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講 20. [적벽가(赤壁歌)(抄)] 적벽가(赤壁歌) 성두본 B
천하대세(天下大勢) 분구필합(分久必合)이요, 합구필분(合久必分)이 성탄선생(聖歎先生)의 만고확론(萬古確論)이라. 한(漢) 영제(靈帝) 건녕(建寧) 2년 4월 망일 온덕전(溫德殿)에 전좌(殿座)하여 백관(百官) 조회(朝會)받으실 새 난데 없는 푸른 배암 양상(梁上)으로 기어 내려 어탑(御榻)을 두르더니, 인홀불견(因忽不見) 간 데 없이 뇌성대우(雷聲大雨) 우박(雨雹)하고, 그 후 4년 2월 일에 낙양(洛陽)에 지진(地震)하여 해수(海水)가 넘쳐흐르고, 그 후 광화(光和) 원년(元年)에 암탉이 수탉 되어 6월에 검은 기운, 7월에 무지개요, 오원산(五原山)이 무너지니, 이때 천하가 분분(紛紛)하여 사방병(四方兵)이 일어날 제 황건적도 어렵거든 17진 웬일인고. 파적안민(破賊安民) 중흥지주(中興之主) 탁군(涿郡)에서 일어나니, 경제(景帝)의 각하(閣下) 현손(玄孫) 탁록(涿鹿) 정후(亭侯) 후손(後孫)인데 신장이 8척이요, 시년이 28세, 두 귀가 훨썩 커서 손수 돌아 보시오며 두 손을 드리우면 무릎에 지나간다. 빛 고운 입술은 주사(朱砂)를 발랐는 듯, 성정(性情)이 관화(寬和)하여 언어가 적으시며 희노(喜怒)를 불형어색(不形於色) 품은 것이 큰 뜻이라, 모친을 효양(孝養)하고 호걸을 교결(交結)하니 성함은 유비(劉備)시요, 자호(字號)는 현덕(玄德)이라. 탁군의 장비(張飛)하고, 하동의 관운장(關雲長)과 도원(桃園)에 결의하셔, 상보국가(上報國家)하고 하안백성(下安百姓)하시기로 경륜지사(經綸之士) 만나렬 제, 와룡선생(臥龍先生) 높은 이름 수경선생(水鏡先生) 말씀이요, 서원직(徐元直)의 천거로다. 춘풍세우(春風細雨) 밭갈 제와 백설한풍(白雪寒風) 깊은 겨울 두 번 가서 못 뵈옵고, 세 번 찾아가실 적에 융중(隆中) 경물(景物) 둘러보니 양양성서(襄陽城西) 이십리에 일대고강침류수 (一帶高岡枕流水)라, 산불고이수려(山不高而秀麗)하고 수불심이징청(水不深而澄淸)하며, 지불광이평탄(地不廣而平坦)이요 임불대이무성(林不大而茂盛)이라, 원학(猿鶴)은 서로 보고 송황(松篁)은 푸르렀다. 시비(柴扉)를 두드리며 동자 불러 물은 말씀, "선생이 계옵시냐." 동자가 대답하되, "이번에는 계옵시나 초당(草堂)에서 낮졸음 아직 아니 깨시니다." 현덕이 눈을 들어 초당을 바라보니 벽상(壁上)에 붙인 글씨 담박이명지(澹泊以明志) 하고 영정이치원(寧靜以致遠)이라 단정히 붙였구나. 공순히 국궁(鞠躬)하고 계하(階下)에 오래 서서 기침키를 기다릴 제, 반향(半晌)이 지나도록 동정이 없는지라, 장비의 급한 성정 참다가 못 견디어 초당 뒤에 불 놓기로 떨뜨리고 냅다 서니, 관공(關公)이 손을 잡고 간신히 만류하여 문외(門外)에 등후(等候)터니, 선생이 돌아누워 풍월을 읊으시되, "대몽(大夢)을 수선교(誰先覺)오 평생을 아자지(我自知)라, 초당에 춘수족(春睡足)하니 창외(窓外)에 일지지(日遲遲)라." 읊기를 파한 후에 동자 불러 물으시되, "속객(俗客)이 와 계시냐?" 동자가 여짜오되, "유황숙(劉皇叔)이 여기 있어 기다린 지 오랩니다." 선생이 일어나서 후당에 들어가서 의관을 정제하고 황숙을 영접할 제, 공명(孔明) 기상(氣象) 바라보니 신장은 8척이요 얼굴은 관옥(冠玉)이라. 