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 캐나다 문화 체험기 33. Old Town, 온점(.hwp
(미국 ․ 캐나다 문화 체험기 33)
Old Town, 온점(.)보다는 반점(,)이 훨 더 비싸다
이 웅 재
우리는 다시 저가형 마켓인 M(Marshalls)을 둘러봤다. 흑인들이 많고 총기소지가 허용되고 16살부터는 운전도 할 수가 있단다. 조금은 무서운 생각이 들기도 하였으나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오늘은 기온이 28゚c까지 올라갔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군데군데 눈이 쌓여 있을 뿐만 아니라 추워서 오돌오돌 떨기도 했었는데, 오늘은 더웠다. 그래서 좀 시원한 곳으로 가기로 하였다. 거기가 바로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였다. 영국식민지 시절부터 북 버지니아의 중심 지역이었고 독립전쟁, 남북 전쟁을 거치면서도 상업과 무역의 거점도시였던 250여 년 전통을 간직한 고풍스런 자그마한 도시, 북 버지니아에 있으면서도 행정적으로는 주 정부에 속하지 않는 독립 도시, 올드타운(Old Town)을 끼고 있는 포토맥(Potomac) 강변의 도시가 바로 미국의 알렉산드리아이다.
공영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포토맥 강가의 선창가를 거니노라니, 더위가 싹 가신다. 어디를 가나 보통 선창가라고 하면 조금은 지저분하게 마련인데, 여기는 달랐다. 아주 깨끗했다. 예전엔 이곳에 노예시장이 있었다니 믿기지가 않는다. 즐비하게 정박해 있는 모터보트 하나에 훌쩍 올라 부웅 붕 신나게 달리고픈 심정이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던가, 일단 간단하게나마 뱃속을 채우고 워싱턴에 있는 유럽 거리라는 올드타운으로 들어섰다. 이곳은 미국 초대 대통령이었던 조지 워싱턴이 태어나고 자랐다는 곳이요, 남북전쟁 때 남부 연합군 총사령관이었던 로버트 리(Robert E. Lee) 장군이 어릴 적 살던 곳이라고 한다. 로버트 리는 패장이면서도 남북군 모두에게 존경을 받는 영웅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그는 뛰어난 전술을 구사했고 인품 또한 훌륭했다. 남부군이면서도 북군을 ‘적(敵)’이라고 칭하지 않았다고까지 하지 않던가? 그는 전쟁이 끝난 후, 워싱턴 대학의 학장을 맡기도 했었는데, 그가 여행을 할 때면 남군에 속했던 이들은 물론이요, 북군으로 있던 장교나 사병들마저도 찾아와 경의를 표했다는 것이다. 지금도 올드타운에는 그의 이름이 붙은 거리가 있어 이곳 사람들은 그를 영원히 잊지 않고 있었다.
'늙음(Old)'이 대접받는 곳이라 고색창연한 모습일 것 같은데, 예상 외로 아기자기한 도시였다. 도로 옆 개인 주택이나 가게들마다 아주 예쁜 화단이 앙증스러운 모습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당기고 있었고, 거리는 깨끗했다. 여행안내소(Visitors Center)엘 들렀더니, ‘알렉산드리아 시내 명소 안내’라는 육필 한글로 쓴 안내장까지 건넨다.
The Christmas Attic이라는 가게는 2층의 Attic(고미다락방)에까지 온갖 크리스마스 용품으로 가득 찼다. 서영이와 종한이가 같이 왔더라면 완전히 넋을 잃을 만한 곳이었다. ‘Why Not’이라는 장난감 가게도 볼만했고, ‘Pharmacy’라는 곳도 아이들에겐 발길을 꼭꼭 붙잡아 매어 둘 곳이었다. 예전에는 ‘약국’ 하면 ‘Drug’로 알았었는데, ‘Drug’에는 마약이라는 뜻도 있어서 요즈음에는 주로 ‘Pharmacy’를 사용한다는데, 여기에서는 약품뿐만 아니라 어린이용품, 장난감에서부터 화장품, 음료수, 맥주 등도 팔고 있었다. ‘price cut’라는 빨간 딱지가 붙은 물건들도 있었는데, 이때의 ‘cut’는 ‘off나’ 'down'의 뜻이라고 하니 할인품목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어떤 물건에는 ‘buy 1 get 1 free’라는 써 붙인 물건들도 있었다. 우리나라 식으로 말하면 ‘1+1’이라는 말, 또는 ‘하나 더’에 해당하는 말이라고 하겠다. 'flu shots'이라는 곳은 주사 맞는 곳이었다(flu 또는 flue는 influenza 곧 ‘독감’을 가리키는 말).
