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 고전수필 순례 18)
파리를 조문하는 글[吊蠅文]
정약용 지음
이웅재 해설
가경(嘉慶; 청 인종의 연호) 경오년(1810) 여름에 파리가 극성하여 온 집안에 득실거리고 점점 번식하여 산골짜기에까지 만연하였다.…술집과 떡가게에 구름처럼 몰려들고 윙윙거리는 소리가 우레 같았다.… 그리하여 혹은 통발을 설치하여 거기에 걸려 죽게 하고, 혹은 독약을 쳐서 약기운으로 전멸시켰다. 이에 내가 말했다.
“아! 이는 죽여서는 안 되는 것이니, 굶주려 죽은 자의 전신(轉身)인 때문이다. 아! 기구한 생명이로다. 애처롭게도 지난해 큰 기근을 겪은데다가 또 겨울의 혹한을 견디면서 염병이 돌게 되었고 게다가 또 다시 가혹한 징수까지 당하여 수많은 시체가 길에 널려 즐비하였고, 그 시체를 버린 들것은 언덕을 덮었다. 수의도 관도 없는 시체에 후덥지근한 바람이 불고 기온이 높아지자, 그 피부가 썩어 문드러져 옛 추깃물(송장이 썩어서 흐르는 물)과 새 추깃물이 고여 엉겨서 그것이 변해 구더기가 되어…이 구더기가 날개를 가진 파리로 변해 인가로 날아들게 된 것이다. 그러니 이 파리가 어찌 우리 무리[類]가 아니랴? 저절로 눈물이 흐른다. 이에 음식을 만들어 널리 청해 와 모이게 하니 서로 기별해 모여서 함께 먹도록 하라.”
그리고 다음과 같이 조문하였다.
파리야, 이 음식 소반으로 날아와 모여라. 수북이 담은 흰 쌀밥에 국도 간 맞춰 끓여 놓았고, 무르익은 술과 단술에 밀가루로 만든 국수도 겸하였으니, 그대의 마른 목구멍과 그대의 타는 창자를 축이라.
파리야, 날아오라. 훌쩍훌쩍 울지만 말고 부모와 처자를 모두 거느리고 와서 여한 없이 한번 실컷 포식하라. 그대의 옛집을 보니, 쑥대가 가득하며 뜰은 무너지고 벽과 문짝도 찌그러졌는데, 밤에는 박쥐가 날고 낮에는 여우가 운다. 또 그대의 옛 밭을 보니 가라지만 길게 자랐다. 금년에는 비가 많아 흙에 윤기가 흐르건만, 마을엔 사람이 살지 않아 황무한 폐허가 되었다.
파리야, 날아와 이 기름진 고깃덩이에 앉으라. 살진 소다리의 그 살집도 깊으며 초장에 파도 쪄놓고 농어 생선회도 갖추어 놓았으니, 그대의 굶주린 창자를 채우고 얼굴을 활짝 펴라. 도마에도 남은 고기가 있으니 그대의 무리에게 먹이라. 그대의 시체를 보니 이리저리 언덕 위에 넘어져 있는데, 옷도 못 입고 모두 거적에 싸여 있구나. 장맛비가 내리고 날씨가 더워지자 모두 이물(異物)로 변하여, 꿈틀꿈틀 어지러이 구물거리면서 옆구리에 차고 넘쳐 콧구멍까지 가득하다. 이에 허물을 벗고 변신하여 구속에서 벗어나고, 송장만 길가에 있어 행인이 놀라곤 한다. 그래도 어린 아이는 어미 가슴이라고 파고들어 그 젖통을 물고 있다. 마을의 썩는 시체는 묻지를 않아서 산에는 무덤이 없고, 그저 움푹 파인 구렁창을 채워 잡초가 무성하다. 이리가 와 뜯어 먹으며 좋아 날뛰는데, 구멍이 뻐끔뻐끔한 해골만이 나뒹군다. 그대는 이미 나비되어 날고 번데기만 남겨 놓았구나.