머리에 윤건(綸巾)이며 몸에 입은 학창의(鶴氅衣)가 표연한 신선이라. 황숙이 배례하고 꿇어앉아 여짜오되, "한실(漢室)의 말주(末胄)요. 탁군의 우부(愚夫)로서 선생의 큰 이름을 우러른 지 오랜 고로 두번 찾아왔삽다가 못 뵈옵고 가옵기에 흉중의 소회사(所懷事)와, 이 몸의 천한 이름 기록하고 갔삽더니 선생이 보시니까." 공명이 여짜오되, "남양(南陽)의 들사람이 소라(疎懶)한 성정인데 장군의 귀한 행차 여러 번 왕림하니 불승괴란(不勝愧赧)하여이다." 빈주(賓主)의 예를 차려 차 올려 파한 후에 공명이 여짜오되, "나 어리고 재조 없어 위국위민(爲國爲民) 물은 말씀 대답할 수 없나이다." 황숙이 여짜오되, "사마덕조(司馬德操) 서원직(徐元直)이 어찌 허담(虛談)하올는지, 경세지재(經世之才) 속에 품고 공로임천(空老林泉) 하오리까. 천하 창생(蒼生) 생각하여 가르쳐 주옵소서." 공명이 웃으시고 세 번 사양하신 후에, "장군의 장한 뜻이 어찌코자 하나이까." 사람을 물리치고 황숙이 하는 말씀, "한실이 경퇴(傾頹)하고 간신이 절명(竊命)키로 대의(大義)를 펴자 하되 지술(智術)이 단천(短淺)하니 선생만 바라내다." 공명이 여짜오되, "조조는 간웅(奸雄)이라. 백만 무리 거느리고 협천자(挾天子) 호령, 제후 쟁봉(爭鋒)치 못할 테요. 강동의 손권(孫權)이는 국험민부(國險民富)하여 3세(世)가 되었으니 구원은 청하여도 도모는 못 할테요, 형주(荊州)는 용무지지(用武之地), 익주(益州)는 천부지토(天府之土), 형 ․ 익(荊益)을 차지하여 천하 일을 도모하면 대업을 이루시고 한실을 흥하리다." 익주도(益州圖) 펴서 걸고 가리켜 보이면서, "조조는 천시(天時)옵고, 손권은 지리(地理)옵고, 장군은 인화(人和)되면 삼분정족(三分鼎足) 되오리다." 황숙이 배례하고 다시 꿇어 여짜오되, "명미덕박(命微德薄) 하온 몸을 비천타 마시고 출산상조(出山相助) 하옵소서." 공명이 사양하고 나올 뜻이 없었으니, 황숙의 슬픈 눈물 의금(衣襟)이 다 젖는다. 공명이 하릴없어 예단(禮單)을 받으시고 관 ․ 장(關張)과 한가지로 하룻밤 동숙 후에 그 아우 균(均)을 불러 매학(梅鶴)을 맡기시고 부탁을 하는 말씀, "제실지주(帝室之胄) 유황숙이 삼고지은(三顧之恩) 중하기로 부득이 나가노니 전묘(田畝)를 잘 다스려 황무(荒蕪)케 말지어다. 공명을 이룬 후에 돌아와 숨으리라." 사륜거(四輪車)에 높이 앉아 황숙을 모시옵고 신야(新野)로 돌아오니 병불만천(兵不滿千)이요 장불만십(將不滿十)이라. 군사를 소모(召募)하여 박망(博望)에 소둔(燒屯)하고 백하(白河)에 용수(用水)하니 초출(初出) 모려(茅廬) 제일공(第一功)에 조조가 혼이 나서 십만병사 거느리고 팔로(八路)로 달려드니, 장판(長坂)에 대전(大戰)하고 하구(夏口)에 웅거(雄據)하여 조조를 잡으려고 경륜을 꾸밀 적에, 강동의 손권이가 유형주(劉荊州) 조상차(弔喪次)로 노숙(魯肅)을 보냈구나. 의사 많은 공명선생 황숙 전에 여짜오되, "양(亮)이 재조 없사오나 노숙과 한가지로 동오(東吳)에 들어가서 세 치 되는 혀를 놀려 조조와 손권으로 한 번 싸움 붙인 후에 남군승즉(南軍勝則) 위(魏)를 치고 북군승즉 (北軍勝則) 오(吳)를 쳐서 방휼지세(蚌鷸之勢) 다투는데 어인지공(漁人之功) 되사이다." 