 떼었다 하며 센 입천장 쪽으로 혀를 움직여서 내는 소리이다. 입술 쪽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위치에서 마감되는 소리이기 때문에 ‘불’ 다음에 다시 ‘불’을 발음하려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한 소리이다. 그나마 ‘불불’ 식으로 두 번으로 그치는 발음은 그 속도를 느리게 함으로써 별 무리가 없을 수 있지마는 그것을 세 번 발음하여 ‘불불불’ 하고 발음하는 것은 매우 불편하다.
왜 ‘불불 불조심!’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음절수를 하나 늘임으로써 노력 경제 현상으로 따져보아도 비경제적인 ‘불불불 불조심!’이라는 말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친근감이 들지 않는다. 한 마디로 불조심 표어로서는 낙제점이라는 말이다.
예전에는 중고등학생들은 머리를 빡빡 깎아야만 했다. 빡빡 깎은 머리, 그것도 조금 동글동글한 모습이면 흔히 놀림감이 되었다. ‘중중 까까중!’ 그 말을 죽어라고 싫어하던 친구가 하나 있었다. ‘중중 까까중!’, 놀리는 아이들은 그래서 더욱 신이 났었다. ‘중중 까까중!’ 그걸 ‘중중중 까까중!’이라고 발음하는 아이들은 없었다. 거기엔 어깨가 들썩거리는 신명이 따라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중중중 까까중!’에서는 운율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뿐인가? 북소리나 장구 소리 따위를 흉내낼 때에도 ‘덩덩 덩더꿍!’식으로 발음을 하였지, ‘덩덩덩 덩더꿍!’으로 묘사하지는 않는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운율이란 저절로 흥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맡아하는, 문학에서의 감초(甘草)나 다름이 없는 요소이다. 글자 한 자로서도 그 신명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운율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라는 점을 웅변적으로 말해주는 실례(實例)가 아닐 것인가?
조지훈(趙芝薰)은 목월(木月)에게 보내는 시 ‘완화삼(玩花衫)’에서 노래했다.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노을이여.”
그리고 박목월(朴木月)은 ‘나그네’로 거기에 화답했다.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조지훈의 ‘저녁노을’이 박목월에게서 ‘저녁놀’로 변이되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둘 다 그럴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시적 운율을 실현하고 있었다. 조지훈의 ‘강마을의 저녁노을’은 ‘을’자의 반복에 더하여, 앞쪽 ‘강마을’의 3음절과 뒤쪽 ‘저녁노을’의 4음절로 형태적인 안정감도 아울러 성취하고 있는 것이다. 박목월의 ‘타는 저녁놀’을 ‘타는 저녁노을’로 바꿔서 낭독해 보자. 무언인지 딱히 잡히지는 않지만, 율독(律讀)이 순조롭지 못함을 느낄 것이다. 따진다면 이 글을 쓸 당시에는 ‘놀’이 표준어였다. 그러니까 ‘노을’은 비표준어였던 것이다. 그런데도 지훈은 ‘노을’을 썼다. 왜? 그 시에서는 ‘놀’보다는 ‘노을’이 시적 운율감을 성취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상옥(金尙沃)의 ‘사향(思鄕)’에서도 ‘저녁노을’이 나온다.
“송아지 몰고 오며 바라보던 진달래도/ 저녁노을처럼 산을 둘러 퍼질 것을.”
여기서의 ‘저녁노을’을 ‘저녁놀’로 바꿔보자. 시적 운치가 반감됨을 느낄 것이다. 일상생활에서도 ‘놀’은 ‘노을’로 실현되는 일이 많았다. 단음절어는 그 존립 자체가 불안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언어의 발달 과정을 보면 어느 언어에서건 모두 어형의 장형화 현상이 일어난다. 우리말에서의 예를 들어보자.
‘갖+이→가지[枝]’, ‘물+이→무리[群]’, ‘낛+이→낙시→(낚시)[釣]’, ‘누+고→누고→(누구)[誰]’ 따위가 그것이다.