파리야, 날아서 고을[縣]로 들어가지 마라. 굶주린 사람만 엄격히 가리는데 서리가 붓대를 잡고 그 얼굴을 세찰(細察)한다.…돼지처럼 살찐 건 호세 부리는 아전들인데, 서로 부동하여 공로를 아뢰면서 가상히 여겨 견책하지 않는다.… 북소리와 피리소리 요란하며, 아미(蛾眉)의 아리따운 기생들은 춤추며 빙빙 돌고 교태를 부리면서 비단 부채로 가린다. 비록 풍성한 음식이 있어도 그대는 마음대로 먹을 수가 없구나.
파리야, 날아서 관(館)으로 들어가지 마라. 깃대와 창대가 삼엄하게 꽂혀 있지 않느냐? 돼지고기 쇠고기 국이 푹 물러 소담하고 메추리구이와 붕어 지짐에 오리국, 그리고 꽃무늬 아름다운 중배끼(밀가루를 꿀과 기름으로 반죽하여 네모지게 잘라 기름에 지져 만든 과자)를 실컷 먹고 즐기며 완상하지만, 큰 부채를 흔들어 날리므로 그대는 엿볼 수도 없단다. 장리(長吏; 수령)가 주방에 들어가 음식을 살피는데, 쟁개비(무쇠나 양은 따위로 만든 작은 냄비)에 고기를 지지며 입으로 불을 분다. 계피 물 설탕물에 칭찬도 자자하나, 호랑이 같은 문지기가 철통같이 막아서서 애처로운 호소를 물리치며 소란피우지 말라 한다. 안에선 조용히 앉아 음식 먹으며 즐기고 있고, 아전 놈은 주막에 앉아 제멋대로 판결하여 역마를 달려 마을이 편안하고, 길에는 굶주린 사람 없어 태평하고 걱정이 없다고 한다.
파리야, 날아와 환혼(還魂; 넋이 살아 돌아옴)하지 말라. 지각없이 영원토록 흔흔한(매우 기쁘고 만족스러움) 그대를 축하한다. 죽어도 앙화는 남아 형제에게 미치게 되니, 6월에 벌써 조세를 독촉하는 아전이 문을 두드리는데, 그 호령은 사자의 울음 같아 산악을 뒤흔든다. 가마와 솥도 빼앗고 송아지와 돼지도 끌어간다. 그것도 부족하여 관가로 끌어다가 볼기를 치는데 그 매를 맞고 돌아오면 기진하여 염병에 걸려서, 풀 쓰러지듯 고기 물크러지듯 죽어가지만 만민의 원망, 천지 사방 어느 곳에도 호소할 데가 없고, 백성이 모두 사지에 놓여도 슬퍼할 수가 없다. 어진 이는 위축되어 있고 뭇 소인배가 날뛰니 봉황은 입을 다물고 까마귀가 짖어대는 격이다.
파리야, 날아가려거든 북쪽으로 날아가라, 북쪽 천리를 날아가 구중궁궐에 가서 그대의 충정(衷情)을 호소하고 그 깊은 슬픔을 진달하라.…뇌정(雷霆)같이 울려 천위(天威)를 감격시키면 곡식도 잘되어 풍년을 이룰 것이다. 파리야, 그때 남쪽으로 날아오라.
♣해설: 정약용(丁若鏞;1762∼1836). 조선 후기의 실학자. 자는 미용(美鏞). 호는 다산(茶山) 또는 여유당(與猶堂). 근기(近畿)학파의 남인 가문 출신으로, 이익(李瀷)의 학통을 이어받아 발전시켰다. 정조 연간에 벼슬을 지냈으나, 청년기에 접했던 서학(西學)으로 인해 장기간 유배생활을 하였다. 이 기간에 자신의 학문을 더욱 연마하여 일표이서(經世遺表, 牧民心書, 欽欽新書) 등 500여 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을 남겨, 조선 후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인물로 평가된다.
그의 호 ‘여유’는 “망설이고(與), 겨울에 냇물을 건너는 것같이 주저하면서(猶)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한다.”라는 뜻으로, 노자의『도덕경』에 나오는 말이다.
이「조승문」은 다산시문집 제22권 ‘잡문(雜文)’에 실려 있는 글로 시물(時物; 철에 따른 사물)의 변괴를 들어 당시의 부패한 사회상을 풍자한 글이다.
번역은 한국고전번역원의 한국고전DB를 따랐으나 부분적으로 윤문을 하였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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