암암(暗暗) 약속하신 후에 노숙과 한가지로 일범선(一帆船) 빌어 타고 강동을 건너가서, 설전군유(舌戰群儒)한 연후에 대교 ․ 소교(大喬小喬) 한 말씀에 동작대부(銅雀臺賦) 송전(誦傳)하니 주공근(周公瑾)이 분을 내어 조조를 치려 할 제 장하다 손중모(孫仲謀)는 벽안자염(碧眼紫髥) 당당하다. 찼던 칼 빼어내어 서안(書案)을 깨친 후에 81주 넓은 땅에 백만 웅병 조발(早發)할 제 대도독(大都督) 주공근과 부도독(副都督) 정보(程普)이며 찬군교위(贊軍校尉) 노숙이라. 전부선봉(前部先鋒) 한당(韓當) 황개(黃蓋), 제2대에 장흠(蔣欽) 주태(周泰), 제3대에 능통(凌統) 반장(潘璋), 제4대에 태사자(太史慈) 여몽(呂蒙), 제5대에 육손(陸遜) 동습(蕫襲), 순경사(巡驚使)에 여범(呂範) 주치(朱治), 수군 육군 점고(點考)하고 선척(船隻) 군기(軍器) 수습하여 수륙 병진(幷進)하올 적에 대도독 주공근(周公謹)이 장대(將臺)에 높이 앉아 제장(諸將)을 호령한다.
"방금(方今)의 조조(曹操) 권세 동탁(董卓)보다 심한지라 천자를 위협하여 허창(許昌)에 가두고, 폭병(暴兵)을 몰아다가 경상(境上)에 둔취(屯聚)키로 주공의 명을 받아 역적을 치려 하니, 제군은 힘을 써서 대군이 간 데마다 백성을 침로(侵擄) 말고 공 있는 자 상 주기와 죄 있는 자 벌하기를 상벌이 분명하여 각수내직(各守乃職)하라. 왕법(王法)은 무친(無親)이라 인검(印劒)이 예 있으니 각별히 조심하라." 호령이 엄숙하니 수륙이 진동한다. 삼강구(三江口) 오륙십 리 전선(戰船)으로 둘러싸고 서산(西山)을 의지하여 영채(營寨)를 세웠으니. 이때에 공명선생 주도독(周都督)을 따라와서 일엽소선(一葉小船) 혼자 타고 군중사무(軍中事務) 의논할 제, 애닯다 주도독은 재조를 시기하여 공명을 해하련들 신출귀몰 저 재조를 뉘라서 알 수 있나. 취철산(聚鐵山) 양식 끊기 한 말로 모면하고, 조조의 십만전 (十萬箭)을 삼일 내에 뺏아오니 도독의 놀란 마음 갈수록 더하구나. 유예주(劉豫州)를 청하여서 살해코자 하였더니, 관공(關公)이 따라오니 어찌할 수 있겠느냐. 하직하고 가실 적에 공명이 아시고 강변에 대후타가 대강 사연 고한 후에 은근히 여짜오되, "11월 20일에 일엽소선(一葉小船) 자룡(子龍) 주어 남안변(南案邊)에 매었으되 부디 실기 (失期) 마옵소서. 동남풍이 일어나면 양(亮)이 돌아가오리다." 하직하고 돌아오니. 조조의 보낸 편지 외봉(外封)이 괘씸쿠나. 주도독이 분을 내어 훼서참사(毁書斬使) 하온 후에, 감녕(甘寧) 한당(韓當) 장흠(蔣欽)으로 조조와 일장(一場) 대전(大戰) 승전(勝戰)하고 돌아오니, 조조가 겁을 내어 수채(水寨)를 새로 꾸며 수군을 조련할 제, 주도독(周都督)이 배를 타고 다 둘러보았구나. 장간(蔣幹)의 어린 소견 원섭강호(遠涉江湖) 웬일인고. 매국지적(賣國之賊), 채모(蔡瑁) 장윤(張允) 조조 손에 죽단 말가. 주도독과 공명선생 조조 파(破)할 꾀를 돌아 앉아 의논할 제, 장중(掌中)에 쓰인 글자 서로 보니 여덟 팔(八), 사람 인(人)자라 화공(火攻)을 하려 할 제, 온갖 비계(秘計) 다 꾸미니 황개(黃蓋)의 고육계(苦肉計)와 감택(闞澤)의 사항서(詐降書)며 봉추선생(鳳雛先生) 연환계(連環計)라. 쓰고, 달고, 매운 약을 한데 모두 고(膏)를 내며 83만 먹이렬 제, 도독은 불을 때고 부채질 누가 할까.