다시 같은 김상옥의 ‘백자부(白磁賦)’를 보자.
‘찬서리 눈보라에 절개 외려 푸르르고/… 몹사리 기다리던 그린 임이 오셨을 제’
여기서 ‘푸르르고’는 사투리이다. ‘푸르고’라야 맞는다. 고어에서라면 ‘프를다’가 기본형이었으니까 ‘프르르고’라는 표현이 나올 수 있겠지만, 현대에의 기본형은 ‘푸르다’이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푸르고’라고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푸르고’로 바꿔 읽어보자. 도대체 맛이 나지 않는 것이다. 뒤쪽의 ‘그린’은 ‘그리운’이라야 맞는 표기인데, 역시 운율을 위해서 ‘그린’으로 된 것이다.
운율이란 시에서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앞에서 말한 ‘불불 불조심!’, ‘중중 까까중!’이나 ‘덩덩 덩더꿍!’이 그렇고, 다음과 같은 표현에서도 그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와는 무관하게 표현 자체의 미적 효율을 생각할 때에는 문제가 있다고 여겨진다.
“우리집 이웃에 과부가 하나 있는데 나이가 젊은데다가 예쁩니다.”(용재총화 제5권. 한국고전번역원 번역)
밑줄 친 부분은 아무래도 율독상(律讀上) 매끄럽지 못한 느낌이다. 다음과 같이 바꿔보면 훨씬 부드러운 표현이 된다는 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집 이웃에 과부가 하나 있는데 나이가 젊은데다가 예쁘장합니다.”
특히 비슷한 어구를 나열하는 대구나 상반된 구절을 사용해야 하는 대조법을 사용하는 문장에서는 운율을 무시하면 표현 자체의 세련된 느낌을 줄 수가 없다.
“여성들은 빵 하나를 살 때도 ①유통기한과 ②첨가재료 등이 적혀 있는 성분 표시를 살피고 사게 된다.”(여성농업인. 135호. 08.10.9. 10면 기사)
밑줄 친 ①의 ‘유통기간’과 ②의 ‘성분 표시’가 이 글의 목적어이다. 그런데 ②에서는 ‘성분 표시’를 꾸며주는 ‘첨가 재료 등이 적혀 있는’이라는 말이 덧붙어져 있다. 한마디로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 그러한 외형적인 측면이 율독에서도 그대로 드러나서 문장 전체가 상당히 껄끄럽게 느껴지는 것이다.
다음의 경우를 보자.
“붕새들의 ①등덜미는 태산과 같고 ②날개는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 같았다.”(심박강. 쓸모없음의 쓸모 있음. 청년사. 00. 11. p.18.)
①의 ‘등덜미’에 대한 서술어와 ②의 ‘날개는’에 대한 서술어가 균형을 잃었다. 따라서 매끄러운 문장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다음 문장도 역시 운율감을 제대로 실현하지 못한 문장으로 여겨진다.
“해돋이 때 처음 솟는 ①가녀린 햇빛은 ‘햇귀’, 수많은 화살이 날아오듯 ②내쏘는 햇빛은 ‘햇살’, 사방으로 확 퍼지듯 ③넓게 뻗치는 햇살은 ‘햇발’이란다.”(박남일. ‘뜨고 지고!’. 길벗어린이. 08.)
이 글은 매우 멋진 표현을 구사하고 있는 문장임에도 불구하고, ①과 ②에서는 ‘햇귀’와 ‘햇살’을 꾸미는 어구가 대구를 이루었는데 ③의 ‘햇발’을 수식하는 말은 대구적 표현을 벗어나서 율독이 이상해졌고, 또 그 앞쪽의 ‘해돋이 때 처음 솟는’과 ‘사방으로 확 퍼지듯’은 같이 2음보로 되어 있으나 중간의 ‘수많은 화살이 날아오듯’은 3음보격을 실현하고 있어서 역시 균형 잡힌 문장으로 보기가 어렵다.
대구적 표현으로 성공한 작품은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들 수가 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이제는 약간의 변형된 모습을 살펴보기로 하자.
