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미립

부모 선택권

거북이3 2010. 6. 11. 16:03

부모 선택권

                                                  이   웅   재


 난초를 좋아한 분이 있었다. 사군자의 하나인 매란국죽. 전통적인 선비들은 이 네 가지를 무척이나 애지중지했다. 그 중에서도 “정(淨)한 모래 틈에 뿌리를 서려 두고/ 미진(微塵)도 가까이 않고 우로(雨露) 받아 사”(이병기의 ‘난초’)는 난초는 그 ‘고결한 성품’으로 말미암아  ‘격조 있는 삶’을 상징하는 것으로 칭송되어 왔다. 그래서 추사(秋史)도 대원군도 난을 즐겨 쳤던 것이다.

 이러한 난문화가 우리나라에서 대중화되기 시작한 것은 그런대로 먹고 사는 절박한 상황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한 1970년대 이후라고 할 것이니 아직은 그 연륜이 그리 길다고 할 수가 없다. 그런 짧은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전국에서 난을 가꾸는 애란(愛蘭) 인구가 족히 700만은 넘어 1000만 명에 가까울 것이라는 추측성 통계가 있을 정도요, 난을 좋아하는 이유를 "일상생활의 여유를 찾기 위하여"라고 한다니 격세지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선비풍의 고고한 정신적인 멋에 취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아졌다니 무척 다행스럽기도 하다.

 그런데 그것도 한때인 모양이다. 요즈음의 젊은이들은 난은 둘째 치고, 꽃나무를 기르는 일조차 거추장스러워한다. 햇빛을 좋아하는 꽃나무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싫어하는 식물도 있고, 물을 자주 주어야 하는 식물이 있는가 하면 난초와 같이 물을 자주 주면 뿌리가 쉽게 썩어 죽는 화초도 있고, 장미와 같이 정기적으로 비료를 주어야 하는 놈이 있는가 하면 철쭉류처럼 비료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놈도 있는 등 그 성질들이 각양각색이라서 그 특성에 맞게끔 가꾸는 일도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gesomoon.com’인가엘 우연히 들렀더니, 이런 글이 있었다. 

 “울 할아버지, 아버지께서 그렇게 꽃나무들을 좋아하셨어. 근데 웃긴 게 그 무거운 화분을 관리하는 건 나란 말이지. 물론 물 주고 영양제 같은 주사기 꼽고 하는 건 두 분이 전적으로 하셨지만 계절 바뀔 때마다 화분 들어내서 비료주고 베란다고 밖이고 낑낑대며 번갈아 옮기고 그걸 내가 다했다는 거야.”

 그렇다. 자식들의 입장에서는 그거 귀찮고 하기 싫은 일이었을 게다. 취미 생활도 자식들을 배려해서 선택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시조시인 김상옥은 백자를 좋아했다. ‘순박하고 고아한’ 백자의 아름다움에 빠져 1940년대부터 백자 수집을 시작했으며, 인사동에서 고미술품점인 '아자방'을 경영하면서 백자를 소재로 하여 많은 작품을 남긴 그분의 자제들은 모르긴 몰라도 아마 아버님의 취미를 싫어하지는 않았을 성싶다. 백자 중에서도 ‘달항아리’와 같은 것은 국보 한 점, 보물 6점에 이를 정도이니, 얼마나 고귀한 것인가? 속된 말로 그 가격을 생각해 보아도 입을 쩍 벌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백자 ‘달항아리’가 아니던가?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127만 2,000달러에 낙찰되기도 했다니, 부모 선택권이 있다면, 그 선호도에서 상위권을 점유함직한 취미 생활이 아닐까 싶다.

 나와 같은 훈장의 선호도는 어느 만큼이나 될까? ‘훈장의 ×는 개도 안 먹는다.’고 했으니, 물어보나마나 뻔한 일인데, 남을 가르친다는 일이 얼마나 힘들면 속이 푹푹 썩어 그 ×은 개도 안 먹는다고 했을까?

 옛날 요임금도 아들 단주(丹朱)를 가르치기 위해서 바둑까지 만들어내면서 노력을 했지만, 결국은 헛수고가 되질 않았던가? 단주는 자신의 불초(不肖)함은 생각지를 않고, 오직 천자의 자리를 물려받지 못했다는 불만으로 순임금을 살해하는 지경에까지 이르지를 않았던가? 그로 인해 요임금의 두 딸, 그러니까 순임금의 두 왕비요, 자신의 두 누이동생인 아황과 여영은 동정호로 흘러드는 소상강(瀟湘江)에서 자결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그때 흘린 피는 그곳의 대나무에 묻었고, 그 핏자국으로 불그죽죽한 무늬가 생긴 대나무 곧 소상반죽(瀟湘斑竹)은 우리 선조들이 장죽(長竹)의 재료로서는 최상품으로 쳐주던 귀한 물건이 아니었던가?

 불쌍하고녀, 훈장들이여.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대들이 없으면 우리 대한민국이 발전할 수가 없을 수밖에 없을 터이니, 개도 안 먹는 ×이라도 싸면서 국민을 위해, 나라를 위해 열심히, 요새 아이들 말대로 ‘열씨미’, 우리 젊은이들을 가르쳐 보세나.

 그뿐이라면 그래도 무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훈장들은 그 지긋지긋한 책들 등쌀에 어딜 가나 지청구만 들을 뿐이다. 돈만 보았다 하면 그저 사 들이는 것이 책이요, 그래서 좁은 집구석은 온통 책으로 가득 차기 일쑤이다. 그놈의 책들, 정말 ‘웬쑤’다. 이사 한 번 가려면, 얼마나 힘이 드는지 다른 사람들은 모를 게다. 요새는 포장이사 덕분으로 웬만한 이사란 그저 맡겨 버리면 ‘끝’일 수도 있다. 하지만, 책의 경우엔 다르다. 포장이사쪽에서도 책에 대해서만은 ‘차한에 부재’일뿐더러, 훈장의 처지에서도 그 꽂혀 있어야 할 자리를 흐트러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직접 포장하는 수밖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훈장들은 이사를 자주 할 수가 없다. 그것이야말로 정말로 문젯거리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사를 자주 해야 재산을 증식시킬 수 있다는 것이 공식화되어 있지를 않던가? 그러니, ‘부모 선택권’이 있었다면, ‘책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훈장을 부모로 선택할 가능성은 거의 없지 않을까 싶다.

 ‘부모 선택권’이 있었다면, 흥부네 집의 25명이나 되는 그 많은 아이들은 과연 흥부를 아버지로 선택했을까? 그런 점을 감안한다면, 흥부전은 그 속편이 탄생되어야 마땅하다는 생각이다. 많은 자식들 중의 몇 명만이라도 입신출세하여 떵떵거리고 살게 되었다는 얘기가 덧붙여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25명에 못지않은 22명의 자식을 두었던 세종대왕에 버금가는 뒷얘기가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것도 스스로의 노력에 의하여 왕공에 뒤지지 않는 성공을 했다는 식의 얘기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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