이때는 건안(建安) 12년 11월 15일이라. 천기 명랑하고 파도 고요하니 조조 대연배설(大宴排設)하여 술 많이 거르고, 떡 많이 치고, 소 많이 잡고, 돝 많이 잡고, 개 잡고, 닭 잡아서 호군(犒軍)을 질끈하고, 연환(連環)한 큰 전선(戰船)을 대강(大江) 중앙에 덩실 띄워 푸른 복판 황금대자(黃金大字) 크나큰 수자기(帥字旗)를 둥두렷이 앞에 세우고, 양편 전선 수백 척을 수채(水寨)를 굳게 꾸며 궁노수(弓弩手) 1천 명을 단단히 매복하고 조조의 거동 보소. 홍포옥대(紅袍玉帶) 금관으로 한가운데 좌기(坐起)하니 좌우에 모신 장수 황금 투구, 비단 갑옷 창도 메고 칼도 차고 반차(班次)로 벌렸는데, 동산에 달 오르니 백일(白日)과 한가지라. 일대장강(一帶長江) 맑은 물은 흰 비단을 폈는 듯, 남병산(南幷山) 고운 봉(峰)은 그림 병풍 둘렀는 듯, 동시시상(東視柴桑)하고, 서관하구(西觀夏口)하고, 남망번성(南望樊城)하고, 북처오림(北覰烏林)하니 사고공활(四顧空闊)하여 호기(豪氣)가 절로 난다. 창을 빼어 손에 쥐고 제장(諸將)더러 하는 말이, "내가 이 창 가지고서 황건적을 부수고, 여포(呂布)를 사로잡고, 원술(袁術)을 초멸(剿滅)하고, 원소(袁紹)를 거두고, 심입새북(深入塞北)하고, 직저요동(直抵遼東)하여, 남으로 가리키며, 유종(劉琮)이 속수(束手)하니 천하에 횡행하되 대장부 먹은 마음 저버리지 아니하니 사해를 삭평(削平)하고 못 얻은 게 강남이라, 백만 웅수(雄帥) 거느리고 제군의 힘을 입어 강남을 얻으며는 좋은 일이 별(別)로 있다. 교공(橋公)의 두 여자가 국색(國色)으로 유명터니 손책, 주유(周瑜) 아내 됨을 내 매양 한탄이라. 강남을 얻은 후에 이교녀를 데려다가 동작대(銅雀臺) 봄바람에 모년행락(暮年行樂) 하여볼까." 남안(南岸)을 가리키며, "주유와 노숙이는 천시(天時)를 모르느냐. 내 군사 거짓 항복 네 복심(腹心)이 되었으니 하늘이 도움이오." 하구(夏口)를 가리키며, "유비와 제갈량이 어찌 그리 우미(愚微)하여 개미의 약한 힘이 태산을 흔들소냐." 장담을 한참 할 제, 난데없는 까마귀가 남천을 바라보고 까욱까욱 울고 가니 조조가 물어, "어떠한 까마귀가 이 밤에 울고 가노." 좌우가 여짜오되, "그 까마귀 달 밝으니 새벽인가 의심하여 나무를 떠나 우나이다." 조조가 크게 웃고 교기(驕氣)가 잔뜩 나서 노래 지어 부르기를, "대주당가(對酒當歌)하니 인생기하(人生幾何)요. 비여조로(譬如朝露) 하여 거일(去日)이 무다(無多)로다. 월명성희(月明星稀)에 오작(烏鵲)이 남비(南飛)로다. 요수삼잡(遶樹三잡)에 무지가의(無枝可依)로다." 제장이 화답하고 한참 서로 즐길 적에 양주자사(揚州刺史) 유복(劉馥)이 썩 나서서 하는 말이, "대군이 상당하여 장사가 용명(用命)할 제 승상의 지은 노래 불길조(不吉兆)는 웬일인고. 월명성희(月明星稀) 오작남비(烏鵲南飛)요, 요수삼잡(遶樹三匝) 무지가의(無枝可依) 좋지 않은 말씀이오." 조조가 대로(大怒)하여, "내 속에 나는 흥을 네가 감히 파하느냐?" 창으로 퍽 찌르니 좌중이 다 놀란다.