“추한 모습은 등불과 짝하지 않고, 화난 모습은 늘 거울과 원수가 된다.”(淸 李漁의 ‘奈何天’. 오수형의 한자 이야기. 동아일보. 08.10.10.)
얼핏 보면 밑줄 친 ‘늘’ 때문에 균형이 깨진 모습처럼 보이지만, 이 글은 오히려 변화의 묘미를 살린 맛깔스런 표현이라고 할 수가 있다.
이와 같은 경우는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를 보면 쉽사리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그 1연의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라는 표현은 2연에서는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대구, 대조 못지않게, 아니, 더욱 두드러진, 운율을 위한 수사법은 반복이라 할 수가 있다.
일정한 모음이나, 자음을 반복하면 저절로 운율이 생긴다. 김소월은 이러한 반복의 운율을 잘 살린 시인이라 하겠다. 다음의 ‘길’이라는 작품을 보자.
“갈래갈래 갈린 길
길이라도
내게 바이 갈 길은 하나 없소.”
‘갈’과 ‘길’의 반복, 거기에 더 근원적인 반복으로는 ‘ㄹ’이 있어 절묘한 운율을 생성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은 우리의 전통적인 시가에서의 율격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특히 고려속요를 보면 이를 쉽게 인정할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청산별곡 :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서경별곡 : 위 두러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쌍화점 :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이러한 운율적 표현이 조선조에도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장르가 판소리이다. 춘향가 중의 십장가(十杖歌) 한 대목을 보자.
"일편 단심(一片丹心) 굳은 마음 일부종사(一夫從事) 뜻이오니, 일개 형벌 치옵신들 일 년이 다 못가서 일각인들 변하리까?"
"이부절(二夫節)을 아옵는데, 불경이부(不更二夫) 이내 마음 이 매 맞고 죽어도 이도령은 못 잊겠소."
"삼종지례(三從之禮) 지중한 법 삼강오륜(三綱五倫)알았으니, 삼치형문(三治刑問) 정배(定配)를 갈지라도 삼청동(三淸洞) 우리 낭군 이도령은 못 잊겠소."
"사대부 사또님은 사민공사(四民公事) 살피잖고 위력 공사(威力公事) 힘을 쓰니, 사십팔방(四十八坊) 남원 백성 원망함을 모르시오? 사지(四肢)를 가른대도 사생동거(死生同居) 우리 낭군 사생 간에 못 있겠소."
…
음성 상징어(音聲 象徵語; 의성어, 의태어)에 의한 운율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의성어와 의태어는 다른 나라에서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우리말 특징 중의 하나이기에 더욱 소중히 생각해야 할 운율 생성의 어휘들이다. 다음은 잡가인 ‘유산가(遊山歌)’의 일절로 여기서는 주로 의성어가 사용되었다.
“층암 절벽상(層岩絶壁上)의 폭포수(瀑布水)는 콸콸, 수정렴(水晶簾) 드리운 듯, 이 골 물이 주루루룩, 저 골 물이 솰솰, 열에 열 골 물이 한데 합수(合水)하여 천방져지방져 소쿠라지고 펑퍼져, 넌출지고 방울져, 저 건너 병풍석(屛風石)으로 으르렁 콸콸 흐르는 물결이 은옥(銀玉)같이 흩어지니, 소부 허유(巢父許由)문답하던 기산 영수(箕山潁水)가 예 아니냐.”
의성어뿐만 아니라 설명 내지는 묘사로서의 표현들도 모두가 저절로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율동을 실현하고 있는 표현이라 하겠다.
음성 상징어에서는 특히 음상(音相) 현상이 두드러지기에 유의해야 한다. 음상 현상이란 우리 국어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서 모음이나 자음의 교체로써 어의(語義)는 변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 어감(語感)만 다르게 만들어 주는 현상을 가리킨다. 대표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자.
