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쓰기 26) 편지 쓰기
이 웅 재
필자는 초등학교에서의 일기 쓰기는 글쓰기라면 지긋지긋하다는 인상을 심어주는 주범, 없어져야 할 폐습이라고 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그 대안은 무엇인가? 대안 없는 비판은 비판을 위한 비판, 차라리 안 하느니만 같지 못하다는 점을 우리는 정치인들에게서 신물이 나도록 배워 왔다. 무조건 반대, 그런 것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없다.
‘일기 쓰기’의 대안, 그것은 ‘편지 쓰기’이다. 그러한 심정을 필자는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나는 지금도 연애편지를 써 보고 싶다
편지를 받아 보고 싶다.
전화에게 밀려나고, 핸드폰에 쫓겨난 편지를 받고 싶다. 하기야 요새도 우편함에는 여러 가지 편지가 쌓인다. 카드 사용이 늘어나다 보니 대금 청구서, 세금 고지서를 비롯하여 청첩장, 초청장 등 수북하게 쌓이는 것이 편지다. 하지만, 그런 공식적인 우편물이 아닌,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지극히 사적(私的)인, 사람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편지를 받고 싶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그래도 내게 가끔 편지가 왔었나 보다.
큰애가 말했다.
“왜 아빠에게만 편지가 와?”
그건 자신도 무척 편지를 받아 보고 싶다는 의사 표시였다.
“넌 누구에게 편지를 보낸 적 있니?”
“아아니.”
“그렇담, 네가 먼저 동무들에게 편지를 써 보아라.”
그 말을 들은 아이는, 밤 시간이 이슥해졌는데도 잠을 자지 않고 있었다. 슬그머니 방문을 열어 보니 편지지를 앞에 놓고 끙끙거리고 있었다.
요즈음 나는 학생들에게 편지를 좀 써 보라고 한다.
“그건 시간 낭비인데요.”
“왜?”
“핸드폰 없는 애들이 없잖아요? 요새처럼 바쁜 세상에 편지 쓸 시간이 어디 있어요?”
필요한 의사 전달은 즉시즉시 문자 보내기로 족한데, 며칠씩 걸려야 전달되는 편지를 왜 쓰느냐는 것이겠다. 시간이 아깝지 않느냐는 것이리라.
“그래? 그렇다면, 이런 식으로 쓰면 어떨까? 별로 시간을 잡아먹는 방법이 아닌데….”
“어떻게요?”
“으응. 아주 간단하게 쓰는 거지. 세 마디만 하면 되거든.”
‘그 동안 안녕.
나도 안녕.
이만 안녕.’
그러면서 나는 편지 중에서도 연애편지를 써 보라고 한다. 연애편지처럼 문장 수련에 좋은 방법은 없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상대방의 관심을 자신에게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깔끔하고 신선하고 아름답고 진실된 말들만 골라서 쓸 테니까 말이다. 어디 그뿐이랴? 글씨마저도 공들여 예쁘게 쓰려고 노력할 것임에 틀림이 없지 않은가? 때로는 멋진 그림마저도 덧붙일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내 고등학교 시절의 경험담을 양념으로 얹어 놓는다.
“60년대 초 학생들은 용돈이 궁했지. 하지만 나는 빵 값 걱정은 안 해도 되었다구. 왜? 그건 바로 알바로 연애편지 대행업을 차렸었거든.”
썩어 가는 생선의 눈처럼 게슴츠레해지던 학생들의 눈빛이 똘망똘망해진다. 얘기를 계속하라는 눈치다.
“한 번은 친구 대신 써 보냈던 편지를 받은 아주 예쁜 여학생과 우연히 만난 적이 있었지.”
학생들의 눈망울이 더욱 초롱초롱해지고 있었다.
“그 여학생이 말하더군. 그 편지 내가 쓴 것인 줄 알고 있었다구.”
학생들은 이제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몸까지 앞쪽으로 굽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여학생이 내게 한 말은, 자기가 그때까지 받아 본 연애편지 중에서 가장 긴 편지였었다는 말이 전부였었지.”
“우우.”
야유의 함성이 강의실을 채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말을 이었다.
“백지로 앞 뒤 빽빽이 열 장을 썼었거든.”
“우와아.”
이번 것은 탄성임이 분명했다.
“그래서요?”
이쯤의 반응이라면 성공인 셈이다. 그 뒷얘기까지도 까발리라는 기대 심리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니까. 하지만, 얘기는 이쯤에서 마무리되어야 효과가 배가된다.
“여러분도 편지, 그 중에서도 연애편지를 많이 써 보라는 겁니다. 그것만큼 문장력을 길러 주는 방법은 없으니까요.”
나는 지금도 연애편지를 써 보고 싶다. 어느 특정 대상에게는 용기가 나질 않으니, 큰마음 먹고 이 세상 모든 여인들을 상대로 하는 연애편지라도 한번 써 볼거나.