이때에 만군중(滿軍中)에 무론(無論) 장졸(將卒) 다 취하여 그런 야단(惹端)이 없구나. 노래부르는 놈, 춤추는 놈, 이야기하는 놈, 싸움하는 놈, 과음식(過飮食) 많이 하고 더럭더럭 게 우는 놈, 투전 골패하는 놈, 서러워 엉엉 우는 놈, 언문책(諺文冊) 보는 놈, 왕왕이 사중(沙中)에 늘어앉아 각색으로 장난할 제. 한 군사가 썩 달려드는데 이 손이 인물도 준수(俊秀)하고 기력이 과인(過人)하여, 매우 덤벙여 수인사(修人事) 목을 권(權)판 비슷하게 문자 내놓는데, 매우 유식하여, "고읍황금편(高揖黃金鞭)에 피차(彼此) 없이 초면이요. 남정부북환(南征復北還)에 수고(愁苦)가 어떠한고, 빈년불해병(頻年不解兵)에 싸움으로 늙어 오니, 창망문가실(蒼茫問家室)에 고향이 어느 곳인고. 각억루첨건(却憶淚沾巾)에 생각하면 눈물이라, 금석 (今夕)이 시하석(是何夕)고 달이 밝고 밤 길었네. 장검대준주(仗劒對樽酒)에 술이 좋고 안주 있다. 만사삼소파(萬事三笑罷)에 웃음 웃고 놀아 보세."
한 군사 나앉으며, "너는 유식하고 호기 있는 사람이다. 내 서러운 말 들어 보라." "당상(堂上) 학발노친(鶴髮老親) 이별한 지 몇 해 된고. 부혜생아(父兮生我)하고 모혜국아(母兮鞠我)하사 호천망극(昊天罔極) 큰 은혜를 어찌하여 다 갚을꼬. 혼정신성(昏定晨省) 출고반면(出告反面), 조석이면 숙수공양(菽水供養) 지성으로 다한대도, 수욕정이풍부지(樹欲停而風不止)요, 자욕양이친부대(子欲養而親不待)라, 서산에 지는 해를 붙들 수가 없삽는데, 슬하를 한번 떠나 몇 해 소식 없었으니 우리 부모 날 기다려 바람 텅텅 부는 날에 의문망(倚門望)이 몇 번이며, 비가 죽죽 오는 밤에 의려망(倚閭望)이 몇 번인고. 피호피기(彼岵彼屺) 올라가서 바라나 보자 하되, 군법이 지엄하여 잠시 천이(遷移)할 수 없네. 무상(無狀)타 조승상(曹丞相)은 군법도 모르던가. 무형제(無兄弟) 독신 나를 귀양(歸養)하라 아니하고 천리 전장 데려다가 불효자가 되게 하네. 애고 애고 설운지고."
한 군사가 나앉으며, "너는 부모 생각하여 우니 효자로다. 내 설움 들어 보라. 내 팔자 무상(無常)하여 십 세 전에 조실부모(早失父母) 혈혈(孑孑)한 이 목숨이 기식인가(寄食人家) 자라나서 적수(赤手)로 돈냥 모아 이십 넘어 장가드니, 처복은 있었던지 우리 아내 얌전하지. 운빈화안(雲鬢花顔) 어여쁘고 침선방적(針線紡績) 다 잘하네. 친척 어른 대접하고 동네 사람 화목하여 백집사가감(百執事可堪)하니, 가빈(家貧)에 사현처(思賢妻) 가난한 살림살이 차차 나아가더구나. 길쌈으로 모은 돈을 올해 심을 논을 사고, 바느질삯을 모아 송아지 사서 남을 주고, 집안을 둘러보면 묵은 침채(沈菜), 묵은 간장, 솥 빛은 얼른얼른, 채전(菜田)에 풀이 없네. 내 비위에 똑 맞으니 그 정지(情地)가 어떻겠나. 마주 앉아 밥을 먹고 꼭 껴안고 잠을 자서 잠시도 이별 말고 사즉동혈 (死則同穴) 하쟀더니 생이별 전장에 와서 못 본 지가 몇 해던고. 우리 아내 이내 생각 오죽이 간절할까. 채채권이(采采卷耳) 불영경광(不盈頃筐) 나물 캐며 날 바라는가. 제롱망채엽(提籠忘採葉) 뽕을 따며 생각는가. 꾀꼬리 우는 소리 이주몽(伊州夢) 못 이루고 기러기 날아갈 제 금자(錦字)를 붙였는가. 형용이 눈에 암암 욕망난망(欲忘難忘) 못 살겠네. 애고 애고 설운지고."