(작은말) (큰말)
(거센말) 촐촐 출출
모음의 변화(양성모음과 음성모음)에 따라서 작은말과 큰말로 구분되며, 자음의 변화(예삿소리, 된소리, 거센소리)에 따라서 예삿말과 센말, 거센말로 분화되는 것이다. 리그물 한말글 모임(http.www.hanmalgeul.org/)에서 김태영 님이 2003년 01월 29일 남긴 글에 의하면 ‘붉다’와 관련된 말은 무려 68가지나 되었다.
운율뿐만 아니라 각 음운의 소리 하나하나에도 나름대로의 맛깔스러운 느낌을 지니고 있으니, 글쟁이들은 이에 대한 부단한 연찬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아직까지 이 방면에서는 두드러진 학술적인 논문도 별로 없는 형편이라서 더욱 문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각성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양성모음(陽性母音)이 작고 밝고 경쾌한 느낌을 주고, 음성모음(陰性母音)이 크고 어둡고 무거운 느낌을 준다는 점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배워서 아는 일이요, 자음 중 유성음인 ‘ㄴ ㄹ ㅁ ㅇ’(‘나라마음’이라는 말로 암기해 두면 쉽게 기억이 된다.)이 명랑하고 밝은 느낌을 준다는 점도 대체로 알려진 사실이다. 그 중에서도 ‘ㄹ’을 제외한 ‘ㄴ ㅁ ㅇ’은 비음(鼻音)으로서 이 음들을 잘 사용하면 애교적인 표현이 된다는 점도 아는 사람은 알고 있다.
예컨대, ‘그랬어요.’보다는 ‘그랬어용.’이라고 말한다든가 ‘몰라요.’가 아닌 ‘몰라용.’이 더욱 애교적인 소리라는 점이 그것이다. 비음을 제외한 유음(流音) ‘ㄹ’은 어떤 성격을 지녔을까? ‘ㄹ’은 그 음성학적 명칭이 유음이듯이 흐르는 소리, 굴러가는 소리에 적합한 음운이라고 할 수가 있다. 바닷물이든 강물, 냇물이든 물이 흘러가는 소리는 어김없이 이 ‘ㄹ’음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졸졸, 줄줄, 쫄쫄, 쭐쭐, 촐촐, 출출’을 비롯하여, ‘출렁출렁, 주르륵, 철철, 콸콸’ 등등 물이나 액체의 움직임에서는 ‘ㄹ’음이 빠지지 않는 것이다. 또 경음(ㄲ, ㄸ, ㅃ, ㅆ, ㅉ)의 사용은 강렬한 느낌, 격음(ㅊ, ㅋ, ㅌ, ㅍ)의 사용은 격한 느낌을 준다는 점도 대부분 알고 있는 사실일 것이다.
이제 별로 언급된 적이 없는 자음 14자의 특성을 하나하나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ㄱ’. 폐쇄음(閉鎖音)이다. ‘막막한’ 느낌, 닫혀 있는 느낌을 준다.
‘ㄴ’. 비음으로서의 성격, 유성음으로서의 구실에 더하여 ‘은은하고’ ‘잔잔한’ 느낌을 준다.
‘ㄷ’. 역시 폐쇄음이다. 유성음을 제외한 모든 무성 자음은 ‘ㄱ, ㄷ, ㅂ’으로 대표가 된다. ‘ㄱ’은 ‘ㄱ, ㅋ, ㄲ’을 대표하고, ‘ㄷ’은 ‘ㄷ, ㅌ, ㄸ, ㅅ, ㅆ, ㅈ, ㅉ, ㅊ, ㅎ’을 대표한다. 그리고 ‘ㅂ’은 ‘ㅂ, ㅃ, ㅍ’을 대표하는 소리이다. 그래서 받침에서는 유성음인 ‘ㄴ, ㄹ, ㅁ, ㅇ’과 대표음인 ‘ㄱ, ㄷ, ㅂ’의 7개의 자음 소리만이 유효하다. 소위 7종성이 바로 이것이다.