가구점에도 들러 보았다. 여기야말로 올드타운다웠다. 아, 그리고 이곳은 우리나라로 치면 인사동 거리와 비슷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가죽으로 된 찬장은 3,500$이라는 가격표가 붙어 있었고, 고색창연한 나무책장은 2,295$, 침대는 2,995$이었다. 옆집 신발가게에는 ‘buy one get one 50% off’도 있었고, 시계방에서는 롤렉스시계를 8,000$이라고 가격표를 붙여 놓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건 ‘0’이 너무 많이 붙었다 싶었다. 아예 없던가 하나 정도라면 그런대로 하나 사서 차고 으스대보고도 싶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저건 쓸모도 없는 ‘0’을 덕지덕지 붙여놓은 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8’자 뒤의 ‘,’를 ‘.’으로 바꿔 놓을까? 온점(.)보다는 반점(,)이 훨 더 비싸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마침표보다는 쉼표가 더 비싸다? 마치는 일보다는 쉬는 일이 더 힘들다는 의미는 아닐까? 그래 좀 쉬어보자는 생각으로 Mexican Grill인 멕시칸 패스트푸드 치폴레(Chipotle)에서 치킨 뷰리또(Burrito: 밀가루 반죽에 싸서 먹는 것)와 치킨 보울 (Bowl: 공기)을 주문했다. 가격은 6$가 조금 못 되었다. 거기에 콜라 1컵에 1.5$, 요건 무한 리필이 되는 것이었다. 합치면 1인당 7.5$, 아, 이제야 ‘8’자 뒤의 ‘,’를 ‘.’으로 바꿔 놓은 롤렉스시계 값과 비슷해졌다. 먹어야 사는 것, 먹는 것에야 ‘8.000$’쯤 허비한들 어떠랴 하는 마음으로 ‘맛있게’(의외로 진짜 맛있었다) 먹었다. 진짜 쉬는 것이 더 힘들었다. 음식을 사는 데 도대체 말이 제대로 통하질 않으니 손짓 발짓 해가면서 간신히 사서 먹었던 것이다.
가게 앞 길거리에는 쇠막대기로 펜스를 쳐 놓고서 그곳에 앉아 음식을 먹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걸 보니 성남문화원의 문학교실 친구 몇이 분당의 이매동 탄천 둔치 쪽에 세워져 있는 원두막에서 술타령하던 일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우리는 그곳을 ‘탄천카페’라고 부르면서 여름날 가끔 족발이나 치킨 등을 사 가지고 가서 쐬주잔을 기울이곤 했던 것이다.
'미국 ․ 캐나다 문화 체험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국 ․ 캐나다 문화 체험기 35) 돈 버는 일은 쉬웠다, 아니, 힘들었다 (0) | 2012.02.26 |
---|---|
(미국 ․ 캐나다 문화 체험기 34) 초록 일색의 몰취미를 중화시켜 주는 민들레와 한국말도 잘 알아듣는 벌 (0) | 2012.02.24 |
(미국 ․ 캐나다 문화 체험기 32) '씽씽똥꼬' (0) | 2012.02.16 |
(미국 ․ 캐나다 문화 체험기 31) 아기자기한 시골마을 옥턴(Okton)으로 (0) | 2012.02.14 |
(미국 ․ 캐나다 문화 체험기 30) 예일대에서 울화통이 터지다 (0) | 2012.02.08 |