한 군사 나앉으며, "너는 아내 생각으로 우는구나. 너 내 설움 들어 보라. 나는 남의 오대 독자, 사십이 넘어가되 남녀 간에 자식 없어 불효지죄(不孝之罪) 많은 중에, 무자(無子)한 죄 크다기에 자식을 보려 하고 온갖 정성 다 들였다. 명산대찰(名山大刹), 영신당(靈神堂)과 고묘총사(古廟叢祠), 성황당(城隍堂), 석불, 미륵(彌勒) 서 계신 데 지성으로 제사하고 가사시주(袈裟施主), 인등시주(引燈施主), 창호시주(窓戶施主), 백일산제(百日山祭), 무수히 하였더니 공든 탑이 무너지며, 신(信)든 나무 꺾어질까. 우리 아내 포태 (胞胎)하여 또독또독 배가 불러 오륙삭이 넘어가니 부부의 좋은 마음 조심이 극진하다. 석부정부좌(席不正不坐), 할부정부식(割不正不食), 목불시악색(目不視惡色), 이불청음성(耳不廳淫聲) 태교를 다하여서, 십 삭이 찬 연후에 순산으로 득남하니, 천지간 좋은 일이 이 밖에 또 있는가. 칠일까지 소(素)를 하고, 칠칠일에 큰 굿하고 백일에 대연(大宴)하고 첫돌에 큰 불공, 젖살이 점점 올라 빵긋빵긋 웃는 양, 터덕터덕 뒤집는 양, 아장아장 걷는 양, 작강작강 길라아비 훨훨 온갖 장난 다할 적 에, 그 사랑이 어떻겠나. 선영의 음덕인가 석가님이 보내셨는가. 금을 주고 너를 사랴 옥을 주고 너를 사랴. 사씨(謝氏)네 집 보배나무, 서씨(徐氏)네 집 기린 새끼, 상호봉시(桑弧蓬矢) 이사사방(以射四方) 호반(虎班)질을 시켜 볼까. 인생 팔세 개입소학(皆入小學) 글공부를 시켜볼까. 밤낮으로 농장지경(弄璋之慶) 철 가는 줄 모르더니, 전장에 잡혀 와서 내 아들 못 본 지가 지금 벌서 몇 해 된고. 아빠 아빠 우는 소리 귀에 그저 쟁쟁하네. 이 몸이 아니 죽고 설령 살아 간다 하되, 아동상견불상식 소문객종하처래(兒童相見不相識 笑問客從何處來)인데 만일 불행 이 몸 죽어 골포사장(骨暴沙場) 하거드면 자식 다시 볼 수 있나. 애고 애고 설운지고."