‘ㄹ’음, ‘ㅁ’음의 특성은 이미 언급했고, ‘ㅂ’도 폐쇄음으로서의 성격은 밝혀졌다. 거기에다가 ‘ㅂ’음의 사용은 조금 ‘답답한’ 느낌을 주는 수가 흔하다고 하겠으며, ‘ㅅ’음은 폐쇄음으로의 성격에다가 ‘지긋하고’, ‘느긋하다든가’, ‘살포시’ 접촉하는 느낌을 주기에 알맞고, ‘ㅇ’음도 유성음 및 비음으로서의 성격이 말해졌다.
‘ㅈ’은 ‘ㄷ’으로 대표되는 무성음, 덧붙이면 ‘잦아듦’의 느낌을 말할 수 있을 것이요, ‘ㅊ’ 역시 ‘ㄷ’으로 대표되는 무성음적 성격에다가 ‘칙칙한’ 어감을 덧붙일 수가 있으리라 여겨진다.
‘ㅋ’은 어떤가? ‘ㄱ’과 같은 어감을 가져다줌은 당연한 일인데다가 ‘칼’과 같은 말에서 느껴지듯이 날카로움을 의식하게 만들어주는 음운이다. ‘ㅌ’ 역시 폐쇄음 ‘ㄷ’으로 대표된다고 했다. 나름대로의 특색이라면 ‘텁텁한’ 분위기를 연출해 준다는 점일 것이요, ‘ㅍ’은 ‘ㅂ’과 동류, 보태어서 터짐, 폭발함을 드러내주기에 적합한 음운이다.
마지막으로 ‘ㅎ’을 보자. ‘ㅎ’은 가벼우면서도 ‘화사한’ 느낌을 주기에 적합한 음운이다. 김영랑의 ‘돌담에 소색이는 햇발같이’를 보자.
‘내 마음 고요히 고흔 봄 길 위에
오날 하로 하날을 우러르고 싶다.’
‘고요히, 고흔, 하로, 하날’이 ‘오날, 하로, 하날’과 같은 양성모음과 결합하여 더욱 더 부드럽고 가볍고 화사한 느낌을 더하고 있지 아니한가?
아직은 이러한 개별적인 음운이 드러내주는 그 독특한 분위기라든가 느낌을 분명한 잣대에 의해서 분석해낸 연구 결과물들이 없어서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의 견해만 밝혔는데, 좀더 세밀한 의미 분석은 앞으로 우리 글쟁이들이 맡아서 할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음소들이 가져다주는 느낌은 그 음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새로운 특색을 형성시켜 주기도 하는 것이다. 문학인들은 언어의 아름다움을 창조해 나가는 사람들이 아닌가?
다음과 같은 시를 보면 그런 점은 쉽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어진다.
서러운 서른 살(←설어운 설흔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김종길 ‘성탄제’)
2000년도 청소년 도서시장의 판도를 바꿔놓은 김영사의 ‘앗 !’시리즈의 리듬감 있는 제목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시 이 시리즈는 1년 5개월 만에 70만 부나 팔렸다.
‘앗, 이렇게 재미 있는 과학이!’의 시리즈의 표제들은 다음과 같다.
①수학이 수군수군 ②물리가 물렁물렁 ③화학이 화끈화끈
④수학이 또 수군수군 ⑤우주가 우왕좌왕 ⑥구석구석 인체탐험
⑦식물이 시끌시끌 ⑧벌레가 벌렁벌렁 ⑨동물이 뒹굴뒹굴
⑩바다가 바글바글 ⑪화산이 왈칵왈칵 ⑫소리가 슥삭슥삭
⑬진화가 진짜진짜 ⑭꼬르륵 뱃속여행 ⑮두뇌가 뒤죽박죽
다른 시리즈의 이름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책들의 제목이 주는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교육 + 오락 학습서
② 지성(교육) + 감성(오락)
③ 리듬 있는 제목(의성, 의태어의 사용)
여기서 우리는 그 ③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책의 제목에서마저도 이처럼 운율감 있는 표현이 독자들에게 어필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웅재. 베스트셀러연구(미간행). pp.5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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