그렇다. 편지를 쓰자. 지난 날, 우리는 우체부 아저씨가 얼마나 반가웠던가? 우리집으로, 내게로 오는 편지가 없어도 저만치 우체부 아저씨의 모습이 보이면 공연히 가슴이 울렁거리지 않았던가? 학교 갔다 오는 길에 어쩌다 우체부 아저씨를 만나게 되면 우리는, 체육시간에는 그렇게 싫어하던 달리기를 저마다 먼저 시작하곤 하지 않았던가?
“우체부 아저씨, 안녕하세요?”
“응, 너희들 이제 학교가 파했구나? 가만 있자~, 아하, 철수야, 이건 너네 집으로 오는 편지로구나.”
철수는 신이 난다. 그게 어디 철수뿐이던가? 영식이도 정진이도 함께 신이 난다.
“서울 가서 공장 다니는 옥자 누나에게서 온 편진가 보다!”
모두들, 모두들 신이 나서 떠벌리곤 했었다. 그게 누구에게서 온 편지건, 누구네 집으로 가는 편지건, 무조건 반가웠다. 그런데 그게 같은 반에 다니는 효숙이에게서 온 편지였더라면 어땠을까? 아마도 편지를 받게 될 당사자는 잘못하다가는 숨이 막혀 버릴지도 모를 일이 아니었을까?
남학생들이라면, 중학교를 거치고 고등학교에 다닐 때쯤이면, 한두 번쯤은 제가 좋아하는 여학생에게 편지를 써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때, 얼마나 떨리던가?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이 세상 최대의 진실된 말, 온 세상을 통틀어서 가장 멋진 말을 골라 짜 내느라고 얼마나 고심들을 했던가?
중앙일보 이원호 기자의 ‘대한민국 소통 인프라의 역사’ (2009.05.12)라는 글을 보면, 우리나라에 우편 서비스가 시작된 지 금년에 125주년이 되었다고 한다. 1884년 4월 22일 고종황제의 명으로 우정총국이 탄생되었고 여기서 우편 업무를 보기 시작했던 것이다. 4월 22일은 그래서 ‘체신의 날’이요, ‘집배원의 날’이었다. 지금은 ‘정보통신의 날’로 그 이름이 바뀌었지만.
우리나라의 우편 수단의 단초는 삼국시대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사기를 보면, 신라 소지왕 9년(487)에 사방에 우역(郵驛)을 두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인편(人便)으로 아랫사람을 시켜 개인적으로 소식을 전하는 일이거나, 국가가 군사, 또는 공무적인 용무로서만 이용되었을 뿐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한말(韓末)에 이르러 개화파의 홍영식(洪萬植) 병조참판이 신사유람단(紳士遊覽團)의 일원으로 일본과 미국을 돌아본 뒤, 고종황제에게 우정사업(郵政事業)을 건의하면서 비로소 근대적 우편제도가 탄생되기에 이르렀단다. 누구나 규정된 요금을 내면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빠른 시일 내에 전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것도 통신의 비밀을 보장받으면서….
인편으로 전하던 소식은 그 비밀 보장이 될 수 없어 꼭 믿을 만한 사람을 골라 보냈었지만, 그렇게 세심한 주의를 하여도 새어 나가는 비밀을 원천 봉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왜? 우리 인간에게는 엿보고 싶고, 엿듣고 싶은 욕망을 잠재울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안대회 교수는 ‘고전의 향기 22’에서, 이백(李白)의 「자야오가(子夜吳歌)」를 보면, “5월이라 서시가 연밥을 따노라니, 구경꾼들이 약야계(若耶溪)를 메우는구나.(五月西施採, 人看隘若耶.)”라는 시구가 있다고 하였다. 천하절색인 서시가 약야계에서 연밥 따는 것을 구경하느라 사람들이 몰려들어 흘러가는 시냇물이 막힐 정도였다는 것이다.
세속에서는 예로부터 ‘3대 구경거리’이라는 것이 있었다. 불구경, 물구경, 싸움구경이 그것인데, 실상 그것들은 겉으로 드러난 구경거리에 불과할 뿐이요, 그보다도 더욱 은밀한 구경거리는 몰래 엿보고 몰래 엿듣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래서 영원한 비밀은 없다는 말이 생겨났을 것이다. 비밀이라면 더욱 더 캐내 보고 싶은 것이 인간의 심리인 것을….