한 군사 나앉으며, "너희는 팔자 좋아 얌전한 아내하고 살림도 하여 보고 어여쁜 아들 낳아 사랑하여 길러 보아 볼 재미 다 보았다. 그렇게 지냈으면 손톱만큼 섧거드면 개 아들놈이다. 참 뼈빠질 설움 들으려나?" "어디 하여라. 들으면 알지." "또 그러다가 다 기절하면 어찌 하게야." "어느 시러베아들놈이 남의 설움에 기절하여야." "장담 말고 마음을 단단히 먹어라, 내 설움 나간다. 이내 전생 무슨 죄악 강보(襁褓)에 부모 잃고 외가에서 길러내어, 일곱 살이 겨우 되니 외가가 지빈무의(至貧無依), 할 수 없이 유리개걸(流離丐乞) 모진 목숨 아니 죽고 십오 세가 넘더구나. 남의 집을 살자 하니 늦잠 까닭 할 수 없고, 소금 짐 지자 한즉 성정 바빠 못 할 테요. 급주군(急走軍)을 다니자니 해찰에 탈(頉)이 나고, 중놈이나 하자 하니 군것질에 쫓겨나니 그렁저렁 삼십 넘어 계집 천신할 수 있나. 초라니패 따라다녀 비비각시 베개노릇, 잡기군(雜技軍) 수종(隨從)하여 불 돋우는 시들뀌, 한 푼 두 푼 돈을 보면 이를 갈고 모은 것이 돈 백이나 되었기에, 가난한 집 과혼처녀(過婚處女) 간신히 청혼하여 오십냥 조혼(助婚) 주고 사십 냥 의복등물, 혼인날이 당하여서 납폐(納幣) 전안(奠雁) 지내고서, 신부방에 들어앉아 주물상(晝物床) 먹은 후에 조금 있다 저녁밥, 반찬은 좋도소니 단단히 먹은 후에, 담배 피워 입에 물고 누으락 앉으락 한참을 지냈더니, 신부 잡아 넣더구나, 오십 냥 조혼(助婚)으로 그리 잘 차렸겠나. 초록 명주 저고리, 나 많은 처녀에게 홍상(紅裳)이 당하겠나. 파랑물 무명치마 새 속옷, 새 버선 낭자하고 주석비녀, 야, 우리 보는 소견에는 관물(官物) 맵시 같더구나. 아주 좋아 못 견디어 수작을 붙이기를, 내 나이 이만하니 신부 다룰 줄을 모르는 게 아니로되, 피차 늙어가는 것이 잔 수인사(修人事) 찾지 말고 어서 벗고 누워 자세. 신부 대답 아니하고 가만히 앉았기에 뒤로 안고 얼른 벗겨 잔뜩 안고 드러누워, 그러할 줄 알았더면 곧 시작하였을 새, 고생하던 이야기며 살림살이할 걱정을 한참 수작한 연후에 두 무릎 정히 꿇고 신부 양각(兩脚) 곱게 들고 주장군(朱將軍)을 잘 바수어 옥문관(玉門關)에 당도하니, 사면은 다 막히고 한가운데 수렁이라, 들어갈까 물러날까 한참 진퇴하느라니, 영취(營聚)하는 천아성(天鵝聲)이 사면에서 '뙤뙤' 하며 염치 없는 우리 기총(旗總) 방문 차고 달려들어 상투 잡아 일으키어 뺨을 치며 하는 말이 '계명군령(鷄鳴軍令) 모르관대 이 짓이 웬 짓이냐.' 구박 출문 몰아 오니 벗었던 옷 못 입어서 손에 들고 따라와서 이때까지 못 갔더니, 내 설움은 고사하고 주장군이 더 서러워 이때까지 눈물방울 댕강댕강 떨어치니, 이왕 시작한 일이나 필역(畢役)하고 왔더라면 조금이나 서러울 내 아들놈 있겠느냐." 좌중이 낙루(洛淚)하며, "참 불쌍한 일이로다."
한 군사 나앉으며, "서러운 내력 다 다르니 너 내 설움 들어보라. 우리 형제 중한 우애 옛 사람과 다름 없다. 동기연지(同氣連枝) 생겨나서 두 사람이 한 몸이라, 한 상에서 밥을 먹고 일 척포(一尺布)도 둘이 입어 주야 상종 지내더니 전장에 나온 후에 형 못 본 지 몇 해 된고. 구름을 바라보니 낮잠이 절로 오고, 나뭇잎 날아오니 서러운 마음 못 금한다. 척령(鶺鴒)은 어찌하여 둘이 서로 안 떠나고, 기러기 좋을씨고 일자행(一字行) 날아오네. 내 마음이 이러할 제 우리 형님 날 생각이 오죽이 간절하리. 상체(常棣)꽃이 피었은들 뉘와 함께 구경하며, 수유꽃 꽂자 한들 소일탄(少一歎)이 불쌍하네. 애고 애고 설운지 고."