우리는 그러한 현실을 너무나도 흔하게 대해 오고 있질 않은가? 요즈음 신문지상에 자주 오르내리는 기사를 보면, 정말이지 이 세상에 비밀이란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 나라의 최고 통치자가 ‘절대 비밀’을 못 박으면서 받아먹었던 부정 탄 검은 돈들도 어찌 그리 명명백백히 드러나는지…. 그래서 생겨난 말이 있지 아니한가? 기록은 깨지기 위해서 있는 것이요, 비밀은 밝혀지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그렇다. 사람들은 자신의 비밀을 어떠한 일이 있어도 숨기겠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그 반대로는 또 누군가가 그 비밀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가장 사적(私的)일 수밖에 없는 일기나 편지도 때로는 공개되는 것은 아닌지? 최근의 ‘근엄 정조’와 ‘인간 정조’ 이은 편지 297통이 공개된 일은 이러한 인간의 심리를 잘 대변하고 있다고 하겠다. 문체반정 운동으로 연암(燕巖)을 몰아세우던 정조가 ‘껄껄, 츳츳’ 같은 한문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속된 표현의 감탄사를 썼는가 하면, ‘입이 시궁창처럼 더럽다'거나 '개에 물린 꿩 신세' 같은 속담과 속어를 비롯하여, 심지어는 '호로자식', '입에서 젖내 나고 사람 모습도 갖추지 못한 놈' 등의 저속한 표현마저도 서슴지 않았다는 데에서 우리는 경악을 금치 못한다.
최근에 필자는 어느 분의 소설을 보고 그 평(評) 비슷한 것을 써서 e-mail로 보내면서, 그 마지막에 다음과 같은 글을 덧붙인 적이 있다.
보내고 싶었던 편지
[자반(紫瘢)]
문득 왼쪽 손 엄지손가락을 바라본다.
자줏빛 멍이 들어있다.
자반(紫斑)이다.
베란다 창문을 열다가
잘못하여 생긴 흔적이다.
나는 가끔 칠칠치 못하게 그렇게
손가락을 다친다.
오른쪽 손에는
상처가 다 나았음에도
아직 그 흔적이 남아있는
자반(紫瘢)이 있다.
선후를 따진다면
자반(紫瘢)이 먼저다.
그러나 이처럼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멍이나 상처자국은,
시간이 지나면 감쪽같이
원상복구가 된다.
만남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만남은,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다.
그 만남에는
온갖 감정이 교직되어 흐른다.
반가움,
그리움,
고마움,
연민, 증오, 질투….
살아가노라면 이같이,
여러 가지 흔적을 남기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아픈 기억으로 남는 것은,
이루지 못한 사랑의,
마음 속 깊이 새겨져 있는,
기억만이
가슴을 쑤신다.
아프다.
아프다.
아픈 기억만이
가슴을 쑤신다.
(*자반(紫斑): ① 紫色(자색)의 斑文[紋](얼룩얼룩한 무늬)
② (医) 내출혈 때문에 피부 조직 속에 나타난 자줏빛의 멍.
자반(紫瘢): 상처가 나아도 아직 자줏빛의 흔적이 남는 일.)
그랬더니, 그분 왈, 아마도 그건 나의 “아픈 사랑의 기억”인가 보다는 코멘트가 덧붙어서 내게로 돌아오기도 했었다. 편지란, 모든 사람에게 그만큼 흥미로운 관심의 대상이 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내게는 소득이었다. 앞에서 ‘나는 지금도 연애편지를 써 보고 싶다’는 글을 소개하면서 말했었다. “나는 지금도 연애편지를 써 보고 싶다. 어느 특정 대상에게는 용기가 나질 않으니, 큰마음 먹고 이 세상 모든 여인들을 상대로 하는 연애편지라도 한번 써 볼거나.”라고.
편지를 쓰자. 직접 얼굴을 대하고는 하기 힘든 말도 편지로서는 할 수가 있지 않은가? 전화를 가지고 할 수 없는 말도 편지로서는 가능하지 않은가? 그리고 그 효과도 다른 어떤 수단의 의사전달보다도 더욱 효과적인 것이 아니던가? 편지를 쓰자. 편지도 일기나 마찬가지로 수필의 한 영역을 차지하기도 하는 것, 그러니 좋은 수필을 쓰려면 열심히, 열심히 편지를 쓰는 일도 필요한 것이다. 편지, 편지를 쓰자.
이제 마지막으로 연상의 친구로부터, “너 인생을 압축파일로 살았구나.”라는 말을 들었던 고 장영희 서강대 교수의, 며칠 동안에 걸쳐서 사력(死力)을 다해 썼다는 마지막 편지 하나를 덧붙인다.
"엄마 미안해, 이렇게 엄마를 먼저 떠나게 돼서. 내가 먼저 가서 아버지 찾아서 기다리고 있을게. 엄마 딸로 태어나서 지지리 속도 썩혔는데 그래도 난 엄마 딸이라서 참 좋았어. 엄마, 엄마는 이 아름다운 세상 더 보고 오래오래 더 기다리면서 나중에 다시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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