옆에 무슨 울음소리 쇠끝같이 되게 나도, 사람은 아니 뵈어 좌중이 의심 하 되어 어인 재변(災變)인고, 한참을 찾아보니 벙거지가 울거든 좌중이 공론하여, "이게 큰 변괴로다. 저 벙거지 집어다가 강물에 내버려라." 한 군사가 집어드니 더럭더럭 더 울면서, "이놈들아, 내 목 는다." 잦혀놓고 자세 보니 선초만한 사람 하나 벙치 끈에 달렸거든 좌중이 물어, "네가 무엇이냐." "내가 전부(前部) 선봉 장합(張郃)의 화병(火兵)이다." 좌중이 대소하여, "불알 만한 그 형상에 말소리는 똑똑하네. 쥐 창만한 네 뱃속에 무슨 설움 들었느냐." "내 설움은 참 설움." "말하여라, 들어보자." "우리 집에 있을 적에 까치 새끼 하나 잡아 꼬랑이에 공작미(孔雀尾), 받침대에 앉혀 들고, 줄 밥을 먹였더니 급히 잡혀 오느라고 못 가지고 그저 와서 밤낮으로 생각터니, 아까 울고 가는 까치 정녕한 내 까치가 날 찾아왔는 것을, 경망한 승상님이 날더러 묻도 않고 글만 지어 읊으시니 절통하여 살겠는가." 좌중이 대소하여, "실없는 자식이다."
한 군사 썩 나서며, "너희는 사근취원(捨近取遠) 집 생각을 한다마는 몸 생각을 하여 보라. 병교자(兵驕者)는 패(敗)란 말을 너희 아니 들었느냐. 우리의 승상님이 안하에 무인(眼下無人)하여 남은 것이 교(驕)뿐이라. 정녕 이 싸움에 패하고만 말 터이니 우리 신세 어찌되리. 적시여산(積屍如山) 누웠다가 오연(烏鳶)이 탁인장(啄人腸)에 함비상괘고수지(銜飛上掛枯樹枝)라 피육(皮肉)은 시진(澌盡)하고, 풍마우세(風磨雨洗) 남은 뼈를 묻어 줄 이 뉘 있으리. 가련상사무정골(可憐相思無情骨)이 유시춘규몽리인(猶是春閨夢裡人) 은 옛 사람이 지은 풍월 우리 두고 한 말이라, 죽은 날을 몰랐으니 제 지낼 이 뉘 있겠나. 애고 애고 설운지고."
서러운 말들 한창 하고 슬픈 눈물 흩뿌릴 제, 한 군사 들어오는데 생긴 모양 헌걸차고 살기(殺氣)가 담성(膽盛)하여 온 세상 톡 떨어서 꿈속으로 짐작하고 벗어 들어 멘 놈인데, 좌중을 모두 꾸짖어, "예 이 손들 녹록(碌碌)하다. 전쟁에 나온 놈이 고향 생각 어디다 쓰리. 싸움타령 들어보라. 헌원씨(軒轅氏) 습용간과(習用干戈) 치우(蚩尤) 잡던 판천(坂泉) 싸움, 유사상보(維師尙父) 시유응양(時維鷹揚) 혈류표저(血流漂杵) 목야(牧野) 싸움, 칠웅(七雄) 웅자유미분(雄雌猶未分) 조득모실(朝得暮失) 춘추 싸움, 육국(六國)이 하나 되니 진시황(秦始皇)의 통합 싸움, 닫는 사슴 뉘 쫓을꼬, 팔년간과(八年干戈) 초한(楚漢) 싸움, 궁병독무(躬兵讀武) 과(過)할씨고, 효무황제(孝武皇帝) 흉노(匈奴) 싸움, 사칠지제화위주(四七之際火爲主) 광무황제 중흥 싸움, 천개지벽 (天開之闢)한 연후에 싸움 없는 나라 있나. 한운(漢運)이 말세 되니 삼국 싸움 생겼구나. 우리 몸 군사 되어 전장에 나왔으니 안득념향규(安得念香閨) 생각한들 쓸 데 있나. 닫는 말 칩떠 타고 삼척검(三尺劒) 둘러메고 끓는 물 붙는 불에 분별 없이 달려들어 오(吳)․ 한(漢) 양국 상장(上將) 머리 한칼에 선뜻 베어 인기(認旗) 대에 높이 달고 개가환양(凱歌還鄕) 돌아가면 대장부득의추(大丈夫得意秋)가 이밖에 또 있느냐." 한 군사가 대답하여, "진소위(眞所謂) 각언기지(各言其志)로다. 군신유의(君臣有義) 생각하니 충신의 아들이나, 까마귀 새벽 울음, 승상의 웃음소리 두 방정이 모였으니 모르겠다, 네 신세가 개가환향하려는지 소가 환향하려는가." 밤새도록 주육(酒肉)으로 장난하고 놀았구나.…(하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